〈 87화 〉 새로운 무기.(3)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지루할 틈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잠깐의 휴식도 없는, 빡빡한 일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첫날은 S클래스 생도들과 가벼운 파티가 있었다.
파티라고 지칭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거창한 것까진 없었다.
이전에 열렸던 파티들에 비하면 훨씬 초라한 규모였으니까.
이해는 한다.
프라하에서 숙취로 고생한 게 바로 엊그제니, 얘네들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둘째 날은 아이나와 데이트가 있었던 날이다.
모처럼 단둘이 하는 데이트라서 그런가, 지나온 일주일 중에서 가장 좋은 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들이었다.
가정사 같은 것들.
무슨 그런 것을 두고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나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녀는 자신의 배경에 대해 말하는 것을 유달리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좀처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아이나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지.
조금 놀랐던 점은, 니힐리스가 언급했었던 미츠루 가문 출신의 제자가 바로 아이나의 조부였다는 사실이다.
나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거기에 있었고.
비주류 무기인 마나글레이브를 사용했다는 점.
멍청한 면도 많지만, 의외로 치밀한 구석이 있다는 점.
성격은 느긋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점이 자신의 실종된 조부와 오버랩되어서라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녀는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자색 기사단에 발을 들였다는 것이 가문에 알려진 뒤로는, 파문당해서 연락 한 번 하지 못하고 지냈다고.
어렵사리 진실을 알려줄까도 싶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꼴이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아이나도 그가 죽었다는 것쯤은 이미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그러한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엔 우리는 자연스레 입을 맞추고 있었다.
결코 합의 하에 진행된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가장 좋은 날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 할 필요도 없지.
셋째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굉장한 일이 일어났던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미녀인 여자친구들이 생겼다는 점이 가장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말하는 거다.
그야, 미녀인 여자친구를 사귀는 남자는 제법 있을지 몰라도, 방금 막 낚아 올린 황새치를 실물로 본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솔직히 저게 낚이기 전까지는 나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우리 같은 초보 낚시꾼이 뭘 낚겠어’라는 마인드.
기껏해야 잔챙이 몇 마리나 건져 올리고 끝일 줄 알았건만.
알프레드 녀석은 초보가 아니었다.
아무리 뱀머리 암초가 좋은 낚시 포인트라고 해도 그렇지, 다랑어나 돛새치 계열의 물고기를 초보가 잡는다?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지.
그것도 4m를 훌쩍 넘기는 사이즈인데.
솔직히 실물을 봤을 때는 나도 엄청 쫄았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를 ‘고요한 대자연에 맞서 싸우는 노인의 처절한 사투’라고 평가하는지 알 것만 같았으니까.
헤밍웨이는 그러한 의도로 쓴 책이 아니라지만, 저 괴수의 거대한 몸집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걸.
그래도 결말은 똑같이 인간의 승리로 끝났지만.
셋째 날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넷째 날에 일어난 일을 유추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래, 넷째 날도 파티가 있었지.
첫째 날처럼.
다만, 이날의 파티는 모두가 원해서 한 파티였다기보단, 알프레드 녀석의 애원으로 성사된 파티에 가까웠으리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갓 잡은 황새치로 벌이는 바비큐 파티를 누가 마다하겠어?
나중엔 알프레드가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더라.
워낙 양이 많아서 교수님들을 포함한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 먹어도 남았지만.
다섯째 날은 프리실라와 데이트가 있었다.
데이트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긴 한데.
프리실라와 나가는 데이트는 보통 이렇다 할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았거든.
평범하게 밥 먹고, 대충 놀다가 헤어지는, 그 정도.
물론, 이전의 내 삶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만 해도 분에 겨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
게다가, 꼭 무슨 비범한 일을 함께해야만 좋은 건 아니잖아?
가끔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더 좋을 때도 있고.
사실 그럴 만한 사람이 프리실라뿐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평범한 일상을 나누려면, 상대도 평범해야 하니까.
근데, 아이나는 빈말로라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보긴 어렵잖아.
이건 아이나를 비난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솔직한 평가지.
아이나가 좋은 사람인 건 맞지만, 범인과는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사실이니까.
뭐, 비단 아이나만의 특징은 아니기도 하다.
애초에 S클래스 내에 정상인이라고 불릴 만한 이는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 몇 안되는 상식인 포지션에 껴 있는 게 프리실라고.
나야 그녀 덕분에 좋았지만.
빡빡한 일정 속에서 유일한 힐링을 할 수 있는 기회였거든.
과연 프리실라는 나와 있던 시간에 만족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마지막 날, 여섯 번째 하루는 빈센트와 세레나에게 먼지가 나게 두들겨 맞았었다.
아주 날 반쯤 죽여놓으려고 하더라고.
나의 U클래스 진급이 기정사실이 된 것이 화근이었다.
이만치 놀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냐고, 앞으로도 놀기만 하면 U클래스에선 절대 못 버틸 거라며, 날 무진장 굴려댔었지.
이 이야기만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일단 현재 담당 교수기도 하고, 워낙 생도들을 험하게 굴리기로 유명한 빈센트가 굴러먹었겠구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손대중해주는 쪽은 빈센트였고, 교육을 빙자한 학대를 하는 쪽은 세레나였으니까.
