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중간고사 대비 기간.(3) (30/173)



〈 30화 〉중간고사 대비 기간.(3)

‘점심시간에 제 교수실로 와요.’

앨리스는 그 말만 남기고 자신의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의 빌런 습격 사건으로 내 이름이 제법 유명해졌다는 건 알지만, 굳이 U클래스의 교수나 되는 사람이 따로 나를 찾을 만큼 내게 뭔가 대단한 실적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내가 궁금증에 잠겨 그것에 대한 생각만 하던 사이, 그새 다른 녀석들의 대련이 몇 번 오간 듯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 녀석들의 대련을 꽤 유심히 지켜봤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앨리스와의 면담 생각에 다른 녀석들의 대전에는 전혀 집중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 상태는, 대련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점심도 내가 뭘 먹는지도 모를 만큼 대충 아무렇게나 입에 쑤셔 넣었으니.

내가 식사하는 것을 백안시해서 그런  아니다.

오히려 중요시하는 편에 가깝지.

그럼에도 내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나와버린 것은, 앨리스와의 면담에 대한 호기심이 식욕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럼 얼른 그 호기심을 해결하러 가볼까.

* * *

똑똑.

가볍게 앨리스의 교수실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세요.”

앨리스의 교수실은 정갈했다.

어질러져 있지도 않고, 모든 물건들이 마치 ‘있어야  곳’에만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이유로 불렀을  같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진심으로 궁금하다.

무슨 일로 불렀을까.

“뭐,  이유는 아니에요. 생도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랬어요.”
“저한테요?”
“네, 듣자 하니 이번 빌런 습격을 막아낸 계획을 세운  박성진 생도라고 들었거든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뭐하지만,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되게 부끄럽네.

차라리 그 야수화 쓰던 놈을 쓰러트렸으면 좀 떳떳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못 하고 개발리기나 했으니 부끄러운 게 당연한 거 같기도 하다.

“너무 그렇게 쑥쓰러워 하지 마세요. 생도 수준에서 그 정도 일을 하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부른 이유는 사실 따로 있으니, 안심하셔도 된답니다? 빌런 습격 사건에 대해선 별로 이야기할 생각이 없어요. 아, 물론 그렇다고 그 업적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에요. 분명히 대단한 일은 맞으니까요.”
“아닙니다. 편하게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음, 앨리스는 생각보다 친절하구나.

빈센트랑 비교하는  실례일 정도네.

아니, 빈센트랑 비교하는  이상한 건가?

“생각보단 평범한 성격이시네요.”
“그야, 얼마 전까진 평범한 사람이 맞았으니까요.”

어느날 갑자기 믿지 못할 초능력이 생겼다 한들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 고등부 입학이셨군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특이한  맞아요. 보통 사람들은 사상력을 각성하고 난  자기 힘에 취해서오만해지기 마련인데, 박성진생도는 딱히 그래 보이지도 않는걸요. 성실해 보이기도 하고.”

그건 좀 다른 문제같다.

내가 이 몸에 빙의하기 전까지는 이 몸의 주인도 상당히 강력한 사상력을 모두 갖추고 있었겠지만, 현재 내 사상력은 비루하기 그지없다.

그다지 오만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 세계에 드리운 멸망의 그림자를 걷어내기에도 급급하니, 설령 모든 사상력을 각성했다 한들 그 사상력을 믿고 허세나 부리며 뻗대고 있을 시간도 없다.

“뭐, 아무튼 제가 박성진 생도를 찾은 이유는 하나에요.”
“그게 뭡니까.”
“내 공방을 무료로 이용할 권리를 드리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확실히, 트리니티 아카데미엔 개인 공방을 열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당연히 각성자들에게 알맞은 무기를 제공하기 위함도 있고, 단순히 돈이 되니까 그런 것도 있다.

그런데 앨리스가 개인 공방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제 공방에 대해서 모르시는가 보군요. 제 사상력은 싱글 어빌리티, 아티팩트 제작이에요. 그걸로 제작한 아티팩트를 다른 각성자들에게 공급하고 있죠.”

그렇다면,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도 이 사람의 것이라는 내 추측이 맞았군.

하지만 그런 물품을 아무렇게나 제작할 수 있진 않을 텐데.

그런 역작을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주었을 리도 없고.

역시 앨리스 교수는 솜니엄리버레이터의 단원인가?

“아티팩트는 등급이 없는 매우 낮은 수준의 물건이라도 상당히 귀중한 것인데, 그걸 저한테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의 속박에서 그대를 일깨울 선각자이니라.”

…솜니엄리버레이터 단원들의 인사다.

트리니티 아카데미 내부의 내통자는, 오스카가 아닌, 앨리스였단 말인가?

아니지, 이것만 가지고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둘  내통자일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뭐가 됐던, 상황은 영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 반응, 보아하니 이게 뭔지 안다는 분위기네요.”

잘 알다마다.

모를 수가 없지.

“교수님은…”
“아뇨, 저는 이제 솜니엄리버레이터가 아니에요.”
“이제라 함은?”
“얼마 전까진 그랬었죠.”

‘얼마 전까지’라는 건, 그녀도 솜니엄리버레이터였다는것이다.

 솜니엄리버레이터를 그만  것일까?

“보아하니 내가 왜 그만둔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군요. 사실 저는 솜니엄리버레이터의 굉장히 오래된 원로 단원이었어요.”
“그런데 왜 그만둔 겁니까?”
“그들이 변했거든요. 솜니엄리버레이터는 원래 평범한 오컬트 연구 단체였어요. 사실 단체라 하기도 뭣하네요. 흥미 위주의 연구자들이 모인 동아리 정도라고 생각해도 편해요.”

솜니엄리버레이터는 원래 평범한 오컬트 연구 단체였다?

