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기말고사 대비 기간?(4) (57/173)



〈 57화 〉기말고사 대비 기간?(4)

오늘은 주말이다.

즉, 강의가 없는 날이라는 소리지.

옛날 같았으면 이불로 몸을 돌돌 말고 꿀잠을 취했겠지만, 아침 일찍 기상하는 게 몸에 배어버린 탓에, 오늘도 7시에 기상해버리고 말았다.

좀 푹 쉬고 싶은데.

난 한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체질이라, 다시 눕기도뭣하다.

일찍 일어난 김에, 오늘도 북문 공원이나 산책해야겠네.

* * *

오늘따라 북문 공원이 고요하다.

원래도 한적한 공간이긴 하지만,오늘은 유난히 더 조용하다.

약간 으슥한 기운도 감도는게,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

부엉이 울음소리 때문인가?

조금 무섭다.

다른 새들은 날아다니며 퍼드덕거리는 소리라도 내지, 부엉이는 날갯짓 소리를 전혀 내지 않아서, 기척을 전혀 읽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네.

여기에 부엉이가 왜 있지?

북문 공원이 자연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담아낸 곳이라곤 하나, 부엉이가  정도로 넉넉한 환경은 아닐 텐데.

게다가, 부엉이 울음 소리가 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더 수상쩍다.

마치 나를 감시하기라도 한다는 듯, 약간의 거리는 계속 유지하며, 쉬지 않고 울어댄다.

뭐, 북문 공원을 관리하는 측에서 풀어놓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부엉이는 잊어버리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때였다.

“기다리고 있었어.”

깜짝 놀랐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많이 놀랐나 봐? 미안.”

아이나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내가 오는지는 어떻게 알고?

입을 열려는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자연스레 몸을 움츠렸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그것의 정체는, 죽 나를 불안하게 만들던 부엉이였다.

커다란 부엉이는 아이나의 어깨 위에 안착했다.

“잘했어. 이자요이.”
“그거, 네가키우는 거야?”
“응, 본가에서 기르던 부엉이지. 데리고 온 지 얼마  됐어. 여기 적응도 시킬  주변에서 산책시키던 중이야.”

아이나의 애완동물이었나.

부엉이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사람이라면 꺾일 수 없는 각도로 머리를 이리저리 회전시키는 게, 섬뜩하다.

생긴 거 자체는 나름 귀엽다만.

“귀엽긴 하네.”
“새끼 때부터 키워서, 내 말은잘 들어.”
“나도 만져봐도 돼?”
“안돼. 물리면 다치잖아.”

그녀가어깨를 뒤로 뺀다.

아쉽네.

만져보고 싶었는데.

멋있잖아?

“근데, 내가 여기 올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여자친구의 감?”
“그건 좀….”
“너, 아침마다 북문 공원 산책하지 않아?”

아, 그걸로 거구나.

하긴, 아침 산책을 하다 아이나를 마주치는 날이 종종 있었으니,알 만도 하네.

“그렇긴 하지.”

그녀가 내 왼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반지가 끼워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내 업보다.

하루는 내가 깜빡하고 반지를 끼고 나가지 않은 날이 있었는데, 그날은 정말 아이나한테죽는지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쉰여덟  죽었었지.

초주검이 된 상태로 아이나한테 빌어 보았지만, 씨알도 안 먹혔었다.

웃는 얼굴로, ‘시험이 코앞인데 훈련을 소홀히 하면 되겠느냐’며 가차 없이 날 썰어 재낀  날의 아이나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뒤론 꼭 반지를 끼고다닌다.

가끔 피곤한 날은 혹여 다음날 끼고 나가는  잊을까 아예 반지를 낀 채 자는 날도 있었고.

“오늘도 하고 나왔네. 잘했어.”
“그날은 실수였다니까.”
“나는 한 번도 실수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쉽게 잊을  있는 거였구나. 너한테는.”

아이나가 내 손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이라기보단, 먹잇감 앞에서 날름거리는 뱀의 혀 같은 느낌에  가까웠지만.

“아예 빼고 다니지 못하게, 몸 어딘가에 걸어둘 걸 그랬나?”
“미친년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뿌리쳐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나는그걸 실천하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내가 저지른 행동을 후회했다.

