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6)
“트리니티 아카데미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 S클래스 승자조 준결승전이 시작되었습니다. S클래스 내에서도 촉망받는 두 유망주가 맞붙은 경기인 만큼, 많은 기대와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두 생도인데요. 과연 누가 승자조 결승에 오를지,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나 생도의 우세가 그려지기는 하나, 올리비아 생도의 포텐이 굉장히 뛰어난 만큼, 쉽게 승부가 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됩니다.”
“동의합니다. 특히나 두 생도는 모두 상대방의 공격을 예측하는 데 있어 아주 탁월하다는 평가가 많은 만큼, 상당히 긴 공방이 이어질 확률이 높겠죠.”
다카포 드림 세계의 라면은 건더기가 많네.
좋은 세상이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지금까지 아이나 생도를 제외한 S클래스 이상의 생도는 모두 무기 없이 순수한 사상력만으로 싸워 왔거든요? 물론 박성진 생도는 차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걸 무기라고 부를 순 없으니 논외로 두고, 아이나 생도가 사용한 암기도 주 무장이라기보단 보조 무기에 가까우니, 사실 아직은 제대로 된 무기를 사용하는 생도가 한 명도 없었단 말이죠. 그런데 이번 경기는 두 생도 모두 주 무기를 준비해 왔습니다.”
오, 둘 다 검을 준비해왔다고?
의외네.
“그렇네요! 아이나 생도는 검을 준비해왔고, 올리비아 생도는 레이피어를준비해왔습니다. 그것도 둘 다 생도용 무기가 아닌, 개인 무기로 보이는데요.”
“자세히 보시면 아이나 생도의 검에는 미츠루 가문의 인장이 새겨져 있는데요. 미츠루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검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무슨 검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츠루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검은 꽤 많아서.
게다가 이 작품의 원작은 소설인 만큼, 외형만 보고 무슨 검인지 구분하는 건 어렵다.
다만 확실한 건, 미츠루 가문의 4대 명검들은 아닐 거다.
“재밌는 구도가 형성됐네요. 아이나 생도는 가문의 검을 가지고 온 반면, 올리비아 생도가 가져온 검은 명검은 맞으나, 공방에서 판매되는 일반적인 제품이란 말이죠. 비록 서로 다른 검이라곤 하나, 동양 검사와 서양 검사의 결투, ‘유명 공방의 명검과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명검 중 무엇이 더 우월한가’라는,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주제를 놓고 싸우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이나 생도가 월등한 검술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으니, 검의 대결에 한해선 올리비아 생도가 조금 밀리지 않을까 싶네요.”
그랬으면 애초에 레이피어를 들지도 않았겠지.
올리비아는 몸을 쓰는 일로 한정하면 못하는 게 없는 년이라고.
“두 생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빠르게 서로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갑니다. 이대로라면 3분 내로 마주칠 것 같은데요?”
양 쪽 모두 전면전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거네.
상당히 재밌는 승부가 되겠어.
“두 생도가 마주쳤습니다! 선공을 가하는 것은 역시나 아이나! 밤이라는 환경은 아이나 생도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죠!”
바닥의 그림자는 처음엔 잔잔한 물결처럼 흔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물결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잔잔했던 물결은 곧 세찬 물살이 되고, 세찬 물살은 곧 거대한 파랑(波浪)이 되었으며, 마침내 하나의 해일이 되어, 올리비아가 서 있는 도로를 모두 집어삼킬 기세로 전진했다.
“아이나 생도, 초반에 끝내겠다는 심산인가요? 위협적인 공격인 건 사실이지만, 이 공격으로 상당한양의 사상력을 소모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선 올리비아 생도의 대처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공격은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그림자 해일의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높이만 12미터 정도라는데, 과연 올리비아 생도는 이걸 피할 수 있을지!”
오, 세게 나오는데.
뭐, 올리비아가 고작 이 정도 상황도 예측하지 못했겠어?
어련히 잘하겠지.
