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결승전.(1)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해설, 에르제베트 디아나, 한백, 그리고 저 캐스터 강유성, 인사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해설을 맡은 에르제베트 디아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해설의 한백입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대망의 2021년도 트리니티 아카데미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그랜드 파이널! 그 막이 지금 올랐습니다.”
와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난 잘 모르겠는걸.
“그렇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 부푼 기대를 안고 기다려왔던 결승전! 그 경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어 저희도 크나큰 영광입니다. 결승전의 대진표! 지금 바로 확인해보시죠.”
대형 스크린에 네 명의 얼굴이 모습을 비췄다.
아니, 나도 솔직히 그렇게 아주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저렇게 잘생기고 예쁜 놈들만 있으니 내가 훨씬 못생겨 보이잖아.
이건 불공평하다.
“가장 먼저 확인하실 수 있는 대진은 S클래스의 결승전입니다. 바로 박성진 생도와 미츠루 아이나 생도의 경기인데요.”
“승자조 결승에서 올리비아 생도를 꺾고 진출한 박성진 생도와, 패자조 5라운드에서 알프레드 생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미츠루 아이나 생도가 그랜드 파이널에서 만났습니다.”
후, 아이나라.
결국엔 알프레드를 이겼나.
이것 참, 쉬운 경기가 단 하나도 없네.
“두 번째 대진은 U클래스의 결승전입니다. 라일라 디아브 생도와 모용린 생도의 경기가 되겠는데요.”
“상대적으로 약체라 평가받던 라일라 생도가 승자조 결승전에서 도미닉 생도에게 승리하며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하는모습이 어제 방송 경기였었죠.”
“문제는 1위란 자리는 그렇게 만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강력한 1위 후보로 점쳐지는 모용린 생도가 패자조를 휩쓸고 다시 올라와 결승을 준비하고 있어요!”
U클래스의 왕으로 군림하는 모용린이 상대다?
뻔한 결과지,뭐.
“경기 시작 전에 앞서, 시청자 여러분께 한 가지 고지 사항이 있습니다. 이번에 방송으로 송출될 결승 경기를 선정하는 방식의 변경인데요. 여태까진 저희가 추첨을 통해 진행하였으나, 이번에는 시청자 여러분이 직접 보고 싶은 경기에 투표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원작에선 당연히 더 강한 생도들이 몰려있는, U클래스에 투표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는 변수가 생긴 상황.
나는 인터넷상에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표 결과에 변화가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부터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투표는 5분 동안 진행되며,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몹시 기대되는군요!”
천장 위의 대형 스크린에는 투표 현황을 알리는 스코어보드가 나타나 있었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위상, 대단한데?
고작 학교 중간고사 따위가 뭐라고 100만명이 넘는 시청자가 있냐.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확인해볼까요?”
…실화냐?
이게 실화라고?
내가 이길 가능성도 있다고는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상당한 표 차이네요! 결과는 박성진, 아이나 조 723,429표, 라일라, 모용린 조 456,125표로, 방송에 송출될 경기는 S클래스의 그랜드 파이널입니다!”
이러면 좀 부담되는데.
난 태어나서학교 장기자랑에도 나가본 적이 없는 몸이다.
보기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서.
남들 앞에서 보여줄 만한 장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냐고?
닥쳐줬으면 좋겠다.
그럼 지금까지 보여준 기행들은?
그야 이렇게 판이 커질 줄은 몰랐으니까!
애초에 난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난, 그냥 잔머리나 좀 굴릴 줄 아는 병신에 불과하다.
근데, 그 병신이 지금 S클래스의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했네?
그것도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환장하겠네.
“이번 방송 경기의 주인공들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박수 소리가 무슨 천둥 소리보다 크냐.
귀청 떨어지겠다.
“지난 모든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경기, 훈련들을 돌아봐도 이런 생도는 다신 나오지 않을 겁니다! 고등부 입학이라는 인적 사항 외엔 전혀 특이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던 박성진 생도! 이 생도가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할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박성진 생도는 그걸 해냈습니다!”
확실히 내가 좀 대단하긴 해.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거든.
“그뿐만이 아닙니다. 박성진 생도의 경기는 다른 각성자들에게 새로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든경기가요!기상천외하고, 천변만화한 전략으로 무장한 박성진 생도! 과연 결승전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되네요!”
사람들은 퍼포먼스에 열광한다.
내가 보여준 경기들은 하나같이 전무후무했을 퍼포먼스로 가득했으니, 내게 열광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물론 그 열광의 무게만큼, 내 어깨도 무거워지고 있었지만.
“격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역시 아이나 생도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다른 S클래스 생도들과 비교해도 차별화될 정도로 압도적인 스케일! 일본의 유력 가문, 미츠루 가문의 차기 당주라는 이름에 걸맞는 품격과 미려함! 첫 경기를 보기도 전부터 아이나 생도의 1위를 예상하신 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그 정도로 아이나 생도가 뛰어나다는 이야기죠!”
그렇겠지.
아이나는 강하니까.
“그렇습니다. 이 바닥에서 아이나 생도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만큼 보여준 것도 많은 생도고요!”
솔직히 저런 평가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만도 한데, 아이나의 입꼬리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저 정도 평가는 자신에게 당연하다 이건가?
“그럼 경기에 앞서, 각 생도의 각오 한 마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박성진 생도의 각오, 들어보겠습니다.”
사회를 맡던 사내, 제이콥 맥도웰이 미디어석에서 내려와 시험장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그냥 말하면 되는 건가?
“평소에 하던 대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담백한 각오군요! 과연 이번에도 박성진 생도가 재미난 전략을 준비해왔을지 기대해도 좋을까요?”
