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4)
“두 번째 경기, 알프레드와 박성진, 박성진과 알프레드의 경기로 여러분을 찾아뵙습니다. 첫 번째 경기에서 박성진 생도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알프레드 생도도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이목을 끄는 생도인 만큼 이 경기는 매우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대부분은 박성진 생도의 패배를 점치고 있긴 하나, 첫 경기였던 카타리나 생도와의 경기에서도 박성진 생도의 승리를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죠. 과연 이번에도 박성진 생도가 재치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승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죠. 기대는 해볼 수 있겠습니다.”
차가운 비가 내린다.
어둠이 내려앉아 적막하기만 한 도심.
드문드문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는 있으나, 빛이라곤 달빛 한 줌, 가로등의 빛 한 줌에 의지하고 있는 거리는 밤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홀로그램으로 구성된 가짜라니, 언제봐도 놀라울 따름이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저 멀리, 건물들 사이의 빈 하늘에 무언가가 나부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알프레드네.
알프레드로 보이는 그 물체는 같은 속력을 쭉 유지하며 유유히 활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으로 보아하건대,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나를 찾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느 면에서도 알프레드를 앞서는 점이 없다.
대부분이 승자를 알프레드로 예측하는 점도 그런 이유다.
딱히 그것에 섭섭함을 느끼지도 않을 만큼, 나와 알프레드의 격차는 현격했다.
공격력?
실뜨기나 하면 안성맞춤인 능력과, 작은 번개를 만들어서 날리는 능력의 공격력을 비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기동성?
실이라는 매개를 이용해야지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나와, 아무런 제약 없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알프레드 중 어느 쪽이 나은지는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전투 지속력?
알프레드의 서드 어빌리티, 불멸의 수은은 모든 해로운 효과를 제거함과 동시에 모든 체력을 회복한다.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마당에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한참을 고민 하던 와중, 시끄러운 소리가 시내에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움직여보니, 취객이 차를 잘못 건드려 자동차도난경보기가 울린 듯했다.
시끄러워 죽겠네.
아니, 잠깐.
자동차.
자동차라고?
그래,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낙뢰 사고에 대비하는 행동 강령 중엔 분명히 자동차 내부로 피신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말은, 알프레드의 전격에도 차 내부는 안전하다는 뜻.
물론 내가 살던 세계의 자동차야, 벼락을 맞게 되면 차에 손상이 가겠지만, 이 세계의 기술력은 내가 살던 세계보다 훨씬 기술력이 진보한 세계.
몇 발 정도의 벼락은 더 버틸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딱히 다른 녀석들이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럼에도 알프레드를 상대하던 이들 중, 차량 내부로 피신한다는 선택지를 고르는 녀석이 없었던 건, 운전하는 법을 아는 놈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분명 나는 이전의 세계에서 운전면허를 딴 적이 있다.
뭐, 이전의 세계에서도 거지새끼였던 내가 차를 가지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니, 면허는 장롱면허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운전 방법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세계라고 자동차 운전이 다르겠어?
좋았어.
이 방법이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미안하다. 아이나.
이번 경기, 네 도움 없이도 이길 수 있을 거 같다.
* * *
갓길에는 꽤 많은 숫자의 차량이 정차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 차량이나 하나 선택하여, 그 차의 창문에 실 탄환을 발사했다.
역시, 쉽게는 부서지지 않는군.
대략 열일곱 발쯤의 실 탄환이 창문에 박혔을 때쯤, 내가 팔을 집어넣을 만한 구멍이 창문에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도난경보기가 시끄럽게 울려댔으나, 가볍게 무시하고 차에 탔다.
“저게… 무슨 판단이죠?”
“차량에 탑승하면 알프레드 생도의 전격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차량 내부에서 가만히 있어봤자 전투 회피 경고가 발생하여 결국 실격패 당할 텐데요. 어떤 의도인지 알기 어렵네요.”
뭐야, 차 키를 꽂는 구멍이 없네?
…좆됐다.
내가 살던 세계의 감성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려 들면 안 됐어.
설마, 자동차 시동을 걸려면 차량 소유주의 지문이 필요할 줄이야.
