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올림피아드.(4)
* * *
9월 12일, 결승의 날.
보통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보통 결승을 앞두고 있다 하면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우리에게선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결승전은 즐기는 마인드로 하자고.”
“즐기면서 해도 우승할 거 같은데.”
“인제 와서 우승 따위는 알 바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8비트 픽셀 선글라스는 어디서 구해 온 거야?”
보다시피, 이런 분위기다.
이 모습만 본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국제대회 결승 진출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어디 놀러 가는 사람 정도로 볼 것이다.
뭐, 그렇다 해서 이들의 태도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도 이번 결승만큼은 긴장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니까.
“저녁으로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뭘 귀찮게 고민해. 뷔페 가면 되지.”
“뷔페 음식은 맛없는데.”
“저녁에 결정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맛집은 예약 안 해놓으면 못 가잖아.”
우리가 결승을 앞두고 이렇게 느긋한 태도로 임할 수 있는 이유는, 우승 따위는 어떻게 되든지 별로 알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우리의 목표는 결승 진출, 즉, 2위 확보에 있었으니까.
물론 결승까지 온 마당에, 기왕이면 우승도 하는 게 좋겠지.
2위로 마무리하면 속도 조금 쓰릴 거고.
하지만, 그깟 아쉬움 정도야 얼마든지 금융 치료로 해결할 수 있다.
100만 달러의 금융 치료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다들 들뜬 건 알겠는데, 고의로 패배한다든가, 경기에 대충 임한다든가 하는 추태를 보이지는 마라.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우리 아카데미의 명예에도 지장이 가는 행동이다.”
“그래, 유종의 미를 거둘 줄도 알아야지.”
매사에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세레나의 입에서 나왔다곤 믿을 수가 없는 말이네.
저런 소리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한마디 더 하자면, 외부에서도 많이 주목하는 대회인 만큼, 오늘은 행실에 대해 특히 주의하도록.”
““네.””
“그럼, 스트라흐 스타디움으로 출발하자.”
* * *
경기장 내부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았던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지난 공개 토너먼트에서 본 히어로들인가 본데… 이래저래 귀찮아지겠네.
“로렌스, 한 번만 더 재고해주면 안 될까? 퍼스트 브리게이드 정도면 괜찮잖아.”
“알프레드 생도, 시스리히터는 언제나 자네에게 열린 문이네.”
“린, 우리가 보낸 메일은 언제 읽어줄 거야?”
그래, 내 이리될 줄 알고 있었지.
변방의 무명 팀에서부터, 아예 대기업을 모 그룹으로 삼고 있는 대형 히어로 팀까지.
여기저기서 우리를 영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박성진 생도께서 저희 하람에 입단해주신다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해드리겠습니다.”
“초봉은 저희 엘리시스보다 높은 팀이 없을 거라고 자부해요. 인센티브도 업계 최고 수준이고요.”
“최진운이라고 합니다. 지난 중간고사 때 연락드렸던 팀 중에 혹시 윤슬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지.”
솔직히 말해, 나는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세자르 교수님의 당부도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연락해주신 점은 감사하지만, 저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팀이 있어서요.”
“그게 어딥니까!”
“혹시 어느 팀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 팀에서 부른 연봉의 두 배를 약속할게요.”
“적어도 국내 팀인지, 해외 팀인지만 알려주시죠!”
이게 이렇게 스노우볼이 굴러갈 줄은 몰랐는데.
다른 녀석들이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아예 대답하지 않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렇게, 한참을 인파 사이에 갇혀 고생하던 와중, 누군가의 손이 쑥하고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나를 끌고 나갔다.
“대체 그 사이에서 뭐 하고 있었어?”
“아, 자꾸 자기 팀에 입단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그런 건 그냥 무시해야 해. 대답하면 더 귀찮게 굴어.”
“그래야겠다.”
내민 손의 주인은 프리실라였다.
유달리 하얗던 손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긴 했다만.
그녀가 내 손을 이끌고 도착한 곳에는 클로에, 오스카, 빈센트, 그 외의 다른 생도들을 비롯한 ‘진짜’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있었다.
“결승 진출 축하한다.”
“백만장자가 됐다고 우릴 잊은 건 아니지?”
“이제 아기 여우는 벗어난 거 같네?”
클로에는 아직도 저 여우 어쩌고 하는 걸 밀고 있었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라고 생각되지만, 클로에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10대나 20대는 갓난아이 수준이라고 느껴질 테니,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다들 여긴 왜 온 거야?”
“2학기 중간고사도 끝났으니, 응원하러 온 거지.”
“다들 시험은 잘 봤냐?”
“천현우가 제일 잘 봤고, 의외로 베아트릭스가 조금 치고 올라왔어. 나머지는 그 전이랑 별 차이 없고.”
슬슬 베아트릭스도 성장할 시기가 다가왔나 보네.
원작의 주인공이니 이상할 건 없다지만.