아이나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부엉이가, 나를 사정없이 쪼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해, 이자요이. 돌아와.”

부엉이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몇 번이나  더 쪼아대고 나서야 아이나의 어깨위로 돌아갔다.

“네 두 번째 주인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친절하게대해줘.”

주인이라는 말에, 부엉이가 소리 없이 날개를 퍼드덕거렸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아이나의 어깨에서내려온 뒤, 내 앞에 다가와 웃었다!

인터넷에서 웃는 부엉이의 사진을 몇 번 본 적은 있다만, 이렇게 실제로 보게될 줄이야.

심지어 사회생활도 기막히게 잘하네.

저 새끼 저거 동물 아닐지도 몰라.

“그 부엉이, 사람  되게 잘 알아듣는다?”
“주인이 나잖아?”
“그럴듯한 논리네.”

주인이 아이나면 그럴 수 있지.

“아무튼, 산책이나 마저 하자. 너 오기만 기다렸어.”
“그래.”
“놀다 와, 이자요이.”

부엉이는 이번에도 소리 없이 자리를 떴다.

저거, 보면 볼수록 간지 터지네.

나도 나중에 한 마리 키워볼까?

* * *

산책은 끝났다.

나는 곧바로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내부로 돌아왔으나, 아이나는 자신의 부엉이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겠다며 북문 공원에 계속 남았다.

트리니티 아카데미 내부로 돌아오긴 했지만, 막상 뭔가 할 일이 있어 돌아온 건 아니다.

기말고사 대비라도 훈련이라도 할까?

흠,그래도 주말 정도는 놀고 싶은데.

뭘 할지 고민하던 와중, 누군가가 내게 연락을 보냈다.

프리실라다.

[Priscilla Carlyle]
 지금 서문으로 올  있어?
[박성진]
▶ 갈 수는 있는데, 왜?
[Priscilla Carlyle]
▶ 오라면 그냥 와

그 뒤로 몇 개의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프리실라는 내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닥치고 오라는 의미겠지.

처음엔 이 연락을 무시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나에겐 아이나가 있었으니.

그렇지만, 프리실라와의 인연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그냥 만나기로 했다.

만일 아이나가 트집을 잡는다고 해도, 그냥 친구라서 만났다고 하면 되니까.

* * *

그래서, 현재 나는 서문에  도착한참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바글바글하네.

저 멀리 나탈리아와 함께 있는 제이드도 보인다.

뭐야, 생각보다 되게 예쁘잖아.

저런 여자가 제이드 같은 병신을 좋아한다고?

…아니지.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구나.

제이드는 그래도 나름 능력도 있고, 외모도 제법 출중한 남자다.

성격이 거지 같다는 점만 빼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탈리아보다 잘난 구석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헌데, 나는 딱히 외모가 그렇게 출중하지도 않고, 좋은 집안을  것도 아니며, 특출나게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이나보다 잘난 점이 하나도 없다.

아, 성격은 아이나보다 좋긴 하네.

그래도, 여자친구보다 나은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왜 이러고 있어?”

누군가가  숙이고 있던 머리를 툭툭 쳤다.

아마 목소리의 주인인 프리실라겠지, 뭐.

 사람 기분 나쁘게.

고개를 들어 올려 프리실라를 마주 보았다.

평소의 생도복이 아닌, 화사한 느낌을 주는 하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오늘의 프리실라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탈리아보다 네가 낫구나.

하긴, 프리실라도 어디가서 꿇리는 외모는 아니니까.

“그래서,  불렀는데.”
“영화, 같이 보러 안 갈래?”

맞다.

 최근에 동아리 활동 거의 안 했지?

이번에 영화 보고, 그거나 감상문으로 제출하면 딱이겠네.

아이나가 잔소리하면, 혼자 보긴 심심해서 프리실라랑 보러갔다고 둘러대야겠다.

완벽한 계획이군.

“그래, 가자.  보러 갈지는 정했고?”
“아니… 가서 정하려고 했는데.”

자기도 별생각 없다가 급하게 부른 건가?

아니, 그런 거치곤 제대로 중무장을 하고 나오셨는데.

