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결승전.(2) (42/173)



〈 42화 〉결승전.(2)

아이나의 가문, 미츠루 가문은 전 사냥꾼, 현 암살자 가문이다.

분명 아이나도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이 익숙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사냥당하는 것은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엔, 내가 그 경험을 선물해주마.

그것도 괴롭다고 느껴질 만큼, 철저히 괴롭혀줄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건 적당히 몸을 숨길 장소를 찾는 것.

아, 굳이 여기저기 살필 필요는 없다.

이미 생각해둔 건물이 있으니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물이 그것이다.

아무런 특색도 없는, 평범한 상가 건물이지.

오늘은  상가에 볼일이 있다.

왜 하필 이런건물이냐고?

이런 건물이 더 내 위치를 유추하기 어렵게 만드니까.

잠자코 지켜보면 왜 그런지  것이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추적 지뢰를 꺼냈다.

“박성진 생도가 준비 해온 델타 등급 장비는 추적 지뢰였습니다! 추적 지뢰가 과연 이번 결승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카드가  수 있을지, 어떨지는 지켜봐야겠죠?”
“추적 지뢰는 공격당하면 쉽게 파괴되는 물건이라, 아이나 생도를 공격하기에 적합한 무기는 아닌데요. 다른 용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추적 지뢰가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땅 속으로 내려 들어갔다.

지뢰의 매설은 이걸로 끝.

나는 건물에 들어서서, 뽑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실을 뽑아내, 이 홀로그램 도시 전역에 퍼뜨렸다.

이번에 뽑아낸 실은 아주 가늘고, 강도도 매우 낮은 실이다.

사람들의 몸에 걸려도 아주 쉽게 끊어지는, 그런 실.

대부분은 거미줄에 걸렸나? 하고 무시할 정도로 약한 실이다.

 그런 실을 뽑아냈느냐 하겠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실은 이 실이다.

흠, 실들이 도시곳곳에  퍼진 거 같군.

시민들이 도시의 거리를 지나다니며 몇 개의 실을 끊어냈다.

실이 끊어지는 감각이 느껴지긴 하지만, 너무 미약한 진동이라 감지하는 게 쉽진 않네.

거의  신경을 집중해야 아주 잠깐 느낄 수 있는 정도.

이 정도로 피곤한 작업이 필요한 적은 처음이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나는 실에  신경을집중시킨 채, 추적 지뢰의 격발기를 작동시켰다.

지뢰가 감지하는 주변의 생체 반응이 격발기의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역시,  근처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군.

나는 추적 지뢰를 신경 쓰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반응이 느껴지지 않는 쪽.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내가 실을 통해 훤히 꿰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북동쪽에서만큼은, 아무런 사람의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아이나의 스타팅 포인트가 북쪽인데 말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나는 북동쪽에 있을 확률이 높다.

추적 지뢰가 북동쪽으로 이동한지 대략 3분이 지났을 즈음,  개의 생체 반응이 격발기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북동쪽에 설치된 실들은, 단 하나도 끊어진  없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게 아이나다.

무슨 근거냐고?

내 실의 감지 능력, 그리고 이 추적 지뢰에 탑재된 생체 반응 탐지기는, 아이나를 찾아내기엔 각각 하나의 부족한 점이 있다.

첫째, 아이나는극도로 잘 훈련된 암살자라,이 가느다란 실도 전부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실에 전혀 걸려들지 않아, 아이나는 감지할 수 없다.

둘째, 추적 지뢰의 생체 반응 탐지기는 생체 반응 교란기 등의 특별한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면,모든 생명체를 감지할 있는 대신, 다른 생물과 아이나를 구분해낼 방법이 없다는 것.

이쯤 설명했으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 ‘생체 반응 탐지기에는 걸리면서, 실에는 전혀 걸리지 않는 생명체’가 나타난다면?

그게 아이나란 말이지.

