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Wish Upon a Star.
* * *
“다들 점심 맛있게 먹어라!”
웬일이람.
빈센트는 저렇게 살가운 태도를 보일 사람이 절대 아닌데.
“빈센트 교수님 무슨 좋은 일 있었냐?”
“이번에 처음으로 다카르 랠리인지, 뭔지 하는 걸 완주하셨다고 좋아하시던데.”
“밥먹는 것도 귀찮다고 잠만 주무시던 분이 그런 걸 한다고?”
“레이싱엔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인가 보지.”
의외다.
그 힘든 다카르 랠리를 빈센트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심지어 완주까지 했다니.
“대단하시네. 다카르 랠리 엄청 힘든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냐?”
“일단, 로망이 있지. 사이클이나 픽업 트럭을 모는 것 자체가 남자답지만, 험준한 오프로드 지형을 뚫고 결승점에 도착하는 장면을 상상해 봐. 간지 터지잖아.”
“그런 거 좋아하냐? 박성진 이 새끼, 은근히 특이한 면이 있다니까.”
“밥도 쫄쫄 굶어가며 그런 짓을 한다고? 난 절대 못해.”
쯧쯧, 요즘 것들은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향해 달리는 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클리셰인데.
“졸업하면, 픽업트럭 같은 거라도 선물해줘야 하나…?”
“아이나,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모르겠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너희들이 뭘 알겠냐.”
새삼스럽지만,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무리에 끼어들지 못해 겉돌던 입학 초기의 어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S클래스 사이에 잘 녹아들어 있었으니.
그나저나, 오늘은 뭘 먹을까.
오랜만에 한식이나 먹을까?
* * *
괜히 많이 퍼담았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수북하게 쌓인 밥을 바라보며 수저만 달그락거리던 중,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선 프리실라와 베아트릭스가 다투고 있었다.
“먼저 고른 사람이 임자야.”
“그래서, 너 혼자 두 개를 다 먹겠다?”
“다른 애 줄 건데?”
“그럼 그 친구가 와서 기다리는 게 맞는 거 아냐? 내가 기다린 건 그럼 뭐가 돼?”
한정 수량으로 만들어지는 디저트를 두고 다투고 있나 보네.
그깟 디저트가 무슨 대수냐고, 교수면 생도에게 하나쯤 양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일부 인기 메뉴는 교수진들조차 줄을 서고 찾을 정도니,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일도 먹을 수 있잖아. 오늘만 양보해주면 안 돼?”
“난 지금 먹고 싶어.”
“다른 애들도 두 개, 세 개씩 집어갔는데, 왜 나만 꼭 너한테 양보해야 하는데?”
“그건 자기가 먹으려고 가져간 거잖아. 너는 친구한테 주려는 거고.”
…둘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로 대립하고 있었다.
참 어려운 상황이긴 하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런데, 그 친구가 너한테 그걸 가져와 달라고 부탁해서 가져가는 건 맞아?”
“그건 아닌데….”
뭐야.
부탁한 것도 아니라면, 그냥 베아트릭스를 줘도 되잖아.
뭐가 문제인 거야.
“그럼 네가 받을 이유조차 없었잖아! 걔가 받아달라 한 것도 아닌데!”
“가져가면 먹겠지!”
“그래,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당사자한테 가서 먹을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는 거야. 먹을 생각이 있다고 말하면, 양보해줄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건 내 거야.”
“좋아.”
프리실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야는 내 쪽에서 멈췄다.
안돼.
그럴 순 없어.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프리실라의 접시 위에 놓여있는 케이크의 주인이, 내가 아니게 해달라고.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일까.
프리실라는 정확히 내 앞에서 정지했다.
“이거 전에 먹고 싶다고 그러지 않았어?”
불우하게도, 저 말 자체는 사실이다.
포슬포슬해 보이는 저 몽블랑의 자태가 상당히 맛있어 보이길레, 두어번 정도 디저트 코너에서 줄을 선 적도 있었다.
워낙 인기가 많은 메뉴다 보니, 한 번도 먹어보진 못했지만.
“성진아. 나 이거 주면 안 돼?”
“재촉하지 마. 대답은 얘가 하는 거잖아.”
“물어볼 수도 있지. 왜? 별로 먹을 생각 없어 보이잖아.”
난감하네.
프리실라는 나를 위해 가져온 거라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디저트를 입에 대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거절하자니 프리실라에게 미안하고, 그냥 먹자니 베아트릭스에게 미안하다.
저렇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와 몽블랑을 번갈아 보는 모습을 어떻게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있겠어.
게다가, 베아트릭스의 주장도 분명히 일리는 있는 말이고.
아니다. 그냥 먹는게 낫겠네.
어차피 지금 나와 더 가까운 건 프리실라니까.
“고마워. 잘 먹을게.”
“고맙긴.”
“에이….”
프리실라는 기쁘다는 듯 밝게 웃어 보였다.
정반대로, 베아트릭스는 무척이나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시무룩해진 베아트릭스를 보니, 맨입으로 먹긴 조금 그렇네.
“대신 나중에 베아트릭스 네가 먹고 싶은 거 하나 사줄게.”
“그래!”
역시, 베아트릭스는 단순해서 좋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작게 자른 케이크를 한 조각 입에 넣으려던 중, 어디선가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이나가 날카롭게 뜬 눈으로 날 주시하고 있었다.
얘도 이게 먹어보고 싶었나?
내가 알기로 아이나는 단 걸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
뭐, 누구나 가끔은 단 게 당기는 법이니까.
포크 끝에 매달린 케이크를 아이나의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녀는 그것을 입 안에 집어넣음으로써, 기꺼이 내 성의를 받아주었다.
