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개강.
* * *
“슬슬 본가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아. 너무 오래 집을 비우고 있을 수는 없거든. 아카데미에서 다시 보자.”
첫 번째로 내 곁을 떠난 것은 아이나였다.
“부모님이 화내셨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고. 다음에 보자.”
두 번째는 프리실라였으며.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생겼다. 내가 없더라도 스스로 잘하리라 믿는다. 다음에 만날 때엔 완성된 낙린참을 볼 수 있다면 좋겠군.”
마지막은 니힐리스였다.
그렇게, 내 주변엔 누구도 남지 않게 되었다.
영원한 이별도 아니니, 아무렇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다.
홀로 살아온 나날이 상당히 길었기에,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생각했건만, 그것은 오롯이 나의 착각이었다.
그간 사람들의 손길에 익숙해졌던 탓인지, 어느샌가 외로움을 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고작 보름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는 데도.
하지만, 그 고독한 시간도 오늘부로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개강의 시기가 눈앞까지 다가왔기에.
얼른 나의 향취가 남아있는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네.
S클래스 녀석들, 다들 잘 지냈겠지?
* * *
트리니티 공항은 개강시기를 맞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간신히 그 거대한 인파를 뚫고 나오자, 남태평양의 따스한 햇살이 날 반겼다.
우중충하고 서늘하기만 했던 글렌류나크의 날씨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이 안락한 분위기에 잠기고 싶은 마음에, 잠시 다른 생각들은 접어두고, 가만히 볕을 쬐던 와중, 익숙한 보라색 눈동자의 소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보고 싶었어.”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그녀라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조바심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으니.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겐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모습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미약하게나마, 이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다행이다.”
“뭐가?”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한 아이나는, 나를 안아주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잘 지냈어?”
“보다시피.”
“잘됐네.”
“너는 잘 지냈어? 아프거나 하진 않았고?”
당연히 잘 지냈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스승인 니힐리스가 훈련을 빙자한 고문을 나흘이나 이어갔고, 그 끝에 결국 몸살로 쓰러졌던 기억이.
그렇다고 큰 해프닝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다.
오히려, 나름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좋고 신선한 몸으로도 몸살로 쓰러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
그걸 제외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나는 잘 지냈다고 답변했다.
그녀가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네.”
“아냐, 정말 잘 지냈어.”
“나는 네가 솔직했으면 좋겠어. 널 속인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겠지만.”
“정말인데.”
아무래도 내가 그녀를 믿지 못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말 괜찮은데.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떨기 싫어서 그랬을 뿐,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품고 있지 않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려 했지만, 결국 나는 사실을 실토해야 했다.
그녀의 맑은 청자색 눈에 서글픔이라는 흐릿함이 깃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냥, 몸살에 한 번 걸렸었어. 별거 아닌 일로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그럼 그냥 그렇게 말해줘. 나는 네 소식이 알고 싶은 거니까.”
“그래.”
아이나는 안심한 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녀에겐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쉽게 내 거짓말을 알아차렸을뿐더러, 저렇게까지 상심한 티를 낼 줄도 몰랐으니.
차라리 내가 거짓말에 소질이 없었다면 몰랐겠지만, 나는 거짓을 말하는 것에 상당히 능한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쉽게 알아차릴 정도라면, 어지간해선 그녀에게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아이나의 속을 썩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고 보니, 소식 들었어?”
“어떤 소식?”
“유명한 사람이 신임 교수로 들어왔잖아. 몰라?”
이 시기에 그런 사건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단순히 원작의 주인공인 천현우와 베아트릭스가 그런 일에 큰 관심이 없어서라 생각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주변과 담을 쌓고 지내다시피 한 내 귀에 들어올 정도로 아카데미 내에서 화제가 되는 소식이라면, 작중 모두가 알고 있는 소식이라는 거니까.
나보다 인싸 기질이 강한 저 둘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원작에선 등장하지 않는 이벤트라는 이야기인데.
“그게 누군데?”
“세레나 스튜어트. 히어로도, 빌런도 아닌 각성자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던 인재였지만, 그리폰 교도소를 습격한 죄로 수감되었던 사람이야.”
“잘 모르겠는데.”
“주변 소식에 너무 어둡네. 내가 자주 알려줘야겠어.”
설명해줘도 잘 모르겠다.
