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1)
4월 30일.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가 있는 날이다.
다르게 말하면 오늘이다.
원래 4월 23일에 치러졌어야 할 시험이지만, 빌런 습격 사건으로 인한 1주일 휴강이 시험 기간을 뒤로 늦췄던 탓에.
아무튼, 현재 내가 있는 대강당에는 족히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작복작하게 모여있다.
그럼에도 강당은 꽤 널널하게 비어있었다.
분명 입학식 때 사람이 가득 들어찼던 강당에 모여있던 사람은 기껏해야 수천 명 정도가 아니었냐고?
그건 생도용 일반 강당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단순한 대강당이라는 이름보단, 트리니티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으로, 거의 어지간한 대형 축구 경기장급 크기다.
사실 이 정도 규모면 강당이라는 이름이 더 어색하긴 하다.
이곳에 모인 수만 명의 인원은 대부분이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생도와 교수진들로 구성되어 있다지만, 꼭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영웅연맹 소속의 유명 영웅들도 잔뜩 모여있고, 방송을 진행하기 위한 여럿의 스태프들, 기자들도있으니 말이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현재 이곳은 트리니티 아카데미로,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현장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트리니티 아카데미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사회를 맡은 제이콥 맥도웰입니다.”
강당 천장에 위치한, 초대형 스크린에는, 이번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사회를 맡은 제이콥 맥도웰이라는 사람의 얼굴이 등장했다.
음, 제이콥 맥도웰이 누구였더라.
작중에선 짤막하게 언급되고 지나갔던 터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
트리니티 아카데미를 졸업 후, 히어로 팀 비비드 게일에서활동했다가, 현재 시점에선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영웅이었었나?
가물가물하다.
“와, 제이콥을 불렀네. 돈도 많네.”
“애초에 버는 걸 거의 기부로 돌리는데도 개인 자산을 10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게 클로에 이사장님이잖아. 제이콥 부르는 건 아무것도 아닐걸.”
“제이콥도 대단하지 않아? A레벨 영웅으로 활동했으면 대충 알박고 영웅 연금만 타먹어도 평생 살 텐데, 그걸 포기하고 프리랜서로 성공했잖아.”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할 거 같다.”
“나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작중에서 언급된 제이콥의 짤막한 과거뿐, 그가 현재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선 잘 몰랐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을 보아하니 생각보다 엄청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다카포 드림의 핵심 사건을 관통하는 인물이 아니라면 완전히 무지한지라,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소개한 저 제이콥 맥도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알 리가 없었다.
방송인에 대해 조금 관심이 있었더라면 또 모를까, 나는 아쉽게도 인터넷 방송이던, 지상파 방송이던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이 세계의 방송인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트리니티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A레벨 영웅으로 활동했다는 행적으로 유추해보면, 대충 아무나 사회 잘 보는 사람을 불러 쓴 것은 아닌 걸로 보였다.
“잠시 뒤면 중간고사공개 토너먼트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도 여러분은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아뇨!””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그래도 중간고사 공개토너먼트는 똑같이 진행됩니다!”
““우우~””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중간고사는 중간고사라는 이름을 하고 있지만, 외부인들에겐 이것은 하나의 유흥거리이자 행사와 다름없었기에, 그저 각성자들의 생생한 전투가 보고 싶은 일반인들도 잔뜩 몰려와 있었다.
그래서, 사회자가 진행까지 보는, 일종의 대형 이벤트로까지 변한 것이다.
“그럼 생도들의 경기에 앞서, 이번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중계를 담당하실 중계진을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냥 공개하면역시 재미가 없겠죠? 이번 중간고사의 중계진이 누군지 알아맞혀 보는 시간을 먼저 가져보겠습니다! 맞춘 사람에겐 소정의 경품을 드리도록 하죠!”
원래 나는 누가 중계를 맡을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경품이 걸려있는 이상, 내 미래 지식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잖아?