살짝 누그러진 눈매로.
“먹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됐어.”
여전히 툴툴거리는 말투였지만, 불만족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거야.
좋아하고 있으면서.
문제가 쉽게 해결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와중, 이번엔 정 반대편에서 싸늘한 눈길이 느껴졌다.
프리실라의 것이었다.
자기가 준 걸 남한테 줬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어쩌겠어.
나한테는 선택지가 없는걸.
프리실라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럴 수밖에 없을 뿐이지.
이러나 저러나, 결국 나는 아이나의 편이어야 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선을 외면하고 몽블랑을 입에 쑤셔 넣는 것뿐.
그렇게, 식판에는 몽블랑이었던 것의 잔해와 부스러기만이 남았다.
다른 녀석들의 식판도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식사도 모두 마쳤으니, 다시 강의실로 돌아가야겠네.
…돌아가는 길은 다소 불편했다.
양팔에 밀착한 두 명 때문에.
아니, 그 사실 자체보단, 그 사실로 인한 시선이 불편했다.
* * *
현재 시각.
10시 35분.
별무리가 하늘을 수놓고 있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바닷물을 이끌고 이 암초에 정박하면, 갯강구들은 모조리 돌 틈 사이로 숨어버린다.
그래, 여기는 뱀머리 암초다.
이 늦은 시각에 갑작스럽게 뱀머리 암초에 무슨 볼 일이 있겠는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오늘은 정말로 볼 일이 있다.
오늘은 바로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이니까.
물론 스카이라운지에서도 그 광경을 살펴볼 수야 있겠지만, 하나의 유성이라도 더 관측하고 싶은 마음에, 광해(光?)가 적은 이 뱀머리 암초를 선택한 것이었다.
큰 규모의 유성우라면 딱히 이런 곳을 선택하지 않아도 많은 유성을 볼 수 있다.
허나, 7월의 물병자리 유성우는 그 규모가 상당히 작기에, 최대한 조용하고 어두운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늘은 상당히 날이 맑아, 많은 유성을 볼 수 있겠네.
“여기서 뭐해?”
“깜짝이야.”
얘가 왜 여기 있대.
“네가 여기 왜 있어?”
“네가 지나가는 걸 우연히 봐서 따라왔지.”
고작 그런 이유로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이쯤 되면 슬슬 포기할 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 정말이었구나.
“그래서, 넌 여기 왜 왔는데?”
“유성우 보러.”
“예전에 볼 때부터 느낀거지만, 넌 참 특이한 면이 많네.”
확실히 그렇긴 하다.
어릴 적부터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아온 건 분명하니.
“그래서, 유성은 언제 떨어지는데?”
“가장 많이 떨어지는 시간대는 11시부터 2시 정도까지야. 한 시간에 서른 개 정도 떨어질걸.”
“그럼,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하늘만 보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그사이에 떨어지는 걸 놓칠 수도 있잖아.”
“재미없겠네.”
그래.
이게 보통의 반응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드러누워 하늘만 바라보는 게 어떻게 즐거운 일이라 할 수 있겠어.
내게는 아니지만.
난 가만히 누워서 하늘의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어, 저기 하나 지나갔다.”
“아, 못 봤는데!”
“자세히 봐야 해. 영화나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긴 꼬리를 달고 길게 떨어지는 유성은 거의 없어. 아주 짧은 시간만 반짝하고 지나간다고.”
이게 많은 사람이 유성우를 보러 나왔다가 실망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 유성이라는 게, 생각 외로 잘 보이지 않는다.
찰나의 시간 동안 반짝하고 스쳐 가는 유성이 7할이다.
나머지 3할조차도 1초 가량 하늘에 머물 뿐, 그 이상 머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아, 저기 지나갔다!”
“이번에는 봤네.”
“신기하다. 유성은 처음 봐.”
“나도 처음 볼 땐 되게 신기했는데, 보다 보니 익숙해지더라. 그렇다고 질리지는 않지만.”
우리는 말없이 하늘만을 지켜봤다.
극대 시간에 가까워짐에 따라, 은하수 사이로 떨어지는 별의 조각들이 점점 쌓여만 간다.
하나… 둘… 셋….
그것의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할 즈음에, 유달리 길고 밝은 꼬리를 가진 유성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멋지네.
저런 유성은 나도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 유성의 불씨가 하늘에서 완전히 사그라들었을 때, 프리실라가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있잖아. 무슨 소원 빌었어?”
순수한 감성이 많이 남아있네.
난 그냥 별을 보고 싶어서 나왔을 뿐인데.
소원… 소원이라.
글쎄.
나의 소원은 뭘까?
이 세계의 멸망을 막는 것?
아닌 것 같다.
그건 단순히 내 목표지, 이루고 싶은 바람이 아니다.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는 걸보니, 난 별다른 소원이 없는 모양이네.
참, 내가 봐도 재미없는 인간이 아닐 수 없다.
“딱히. 아무 소원도 안 빌었는데.”
“재미없어.”
“넌 무슨 소원이라도 빌었어?”
“당연히 빌었지.”
“뭘 빌었는데?”
“비밀이야.”
몇 번이나 캐물어 보아도, 그녀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니르로 돌아가는 순간까지조차도.
* * *
사실, 이미 소원은 한 번 이뤘어.
그때 네가 했었던 말.
여기서 다시 보자는 짧았던 그 한 마디.
그걸 이뤘으니까.
하지만, 염원이란 건 끝이 없더라.
금새 새로운 소원이 생겼으니까.
나도 욕심이란 건 알아.
그래도, 부디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은 가시지 않더라.
그래서, 별에 빌었어.
언젠간, 너의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