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원류회귀.(1)
* * *
8월의 초하루는 비가 내렸다.
사람은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바쁘다지만,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바쁜 사람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이번 올림피아드의 대표로 선출된 이들과 같이.
마찬가지로 나도 바쁘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전념하는 중이라.
“성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건 맞아? 혼자 꼭꼭 숨어서 뭘 하는 거야.”
“알아서 잘하리라 믿지만, 뭘 하는지 정돈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잖아.”
“미안. 이번 올림피아드에서 꼭 보여줄게.”
이렇게 말하면 마치 알려주지 않은 영식의 기술이라도 연습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동안은 내가 검사인 척 코스프레를 해왔다지만, 나는 검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인간이니까.
그렇다고 지금까지 쌓아온 마나글레이브 검법을 버리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세컨드 어빌리티의 새로운 사용법을 깨우쳤기 때문이지.
“그럼 훈련이 끝나고 다시 보자.”
“그래.”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박성진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이 기술을 고안해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마나의 움직임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였으니까.
세컨드 어빌리티를 단련하던 그 과정 중,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얻게 되었다.
‘어차피 마나글레이브의 검신도 마나인데, 아예 마나로 구성된 실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문.
그 의문의 답을 찾으려 노력한 결과, 나는 놀라운 사실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세컨드 어빌리티로 마나를 밀집시켜 만들어낸 실은, 퍼스트 어빌리티로 제어할 수 있다.’
어떠한 원리인지는 모른다.
감히 내 좁쌀만 한 두뇌로 추측을 해보자면, 실의 구성 성분이야 마나일지 몰라도, 실 자체는 세컨드 어빌리티를 이용해 ‘내가 만들어낸 실’로 간주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초능력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아무튼, 그 결과물은 이러하다.
쿵!
매끄럽게 양단된 더미가 큰 소리를 내며 앞으로 쓰러졌다.
별다른 행동을 가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홍색 실이 지나갔을 뿐이다.
처음부터 그 공간은 비어있었다는 듯이.
확실히 익숙했던 그 시절로 돌아온 감각이네.
마나글레이브를 쓰는 것이 익숙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퍼스트 어빌리티인 실을 쓰는 쪽이 내 성미에도 맞고, 착착 감기는 맛도 있다는 이야기지.
그간 열심히 연습해온 검법이 아깝지 않느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검법을 버린 것이 아니다.
초심을 되찾은 것에 불과할 뿐.
어차피 나는 검사로서의 재능은 없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전투에 재능이 없다.
자신있게 재능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잔머리를 굴리는 것 정도.
그리고, 올림피아드는 모자란 것을 채우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이미 마음껏 재능을 펼치고 있는, 정점들이 겨루는 자리지.
즉, 이제 와서 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차라리,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연습하는 게 낫다.
연습과 실전엔 아주 큰 차이가 있으니까.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니힐리스가 기사단이 될 운명이니 뭐니 노망난 소리를 지껄여댔지만, 이런 것이야 말로 진짜 운명이 아닐까 싶다.
검 따위와는 거리가 먼, 실뜨기나 주력으로 삼던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셈이니 말이다.
아니지, 따지고 보면 이것도 검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검성의 경지에 오르면 어검술도 쓰고, 무형검도 쓰고 그러잖아.
이것도 무언가를 벨 수 있으니, 검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하겠다.
니힐리스가 이 말을 들었다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며 잔소리를 퍼부어댈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괜찮다.
딱히 검을 완전히 놓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난 분명히 영식과 이 기술 모두 병행해서 연습하고 있다.
이쪽에 훨씬 높은 비중을 두고 있긴 하다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
이미 내 낙린참은 널리 알려져 버린 터라, 대부분의 다른 생도들은 그것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사실상 완성 단계에 도달한 터라, 내 낙린참은 이 이상 발전하기도 힘들다.
차라리 숨겨둔 조커인 이 기술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낫지.
아직 제대로 다루기엔 한참 멀었다만.
과연, 시간은 내게 보답해줄까.
부디, 프라하에선 그렇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기를.
* * *
“웬일로 네가 같이 훈련하자고 하네.”
“오늘은 네 도움이 필요해.”
“굳이 나한테? 아이나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냐?”
“너 아니면 아무도 못 도와주는 거라서.”
나도 아이나가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연히 아이나에게 먼저 이야기 했을 것이다.
허나, 이 일은 알프레드가 아니면 도와줄 수 없는 문제라, 어쩔 수 없다.
“그래, 뭔데?”
“마나글레이브로 실험해볼 기술이 있어.”