“올리비아 생도가 뜁니다! 그림자 해일의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은 아니라곤 하지만, 사람의 뜀박질보다는 훨씬 빠른데요! 달려서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지 않나요!”
“올리비아 생도가 향한 곳은 도개교가 있는 강인데요! 다리 아래로 많은 그림자가 빠져나갈 것이라곤 하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해일의 높이가 너무 높습… 아니, 잠깐만요. 설마!”
저거 봐.
알아서 잘할 거라니까.
“올리비아 생도가 도개교를 작동시켰습니다! 들어 올려지는 도개교를 위로 뛰어오르는 올리비아 생도!”
“저렇게 하면 분명히 그림자 해일을 피할 수 있죠!”
올리비아는 완전히 올라간 도개교의 턱에 서 있었다.
얇은 도개교의 턱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그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간을 쪼그라들게 할 만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평소와 똑같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자, 이제 내려오는 게 관건입니다! 피하는 건 잘 해냈으나, 저기서 내려오지 못하고 고립되면 결국 패배하는 거나 다름없죠!”
올리비아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도개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가속도가 붙지 않도록 90도로 선 도개교의 면에 레이피어를 꽂아, 몇 번의 제동을 걸며, 안전하게 착지했다.
“레이피어를 이용해 내려오는 군요!”
“올리비아 생도, 대단합니다!”
대단하긴 해.
나는 저런 거 절대 못 하거든.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올리비아 생도가 놀라운 장면을 연출해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아이나 생도가 올리비아 생도를 시종일관 압박하고 있는 모습에 가깝죠. 올리비아 생도, 언제까지 피해 다니기만 할 순 없어요! 반격을 해야 합니다!”
올리비아는 아이나에게 질주한다.
아까의 잔잔한 물결은 온데간데없고, 간헐천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그림자의 바다에선 예리한 그림자의 창이 계속 솟아나고 있었다.
심지어 올리비아를 견제하는 것은 그림자 창만이 아니다.
아이나가 투척하는암기들도 부산스럽게 올리비아에게로 날아들고 있었으니, 올리비아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한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일격도 허용하지 않고, 암기들과 그림자의 창을 차근차근 베어나가며 전진했다.
1보.
2보.
3보.
올리비아와 아이나의 거리가 가까워 질수록 아이나의 공격은 거세진다.
그럼에도 올리비아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공격을 튕겨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둘의 거리가 완전히 좁혀진 순간, 검의 대화가 시작됐다.
선공을 취한 것은 올리비아.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가벼운 찌르기 견제.
아이나는 손쉽게 패링한다.
이번에는 아이나의 종베기.
올리비아는 레이피어를을 올려 크로스가드로 아이나의 검을 막아냈다.
둘 다 검술을 오래 연마해왔나 보네.
공방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둘이 서로 주고받은 합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올리비아 생도, 저 정도로 레이피어를 잘 다루는 생도였나요?”
“아이나 생도야 검을 잘 다루는 걸로 워낙 유명했다지만, 올리비아 생도는 애초에 무기를 쓴다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에 기대한 생도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부수듯, 엄청난 검술 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올리비아 생도!”
서로의 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게 눈에 보인다.
합이 오가는 게 현저히 느려졌으니 말이다.
아니, 단순히 각을 재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뿐이었나?
지금까지의 공격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정확하고 신속한 공격이 아이나의 눈으로 향했다.
나였다면 당연히 저 일격에 뇌를 꿰뚫리고 쓰러졌겠지만, 아이나는 나같은 범인이 아니다.
올리비아의 찌르기를, 순식간에 검으로 쳐냈다.
아이나가 보여준 저 패링은, 검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신기에 가까운 패링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의 공격이 막힐 것이란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 찌르기가 패링당했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올리비아가 당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은 단순히 표정이나 분위기에서 읽은 게 아니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찌르기가 막히자마자, 검을 거두고, 아이나의 목덜미를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쳐버린 게 그 증거였다.
당황했다면 저런 부드러운 연계를 보여주지 못했겠지.