씨발.
좋다.
이번 경기의 컨셉은 아예 빌런으로 밀고 가자.
나는 우두커니 서서 도로에 차량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늘을 보니, 알프레드는 어느새 나와 꽤 가까운 거리가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제발, 아무 차나 좋으니 빨리 와라.
대략 3분 정도를 우두커니 서서 기다린 끝에, 한 대의 차량이 도로를 지나가는 게 보였다.
저거다.
나는 황급히 여러발의 실을 차체에 걸어 차량을 정지시켰다.
“잠시만요!”
“저기요. 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이렇게 남의 차를 마음대로 멈춰 세우시면…”
“잘 모르겠고요. 차는 잘 쓰고 돌려드릴게.”
나는 홀로그램 시민을 차에서 밀쳐내고, 차에 탑승했다.
하이재킹, 성공적.
오, 승차감 좋은데.
[경고. 시민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전투 평가의 점수가 감점됩니다.]
좆까시고.
“…저, 지금까지 트리니티 아카데미를 꽤 많이 방문했지만, 이런 장면은 처음 보네요.”
“저런 생도가 두명 나온다면 그것대로 문제가 클 거 같습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운전은 어떻게 하는 거죠? 박성진 생도의 나이는 아직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지 않던가요?”
속도도 충분히 붙었고, 이제 악셀을 밟아볼까.
나는 곧바로 알프레드가 보이는 상공을 향해, 출발.
* * *
“저거 보라고, 오스카.”
“…그냥 미친놈이잖아.”
“우리같이 얌전한 영웅을 필요로 하던 시대는 이미 떠났어. 네가 초빙한 제이콥을 봐. 그 사람도 더 이상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영웅도 이젠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라고. 시대는 이제 저런 미친놈을 필요로 하고 있어.”
“그래도 저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재밌는데?”
오스카는 말을 멈추고 클로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진심이냐는 눈으로.
“뭐, 왜. 너도 재밌다고 생각하잖아?
“하… 학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니, 징계를 줄 수도 없고, 미쳐버리겠군. 살다살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저런 놈이 입학할 줄은.오래 살고 볼일이야. 아무래도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면 학칙을 추가하든가 해야겠어.”
“그래, 그건 네 마음대로 해.”
* * *
머리 바로 위로 알프레드가 보인다.
나는 차를 멈춰 세운 뒤, 창문을 내리고 알프레드를 불렀다.
“알프레드!”
“…박성진?”
“나 차 뽑았다!”
알프레드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이다.
하긴, 이런 상황은 누구나 당황스럽겠지.
나는 그 얼빠진 얼굴을 향해 실 탄환을 발사했다.
당연히 모두 빗나갔지만.
“뭐 하자는 거냐!”
알프레드가 내게 전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안 통한다고.
대략 두 발 정도의 전격을 맞았지만, 차는 멀쩡했다.
그래도, 지나치게 많은 전격을 받아내다 보면, 차량이 고장날 수도 있으니, 마냥 맞아주기만 해선 안 되겠지.
“이걸 노렸나요? 박성진? 차로 전격을 방어한다니! 간단하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인데요? 이런 게 발상의 전환인가요?”
“자동차의 내부는 분명히 전격으로부터 안전합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할 줄 모른다면, 전격으로부터 보호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기동성은 완전히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운전을 할 줄 아는 박성진 생도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겠군요.”
“박성진 생도는 환경적 이점을 이용하는데 도가 튼 것 같네요. 임기응변이 탁월합니다. 실제 현장에 투입돼도 될 정도인데요?”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살짝 따끔하고 저릿한 기운이 내 몸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음, 외부의 전류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하는 건가?
그래봤자 정전기 수준의 따끔함이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
주행을 시작해볼까.
전격과 실 탄환이 오가는 공방이 계속됐다.