“모두 축하하네. 계약대로 돈은 모두 입금해놓았으니, 확인해보도록.”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자네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내기를 한 거였나?”
“아닙니다.”
유감이지만,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알던 미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
물론 내가 하는 일들은 원래부터 미래를 비틀기 위함이었다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니 참으로 다행이군. 만일 자네가 알고 내기를 건 거였다면, 조금 억울할 뻔했다네.”
“제가 아는 미래는 한정적입니다. 그다지 완벽하다고 볼 수도 없고요.”
“그렇다면, 자네가 본 미래는 패배하는 미래라는 것인데, 왜 그런 내기를 걸었나?”
“불행한 미래니 더욱 바꿔보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자신의 불행을 예견한다면 대부분은 그것을 바꾸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아닐 때도 가끔 있다.
자기 수준에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을 마주한다면, 손 놓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흔하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분명히 내 수준에서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작은 일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걸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래, 앞으로 벌어질 불행한 미래들을 자네가 바꾸리라 믿고 응원하지. 매그놀리아 아카데미와의 결승전도 이긴다면 더욱 좋겠군.”
“매그놀리아 아카데미는 오셀롯 아카데미와 비슷한 수준이니, 많이 어려운 상대가 될 거야.”
“꼭 우승해 보이겠습니다.”
“로렌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믿음이 가네. 기대하고 있을게. 경기 잘하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오스카와 클로에는 자리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나섰고.
그들의 뒷모습이 인파 속에 묻혀 사라질 때쯤, 우리도 대기실로 향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해설, 케이틀린 코네리, 캐스터 강유성이 스트라흐 스타디움에서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해설을 맡은 케이틀린 코네리입니다.
강유성?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누구였더라.
아, 맞아. 지난번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캐스터였다.
케이틀린 코네리는 누군지 잘 모르겠고.
여러분들이 가장 기대하셨을 경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아카데미 올림피아드의 결승전이죠. 경기에 앞서, 양 팀의 간략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죠. 명실상부 최고의 아카데미로 평가받는 곳이니까요.
매그놀리아 아카데미는 어떤가요?
매그놀리아 아카데미는 실적으로 유명한 아카데미죠. 히어로 팀이 유달리 좋아하는 아카데미이기도 하고, 큰 대회만 떴다 하면 상을 휩쓸어가는 아카데미니까요.
사실 매그놀리아 아카데미는 많은 아카데미 중에서도 굉장히 좋은 편에 속하는 곳이다.
일단 우리와 같이 근본 있는 0세대 아카데미 중 하나이며, 창립 이후 서열 5위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명문 중에서도 명문이니까.
다만, 유난스러울 정도로 실적에 집착하는 것이 특징인 아카데미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저 해설처럼.
이번 결승전은 굉장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트리니티 아카데미 측의 엔트리가 무섭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케이틀린 해설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확실히 이번 올림피아드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작정하고 준비하고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로어 레벨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멤버들이 언더그라운드 레벨에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매그놀리아 아카데미의 엔트리는 어떻게 보십니까?
결승전에 진출한 팀인 만큼, 절대 약한 팀은 아니죠. 하지만, 거의 올스타 멤버를 꾸려온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비하면, 조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 구성이 좀 사기적이긴 하지.
언더그라운드 레벨로 출전한 나, 아이나, 알프레드는 다른 아카데미였으면 대장이나 플로어로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니까.
대장인 로렌스는 생도 수준을 한참 벗어난 지 오래고.
양 팀 모두 준비가 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럼 첫 번째 경기, 블라인드 매치에 누가 출전하게 할지, 잠깐의 결정하는 준비 시간을 갖고, 경기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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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선봉을 맡고 싶은 사람 있나?”
“제가 하겠습니다.”
“결승전에선 선봉이 맡는 역할이 막중하다…. 네가 간이 크다는 건 알고 있지만, 큰 무대에 서보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단순히 여기서 자신감이 있다고 다 잘되리라는 법은 없어.”
“괜찮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원작의 결승전에선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기존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매그놀리아 아카데미는 기선 제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
실제로 매그놀리아 아카데미는 대부분의 첫 경기에서 강한 카드를 썼었고, 버림패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 이번 결승도 마찬가지겠지.
물론 내 노림수를 읽고 교환비를 벌기 위해 버림패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우리 측 버림패는 굳이 따지면 알프레드인데, 알프레드는 매그놀리아 아카데미 측의 버림패에게 상성 상 유리하거든.
서로 같이 버림패를 내서 경기가 꼬이는 걸 원하진 않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내가 나가는 게 맞는 것이다.
“정말 자신 있나?”
“사실, 자신 없어요.”
“그런데 왜 나가려고 하는 거냐.”
“질 자신이 없으니까요.”
패기 넘치는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인지, 세자르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자신감을 내비치기 위해 한 대답이 아니다.
정말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한 것에 불과하니까.
언더그라운드 레벨에서 이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블라인드 매치의 주인공은 바로! 박성진 생도와 샤를린 베일리 생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