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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 (73/173)

〈 73화 〉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

* * *

슬슬 나도 아카데미의 유명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유일하게 세레나 교수님께 피해를 주었던 생도였기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S클래스에서 가장 강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고작 몇 가닥의 실을 더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기뻐하던 게 얼마 전인데, 이젠 S클래스 최강 소리도 들어보네.

…분명 기뻐해야 할 소식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것이 고무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불편한 점도 어느 정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내 연락처는 어디서 알아낸 것인지, 히어로팀의 영입 제안 문자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하루 이틀 정도 무시하면 끝날 줄 알았더니, 아직도 계속 날 귀찮게 하고 있다.

그 중에선 나름대로 인지도 있는 중견 히어로팀도 몇몇 있었다.

그러면 뭐 하겠는가.

나는 그 어떤 히어로팀에도 가입할 생각이 없는데.

문제는, 불편한 점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는 거다.

낙린참을 본 녀석들이, 포톤글레이브 전공 교수님께 ‘왜 자신에겐 저런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며 단체로 항의를 하는 사건도 있었다.

마나글레이브와 포톤글레이브도 구분 못 하는 주제.

덕분에, 해당 교수님의 지겨운 푸념을 들어주어야만 했고.

그 이외에도 사소한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역시 그중에서도 최악은 내게 관심을 가지는 여자도 생겨났다는 거다.

물론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아이나였기 때문에, 대부분은 얼씬거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용기 있는 녀석들은 기어코 아이나라는 장벽을 넘어 내 호감을 사려 했다.

그 녀석들은 다 어떻게 됐냐고?

뭐…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거라 믿는다.

프리실라야 아이나가 반쯤 용인해주는 관계였으니 상관없다지만, 다른 녀석들은 무슨 깡으로 그런 시도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런 다양한 불편한 점이 존재하는 현재, 나는 ‘그 이외의 사소한 불편한 점’에 봉착해있었다.

* * *

“한 명만 좀 이겨 봐!”

“가능하겠냐. 병신아. 지금 도전하는 애들 다 S클래스 미만인데.”

“아니, 쟤는 지치지도 않나.”

대충 이런 상황이다.

어느 정도 유명세가 생긴 뒤로, 나를 꺾어보겠답시고 도전하는 녀석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아직까진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사실 지는 게 이상하기도 하다.

여태까지 도전한 생도 중에서 강하다고 할 만한 녀석이 없었으니까.

지루한 승부만이 계속되던 중, 구경꾼들 사이에 하나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행차라도 하는 듯, 쫙 벌어진 인파의 균열 사이로,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클로에 이사장님?”

“역시, 박성진 생도는 재능이 있어. 그렇지? 샤를?”

“S클래스면 이 정도는 기본 아닙니까? 당장 오셀롯 아카데미의 파르두스 클래스를 아무나 앉혀놔도 비슷한 성과는 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어허,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토 달지 마.”

클로에가 샤를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샤를이 클로에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네.

“아무리 두 분이 사제 지간이었다고 해도, 샤를 이사장님을 어린 애 취급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내가 볼 땐 아직도 애야.”

“클로에 이사장님보다 한참 밑이면 모를까. 샤를 이사장님도 어느 정도 반열에 올라선 사람이잖아요. 너무한 처사 같은데.”

“내가 샤를한테 질 거 같아?”

그건 아니지.

샤를의 강함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대놓고 세계관 최강자 중 하나라 인정받는 클로에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자네를 과소평가했군. 이런 훌륭한 안목 가진 인재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다니. 이런 낡아빠진 아카데미말고, 오셀롯 아카데미에 입학할 생각은 없나?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지.”

“얘는 내가 점 찍어둔 녀석이야. 탐내지 마. 그리고, 얘가 오셀롯 아카데미같이 근본도 없는 아카데미에 갈 것 같아?”

“세상은 이제 돈에 의해 움직입니다. 돈으로 사지 못 하는 것은 없죠. 스승님의 사고방식은 너무 낡았어요. 이 아카데미처럼.”

“얘가 못 하는 말이 없어.”

클로에는 또 한 번 샤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번에는 조금 진심이 느껴졌다.

둘은 이런 관계였구나.

죽이 잘 맞네.

“그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얼마 전에 샤를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네 이야기가 나왔거든. 근데, 자기 아카데미 생도에도 마나글레이브를 다루는 생도가 있다더라고. 그래서, 내기를 하나 했지. 누가 이길지 말이야.”

“어…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빨리 가서 오셀롯 아카데미를 박살을 내주란 말이야!”

도장 깨기를 하러 왔다.

이 말이네.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샤를도 자존심이 강한 캐릭터라, 그렇게 만만한 상대를 데려왔을 것 같지는 않고.

“자네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만, 역시 그 실체를 보고 싶어서 말이야. 괜찮은 상대를 데려왔으니, 만족스러운 결투를 보여줬으면 하네. 케인! 이 친구다.”

“이런 애가 제 상대라고요?”

“붙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다.”

“하, 모처럼 프리실라를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데. 금세 돌아가게 생겼네요.”

아, 프리실라를 좋아하는 사이였구나?

그렇다면야.

“프리실라!”

“뭔데?”

“너, 얘가 누군지 알아?”

“아니, 모르겠는걸.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프리실라는 얘를 싫어하는 모양이네?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겠는데.