“누군지 알 거 같다 싶으신 분은 트리니티 아카데미 앱을 실행하시고, 이벤트 탭의 최상단에 있는… 오! 벌써 누군지 알겠다는 생도가 있군요! 미디어석 위로 올라와 주세요!”
굳이 직접 가서 말해야 하는 건가.
번거롭네.
나는 단정한 걸음걸이로 미디어석으로 향했다.
쓸데없이 폼잡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전 세계에 내 모습이 송출되는 마당에 건들거리는 모습이 나가긴 더욱 싫었기 때문이다.
“생도분께서는 누가 중계진일 것이라 예상합니까?”
제이콥이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목소리를 약간 가다듬고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캐스터는 강유성, 해설은 에르제베트 디아나와 한백이 나올 것이라 예상합니다.”
아연실색한 사회자의 얼굴이 가관이다.
하긴,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도 당황스럽긴 하겠지.
한 명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맞췄으니까.
하지만, 그는 프로답게 금새 굳은 표정을 풀고 다시 사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야, 내부에서 인물 명단이 유출이라도 된 걸까요? 한 명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경품은 이곳에 초빙된 영웅 중 한 명을 지목하여 연락처를 교환할 기회입니다!”
나는 상석에 앉아있는 인물들을 한 번 쭉 훑어보았다.
애초에 이 세계는 만화가 아닌 소설을 기반으로 한 세계였기에, 외모만으로 정확히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의 외모 묘사는 있었기에, 그 내용을 기반으로 간신히 누가 누군지는 분간할 수 있었다.
물론 누군지전혀 감이 안 잡히는 인물들도 상당수 있었다만.
“필요 없습니다.”
뭐, 이름난 영웅의 연락처를 구할 기회라는 건 흔치 않은 기회는 맞다.
하지만내가 그 기회를 차버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유명 영웅의 연락처가 왜 필요한가.
당연히 그 영웅이소속된 팀에 소속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나는 딱히 어느 팀에 소속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애초에 함께 하고 싶은 멤버는 대부분이 S클래스에 있고.
정 이 세계에 있는 영웅 중 한 명의 연락처를 얻을 수 있다면, 대충 서너 명 정도의 명단은 추릴 수는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에 그 명단에 속해있는 인물은 오지 않은 듯했다.
“아니, 정말인가요? 라이나 릴케나, 미츠루 키사라기, 아니, 해설진인 한백조차 지명이 가능한데요?”
“괜찮습니다.”
“허어… 알겠습니다. 특이하시군요. 생도분의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박성진입니다.”
“아! 최근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빌런 습격 사건을 미래시로 읽어냈다고 소문이 자자한 그 생도였군요! 저희 중계진 명단도 미래시로 알아낸 걸까요?”
미래시라는 말에, 나를 고까운 눈으로 쳐다보던 영웅들의 눈빛이 변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긴 아이들의 눈 같았다.
하긴, 미래시라는 능력은 엄청 희귀한 능력이니까, 가지고 싶을 만도 하다.
물론 나는 이 세계에 일어날 큼지막한 사건들과,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만 주로 알고 있을 뿐, 다른 영웅들 개개인에게 일어날 사소한 일까지 알지는 못하니, 설령 나를 영입한다고 해봤자 의미는 없겠지만.
나는 그저 카메라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짓기만 할 뿐이었다.
“역시 사상력은 쉽게 남에게 공개해선 안 되는 걸까요?”
“당연하죠.”
“하하, 단호한 생도네요. 혹시라도 경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시면 다시 올라오시면 됩니다. 이제 내려가셔도 좋습니다.”
내려오며 느껴지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갑다.
아니, 따갑다 못해 살갗이 벗겨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평생 말도 한 번 못 걸어볼 유명 영웅과 핫라인으로 연락할 기회를 나는 아무렇지 않게 걷어찬 셈이니, 아니꼽게 느껴지는 마음은 이해가 갔다.
그래도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진 말아 줬으면 해….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생도 여러분은 모두 각자 배정된 훈련실로 입장해주세요.”
어디 보자, 내 첫 상대는 누구려나.
