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결승전이 끝나고. (43/173)



〈 43화 〉결승전이 끝나고.

“2021 트리니티 아카데미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 S클래스 영광의 1위는 박성진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우승이다.

신기한 일이네.

“우선 메달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박성진 생도와 미츠루 아이나 생도, 마지막으로 알프레드 아이스너 생도는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셋은 나란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조금 아쉽다는 표정의 알프레드와 달리, 아이나는 생각보다 밝은 표정이다.

졌는데  저런 표정이지?

아이나가 저런 표정을 짓다니, 뭔가오싹하다.

“메달 수여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이사장이신 클로에 뤼미엘님께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로에가 금색 메달을 집어 든다.

클로에가 내 쪽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고개를 클로에의 쪽으로 살짝 숙였다.

“축하해요. 박성진 생도. 다음에도 좋은 모습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클로에가 은색 메달을 들고, 아이나 쪽으로 향한다.

클로에가 아이나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었다.

아이나는 여전히 제법 기쁜 표정이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아이나 생도도 축하해요. 비록 1등은 못했지만, 2등도 충분히 대단한 성과라는 걸 명심하세요.”
“새겨 듣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알프레드의 목에도 동색 메달이 걸렸다.

“축하해요. 알프레드 생도. 알프레드 생도 입장에선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일지 몰라도, 3등의 자리도 그렇게 낮은 자리는 아니니, 표정을 푸셔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클로에는 입상자인 우리와 한 장의 사진을 찍고는, 자리를 떠났다.

조금 느끼하게 느껴질 정도의 진한 윙크를 남기고.

클로에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주책맞다는  알까.

“그럼 다들준비도 된 듯하니, 인터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S클래스의 담당 교수인 빈센트 뮐러 교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박성진 생도가 이번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는데, 어떤 소감이십니까. 한 말씀 해주시죠.”
“어, 일단은… 박성진 생도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박성진 생도가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우승한  저에게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알프레드 생도가 1위를 거머쥘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생도를 알아보지 못한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반대로 그런 생도가 제 강의를 듣는다는 게 기쁘기도 하네요.”

빈센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이다. 저건.

감격스럽네.

“알겠습니다.자, 그럼 이제 대망의 박성진 생도와 우승 소감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내 차롄가.

조금 긴장되네.

“안녕하세요. 박성진 생도.”
“네, 안녕하세요.”
“1위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도 우승할 거라곤 생각 못 해서, 준비해온 멘트가 없네요. 기분은 좋습니다.”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의  마디가많은 논란되고 있는데요. 정말로 즉흥적으로 전략을 준비한 게 맞냐는 말이 많습니다. 정말 그 자리에서 전략을 짜는  맞나요?”
“아, 그건 사실입니다.”

야유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사실인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알겠습니다. 거의 매 경기를 압승하다시피 했는데, 혹시 이 생도가 좀 의식된다, 이 생도랑 겨뤄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생도는 없으셨나요?”
“음… 솔직히 매 경기가 저한테는 꽤 큰 부담이었어서, 특출나게 의식되는 생도는 없었습니다.”
“크게 의식되는 생도는 없었다?”
“아니, 그렇게 왜곡하시면  되죠.”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좋아하시는 영웅은 있으신가요? 이 사람이랑 함께 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이 드는.”

흠, 그런 사람은 있긴 하지.

근데 나에겐 S클래스 멤버가 더 중요하다.

정도 많이 들었고.

“있긴 하죠. 근데 저는 지금 함께하고 있는 S클래스 생도들이 좋기 때문에, 기왕이면 졸업하고 나서도 같은 클래스 멤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오오, 지금 클래스가 상당히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뭐, 그렇죠. 다 제 친구들이기도 하니까.”
“혹시 다른이유가 있는  아니십니까?”

너무 노골적인 질문인데.

이런 건 바로 받기엔  그렇지.

“네? 무슨 이유요?”
“여자친구라던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던가, 하는 이유죠.”
“아휴, 제가 무슨 여자친구가 있겠어요.”
“아,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휘파람 소리도 들려오고, 고백해서 혼내주자는 소리도 들린다.

남의 연애사가 재밌는 부정하지 않겠다만, 그렇다고 고백해서 혼내주기는 좀….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좋아하는  아니더라도, 신경 쓰이는 사람은 있다는말이로군요. 알겠습니다. 더 이상 캐묻는  예의가 아니니,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실컷 다 물어봐 놓고?

후, 이제 S클래스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는 글렀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중간고사가 끝났는데, 앞으로 특별한 일정이 있으신가요? 꼭 물어봐달라는 영웅들의 요청이 많았습니다.”
“곧 부모님의 기일이라, 외출증을 받아서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을까 싶네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괜히 말했나 싶긴 하지만, 부모님의 기일은 꽤 중요한 날 아닌가.

원래의 나에겐 일면식도 없는 남의 부모님이라지만, 이젠 내 부모님이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쳐도, 평행세계의 나를 키워주신 분들이니, 그에 대한 헌사를 표할 필요는 있겠지.

“죄송합니다. 괜한 질문을 했네요.”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기말고사에서도 박성진 생도가 좋은 성적 거두셨으면 좋겠네요. 1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 뒤론, U클래스의 우승자인 모용린의 인터뷰와, 이번 중간고사에 대한 다른 영웅들의 평가, 기타 폐막 행사 등이 지나갔다.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트리니티 스타디움을 빠져나갔다.

카타리나랑 에일이나 마셔야지.