 방법은 아이나가 다른 일반적인 생도라면먹혀들지 않는 방법이다.

그냥 실에 걸리는 걸 무시할 테니까.

하지만, 아이나는 오랜 훈련 탓에, 본능적으로 이 실을 인식하고, 몸이 알아서 반응하여 실을 피하는 경지에 올라버렸다는 점이다.

열심히 훈련해온 극한의 감지 능력이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지.

나는 추적 지뢰의 목표를 현재 탐지기에 잡히고 있는 물체인 아이나로 설정해놓고, 격발만 중지시켰다.

이렇게 설정하면, 추적 지뢰가 알아서 아이나를 쫓아간다.

이제, 내가 아이나를 사냥할 시간이군.

사방에 퍼져있는 실들을 조금 거둬들인 뒤, 아이나가 감지되는 곳을 향해 무차별적인 절단실 세례를 퍼부었다.

“박성진 생도! 아이나 생도를 공격하고 있는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아이나 생도가 있는 곳은, 박성진 생도의 시야에선 볼 수 없는 곳인데요!”
“그러게요. 어떤 방식으로공격하고 있는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나를 직접 보고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 9할 이상의 공격이 빗나가고 있었으나, 그건 별로 중요한  아니다.

내 공격 적중률이 1할도 안 된다 쳐도, 상관없다.

나만 공격할 수 있는데 적중률이 무슨 상관이야?

아이나는 내 위치조차 특정하지 못하고있는데.

이거, 상당히 재밌네.

절대 도망칠 수 없을걸?

* * *

처음에는 상성 차이에 의한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다.

 번째는 운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녀석이 올리비아를 꺾었을 때, 비로소 나는 인정했다.

박성진은 강하다.

상대방의 강점은 봉인시키고, 약점을 후벼파는 데에 아주능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고 선뜻 말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좀 싫어하면 어떤가.

설령 어떤 사람을 좀 싫어한다고 해서, 그 미워함에대단한 이유를 가지는 경우는 드물 터이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애절한 사연이나 타오르는 복수심을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 말이 꼭 내가 박성진을 싫어한다거나, 박성진에게 맺힌 감정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박성진에게 느껴지는 솔직한 감정은, 동경과 질투.

처음에는 그저 얼빠진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얼빠진 녀석은 맞다.

자기 주제 파악도 못하고, 눈치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 녀석은 그런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느새 나보다 앞서나가서, 이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 점이 부럽다.

그래, 나는 사실 그 녀석을 미워한 게 아니야.

박성진을 미워할 수 없었던, 내가 미웠을 뿐인 거지.

그런 녀석을 동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런 녀석을 질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싫어서.

그 녀석을 미워하고 있었던 척을―

지금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박성진을 이겨야만 했다.

내가 이 동경심을 버릴 수 있도록, 질투심을 버릴 수 있도록.

박성진만 꺾으면, 그 모든 불편함을 해소할  있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 베인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아프진 않다.

고통을 참는 건 익숙하니까.

어째서지.

분명 사냥하는 자는 나였을 텐데.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어느 시점부터 잘못된 거지?

나, 미츠루 아이나가 손도  써보고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했다.

왜, 어째서?

나는 그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어.

너는 어떻게 항상 나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있는 거야?

누구도 그걸 알려주지 않았는데?

부디, 내가  마음을 버릴 수 있게 해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파와서.

상처보다 쓰라려서.

* *

아이나를 실컷 괴롭히던 와중,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이지?

“저게 뭐야.”

당황하니까 말문이 트이네.

흑선풍(黑旋風)이 앞으로 전진하며, 도시를 점점 파괴해나갔다.

저러면 시민도 피해를 입어서 탈락할 텐…

다 도망가네.

소용돌이는 정확히 내가 있는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아니, 방향은 의미가 없었다.

그 규모가 너무 거대해, 이 작은 홀로그램 도시 면적의 상당 부분을 뒤덮을 정도였으니.