“프리실라, 왜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버린 거야?”

“글쎄, 난 네가 누군지 모른다니까.”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선물이랍시고 준 그 쓰레기들? 다 돌려줬잖아? 몇 번이나 더 말해야 알겠어? 난 너한테 진딧물만큼의 관심도 없으니까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추잡스럽네.

나도 남이 동경할 만큼 훌륭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모르는 사이면 됐어. 가자. 프리실라.”

“그래.”

프리실라가 내 손을 붙잡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편이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실제로 케인이라는 저 녀석의 이마 위에 핏대가 선 모습을 보아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나가 이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섬뜩했지만, 이 정도야 가볍게 넘어가리라 믿었다.

“꼭 이기고 와야 해. 알겠지? 난 쟤 얼굴도 보기 싫어.”

“그래.”

프리실라가 재차 내게 당부하며 말했다.

원래도 질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더 질 수 없지.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훈련실 내부로 들어갔다.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박성진, 케인 애덤스의 사상력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야, 너 프리실라랑 무슨 사이냐?”

“너보다는 가까운 사이?”

그 말에, 케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하얗던 검신도 순식간에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그래도 꽤 강하다는 샤를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네.

노란색이면 상당한 수준의 강자니까.

물론, 각성 상태인 녀석의 현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일반적으론 초록색 수준에 머물러있는 게 보통이겠지만.

니힐리스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처음 만나는 마나글레이브 사용자라, 기왕이면 즐거운 승부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새끼한테 할애할 시간은 없지.

낙린참으로 빠르게 승부를 낸다.

“자홍색? 너 같은 버러지가 어떻게!”

미안하다.

내 스승이 좀 남다른 사람이라서 말이지.

날카로운 파동이 나아가며,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저 녀석이 방어막 비슷한 것을 생성하는 사상력을 가졌다고 들었던 것 같긴 한데, 낙린참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되진 않고.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겹겹이 쌓인 투명한 장벽들이 참격의 진행 경로 앞에 떨어졌으나, 그것들은 조금의 방해조차 되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참격이 기어이 훈련장의 끝에 도달했을 땐, 케인은 이미 팔과 다리를 잃은 지 오래였다.

[승자, 박성진. 훈련이 종료됩니다.]

“좆밥이네.”

“한 번 쓸 수 있는 기술 때문에 뽀록으로 이긴 새끼가….”

“뽀록이라고? 그럼 재도전할 기회를 주지. 이번에는 네가 말한 그 기술도 쓰지 않을게.”

“뒤질 준비나 해라.”

리매치가 성사되었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두 번째 결투는 놈을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핵심 기술인 낙린참을 봉인하고 싸웠음에도, 케인이 내 호적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2차전에서 주로 사용한 기술들은 대부분이 척 보기에도 화려하고 멋진 류진의 기술들이라, 관객들의 눈을 만족시켜준 내 위상만 더 올라갔고.

* * *

“거봐. 내가 이길 거라 했지?”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어디서 저런 녀석이 갑자기 나타난 건지… 그나저나, 1차전에서 사용했던 저 기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샤를은 조금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클로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어디서?”

“옛날이라 기억 못 하실 수도 있겠지만, 빌런 중에 있지 않았습니까. 저런 기술을 쓰던 녀석들. 일곱 개의 검좌 라는 이명으로도 유명했었는데.”

“아, 맞아. 기억난다.”

“이래저래 숨기고 있는 게 많아 보이는 생도네요. 그래서 더욱 탐나긴 하지만요.”

클로에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자신의 밑천을 다 드러내는 것만큼 하수는 없었으니까.

숨기고 있는 게 많은 건,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 특징은 아니었다.

* * *

훈련실 밖으로 나오자, 프리실라가 폴짝 뛰어올라 내게 달려들었다.

한술 더 떠서, 아예 얼굴을 파묻고 비비적거리기까지.

“야, 야, 이제 떨어져.”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얘가 이젠 앙탈도 부리네.

아무리 보여주기 위함이라곤 하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어떻게 하면 프리실라를 떼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다행히 이 정도의 도발에도 효과는 충분했는지, 케인은 분노와 괴로움에 일그러진 얼굴로 훈련장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본 프리실라는, 날 더욱 강하게 껴안았고.

하지만, 난 기뻐할 수 없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허락해준 기억은 없는데 말이야.”

떨리는 몸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내 바로 앞에는 ‘그녀’가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도게자의 예행 연습을 해두긴 했지만, 실천할 엄두가 안 나네.

“미안. 꼭 필요한 행동이었어.”

“그 이유가 뭔데?”

“오셀롯 아카데미에서 지겹도록 날 쫓아다닌 애가 여기에 왔었거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내 물건에 손을 대?”

“좋은 건 나눠 쓰는 거지.”

서글프네.

이젠 대놓고 물건 취급이라니.

이미 잡혀 산다고 소문이 파다하긴 하지만, 그 사실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각인시켜줄 필요까진 없다고 보는데.

“소유주는 나야.”

“우린 협정을 맺었잖아. 그렇지?”

“여기까진 허락한 적 없어.”

둘은 내 처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지, 여전히 나의 소유권과 지분을 놓고 열띤 토론을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건, 당연히 나고.

난 분명 떳떳하게 모두에게 승리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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