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편지. (44/173)



〈 44화 〉편지.

“여기, 외출증이다.  갔다 와라.”
“감사합니다.”

드디어 아이니르 밖을 나가보는구나.

트리니티 아카데미 생활이 그리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아이니르가 그리 좁은 공간도아니고, 생도들의 편의를 위해 거의 모든 편의 시설이 존재하는 좋은 곳인데, 무슨  불만이 있었겠는가.

단지, 어딘가에 갇혀있다는 심리적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감이 만족스러울 뿐이다.

트리니티 공항엔 생각보다 많은 생도들이 모여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서 그런가, 다들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모양이다.

개중에선 나를 알아보는 이도 더러 있었다.

연락처를 교환하자는 녀석도 있었고, 자신에게 전술 지도를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물론, 전부 거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싹바가지 없는 녀석으로 낙인 찍힌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내가 외출하는 이유가 부모님의 기일 때문이라는 것을 대부분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행 트리니티에어 58편을 타실 승객 분께서는 출국 절차를 밟아 주시기 바랍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는 여권과 가벼운 짐만을 챙겨 출국 심사대를 지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셔왔다.

딱히 할 것도 없었지만.

[한국행 트리니티에어 제 58편은 현재 탑승중에 있습니다.  편을 이용하실 승객 분께서는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루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나마 비행기 안에선 잠이라도  있으니, 한결 낫네.

[트리니티에어를 이용해주시는 모든 승객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즐거운 비행 되시길 바라며, 불편한 점이 있다면 승무원을 호출해주세요.]

잠에 빠져드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나는 빠르게 출국 심사를 마치고공항열차를 찾았다.

운이 좋게도 부산으로 가는 공항열차가 막 출발하기 직전이었기에, 나는 서둘러 표를 끊고 버스에 탑승했다.

…정말 이 세계의 기술은 볼 때마다 놀랍네.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30분이라니.

이마저도 환승하는 데 걸린 시간을 제외하면 사실 열차가 달린 시간은 고작 5분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 밖으로 나가자, 부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음, 생각보다 별로 특별한 건 없네.

그냥 내가 살던 성남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원래 세계에선 부산 특유의 아날로그한 감성이 있었는데 말이지.

별로 구경할 것도 없겠네.

나는 역 근처에 즐비해 있는 택시 중 하나를 불렀다.

“부산납골추모원으로 가주세요.”
“예.”

…부산 운전은 아직 죽지 않았구나.

내가 차를 탄 건지, 카트라이더 노르테유 익스프레스 스피드 런을 찍은 건지 모르겠다.

알프레드와 경기때 보여준 건 아무것도 아니었군.

택시에서 내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이 전설적인 드라이브를 경험하고도 속이 멀쩡한 사람이 있다면, 필히 대양을 누비는 뱃사람이거나, 네이티브 부산사나이일 것이 틀림없다.

그나저나, 날씨가 참 좋네.

생각해보니 날씨가 좋다고 의식한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남태평양에 있는 아이니르는 날씨가 나빴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리라.

오랜만에 하는 외출 때문인가?

어쩌면 내가  세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계절이 겨울이라서 그럴지도.

여기저기 핀 철쭉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봄은 이제 완연해 있는 수준을 넘어, 끝나가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나의 손에도 꽃이 들려있긴 하다.

헌화로 가져온 국화꽃.

조금 떨리는 걸음걸이로추모원 내부에 들어가, 부모님의 이름을 찾는다.

평행세계니까, 이름은 같겠지.

꽤 긴 시간 동안 추모원 내부를 돌아다닌 끝에, 내 부모님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박찬형, 정예빈.

나는 국화꽃다발을 납골함 앞에 고이 올려둔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했다.

“편히 쉬세요.”

평행세계의 부모님이라지만 마음이 조금 편치 않네.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먼 사람의 죽음이라.

어렵고도 복잡하네.

그렇게 내가 묵상의 시간을 가질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성함이 박성진 맞으십니까?”

보아하니  추모원의 납골관리인같다.

그런 사람이 내게 무슨 볼일이?

“선친(先親)의 친구분인 최준우라는 분이 남긴 연락처입니다. 고인의 아드님께서 이곳에 방문하면, 자신에게 꼭 연락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감사합니다.”

준우 아저씨는 원래 내 아버지의 직장 동료였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친분이 있구나.