사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세레나가 좋은 사람인지 알았다.
약간 맛이 가 있긴 하지만, 성격도 착하고, 몸매도 착한 그런 누나 정도로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그녀와 약간의 거리를 두는 걸 이해하지 못했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해 봐야 생기가 없는 죽은 눈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날, 나는 깨닫고 말았다.
어째서 과거의 세레나에게 ‘파괴자’, ‘광란선봉대’라는 이명이 붙었는지 말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전투광들과도 차원이 달랐다.
검을 잡은 순간의 그녀는, 도끼를 맞춘 6렙 올라프요, 이속 업을 찍은 목동저그의 울트라이자, 뽕 받은 용검 겐지를 연상케 하는 미친 년이었으니까.
심지어는 자제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그리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
아예 부숴먹을 걸 상정했는지, 생도용 훈련실이 아니라, 현직에서 뛰는 히어로들이나 쓸법한 훈련실을 준비해왔으니까.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억울한 나머지 세레나에게 항의도 해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그야, 돌아온 대답이 하나같이 기상천외한 것들 뿐이었으니까.
‘나 치곤 많이 자제한 거였다.’
‘다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서다.’
‘이런 상황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었지.
아무튼, 내 6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일정이라 해봐야 노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그렇다 치더라도 이 일정을 전부 소화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노는 것도 분명히 힘에 부치는 일이니까.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쌩쌩할 수 있는 건 다 젊음과 이 초인적인 육체 덕분이겠지.
그게 아니었다면 난 지금 일어나지도 못한 채 침대에서 근육통으로 빌빌거리고 있었을 테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뻐근하긴 하다.
그래도 이렇게 멀쩡한 몸과 정신으로 앨리스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게 어디야.
* * *
앨리스는 내가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고 있던 눈치였다.
내가 노크를 하기도 전에 먼저 문을 열어주었으니.
이 정도면 나보다 더 들뜬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앨리스 교수님.”
“어서 오세요. 박성진 생도.”
“그게 제 마나글레이브의 프로토타입인가요?”
“그렇죠. 사실 작동하는지밖에 실험해 보지 않았어요. 다루기 어려운 무기라고 들었거든요. 자세한 건 일단 박성진 생도가 직접 사용해 보는 게 빠를 것 같군요.”
평범하군.
외관상으로는 다른 마나글레이브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지나치게 심플한 내부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프로토타입은 핵심적인 기능이 잘 작동하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음….”
“어때요? 아주 기본적인 구색만 맞춰 놓은 거긴 한데.”
“문제가 될 만한 점을 말하면 되는 건가요?”
“네, 일단은 천천히 수정해나갈 계획이에요. 한번에 모든 문제를 수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직접 써보지 않고서는 모르겠는데….”
“저기 소형 훈련실이 있으니, 가서 확인해 보세요.”
…과연 아티팩트네.
정말 기본적인 구실밖에 갖추지 않은 물건이 이 정도로 잘 작동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다만, 수정해야 할 점은 산더미같이 많군.
“문제가 많은 표정이네요.”
“일단 프리즘과 렌즈의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네요. 결합부에서 마나의 누수가 느껴집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두 번째로는, 출력량을 조금 낮춰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렇게 마나가 많이 누수되는 데도 일반적인 마나글레이브의 출력과 비슷한 수준이거든요. 출력은 너무 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중요한 건 마나의 밀집도라서.”
“음, 렌즈의 조율… 좀 더 정밀한 계산이 필요하겠군요. 다른 문제는 없나요?”
“그립감이 좀 별로네요. 냉각로랑 융합로의 크기가 너무 커서 그런 것 같은데.”
“그건 냉각로랑 융합로가 아니에요. 실험용으로 넣어본 건데… 소형화를 할 필요가 있겠네요.”
기어코 프로토타입에도 장난질을 쳐놨구만.
쓰면서 이상한 점은 딱히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지.
“일단 조금만 더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겠어요? 직접 관찰해야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평소 훈련하던 대로만 하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사용하는 검법은 이런 협소한 공간에선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검법이라, 표본으론 큰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커요.”
“상관없어요. 다음엔 제가 찾아갈 테니.”
“그래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일단 시작해주세요.”
앨리스의 요청에 따라, 나는 영식과 류진의 기술들을 몇 가지 선보였다.
그녀도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관찰, 스케치하고 있었고 말이다.
“음, 이 정도면 충분한 데이터가 될 것 같아요. 다음에 다시 보죠.”
“이번에도 기한은 일주일이면 될까요?”
“아뇨, 이번엔 3일이면 충분해요.”
3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보다 감을 빠르게 잡은 모양이네.
역시 천재는 달라도 뭐가 다르군.
“그럼, 3일 뒤에 훈련장에서 뵙는 걸로 할까요?”
“네, 그렇게 해요.”
“알겠습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뭘요. 다 제가 약속했던 건데. 딱히 번거롭지도 않아요. 제게도 즐거운 일이라서. 박성진 생도도 수고 많았고, 들어가 보셔도 좋아요.”
나는 앨리스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뒤로 하고,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웃음 참느라 힘들었네.
다스부츠 선글라스를 연상케 하는 저 바이저는 대체 뭐야.
꼭 저런 걸 쓰고 작업해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