“야,  내가 만약에 안 나오면 어쩌려고 했어?”
“생각 안 해봤어.”
“그럼, 그냥 무작정 나온 거냐?”
“응….”

얘도 참 대책 없는 애다.

나름  부러지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베아트릭스 마냥 맹한 구석이 있었네.

오늘만 그런 건가?

“뭐, 나왔으니 그렇다 치자. 그래서 영화는 뭐 보려고? 생각해둔 거는 있어?”
“나, 런던에서의사냥이보고싶은데.”
“그게 보고 싶다고?”

완전 남자들이 좋아할 픽이잖아.

이런  여자들이 본다고?

“왜, 이상해?”
“남자들이나 볼 법한 영화잖아.”
“라이나 릴케가 조연으로 나오잖아! 주인공인 알렉산더도 잘 생겼고.”
“그런 이유였나.”

라이나 릴케의 광적인 빠순이구나.

이유만으로 이게 보고 싶다니.

“그래, 그럼 그거보자.”
“너는 상관없어?”
“액션 영화잖아. 남자들은 다 액션 영화 좋아해.”
“그러네.”

볼 영화도 정해졌으니, 영화관으로 들어가 볼까.

…뭐지.

하늘에서 뭔가 지나간 거 같은데.

* *

영화는 그저 그랬다.

대충 요약하자면, 런던에 등장한 괴수를 히어로들이 퇴치한다는, 매우 평범한 슈퍼히어로물이다.

뭐, 그래도 나름 색다르게 다가오긴 했다.

CG로 구현한 게 아니라, 사상력을 이용한 실사라 그런지, 현실감이 넘쳤다고 해야 하나.

사실대로 말하면, 영화에 그리 집중하지 못했다.

라이나 릴케만 등장했다 하면 프리실라가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댄 탓에.

“역시, 라이나 릴케는 멋있어!”
“그래, 그래. 라이나 릴케는 잘 생겼지.”
“아니, 잘 생기기만  것도 아니고, 강하기도 하잖아!”
“몰라. 별 관심 없다.”

라이나 릴케는 고추인데, 알게 뭐람.

예쁜 여자여도 관심이 생길까 말까한데, 남자다?

관심이 생길 턱이 없지.

“이럴 때는 무지성 공감을 해달라고, 어?”
“남자한테 관심을 왜 가지냐고.”
“그럼, 여자한테는 관심 있고?”
“관심이 없었으면, 아이나랑 사귀고 있겠냐고.”
“그런 목석같은 년이 뭐가 좋아서….”
“야, 남자는 예쁘면  용서 가능해.”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친구가 여자를 소개시켜준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묻는 게 무엇인가?

‘예쁘냐?’다.

그 누구도 ‘건강하냐’, ‘집이 좀 사냐’, ‘능력 있냐’라고 묻지 않는다.

“그럼, 나는 못생겼어?”
“아니, 너 정도면 존나 예쁜 거지.”
“근데 왜 나는 신경 안 써줘?”
“저 여자친구 있다니까요?”
“그, 동양에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영웅호색?”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아.

무틀딱이나 할 법한 소릴 하네.

“네가  말을 어떻게 알아?”
“서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프로이트가 나폴레옹을 보고 ‘영웅은여색을 밝힌다’는 말을 했었거든.”

오, 그런 썰이 있었구나.

몰랐다.

“그건 차치해두자. 나는 영웅이 아니거든.”
“여색을 밝힌다는 건 부정  하네?”
“그건 영웅이 아니라 누구나 그래.”
“그 말은, 나한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소리지?”
“너, 내가 아이나한테 죽는 모습이 그렇게 보고 싶은 거냐?”

아니, 곱게 죽을 수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로 박제가 되지 않을까.

“그럼, 내가 안 죽게 지켜주면 되지.”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이대로 프리실라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 된다.

프리실라랑 긴 시간을 보내기라도 했다간, 아이나님께서 경을 칠지 모르는 일이니까.

“몰라, 영화  봤으니까 간다.”
“야! 어디가!”

감당할 없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뒤를 쫓아오는 프리실라를 때어내는 데엔, 10분이 더 넘는 시간이 걸렸다.

도망치는 동안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은  같은데, 착각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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