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 올림피아드.(3) (80/173)

〈 80화 〉 올림피아드.(3)

* * *

미래는 분명히 변했다.

선봉으로 나선 알프레드는 아쉽게 패배했지만, 원래라면 패배했을 아이나가 승리를 챙겨오며, 분위기를 어느 정도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제 남은 것은, 나의 승리뿐.

나만 이긴다면, 결승 진출이 확정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긴장되네.

떨리는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누군가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손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가늘고 긴 손가락이 나의 볼을 쿡 찔렀다.

“왜?”

“긴장해 있길래. 패배하는 미래라도 봤어?”

“어떻게 알았어?”

“표정에 다 드러나잖아. 네가 본 미래에선 나도 졌을 거고. 그렇지?”

얘는 너무 눈치가 빨라서 무섭다.

가끔씩은 아직도 나한테 정신 지배를 거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맞아. 불안해.”

“저번에도 말했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

“아니, 넌 이미 날 바꿔놓았잖아. 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확실히 맞는 말이다.

적어도 나로 인해 그녀가 각성하는 시기가 빨라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로 인해 이번 승부의 결과도 달라졌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걸까?”

“적당한 긴장은 누구에게나 필요해. 하지만, 그렇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어. 마침 상대도 레빈이잖아. 넌 가서 연습한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돼.”

“노력해볼게.”

사실 날 격려해준 것은 아이나만은 아니었다.

같은 클래스인 알프레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와는 별 연고조차 없는 라일라나 다니엘, 모용린도 진심으로 나의 승리를 기원해주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 성원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기고 돌아올게.”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대로 향하는 마지막 문턱을 넘었다.

* * *

­트리니티 아카데미와 온슬롯 스파이어, 언더그라운드 레벨의 마지막 경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성진 생도와 레빈 리히슈타이너 생도의 경기인데요. 과연 누가 승리를 거머쥘지! 지금 바로 만나 보시죠!

캐스터의 말이 끝나는 즉시, 텅 비어있던 경기장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들이치는 너울, 피부를 따끔거리게 만드는 소금기까지.

영락없이 바다라고 생각되는 공간이다.

물론, 그렇게 느껴질 뿐이고, 실체는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짜에 불과하지만.

이 공간에서, 진짜는 나와 레빈뿐이다.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박성진, 레빈 리히슈타이너의 사상력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레빈의 전격이 쉬지 않고 날아든다.

마치 나에겐 전혀 턴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전격이 지나간 자리엔 암초였던 것의 흔적만 남아있다.

미치겠네.

예전과 비교해서 훨씬 민첩해진 나라지만, 번개를 피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알프레드의 전격이야 그간 축적된 경험이 있으니 어떻게든 감으로 피해 볼 만했지만, 레빈은 알프레드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자홍색 검신을 뽑은 상태라면 너끈히 피할 수 있다지만… 그건 확실한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아껴 둬야 한다.

영식을 사용할 기회는 한정되어 있을뿐더러, 급한 상황에선 되돌리기까지 사용해야 하니.

문제는 내가 레빈의 전격을 한 대도 맞지 않을 수 있느냐인데….

어떻게든 해야지.

빗발처럼 날아드는 전격을 뚫고, 작은 암초들을 발판 삼아 한 보씩 천천히 이동해나간다.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그래플링을 이용해 편하게 접근했을 텐데, 하필 상대가 레빈이라 그럴 수 없다는 점이 아쉽네.

내가 만들어 내는 실에는 전기가 통하는 터라.

그래도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어쨌거나 나와 레빈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고,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전격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레빈을 상대론 단 한 번의 공격마저 허용해선 안 되는가.

그 이유는 바로 레빈의 세컨드 어빌리티가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대상에게 낙인을 새기며, 낙인이 새겨진 대상에겐 갖가지 디버프를 거는 능력인데, 또 이 디버프라는 게 하나같이 악랄한 것뿐이라.

낙인이 새겨진 대상은 신체 능력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며, 지속적인 추가 피해를 받고, 그것으로 모자라 레빈이 가하는 피해가 증가하기까지 하는데, 이 모든 게 나눠서 적용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적용이 된다.

심지어 중첩도 가능하고.

