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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화 〉 개강.(2) (71/173)

〈 71화 〉 개강.(2)

* * *

당혹감이 들었다.

동세대 정점으로 평가된다는 둥, 28연전을 해오며 단 한 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는 둥, 이런저런 소리를 들었지만, 다 세레나를 띄워주기 위해 어느 정도 부풀려진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맞서보니, 그 평가가 전부 사실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무리 미완성인 낙린참이라고 한들, 고작 옅은 상흔 정도밖에 남기지 못한다니, 도대체 얼마나 얼마나 미친 내구력인 거지.

심지어 회복력마저 뛰어난 것인지, 5초가 채 지나기 전에 모든 상처가 아물었다.

단순히 내가 약할 뿐인 건가.

전보다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네.

격의 차이를 인지하고, 곱게 링 밖으로 내려가려던 채비를 하려던 중, 이상한 점을 한 가지 알아차렸다.

이대로 단숨에 결착을 낼 줄 알았던 세레나가, 나와 같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그 표정.

우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렇게 어색한 정적만이 계속되던 중, 세레나가 돌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멋진 일격이었어. 훌륭해.”

“하지만, 제대로 된 피해도 주지 못했는걸요.”

“지금까지 대전해온 모든 생도 중에, 상처를 입힌 건 네가 처음이었는 걸.”

뭐야, 28연전을 해오며, 단 한 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는 그 말이 정말 사실이었다고?

당연히 거짓말이라 생각했는데.

“그렇다니 조금 마음이 놓이네요. 제 최선의 공격이었는데,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으면 조금 아쉬울 뻔했어요.”

“어차피 중요한 건 그 사실이 아니야. 네 마음가짐이지.”

“마음가짐이라뇨?”

“모두가 반쯤 장난으로 임했었지만, 너만은 이 승부에 진심이었어. 전력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느껴졌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이런 이벤트성 매치에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다못해, 어느 정도 팽팽한 승부가 유지되어야 뭔가를 보여주든, 말든 하지.

교수와 생도 간의 간극은 그 정도로 크다.

트리니티 아카데미 생도 중 정점이자, 유일한 T클래스인 학생회장, 로렌스 밴더럼조차도 유의미한 피해 정도를 주는 게 끝일 것이다.

그러니, 생도들이 이 승부에 진심을 다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 자리를 빌려, 최소한 무언가는 보여줘야겠다는 분함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일종의 열등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S클래스의 자질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표현한다면, ‘중간고사에서도 1위라는 성적을 기록했는데, 무슨 열등감이냐’라고 반문하는 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S클래스의 일원이라 하기엔, 아직 내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이것이 단순한 나의 생각으로 그쳤다면, 나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내 무력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많고, 일각에선 아예 퍼포먼스에나 집착하는 광대라는 식으로 날 폄훼했으니.

그것이 내가 니힐리스라는 정체 모를 빌런의 손을 덜컥 잡은 이유기도 했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

그래서, 나는 니힐리스 밑에서 죽어라 굴렀다.

그 끝에 낙린참이라는 새로운 기술도 배울 수 있었고.

아, 그것이 내가 분함을 느꼈던 또 다른 이유기도 했다.

그 춥고 척박한 계곡에서 쓸쓸하게 수행만 한 끝에 습득한 기술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면, 그것도 몹시 억울했을 테니.

“방학 내내 열심히 연습한 기술이라,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요즘 생도들이랑 다르게 성실하구나. 받아내면서도 노력파라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아 다행이야.”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면 부족했던 건 나였을지도 몰라. 이렇게 말한 나조차도 전혀 진심을 다하지 않았으니까. 너 같은 생도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 생도들의 노력을 모독한 셈이 됐으니, 조금 미안하네.”

카리스마틱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구나.

좋은 교수님이네.

“내 서드 어빌리티는, 정체불명의 무기를 소환하는 사상력이지. 기원은 알 수 없지만, 하나같이 그 위력이 대단해서, 전설 속 무기나, 아티팩트라고 추정 중이야.”

거대한 검이 세레나의 손에 들려있었다.

언제 뽑았는지도 모르게.

“도전자에겐 경외를 담아 화답해주는 게 옳겠지? 이 검이라면, 그 화답이 될 것이라 믿어.”

그녀가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훈련실을 둘러싼 아크릴 재질의 외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흠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차 퍼져나갔고 마침내, 훈련실의 외벽은 산산조각나 부서졌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토네이도 같은 걸 만들어내도 훈련실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는데.

훈련실이 허용 가능한 피해량을 한참 넘어섰다는 거 아냐.

“너무 들떠서 힘 조절하는 것도 까먹고 훈련실을 깨 먹었네…. 학장님은 나 싫어하시던데… 큰일 났다.”