근래 들어 퍼스트 어빌리티 위주의 훈련만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나글레이브를 완전히 등한시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오늘처럼 마나글레이브 위주의 훈련을 하는 날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연관이 있는데?”
“보면 알아. 우선 훈련실에 들어가서, 나한테 전격을 날려줘.”
“그게 무슨 헛소리야.”
“일단 해보라니까?”
“그래…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거겠지.”
알프레드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훈련실로 들어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고.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용자 박성진, 알프레드 아이스너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진짜 쏜다?”
“쏘라니까?”
세컨드 어빌리티를 발동시키고, 자홍색 검신 상태에 돌입한다.
그리고, 알프레드에게 온 시선을 집중시켰다.
파직거리며 일렁이는 전류가 그의 손에 모여드는 게 보인다.
지금이 슬슬 방출될 타이밍이네.
섬광이 날아들 궤적과 시간에 맞춰, 마나글레이브를 휘두른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예전에 연습해둔 게 의미가 없진 않았네.”
벼락은 날아온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야구였다면, 최소 홈런이 아니었을까.
“이거 하려고 부른 거였어? 멋지긴 하네.”
“그렇긴 하지. 자주 쓸 일은 없는 기술이지만. 쓰기 어렵기도 하고.”
새삼 뇌절이라는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카X시 선생이 번개 한 번 갈랐다고 온갖 염병을 떨어대는 것으로 편집한 그 장면은 분명히 웃음벨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막상 실천해보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아무튼, 이 전혀 실용성 없어보이는 짓을 왜 하고 있는가 하면…
이번 올림피아드 출전자 중에서 알프레드와 같은 전격계 각성자가 등장하니까.
애초에 번개에 반응할 수 있을 정도라면, 단순히 번개를 피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반드시 받아쳐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세X로의 뇌반과 흡사한, 번개를 튕겨내는 이 기술이 류진에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이 기술은 아이나에게 배운 것은 아니다.
니힐리스에게서 배운 것이지.
류진의 몇 가지 비주류 기술이랍시고 배웠는데, 그때 당시엔 ‘이딴 걸 어디에 쓰냐’며 천대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열심히 배워둘걸.
다시 하려고 하니까 보통 힘든 게 아니네.
그래도 익혀두는 편이 확실히 이로우므로, 열심히 연습할 생각이다.
널리 알려진 기술도 아니라, 초견에는 절대 대처하지 못할 테니.
“그래서, 이거 연습하는 거 도와달라고? 어디 쓸 건데? 멋지긴 하지만, 실용성은 그다지 없어 보여서.”
“레빈이 너랑 같은 전격계 사상력을 보유하고 있잖아. 그 녀석이 이번 올림피아드에 나올 테니까, 많이 연습해둘 필요가 있거든.”
“아… 확실히 그렇겠네. 그래, 도와줄게. 방금처럼 너한테 무작위로 전격을 날리면 되는 거지?”
“어, 맞아. 시작해도 좋아.”
섬광이 또 한 번 날아들었다.
다만, 이번에는 튕겨내지 못했다.
벼락을 직격으로 맞은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거뭇거뭇한 그을음과 매캐한 탄내만 남긴 채.
…처음이 운이 좋았던 거였네.
반응은 고사하고, 예측조차 쉬운 게 아니었으니.
니힐리스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던데.
“야, 괜찮아?”
“난 괜찮으니 계속해.”
“그래.”
당연히 거짓말이다.
괜찮을 리가 없지.
전기 고문이 괴롭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아, 고문이라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알프레드는 그만두는 게 어떻냐고 계속 말렸으니까.
내 의지로 행하는 행동이니, 자해라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5번 연속으로 성공하기 전까진, 이 짓거리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이제 그만하는 게 좋아 보이는데…”
“아직 괜찮아. 더 할 수 있어.”
“네가 그렇다면야….”
불행하게도,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5번 연속 성공은 고사하고, 3번 연속 성공이 내 최고 기록이었으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만.
솔직히, 반쯤은 오기로 한 말이라, 알프레드가 알아서 중간에 그만둬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머쓱해 하면서도 내게 전격을 쏘아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 알프레드도 저렇게 열심히 날 도와주는데, 여기서 내가 멈출 수는 없지.
반드시 성공하고 마리라.
* * *
“가끔 볼 때마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어.”
나는 벼락에 맞은 횟수를 셀 수 없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그 멍청한 도전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 또한 자의는 아니었다.
보다 못한 아이나의 손에 의해 훈련실에서 끌려 나온 것이었으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