나는 긴장된 걸음걸이로 일련번호가 138이라고 적힌 훈련실 내부로 들어갔다.
…좆같네.
하필이면 카타리나냐.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카타리나 벨라예바, 박성진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시험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생도 대부분이 자신의 훈련실로 들어간 것이 확인되자, 사회자인 제이콥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해설 데스크의 모습이 잡히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트리니티 아카데미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캐스터를 맡게 된 강유성입니다.”
“반갑습니다. 해설을 맡은 에르제베트라고 합니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백입니다.”
음, 다들 예쁘고 잘생긴 놈들로만 꾸렸네.
물론 방송의 시청률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반갑습니다. 한백 해설.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맞나요?”
“그러게요. 저도 에르제베트해설을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런 자리를 준비해준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감사라도 해야겠네요.”
“초면이라면서 두 분 모두 친해 보이시는데요?”
“아휴, 이런 기회가 오면 친해져야죠.”
“하하, 그렇네요. 아! 이제 다들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겠군.
그럼, 방송 경기를 추첨하겠지?
“자! 그럼 방송 경기를 추첨해보도록 할까요? 물론 저희도 최대한 많은 경기를 중계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시험을 진행하는 생도의 수만 수천 명인 이 큰 행사에서, 방송에 내보낼 수있는 경기는 한정적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쉽군요! 게다가 최소 S클래스 이상 생도들의 경기만 방송된다는 점도 아쉽네요. 분명 낮은클래스의 생도 중에서도 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생도도 있을 텐데 말이죠. 양해의 말씀 구합니다.”
부디 내 경기가 방송 경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내가 떡실신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고 싶진 않으니까.
“첫 방송 경기를 추첨하는 것은 클로에 이사장님이 되겠습니다! 클로에 이사장님! 버튼을 눌러주세요!”
클로에는 미소를 지으며 버튼을 눌렀다.
영업용 미소인지, 정말 순수하게 즐거워서 웃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걸 보면, 이런 일에 제법 익숙한 듯 보였다.
그래도 클로에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정말 즐거워서 웃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쾌락주의자니까.
“그럼 누가 영광스러운 첫 경기의 주인공이 될지!”
기기 내부의 수십 개의 공이 이리저리 튕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서서히 멎어 들기 시작했다.
“138번 훈련실입니다! 누가 있는지 확인해 보죠!”
“기대되네요. 개인적으로는 천현우 생도와 알프레드 생도가 있는 훈련실이면 좋겠는데.”
“아! 박성진 생도와 카타리나 생도가 있는 훈련실이라고 합니다!”
“미래시라는 능력이 전투에서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좋은 예시가 되겠네요.”
“하지만, 미래를 본다는 건 그만큼 인과에 크게 작용하는 사상력이라, 사상력의 소모도 심하죠. 카타리나 생도는 체력이 아주 뛰어난 생도라고 들었고, 박성진 생도는 신체적인 면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는 생도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카타리나 생도가 사상력의 소모를 유도하면서 천천히 압박을 가한다면, 카타리나 생도에게도 승산은 분명히 있죠.”
머피의 법칙.
‘잘못될 일은 반드시 잘못되기 마련이다’라는 법칙이다.
그리고, 그 법칙은 여전히 옳았음을 증명했다.
후, 아까 다른 영웅의연락처 따위 필요 없다고 깝죽거린 나 자신을 한 대 세게 후려치고 싶네.
그런 소릴 해놓고 한심하게 지는 내 모습이 전 세계로 송출된다니.
아카데미물의 국룰인 2학년 1학기 시작 후 자퇴는 아직 멀었는데 말이지.
“나는 언제나 그랬듯 최선을 다할 거다. 박성진.”
“말 안 해도 알아.”
카타리나는 언제나 그랬듯, 올곧음이 깃든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신이 승리하든, 패배하든, 관계없이 언제나 자신이 생각하는 길 만을 걷겠다는 저 눈.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저렇게나 강할 수 있다니, 부럽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경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