“아카데미 예산도 많은데, 알아서 처리해주시겠죠.”

“그런가?”

“그것보다, 아무리 진심이라고 하셔도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는데.”

“독방에서 갇혀만 살다가, 재밌는 사람을 만나니까 조절이 잘 안 되네.”

거 두 번 재밌으면 아주 아카데미도 박살을 내겠네요.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너, 내 밑에서 배워볼 생각 있니? 키워줄게! 대학원생 같은 느낌으로.”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대학원생?

21세기판 노예인 그것?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저 제안에 응하는 건 더 미친놈이고.

“괜찮습니다.”

“하자니까? 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능해.”

“괜찮다니까요.”

“그래…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다시 날 찾아오렴.”

나는 얼른 자리를 떠났다.

혹시나 세레나가 계속 날 붙잡을까 두려워서였다.

노예만은 안된다.

절대로.

* * *

“…강해졌네.”

“방학 동안 놀고먹기만 한 건 아니니까.”

“그래, 누굴 만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걸 가르쳐준 것 같네.”

“많이 배웠지.”

니힐리스는 분명히 좋은 스승이지.

그 짧은 시간에 날 이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그 자질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너한테 가르쳐줄 게 없다고 말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까 아쉽네.”

“뭐가?”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

아이나의 기습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이렇게 불쑥불쑥 치고 들어올 때마다 당황스럽다.

…당연히 그런 점이 더 귀엽지만.

“근데, 세레나 교수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눴어? 둘이 꽤 길게 이야기하던 것 같은데.”

“자기 밑에서 배워 볼 생각 없냐던데. 키워주겠다고.”

“그래서?”

“거절했지.”

“왜?”

왜냐니.

당연히 거절하는 게 보통 아닌가?

누가 노예를 자처하겠어.

“대학원생처럼 키워주겠다고 그러길래.”

“…거절할만하네.”

“근데 불안해. 어쩐지 계속 제안할 것 같단 말이지.”

“그래도, 널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건 좋은 거지.”

뿌듯하긴 하다.

정말 제대로 된 S클래스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

“근데, 세레나 교수님, 진짜 강하더라. 훈련실을 부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특수용이 아니고, 일반 생도용으로 준비한 훈련실이었으니까 당연할지도.”

“당연한 수준은 아니지 않나?”

“음, 당연한 수준은 아닐 수도 있겠다. 공격에 특화된 교수님들에겐 쉬운 일이겠지만, 세레나 교수님은 밸런스형인데도 그 정도였으니, 대부분의 다른 교수님들보단 약간은 우위에 있겠네.”

그래, 아무리 봐도 그건 정상이 아니야.

그정도로 강한 인간이 공격 특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말 다한 거지.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까불었는데.”

“자신감을 가져도 돼. 너는 유일하게 세레나 교수님한테 피해를 준 사람이잖아.”

“그런가?”

“그렇대도.”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으면 그냥 위로하는 말로 치부하고 넘겼겠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이나가 하는 말이라면 신뢰할 만하다.

…이따금 명치를 후비는 말을 할 땐 가슴이 아팠지만.

“그나저나, 내일 개강 생각에 벌써 괴롭다.”

“너, 아카데미 다니는 거 좋아하는 것 아니었어?”

“별로.”

“그런 것치곤 네가 제일 열심히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는 것 같던데.”

즐긴다고 해야하나?

열심히 다니는 것은 맞다.

그야, 나는 목표가 있으니까.

나 같은 버러지가 세계멸망이란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자체도 웃긴다만,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아예 가능성이 전무한 일반인으로 태어났다면 또 몰라.

적어도 S클래스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건, 내게 그만한 포텐이 있다는 소리고, 그런 포텐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막으려는 시도 정도는 해볼 만하다.

“열심히 다니고 있는 건 맞지.”

“너무 자만하지는 마. 졸업하기까진 아직도 2년이 넘게 남았어.”

“그건 맞아.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노력해야지.”

“뭐, 재미없는 이야기는 이쯤하고, 내일 강의실에서 보자.”

웬일로 아이나가 이렇게 빨리 해산각을 잡는 걸까.

노골적으로 티를 낸 적은 없지만, 보통은 내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눈치던데.

“볼 일이라도 있어? 오늘은 일찍 기숙사로 돌아가네.”

“피곤해 보여서. 쉬게 두는 게 낫겠다 싶었어.”

날 생각해서 한 소리였구나.

그렇다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내일 좋은 모습으로 그녀를 만나는 게 최고의 선택이겠지.

“그래, 그럼 내일 강의실에서 봐.”

“응, 푹 쉬어.”

…정말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쉽게 잠드는 체질도 아닌 내가 기숙사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어 버렸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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