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기말고사.(1) (59/173)



〈 59화 〉기말고사.(1)

드디어 완성했다.

완성이라는 말은 조금 어색할지도 모르겠네.

이제야 비로소 이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류진의 상급 기술  대표이자, 상대방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최적화된 기술.

벚꽃 흘리기를.

이 기술의 가장 큰 메리트는, 막혀도 안전하다는 점이다.

다른 동작과 연계가 매우 쉽기에,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필살기처럼 쓸 수도 있고.

덕분에 영민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레이븐을 상대로 좋은 효율을 발휘했다.

상대가 레이븐인 만큼, 이 기술 하나만으로 놈에게 우위를 점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만족감은 크네.

완성도 아니고, 고작 사용할 수 있게  게 기말고사 하루 전이라는 사실은 조금 서글프긴 하다만, 그래도 사용할  있는  어디야.

…그간 연습을 소홀히 해온 것은 당연히 아이나에게 비밀이다.

지금까지 연습도 안하고 뭐했냐고 바가지를 박박 긁어댈 것 같아서.

아니지, 애초에 나를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 데엔 아이나의 책임도 있기는 하니까,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 * *

박성진.

항상 어딘가 어설프고, 모자람으로 가득 차 있어도, 사랑스럽기만 내 연인의 이름이다.

나도 이런 나 자신을 이해할  없다.

어쩌다 그런 맹한 녀석에게 마음을 주게 되었는지.

때로는  마음이 그저 흘러가는 감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것은 생각에 그치고 말지만.

그의 모습만 보아도 그런 생각은 눈 녹듯이 사그라드니까.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흉으로 번진  손이 싫어서, 장갑을 끼고 다닌 날도 꽤 많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반지를 끼게 되고 나서는, 그런 흉터 따위는 아무래도 좋게 되었다.

그냥, 나와 그의 손에 같은 물건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아서, 장갑은 벗어 던진 지 오래다.

그런데, 너는 왜 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걸까.

지금까지 관리해온 나의 체면 따윈 모두 버리고, 진솔한 마음을 모두 너에게 주고 있는데.

너에게서 무언가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야.

너는 누구도 주지 못한 걸 많이 주었으니까.

지금까진 전혀 다룰  없던 이 능력도, 너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것만으로, 너에게 받은 건 충분해.

내가 네게 바라는 건 오직 하나야.

내 마음을 받아주는 것.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여태까지 미처 몰랐네.

내가 너한테 무언가를 받아야 하는 것조차 아니고, 네가 받아주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말이야.

아,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네가 차지하고 있는 내 마음속 공간은 이렇게나 넓은데, 네 마음을 차지하는 내 공간이 너무 작아서 그런 거였구나.

그렇다면…  마음을 조금이라도 차지하고 있는, 그 여자부터 없애 버리면 될까?

네가 일깨워 준 이 능력으로 말이야.

‘이 또한 다 너를 위한 것이었다’ 같은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을게.

이기적인 내 마음에서 비롯한 게 맞아.

너를 독차지하겠다는 마음.

처음에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고 나선, 너만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맹세했었는데, 그 약속을 이렇게 빨리 저버리는 것도 바보 같네.

하지만, 이번 한 번만큼은 나를 용서해주면 안 될까?

지금까지 너에게 많이 양보했잖아.

난 그저, 너에게 더 많은 걸 주고 싶어서.

내가   남과 나누는 게 보기 싫어서.

너의 사랑을 갖는 건 나 하나뿐이고 싶어서.

그뿐인데.

* * *

기말고사 당일의 날이 밝았다.

공개 토너먼트로 진행되던 중간고사와는 달리, 개개인의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기말고사는, 그리 거창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여태껏 해온 훈련처럼, 평범하게 진행될 뿐이다.

개인적으론 중간고사보다 이번 기말고사가 훨씬 좋다고 생각되지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다르니까.

시험의 내용 자체는 중간고사보다 어려울지 모르나,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선 중간고사보다 훨씬 널널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나같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심적 중압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면 중간고사가 더 힘들 것이고, 그런 외압에 무던한 사람이라면 기말고사를 더 힘들어하겠지.