“글쎄요. 저는 즉흥적으로 전략을 짜는 스타일이라, 특별히 준비해 온 건 없네요.”
왜 다들 날 쓰레기 보듯 쳐다보는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알겠습니다. 박성진 생도는 거짓말을 좋아하는 생도로군요. 그럼 이번엔 아이나 생도의 각오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미츠루 아이나입니다. 1위 이외의 성적은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아이나 생도. 과연 아이나 생도의 각오대로 될지는 경기를 지켜봐야 알 수 있겠죠!”
오, 1위 이외의 성적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오기가 생기는걸?
그럼 2위로 보내드려야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일단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인지라, 승자조 결승 진출자인 내게는 어드밴티지가 있다.
그 어드밴티지를 최대한 활용하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흠, 중간고사의 룰을 한 번 확인해봐야겠군.
이건 내게 쓸모없는 룰이고…
이것도 별 도움 안되는 룰…
여기 있네.
『승자조 결승 진출자에게 주어지는 어드밴티지.
1. 브라켓 리셋.
2. 상대의 무기 사용 제한.
3. 스타팅 포인트 지정권.
4. 델타 등급 장비 사용 허가.』
1번은 기각.
브라켓 리셋도 서로 승률이 엇비슷하게 나오는 상대에게나 좋은 조건이지.
나처럼 상대와의 격 차이가 심하게 나는 상태면 1번의 재도전 기회를 얻어도 별 의미가 없다.
2번?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아이나의 세컨드 어빌리티 중 하나, 급소 추적자를 봉인할 수 있는 조건이니까.
일단 이건 보류.
3번은 볼 것도 없다.
그냥 쓰레기다.
스타팅 포인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훈련의 조건에 따라 매우 유용해지기도 하지만, 이번 경기에선 아무 의미가 없는 어드밴티지다.
4번….
델타 등급의 장비는 원래 훈련이나 시험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엡실론 등급이 사용 가능한 마지노선인데, 내가 사용한 헬리오스 건이 가장 대표적인 엡실론 등급의 장비다.
그것보다 한 단계 위가 바로 델타 등급인데, 이 조건을 선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델타 등급에 속하는 장비들은 대체적으로 어정쩡한 성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엡실론 등급에 이미 헬리오스 건이나 패럴라이저라는 준수한 성능의 장비가 있는데, 굳이 어드밴티지로 델타 등급의 장비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음, 역시 2번을 선택해야 하나?
그래도 일단은 델타 등급의 장비 목록을 확인해봐야겠다.
내가 델타 등급의 장비를 전부 아는 건 아니니까.
혹시나 좋은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이건 쓰레기.
이것도 별로.
이거는 더 별로.
벌써 수십 가지 장비를 확인했는데, 영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역시 델타 등급 장비들은 죄다 함정픽인 건가.
델타 등급의 장비 사용을 포기하고, 그냥 2번 어드밴티지를 선택하려던 와중, 한 가지 재밌는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추적 지뢰?
이거, 테사기의 주범인 그 십새끼 아닌가.
아니, 그래도 그건 지뢰 3개를 공짜로 주는 거니까 사기인 거지.
아, 지뢰 3개를 사면 오토바이가 한 대 따라오는 건가?
아무튼, 이건 딸랑 지뢰 하나만 주는 건데, 델타 등급까지 매기기엔 좀 별로지 않나?
과연 이 추적 지뢰를 선택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추적 지뢰의 설명문에 적힌 한 가지 문구가 눈에 띈다.
‘수동으로 격발시킬 수 있으며, 격발기엔 조종 기능이 탑재되어, 지뢰를 직접 이동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 이건 스1의 십새끼가 아니고 스2에 나오는 십새끼구나.
이러면 인정이지.
내가요긴하게 써먹어 주마.
준비 끝.
“두 사람 모두 준비를 마친 것 같습니다. 그럼 양 생도의 그랜드 파이널,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미츠루 아이나, 박성진의 사상력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시험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 * *
“트리니티 아카데미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그랜드 파이널, 미츠루 아이나 생도와 박성진 생도의 경기, 지금 시작되었습니다.”
“박성진 생도가 또 한 번 특이한 선택을 했습니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토너먼트는 더블 엘리미네이션으로 진행되는 경기이고, 박성진 생도는 승자조 결승 진출자기 때문에, 어드밴티지를 얻습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대부분은 브라켓 리셋권한을 선택하거나, 상대방의 무기 사용을 제한하는 쪽으로 어드밴티지를 잡으니까.
“하지만 박성진 생도는 대표적인 어드밴티지인 브라켓 리셋 권한을 선택하지도 않았고, 아이나 생도의 무기 사용을 제한하지도 않았으며, 스타팅 포인트를 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한백의 말에 시청자는 물론, 에르제베트와 강유성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그 말은 델타 등급 장비 사용을 선택했다는 건데, 승자조 결승 진출 어드밴티지를 고작 델타 등급 장비 따위에 사용한다니, 도통 납득이 가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럼 델타 등급 장비 사용을 선택했다는 말인데, 델타 등급 장비 중에 그 브라켓 리셋이나 상대방의 무기 사용 제한과 비견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닌 장비가 있던가요?”
“저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박성진 생도가 지금까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박성진 생도의 행동은 모두 당시에는 모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빌드업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말에 강유성과 에르제베트는 다소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박성진이라는 이 기인은 어떤 전략을 준비해와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박성진 생도는 평소와 달리 오늘은 준비하는데 시간을 꽤 긴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 시간에 델타 등급 장비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럴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과연 어떤 장비를 준비해왔을까,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모두가 그것을 궁금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