처음에는 곧잘 피하던 알프레드였으나, 장기전으로 인해 집중력을 잃었는지, 다섯 번의 기회를 내게 내주고 말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크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탄 차도 슬슬 일곱 발 정도의 전격을 맞은 상황이라, 이 이상 전격을 맞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박성진 생도가 유리해 보입니다. 알프레드 생도는 따지고 보면 두 가지 사상력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데요. 알프레드 생도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서드 어빌리티, 불멸의 수은 사상력 소모 값도 남겨둬야 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두 사상력의 소모 값이크게 낮은 능력도 아닌 터라, 사실상 알프레드 생도는 사상력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일 겁니다.”
“동의합니다. 박성진 생도의 퍼스트 어빌리티, 미명의 거미는 딱히 사상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는 능력이기도 하고요.”
분명 알프레드는 불멸의 수은을 쓸 정도는 분명히 남겨뒀을 거란 말이지.
자, 알프레드, 사상력은 얼마나 남았나?
나는 아직 사상력이 차고 넘친다.
차만 잘 버텨준다면, 이 대치 구도를 1시간 이상 유지해도 내 사상력은 남아돌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프레드는 그렇지 않을 거란 말이지.
슬슬 사상력이 떨어질 때가 안됐나?
문제는, 알프레드의 불멸의 수은이 있는 이상, 벌써 승부수를 띄우긴 리스크가 너무 큰데….
결국에는, 알프레드가 불멸의 수은을 사용하지 못하게 사상력을 바닥내 버리던가, 혹은, 아예 불멸의 수은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가 되겠군.
그러기 위해선, 알프레드가 계속 사상력을 소모하게끔, 비행 상태를 유지하게 해줘야 하는데…
내 추측은 정확했다.
알프레드는 슬슬사상력의 소모가 부담됐는지, 한 건물의 옥상에 내려앉았다.
이 이상 비행을 쓰면 불멸의 수은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뜻이군.
이 승부, 반드시 내가 잡는다.
나는 알프레드가 내려앉은 건물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실 탄환을 발사했고, 알프레드는 내가 탄 차량을 맞추고야 말겠다는 듯, 쉴새없이 전격을 쏘아댔다.
그 결과, 도로에는 알프레드의 전격에 의한 그을음이 잔뜩 생겨났고, 내 실 탄환을 맞은 건물의 벽면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곳곳이 생겨있었다.
후, 이걸로 전격을 맞은 게 열 번째던가?
슬슬 차량도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고장날 때가 된 거겠지.
상관없다.
차량이 급정거하는 상황만 안 생기면 내 계획은 성공한다.
알프레드의 전격이 잦아든 것을 보아하니, 잔존 사상력도 불멸의 수은을 사용할 양 정도뿐일 거고.
여기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관객들도 환호하겠지.
나는 알프레드가 있는 건물을 향해 직진하기 시작했다.
“박성진 생도! 갑자기 알프레드 생도가 있는 건물로 직진하는데요? 무슨 의도일까요?”
“부딪힌다 해도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을텐데, 건물에 가해지는 충격으로 알프레드 생도를 떨어트리려는 걸까요?”
나는 직진하는 길 앞에, 가파른 오르막 발판을 생성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강도를 지닌 실로 엮었으니, 차체의 무게를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남은 건, 악셀을 밟는 것뿐.
차량은 발판을 딛고, 알프레드가 있는 건물의 옥상을 향해 날아간다.
나는 차량이 부딪히기 직전, 얼른 차량의 창문을 열고 점프한 뒤, 그래플링으로 안전하게 착지한다.
폭발하는 차량과 함께, 건물 옥상의 1/3이 날아갔다.
건물의 옥상에 처박힌 채 불타는 차량 뒤에서, 알프레드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불멸의 수은을 쓴 게 확실했다.
“기권하겠습니다.”
[알프레드 생도가 기권하였습니다. 승자, 박성진. 두 번째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이런 경기는 처음 보네요!”
“좋은 방법이라고 칭찬은 못 하겠습니다만… 정말 발상 하나는 비범합니다! 박성진 생도!”
“저희 팀에서 영입하고 싶어질 정도인데요?”
박성진이라는 언더독의 반란은, 트리니티 스타디움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리기엔 충분했다.
“야, 제이드.”
“너도 같은 생각 했냐?”
“이번 방학에 면허 따러 가자.”
“무조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