“다들 기말고사 준비들은 잘했나?”
“네.”
“아뇨.”
“그냥저냥이요.”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가장 의외인 점은 베아트릭스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별생각 없이 대답한 것 같기는 하지만….

모르지.

 알아서 잘할지도?

“그래, 어차피 낙제점은 없으니까, 다들 편한 마음으로 기말고사에 임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절대 대충하지는 말고. 그럼 각자 배정받은 훈련실로 들어가라.”
““네.””

내가 배정받은 훈련실은 142번.

훈련장 입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훈련실이라 좋네.

“다들 시험 잘 봐라.”
“오야, 이 형님은 시험 끝나고 제이드랑 술이나 마시련다.”
“아까도 숙취 때문에 토할 것 같다면서, 또 술 마시냐?”
“취하면 숙취가 사라지잖어.”
“진짜 미친 새끼네.”

제임스랑 제이드도 참 대단한 놈들이야.

저렇게 맨날 퍼마시고도 강의에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놈들이다.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불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중간고사 1위 한 우리의 박성진씨는 기말고사가 자신 있으신가?”
“뭐, C 정도 받지 않을까 싶은데.”
“자신 있나보네?”
“C 받을 거 같다는  어떻게 자신 있는 거냐?”
“넌 입벌구잖아.”

처음엔 무어라 반박하려 했으나, 금방 관두었다.

중간고사도 몇 번이나 자신 없다는 식으로 말해놓고 1위를 해버렸으니, 다른 사람들에겐 기만으로 들릴 게 뻔했으니까.

“그래, 너도 기말 잘 봐라.”
“난 방학 생각밖에 없어.”
“방학 때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냐?”
“아니? 무슨 계획이 필요한가? 그냥 아카데미 안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무튼 너도 시험 잘 보고.  간다.”

방학이라.

나도 뭐 할지 전혀 생각  해뒀는데.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

“시험  봐! 성진아!”
“베아트릭스 너도.”
“지나갈게요!”

베아트릭스가 청록색 부부젤라를 연신 불어 재끼며 길을 냈다.

저 놈의 부부젤라는 아직도 포기를 안 했구나.

며칠 불다 보면 그만둘 줄 알았는데.

이젠 지겨울 만도 하지 않나 싶었음에도, 베아트릭스는 여전히 즐겁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정말 한결같네.

“기말 잘 봐.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1위는 너가  거 같던데. 기록 엄청 좋잖아?”
“확실히, 이번 기말은 1위를 절대 놓칠 것 같지는 않긴 해.”
“잘됐네. 이따 보자. 아이나.”
“빨리 끝내고 나와.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고 있겠다니.

얼마나 빨리 끝내려는 거야.

아이나의 자신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나는 S클래스뿐이 아닌, U클래스를 포함한 상위권 클래스 전체에서 유일하게 레이븐을 처치한 기록을 보유 중이었으니까.

대체 뭘 했길래 저렇게 급성장을 할 수 있던 건지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무슨 도핑이라도 했나.

아이나가 급성장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와중, 나는 어느새 142번 훈련실에 도착해 있었다.

“박성진 생도 맞으시죠?”
“네, 맞아요.”
“식별 완료되었습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이번 시험은 나쁜 성과를 거두더라도 낙제점이 없으니,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러주세요.”
“네.”
“그럼, 시험에 응시하여 주세요.”

훈련실의 문이 열린다.

설정은 진작에 마쳐뒀는지, 레이븐의 홀로그램은 이미 훈련실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박성진의 사상력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좆같은 홀로그램 도시네.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던 레이븐의 모습이 건물들 사이에 가려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곤 빽빽한 건물들과 등 뒤에 있는 대형 수송기 한 대뿐.

수송기는 당연히 시민들을 탑승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번 기말고사의 목표가  대형 수송기에 시민들을 탑승시킨 뒤, 안전하게 이륙까지 마치는 거니까.

그나마 조금 다행인 점은, 레이븐의 위치는 여기서 상당히 멀고, 구조해야 하는 시민들의 위치는 대체로 가깝다는 거다.

…물론 고득점을 노린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긴 하다.

 명의 시민은 이 수송기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

구조해야 하는 총 시민의 숫자가 20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작 2명뿐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A학점을 받기 위해 구조해야 하는 시민의 숫자를 알게 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8명에서 20명은 A.