원작을 제법 꼼꼼히 읽었던 내가 모르는 인물이라면, 작중에선 거의 비중이 없거나,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히어로도, 빌런도 아닌 인물이었다면 더더욱 등장 빈도가 낮을 것이고.
“그럼, 그 교수님은 지금 신고식 치르고 계셔?”
“그렇겠지.”
“보러 갈까?”
“설마, 도전할 생각이야?”
트리니티 아카데미에는, 암묵적인 관례가 있다.
신임 교수의 임기 첫날에는, 어떤 생도든 간에, 걸어오는 결투는 무조건 받아줘야 한다는 관례.
당연하지만, 아무나 교수직에 앉는 것은 아니니, 교수가 졌던 사례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그렇기에, 이것은 단순히 교수를 띄워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드문드문 정말로 교수를 꺾어보겠다고 나서는 미치광이도 가끔 나타나지만.
“어, 한 번 도전해 보려고.”
“굳이 나서서 그런 일을 해야 해?”
“재밌을 것 같잖아.”
존나 재밌을 것 같은데?
어차피 교수도 적당히 손대중을 해줄 거고.
솔직히 말하면, 본심은 따로 있다.
새로 익힌 이 기술, 낙린참을 써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던 참이라.
“그래.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네.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교수님은 트리니티 스타디움에 계실 거야. 가보자.”
아이나는 생각보다 흔쾌히 내 의견을 따라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딱히 내 의견을 따라주지 않은 적도 없네.
편견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
* * *
거의 중간고사 때를 방불케 하는 군중이 트리니티 스타디움에 몰려있다.
그나마, 외부인은 없어서인지, 전보다는 숫자가 많이 적었지만.
“이걸로 27연승인가?”
“28연승 아닌가? 모르겠네.”
“교수님들 모두 전성기엔 괴물이라곤 했지만, 이번 신임 교수님은 진짜 급이 다르신데? 지금까지 아무도 피해를 준 사람이 없어. 그것도 좆밥들만 도전한 거였으면 몰라. U클래스 2위인 라일라 디아브도 있었는데.”
“차라리 피해서 무피해라고 그랬으면 믿었겠다. 일부러 맞아주기 까지 했는 데도 무피해인 건 주작인 줄 알았어. 나는.”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라일라의 사상력 구성이 딱히 공격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는 편은 아니라지만, 생도 기준에선 절대 약하다고 할 수 없는데.
아무래도 세레나 스튜어트는 내구에 특화된 사상력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인가 보네.
저런 케이스라면 조금 오기가 생기는데.
낙린참이라면 피해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비어있잖아. 올라가 봐.”
아이나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래, 잘 갔다 올게.”
과연 나는 조금의 피해라도 줄 수 있을까.
기대를 품고, 스타디움 한가운데의 링으로 향했다.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번 도전자는 바로! 지난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물! S클래스의 박성진 생도로군요!”
링으로 올라오자, 멋들어진 정장 위로 코트를 걸친 장신의 여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풍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풍채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외모였다.
악마를 연상케 하는 큰 뿔, 그리고 세로로 찢어진 긴 동공.
“안녕하세요. 교수님. 잘 부탁드립니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어. 박성진 생도.”
마치 나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눈치인데.
뭐지?
“저를 아세요?”
“출소하고 나서 방송에서 봤어. 인상적이던걸.”
내가 이렇게 유명해지는 날도 오는구나.
신기할 따름이다.
“영광이네요.”
“기대하고 있어. 좋은 승부를 겨룰 수 있다면 좋겠네.”
“그럼, 시작해볼까요?”
“좋아.”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박성진, 세레나 스튜어트의 사상력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준비가 완료된 듯하네요! 이번에는 과연 세레나 교수님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지,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식(??), 제 4의 륜(), 낙린참(???).
그간 내가 사용해왔던, 유려한 검법, 류진의 기술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기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기술에는 아무런 특별함이 없다.
경탄을 자아내는 멋도 없다.
대단히 세련된 기교도 필요치 않다.
무언가의 내력이나, 유서를 가지고 계승된 기술도 아니다.
가진 것은, ‘벤다’는 투박한 의지 하나뿐.
그 모든 것을 자홍색으로 타오르는 검신에 싣고, 휘두른다.
…사선이 비껴갔다.
그것이 지나간 세레나의 전신에, 기다란 빗금이 그어졌다.
그 자리에선, 핏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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