나는 추모원에서 빠져나와 핸드폰으로 준우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전에 하던 대로 평범하게 준우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시덥잖은 고민을 하던 와중,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준우 아저씨.”
“…그래, 성진아. 네가연락을 준 걸 보니, 아버지를 만나고  길이구나.”
“맞아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 하자.”
“어디서 만나면 될까요?”
“거기 있어라. 내가 가마.”
“알겠어요.”

전화는 끊어졌다.

그나저나 만나서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뭘까?

애초에 준우 아저씨는 내 아버지의 친구지, 나의 친구가 아닌 만큼, 나와는 특별한 접점은 없는 사이다.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정도의 친분은 없었다.

별일 아니겠지, 뭐.

“그래, 성진아. 오랜만에 보는구나.”
“안녕하세요. 준우 아저씨.”
“네 모습은 방송에서봤다. 많이 밝아졌더구나.”

그 말엔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밝아진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거니까.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긍정적인변화니까.”
“네.”
“널 만나고자  이유는 이거다.”

그는 내게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지?

“이게 뭐예요?”
“네 아버지의 다른 유서다.”
“다른 유서요?”
“처음 받았을 때는, 나도 참 어안이 벙벙했었다. 찬형이도 너처럼 심장병을 앓고 있었긴 하지만, 그렇게 유서까지 준비해뒀을 줄은 몰랐거든. 처음엔 한사코 거절하려 했는데, 꼭 내가 받아줬으면 한다고 부득불 우겨서받았다. 나중에 네가 자신을 찾아오면, 그때 넘겨주라고 하더라고.”

…?

평행세계의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건가?

“네 좋은 모습을 보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긴 하지만, 내가 근래 들어 바빠서 말이야. 지금도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내팽개치고 온 거거든.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보자.”

준우 아저씨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정말로 바빴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내 연락에 바로 시간을 내서 날 만나러 온 걸 보면, 아버지와 정말 친했던 사이는 맞나 보네.

그나저나, 자신이 죽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가 내게 따로 남긴 유서라.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있을까?

종이봉투에 들어있던 종이는 조금도 접혀있지 않고 빳빳했다.

아무래도 준우 아저씨가 어딘가에 처박아둔다거나 하지 않고 소중히관리해왔던 모양이다.

조금 감동인데.


『사랑하는 두 번째 아들에게.

반갑구나. 내 두 번째 아들아.

자식이라곤 하나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편지를 읽는 네가 진짜 내 아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서란다.

이걸 읽는너도 무척이나 당황스럽겠지만, 내가 이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는 어땠을지 생각해보려무나.

나와 내가 하나뿐인 내 자식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식도 내가 물려준 병으로 인해 명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마저도  자식의 몸이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이해해다오.

처음에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내가 본 미래는 대부분이 바꿀 수 없는 미래더구나.

나도 이런 사상력을 얻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도로 반납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하지만 어쩌겠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세계의 내가 낳은, 다른 세계의 내 자식이라니,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도 그걸 아는 만큼, 내 아들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진심으로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기는 지금도 힘들지만, 아들의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마음이 조금 놓이는구나.

나의 두 번째 아들아.

부디 너에게 부탁을  가지만 해도 되겠니?

첫 번째는, 부디 건강하게 있어 줬으면 한다.

 앞길을 막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부모 입장에서 자식 걱정을 안  수가 없구나.

특히나 너의 여정엔 앞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으니, 더욱 걱정이 앞선다.

특히나 넌 어려서부터 고집은 절대로 꺾지 않았잖니.

다른 세계의  아들이라고 다르진 않더라.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네가 생각을 굽히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억해줬으면 하는구나.

두 번째는, 지금의 친구들을 소중하게 여기렴.

네가 가는 길은 절대 혼자서는 헤쳐나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지금의 친구들을  소중히 하거라.

 점은 그래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너라면 잘할 거라 믿고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니 과거의 너에게도, 지금의 너에게도,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이 부탁만 하는 거 같아 미안하구나.

부디 이해해다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목표를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하마.

사랑한다.

추신. 네가 요긴하게 쓸 선물을 준비해놨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너에게 짐만 맡길 수는 없잖니.

편지 뒷면에 적어둔 주소지로 가서, 이름을 말하면 물건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잘 써라. 잃어버리지 말고.

물건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편지를 다시 읽어보렴.』

흐르는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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