이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쩌다 가입하게 된 겁니까?”
“사실 가입하게  건 우연에 가까워요. 내 쌍둥이 언니, 마리안느가 오컬트에 심취해있었거든요. 그래서, 마리안느는 지금의 이름이 아닌, 세계신비학연구회라는 이름을 사용할 시절의 솜니엄리버레이터에 가입하게 되었죠.”
“쌍둥이 언니 때문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수 있겠네요. 그 단체가 마리안느와 저를 착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자연스레 저에게도 흥미가 있으면 가입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저도 마리안느가 평소에 뭘 하는지 궁금했기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고작 오컬트 연구 단체에 불과했던 작은 동아리가, 세계의 존망을 위협하게 되는 위험한 단체가 되다니.

참, 세상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의 연속이다.

“그렇게, 저희는 단순히 도시 전설이나 고문서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것들에 대해서나 알아보던 와중, 저희는 어떤 고문서에서 특이하게 생긴 문양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감은 눈을 주위로, 여덟 개의 촉수 가닥이 빠져나와 있는 모양의 문양이었죠.”

아, 솜니엄리버레이터가 사용하는 문장과 유사한 것 같군.

그것에 원형도 존재했구나.

“세계신비학연구회의 회장이었던, 헬게 헤이에르달은 미국의 코네티컷 주에서 발견한 그 문양에 심취했고,  문양을 깊게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헬게가 잘못되기 시작한 것도 그날부터였죠. 그가 문양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이상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유순하던 성격도 괴팍해졌고, 이 세상은 전부 가짜에 불과하다는 둥,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고요.”
“그 뒤로 솜니엄리버레이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는 말인가요?”
“네, 맞아요. 하지만 저는 그 당시에는 여전히 그 단체에 몸담고 있었어요. 헬게가 이상해졌던 건 맞지만, 외적으로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진 않았거든요.”

이상한 고대 유적에 접촉한 뒤 미치광이가 돼버린 학자라.

인디아나 존스가 실존했다면 매우 흥미 있어  주제다.

사실 나도 흥미는 있다.

그 문양의 정체가 뭐길래 사람이 그렇게 변했을까?

“문제가 일어난 건 헬게가 자신이 세계의 주인과 접촉했다는 말을 한 날부터였죠. 그 뒤로 헬게는 지금까지 했던 이상 행동과는 궤를 달리하는 진짜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갑작스럽게 발작 증세를 일으킨다던가, 손대지 않던 마약성 약물에 손을 댄다던가 등등,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할  있나 싶을 정도였어요.”

후, 방금까지 하던 이야기들이 전부 인트로에 불과했다고?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 들어봐야겠군.

흥미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가너무 길어질 거 같으니, 대충 여기서  번 끊어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솜니엄리버레이터의 이야기도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중간고사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내겐 더 중요했다.

“음, 교수님, 죄송합니다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그것이 제가 공방을 이용할  있는 이유와 상관이 있는 이야기인가요?”
“아, 죄송해요. 누군가에게 함부로 털어놓기 조금 어려운 이야기다 보니, 마음 놓고 떠들어 버리고 말았네요. 제 공방을 이용하게 해주는 이유는 별거 없어요. 박성진 생도가 미래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뭐, 이젠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가 됐겠지.

외부에도 각성자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겐 이미  알려졌을 테고.

“아직 유명한 집단도 아닌, 솜니엄리버레이터의  선서를 알고 있다는 건, 먼 미래에 솜니엄리버레이터가 인류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유명한 집단이 된다는 소리가 되겠죠. 제 능력이 아티팩트 제작인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 학장실에 놓여 있던 제 아티팩트를 노린 것도 당연히 솜니엄리버레이터였을 거고요. 그걸 막기 위해 먼저 나선 것도 박성진 생도가 솜니엄리버레이터를 경계한다는 근거가 되겠네요.”
“…그래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저는 솜니엄리버레이터가 매우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고, 먼 미래에 인류에 큰 위협이 되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솜니엄리버레이터는 외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조직의 실체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아서, 아무리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교수직이라는 이름을 달고 건의한다 한들 세계영웅연맹에선 미친놈 취급이나   뻔해요.”

모든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솜니엄리버레이터가 위험한 조직이라는 점.

세계영웅연맹에 연락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점.

“그러니까, 지금 시점에서 유일하게 솜니엄리버레이터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박성진 생도에게 저는 후원을 해주고 싶어요. 생도는 솜니엄리버레이터라는 위험한 집단에 대적할 생각을 하는 만큼, 강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장비도 훌륭해야겠죠? 그러니, 제가 후원자로써 아티팩트를 제공해주겠다는 이야기에요. 간단하죠?”
“…뭘 믿고 저한테 그런 과투자를 하는 겁니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추리는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도와줄 이유는 없다.

솔직히 아티팩트처럼 엄청난 물건을 나한테 아무 조건 없이제공한다는 것도 그 진위가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이사장님이 말했거든요.”

클로에 뤼미엘이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이번 기수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이 될 사람은,제롬도, 알프레드도, 아이나도 아닌, 박성진 생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요.”

작중에서도 그랬지만,  종잡기 어려운 인물이다.

물론, 완전히 성장한 내 모습을 알고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내가 최강이 될 거라니?

너무 과한 기대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장차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수석이 될 인물에게, 이 정도 투자는 아무것도 아니죠. 박성진 생도의 의견은 어때요?”
“…생각해보겠습니다.”
“좋아요. 나중에 결정하게 되면, 그때 제 교수실에서 다시 뵙는 걸로 하죠.”
“네.”

아무래도,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싶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교수직에 앉아있는 사람의 후원을 받는다니, 기분이 좋아야 했음이 마땅한데, 교수실 밖으로 나서는 내 마음은 싱숭생숭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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