15명에서 17명은 B.

12명에서 14명은 C.

9명에서 11명은 D.

6명에서 8명은 E.

1명에서 5명은 F로, 낙제다.

이렇듯, 저 두 명은 버리는 카드인 셈 쳐도, A를 받기 위해선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구해야 한다.

 거지 같은 조건이지.

심지어 B조차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이런 헬 난이도의 시험이다 보니, 낙제가 없는 게 당연할지도.

그나마 낙제점의 바로 위인 E 정도 성적으로 만족할 심산이라면, 레이븐이  근방까지 오기 전에 근처의 시민만 구해서 바로 수송기를 이륙시킨다는 방법도 있긴 하다.

이마저도 기동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겐 불가능한 방법이지만.

물론 기동성이 탁월한 나는 충분히 시도해볼 법한 방법이긴 하나,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럴 거면 애초에 레이븐 대처법만 죽어라 연구하지 않았겠지.

우선은 레이븐부터 찾아야겠네.

세컨드 어빌리티를 발동시킨 뒤, 도시 전체를 누빈다.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기척은 읽을 수 있지만, 레이븐 특유의 각지고 날카로운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은 멀리 있는 건가.

아직 도시 전체를 스캔하기엔  능력이 부족한 탓에, 직접 움직이며 레이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 확실히 뼈아프긴 하네.

그렇게 도시 전체를 헤집고 다닌 지 5분경.

나는 가까스로 레이븐을 찾을  있었다.

좆됐네.

벌써 2명이나 죽여버렸잖아.

이러면 A는 물 건너간 거나 다름없네.

게다가, 이번 판은 운도 별로 안 따라주고 있다.

훈련 때처럼 레이븐이 내게 돌진해준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 레이븐은 내게 접근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공간 왜곡 위주로 공방을 풀어나가면 피곤한데.

그래도 전처럼 공간 왜곡만 썼다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준은 아니다.

이제 공간 왜곡의 최대 사거리가 어디쯤인지 대충 감을 잡았기에,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견제를 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견제라고 거창하게 부를 것도 없기는 하다.

레이븐 수준까지  필요도 없이, S클래스 멤버들만 해도  실 탄환에 적중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그래도, 상대방의 성질을 돋우기엔 충분하다.

몇 발의 실 탄환이 레이븐에게로 날아갔다.

적중된 탄환은 한 발도 없지만, 사격을 멈추지는 않는다.

 가짜 레이븐을 빡치게 만들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니까.

…나의 무차별 사격에도 레이븐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천천히 거리를 좁혀갔다.

이제 두세 걸음만 레이븐이 앞으로 나온다면, 나는 놈의 공간 왜곡의 사정거리 내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승부다.

공간 왜곡은 즉시 발동형 사상력이기에, 보고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공간 왜곡이 닿을락말락 하는 아슬아슬한 거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놈이 공간 왜곡을 헛치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게, 공간 왜곡의 최대 사거리에서 이뤄지는 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됐다.

때로는 놈을 낚아보려 아예 일부러 공간 왜곡의 사거리 내로 몇 번 드나들기도 했으나, 놈은 결코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거 홀로그램 주제 더럽게 잘 사리네.

 되겠다.

내가 이 답답한 구도를 도저히 못 참겠어.

눈을 속이기도 좋고, 접근하기에도 좋은, 물수리 떨구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딱히 이 기술에 자신이 있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굉장히 못 다루는 기술이지.

그래도 이 기술을 선택한 것은, 상대방의 시야를 흐리기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본래 이 기술은 등 뒤에서 나에게 달려드는 상대를 쳐내기 위한 대공 기술이었던 만큼, 보통의 돌진 기술과는 꽤 다르다.

전방으로 돌진하는 게 아니라, 후방으로 날아오른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대신, 상대방을 등지고 사용한다면, 상대방에게 붙을 수 있는 기술이 되는 셈이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기술인데, 굳이 비슷한 동작을 따지자면, 높이 뛰기의 뒤로 넘기와 조금 비슷하다.

바로 이런 식으로.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고개를 아래로 돌리자, 레이븐의 공간 왜곡으로 인해 일그러진 공간이 보인다.

성공적이네.

게임으로 치면 고작 1페이즈가 끝난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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