“아이나 생도! 거의 모든 사상력을 사용하여, 도시를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습니다!”
“과연 그랜드 파이널 진출자는 달라도 뭐가 다른 걸까요! 박성진 생도가 지금까지 재치 넘치는 방법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정도 규모의 공격에도 대비책을 세워뒀을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대로 끝날 거같은데요!”

플랜 B로 넘어간다.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도 대비를 안 한 건 아니지.

나는 곧바로 모든 실을 거둬들이고, 격발기로 지뢰의 조작을 시작했다.

내가 내린 명령에, 지뢰가 남동쪽으로 달음박질친다.

그리고, 지뢰가 출발한 방향으로, 단 하나의 굵직한 실을 발사했다.

소용돌이에 직접적으로 휘말리면 어차피 끊어지긴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저 실이 버텨줘야 했기 때문이다.

부디 소용돌이가 내 건물에 도달하기 전에 목표 지점에 도달했으면 좋겠는데.

칠흑의 돌개바람은 모든 것을 파괴하며 전진한다.

나로선 현재 딱히 저지할 방법도 없다.

나는 담담히 건물 옥상으로 올라와, 그것이 나에게 도달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포기한 것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 때를 기다릴 뿐.

남동쪽으로 출발한 추적 지뢰가, 내가 발사해둔 실의 끝을 건드릴 때까지….

이제 소용돌이는 대충 한 두 블록 정도의 거리만을 남겨두고 있다.

추적 지뢰의 소식은 아직 없다.

“박성진 생도! 포기한 걸까요? 왜 가만히 있는 걸까요?”
“하지만 아직까지 기권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후, 나의 패배인가….

그 순간, 나의 몸에 연결된 유일한 실에서, 익숙한진동이 느껴졌다.

추적 지뢰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나는곧바로 지뢰를 격발시켰다.

이제, 도심은 완전히 어둠에 잠긴다.

그리고, 도시를 파괴하던 그림자의 소용돌이도 사라진다.

“박성진 생도의 계획이 이것이었군요.”
“뭐죠?”
“추적 지뢰를 도시의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발전 시설로 보내, 발전 시설을 폭파시키는 거죠.”
“그게 왜 중요한 겁니까?”

에르제베트는 재밌다는 얼굴로 시험장을쳐다본다.

그녀 또한 진심으로 이 경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만 생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밤에 존재하는 광원은 두 가지입니다. 달, 그리고 도심의 불빛이죠. 하지만 시험장은 현재 비가 내리고 있죠.  말은, 원래 존재해야 하는 달이라는 광원이 구름에 가려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그럼, 현재 존재하는 광원은 도심의 불빛뿐이죠.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던 도시의 광원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백이 깨달았다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빛이 없으니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거군요!”
“그렇습니다. 도시가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면, 모든 광원이 사라지는 것이죠.”
“박성진 생도는 이런 상황도 염두에 두는 건가요….  정도 대처능력이면 정말 지금 현장에 투입돼도 괜찮을 수준인데요.”

흠, 이겼나?

이제 아이나는 딱히 공격 수단이 없다.

암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아직 내 위치가 발각된 건 아니니까.

사실 공격할 수단이 없는 건 아니다.

분명 광원이 제거되면 그림자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그림자의 ‘형태’가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

즉, 이 도시 자체가 그림자에 잠겨 있다는 것.

아이나는 그림자로 형태를 만들어내지 못하나, 도시 내부의 그림자 밀도를 올린다는 방법을 선택할  있다.

허나, 그 방법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고? 그림자의 압력은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주니까.

사용하면 실격패를 당한다.

“…기권하겠습니다.”

[아이나 생도가 기권하였습니다. 승자, 박성진. 최종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 * *

분명 기권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사무치게 아려왔는데.

막상 기권하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다.

승패 따위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후련한 기분이다.

왜일까.

이 아릿한 느낌과 비슷한, 묘한 기분과 관계가 있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