이걸로, 올리비아의 사상력, 저주의 손길은 2스택이 쌓인 거나 다름없군.
아무리 아이나가 빠르게 대처한다 해도,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으니, 한 번의 공격은 더 맞아야겠지.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아이나가 카타리나처럼 대인 격투에 아주 능숙했다면 모를까, 아이나는 애초에 암살자 가문의 사람이다.
사람과 부대끼며 싸우는, 난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올리비아의 마운트 포지션을 벗어나는 것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엔 추가타를 허용했다.
“이걸로 승부는 순식간에 뒤집어집니다! 올리비아 생도의 진면목이 드러날 차례군요!”
“올리비아 생도의 사상력, 저주의 손길은 아주 까다로운 발동 조건을 요구하는 대신, 그 조건만 맞추면 필승에 가까운, 아주 강력한 사상력이죠! 지금부터 아이나는 올리비아만이 아닌, 그녀의 소환수까지 상대해야 합니다!”
올리비아, 진심인가 본데.
저번 훈련 때 아이나를 상대로 무승부를 띄운 게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자신이 본 실력을 어느 정도 행사하면, 아이나 정도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비록 그때도 100% 완벽하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건 아니었지만.
“균열에서 소환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징그러워요!”
“영웅도 벌레는 징그러워하는군요!”
“당연하죠!”
딱정벌레의 군세가 아이나를 덮친다.
오마쥬인가?
아까는 새까만 그림자의 파도가 올리비아를 덮치더니, 이젠 새까만 벌레의 파도가 아이나를 덮치고 있군.
그림자의 촉수들이 딱정벌레들을 모조리 짓이기고 있다곤 하나,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다.
올리비아의 소환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소환수들이라, 무작정 막아내기만 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아! 새로운 소환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치명적인 산성 폭발을 가하는 소환수들이죠. 여기까진 그래도 아이나 생도가 막아낼 만합니다만, 3단계부터는 현역 영웅들도 막아내기 힘들만큼 강력한 소환수가 나타나니, 아이나 생도는 여기서 승부를 띄워야 합니다!”
소환수들을 막아내느라 바쁘던 아이나의 그림자가 삽시간에 올리비아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여든 그림자는 하나의 검은 구체가 되어, 올리비아를 감쌌다.
“아이나 생도! 승부수를 띄웁니다!”
“1단계 소환수인 딱정벌레들은 움직임이 재빠르나, 2단계 소환수인 산성 도마뱀은 움직임이 무척 느립니다. 자신에게 오는 데는 시간이 조금 있으니, 여기서 방어를 멈추고 공격에 최대한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자 구체의 밀도가 점점 높아집니다! 올리비아 생도의 생명 반응은 분명히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도마뱀들은 어느새 아이나 생도의 코앞까지 도달한 상황!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그 순간, 검은 구체 속에서 무언가가 사출되었다.
그 길고 뾰족한 물체는, 아이나의 심장으로 향하고있었다.
“올리비아 생도의 레이피어입니다!”
“확실히 이제 검은 필요가 없죠! 올리비아 생도! 마지막까지포기하지 않습니다!”
…!
저걸 반응해?
아이나는 올리비아의 저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반응했다.
자신의 검으로, 날아드는 레이피어를 비껴낸 것이다.
하지만, 그 기습은 아이나에게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기습이었는지 완벽하게는 막아내지 못했다.
심장으로 향한 궤도를 가까스로 튼 것이 전부였다.
튕겨낸 방향은 오른쪽.
지금 아이나의 오른쪽 가슴에는, 기다란 레이피어가 꽂혀있다.
끝났다.
아무리 아이나라고 해도 저 상태로는 절대 오래 못 버텨.
저걸로 끝이면 또 몰라, 올리비아의 소환수들은 아직 멀쩡히 아이나에게로 다가가고 있으니.
그럼에도 아이나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힘겹게 일어섰다.
그리고, 앞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승자, 올리비아 테이셰이라. 세 번째 시험이 종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