곧장 트아카 앱을 실행하여, 카타리나에게 1:1 메시지를 보냈다.

[박성진]
▶ 지금 있어?
[Катарина Беляева]
 왜 불렀나
[박성진]
 에일이나 한  할래? 내가 살게
[Катарина Беляева]
▶ 그리 하지
[Катарина Беляева]
▶ 어디로 가면 되나?
[박성진]
▶ 오늘은 좀 조용한곳에서 마시고 싶은데, 추천하는 곳 있어?
[Катарина Беляева]
 한 군데 알고 있는 곳이 있다
[박성진]
▶ 나  많아
[Катарина Беляева]
▶ 그럼 서문에서보도록하지
[박성진]
▶ 그래

그럼, 서문으로 가볼까.

* * *

언제 봐도 카타리나는 참 아름답다.

단순히 예쁘다는 느낌보단, 예술가가 깎아놓은 조각 같은 느낌이다.

아름답고 눈부셔서, 숭고한 느낌마저 들 정도니까.

“이쪽이다. 가자.”

카타리나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성큼성큼 도로를 활보했다.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것이 우승자의 인기인가.

“뭐 하고 있나. 얼른 쫓아오지 않고.”
“아, 미안.”

남자인 나보다 키가 큰 그녀의 빠른 걸음을 쫓아가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그녀를 따라간 지 대략 10분쯤, 우리는 어떤 작은 가게 앞에 도착해있었다.

“여기다. 순록 사냥꾼(Reindeer Hunter).”
“들어가자.”

카타리나가 문을 열고 가게의 내부로 들어간다.

가게의 내부는 단출하지만, 엔티크한 멋이 살아 있었다.

“오랜만이네, 카타리나. 한동안은 여기에 안 오더니.”
“바빴습니다.”
“그래, 중간고사는 중요하지. 아무 데나 가서 앉아라.”

매번 금속 재질의 물건들만 보다가, 이런 목재 가구 위주의 가게에 들어오니, 내가 전에 살던 세상의 향수가 느껴져서 좋다.

여긴 자주 와도 괜찮겠네.

“옆에는, 친구?”
“안녕하세요. 카타리나의 친구, 박성진입니다.”
“어서 와라. 난 로빈이다. 카타리나가 친구를 데려오는 건 오랜만이군. 나쁜 구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친구를 잘 사귀는 타입은 아니니까.”
“저도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제 어디가 불편해서 절 어렵게 느끼는 걸까요.”
“우선 그 말투부터  어떻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제 말투가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나와로빈이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 동시에 한숨을 내쉰다.

체념해야지.

어쩌겠어.

“됐다.  주문할래?”
“에일 네 잔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항상 에일만 마셨지.”
“사람들이 에일의 좋은 점을 모르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성진은 저와 뜻이 잘 맞는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박성진은 에일을 좋아하거든요.”
“뜻이 맞는 친구가 있는 건 좋지.”

로빈은 우리 앞에 네 개의 잔을 내려놓는다.

잔에선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보내라. 나는 일하러 가야 돼서.”
“가상화폐 거래소를 보는 게 일입니까?”
“이 좆만한 가게 운영하는 거보다 거래소에서 클릭질 몇  하는 게 더 돈이 잘 벌리는데, 어떻게 일이 아니라고   있겠니.”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 못해도 돼.”

비트코인은 신이지.

인정한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불렀나. 박성진.”
“그냥, 너 되게 일찍 탈락했잖아. 우울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에일이나 마시자고 불렀지.”
“정말 그 이유뿐인가?”
“그럼, 무슨 이유가 있는데?”
“아까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그러지 않았나.”

이런 일이 생길 것 같더라.

근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난 S클래스에 있는 여자는 다 좋아하니까.

단지,  명을 특출나게 좋아하는 게 아닐 뿐이다.

솔직히 나는 남 가릴 처지도 된다.

S클래스의 여자 중에서 한 명이라도 사귈 기회가 내게 생긴다면, 그녀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 세  올리고 ‘감사합니다’를 외쳐야 할 정돈데.

솔직히 당연한 이야기다.

죄다 능력 있는 미녀뿐인데, 마다할 이유가 뭐가있겠어.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해서 따로 부른 거라고?”
“누가 생각해도 그렇지 않나?”
“처음엔 아이나도 부를까 했었는데, 아이나는  무서워서.”
“네가 나나, 아이나를 좋아하는 아니라는 것쯤은 확실히  수 있는 답변이었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무슨 소리야. 그게.”
“…너는 전략은 잘 짤지 몰라도, 여심에 대해선 아는  하나도 없는 모양이군.”

갑자기 명치를 후벼파네.

“여자친구가 있어  적이 없어서.”
“이건 이성 친구의 문제가 아니다.그냥 눈치가 없는 거다.”
“미안하다. 눈치가 없어서.”
“괜찮다. 지금부터라도 사람들이랑 많이 대화하면 늘 거다.”

이렇게 조곤조곤 사람을 줘패다니.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드나?

“아무튼, 우승 축하한다. 박성진.”
“고마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연애사도 같이 응원해주마.”
“만약 그게 너라면 어떻게  건데?”
“당연히 사양하마.”

칼같은 대답이었다.

딱히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직접 입으로 들으니 조금 씁쓸했다.

“너무하네.”
“나중에 네가 여자를 이해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지.”
“…뭐?”
“능력 있는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다.”

 뒤의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모솔, 아다, 아싸, 찐따였던 내게 기억에 남는 거라곤, 카타리나의 그 한 마디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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