이러니 레빈을 상대론 공격을 허용할 수 없는 거지.

뭐, 그렇다고 레빈이 무적이라는 건 아니다.

공격할 때는 한 없이 강해질 수 있지만, 역으로 자신이 공격당할 때 레빈만큼 무력해지는 녀석을 찾기도 힘드니까.

한마디로 말해, 유리대포인 셈이지.

항상 라이벌로 거론되는 알프레드가 기동성, 유틸리티, 생존력을 골고루 갖춘 밸런스 타입이라는 점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그래도, 시간은 분명히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다.

남아있는 암초의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것도 되돌리기를 사용하지 않고 말이야.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좋을 텐데.

* * *

그는 그런대로 전격을 잘 피해 나갔다.

류진에 근간을 두고 있는 자인 만큼, 트리키한 무빙에는 조예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까지는 잘 붙고 있는데.”

“확실하게 따라잡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 없어. 적어도 레빈을 상대할 때만큼은.”

“낙린참인지 뭔지 그건 왜 안 쓰는 거야? 그거 한 방이면 다 조져버리더니만.”

“그거 쓰면 마나글레이브 사용이 사실상 봉인되는 거나 다름 없다던데. 그래서 아끼고 있는 거 같아. 만약 빗나가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모두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지만, 교수진과 로렌스 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리하다.’

“로렌스. 너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당연하죠.”

“패색이 짙은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불리해. 저 녀석이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암초는 이미 레빈에 의해 파괴된 상황이다. 돌아갈 길이 막혀버렸어. 만일 레빈의 공세가 지금보다 거세져서 후퇴해야 할 상황이 오면,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일단은 조금만 더 지켜보도록 하죠.”

하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암초가 파괴되고, 둘은 모두 고립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더 이상 무언가 시도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 믿은 레빈은, 그가 서 있는 작은 암초에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경기장 전체를 가득 메울 정도로 강렬한 섬광을 내뿜는 벼락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벼락이 검은 머리 소년에게 닿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저 뻘짓거리를 진짜 쓰려고 준비한 거였다고? 어질어질하다.”

“맨날 저거만 붙잡고 있더니, 성과가 있기는 했네.”

“참, 광대짓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해. 또 나름대로 멋은 있어서 인기도 많고.”

벼락이 튕겨 나간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났는가 하면, 그가 벼락을 비껴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비껴져 나온 자홍색 벼락은 바다를 가로질러 레빈에게 도달했다.

그 결과.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이해가 안 되는데.”

그곳에는 일도양단 당한 레빈만이 남아있었다.

당연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레빈은 전격계 각성자인 만큼 번개에는 피해를 받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번개는 물리적 피해를 주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것인가.

“벼락을 되돌릴 때 마나를 실어 낙린참처럼 사용하는 방법은 제법 옛날부터 고안된 것이라곤 하지만, 풋내기가 사용하기엔 제법 난이도가 있는 기술인데… 그동안 시간을 허투루 보내온 것은 아니었나 보군.”

외팔의 사내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관객석을 떠났다.

* * *

사실 전투 초반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전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기량이 뛰어나서가 아니라고.

스톰트루퍼 효과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애초부터 레빈은 나를 노리고 쐈다기보단, 암초를 노리고 쏜 것이었다.

전격을 피할 수 없도록 암초를 모두 제거한 뒤, 확실한 한 방으로 나를 제압하겠다는 아이디어.

그것이 내가 전격을 맞지 않을 수 있던 이유였다.

나름대로 머리를 잘 굴리긴 했다만, 그렇게 허접한 연기력으로는 절대 전략을 숨길 수 없다고.

애초에 역으로 유도당하는 시점에서 승패는 판가름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를 보는 로렌스의 기분이 이랬겠구나.

뭐, 이겼다는 사실 자체는 기쁘긴 하다만, 한편으로는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레빈이 암초를 노리지 않고 처음부터 나를 노렸더라면, 아마도 패배했을 테니까.

그나마 되돌리기를 익혀둔 게 다행이네.

만일 되돌리기를 익히지 않았더라면, 승산은 0에 수렴했겠지.

뭐, 이겼으니 아무래도 좋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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