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중간고사 대비 기간.(2)
쏘아진 빛줄기는 서찬욱의 귀를 뚫고 지나갔다.
“쳇, 아쉽군. 머리를 뚫어버렸어야 했는데.”
카타리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방금의 격발로 서찬욱이 옥상의 카타리나를 찾는 것에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테마가 시가지라고 해서 훈련실 내부의 면적이 넓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헬리오스 건의 강렬한 빛줄기는 낮에도 알아보기 쉬울 정도로 밝은데, 환경 설정을 밤으로 한 이상 그 빛줄기의 근원을 찾는 건 무척이나 쉬웠으리라.
서찬욱은 빛줄기가 시작된 건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찰박찰박,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카타리나는 쉽사리 붙게 두진 않겠다는 듯, 헬리오스 건을 몇 발 더 발사했으나, 서찬욱은 능숙하게 피해 흡수가 걸린 방패로 레이저를 전부 막아냈다.
홀로그램으로 구성된 가짜 시민들은 갑자기 벌어지는 전투에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음은 덤이고.
차라리 시민들이 도망가는 것이 낫다.
오히려 각성자들의 전투를 구경하겠답시고 전투에도 도망가지 않는 시민들이라도 있는 순간, 그 전투는 정말 귀찮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투는 제법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보곤, 카타리나는 총을 다시 집어넣고,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서찬욱, 그리고 카타리나.
둘은 건물 앞의 대로에서 대치한다.
“너는 항상 창과 방패를 선택하는군.”
“나한텐 이게 제일 잘 맞아. 물론 씹게이 조합이라고 욕먹긴 하지만.”
서찬욱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서드 어빌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창과 방패라는, 매우 클래식한 무장을 선택했다.
서찬욱이 말했던 대로 대부분은 씹게이라고 욕할 무장이지만, 원래 적에게 하는 욕은 최고의 칭찬이라고 하지 않던가.
창과 방패 조합은 분명히 보병에게 있어서는 거의 최강의조합이 맞으니까.
단지 상대하는 양상이 매우 재미없고, 반대로 내가 공격자여도 지나치게 패턴이 루즈해져서 재미가 없으니 씹게이 소리를 들을 뿐.
“내가 먼저 공격할게.”
근접전이 된 이상, 선공권은 당연하게도 서찬욱에게 있었다.
카타리나가 가진 막대한 공격력은 전부퍼스트 어빌리티, 초살에서 비롯하는 것이기에, 초살이 방패에 막히기라도 한다면 매우 난처해진다.
물론 흡수할 수 있는 피해량에 한계가 있기에, 카타리나의 초살 정도 되는 피해를 받으면 그 한계를 넘어 방패가 파괴되긴 하겠지만, 초살은 전투 당 한번 밖에 발동하지않는 공격이라, 카타리나가 불리해질 게 뻔했다.
서찬욱은 퍼스트 어빌리티, 인력의 사거리가 되는 즉시 인력을 발동해 카타리나를 자신의 창이 닿는 사정거리 내로 끌고 왔다.
그리고, 카타리나가 끌려가며 취한 행동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날이 선 창끝으로 끌려가고 있음에도, 침착함을 유지하여, 서찬욱의 서드 어빌리티, 피해 흡수가 걸린 창을 박살 내버린 것이다.
방패도 공격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창만큼 위협적이진 않으니, 상대방의 공격 수단을 제거하겠다는 판단인가.
나쁘지 않군.
서찬욱도 처음엔 당황했으나, 그 역시 U클래스의 일원이었던 만큼, 얼른 당황을 떨쳐내고 방패로 카타리나를 밀어냈다.
“역시 카타리나야. 어지간해선 피해 흡수의 한계에 도달하는 놈은 없는데.”
“한 번의 공격으로 나보다 높은 피해를 줄 수 있는 놈은 S클래스에 없다.”
그리고, 카타리나는 다시 헬리오스 건을 꺼냈다.
“네가 무기를 쓰는 건 엄청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나도 깨달음을 얻었다.박성진 덕분에 말이지.”
“어? 우리 동아리에 가입한 신입 말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카타리나는 대답과 동시에 총을 발사했다.
이미 무기를 잃어버린 서찬욱이 헬리오스 건에 저항할 수단은 별로 남지 않았다.
거대한 타워 실드로 빔을 막아내는 게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서찬욱이 어떻게든 저항해 보기 위해 인력을 다시금 발동했으나, 격투기 실력이라면 진심을 발휘하는 올리비아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카타리나가, 인력에 끌려간다 해서 당황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접근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듯, 서찬욱을 흠씬 두들겨 주었을 뿐이다.
방패로 그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내고는 있었으나, 이미 방패는 거의 다 우그러져, 방패의 형상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투가 벌어지던 와중, 카타리나가 까맣게 잊고 있는 사실이 하나 존재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자신의 헬리오스 건이 격렬한 몸짓으로 인해 주머니를 거의 빠져나오기 일보 직전이라는 사실.
그리고 서찬욱은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서찬욱은 도박수를 두기로 했다.
일부러 틈을 만들어 카타리나의 큰 동작을 유도한 뒤, 어떻게든 한번 받아내고,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헬리오스 건을 탈취한다는, 위험한 수를.
서찬욱은 힘이 빠진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카타리나도 그것이 함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중하게 천천히 피해를 누적시켜가기만 했으나, 몇 번의 공격을 허용했음에도 서찬욱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기에, 그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릴 준비를 마쳤다.
“끝이다.”
카타리나의 돌려차기가 날아드는 와중.
서찬욱은 기지를 발휘해 카타리나의 안으로 파고들어, 그 발차기를 피해내고,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헬리오스 건을 뺏는 데 성공했다.
“이걸 노리고 있었나!”
“보통힘든 게 아니고만.”
서찬욱은 헬리오스 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서찬욱 또한 총을 잡아본 경험은 없었기에, 당연히 총을 쏘는 자세는 엉망이었다.
문제는, 그 총이 레이저를 발사하는 헬리오스 건이라는 것뿐.
당연하게도 마구잡이로 쏘아 재꼈음에도 몇 발은 카타리나에게 탄착했다.
“크윽….”
권총 모델의 헬리오스 건이 피해량이떨어진다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교적’떨어진다는 말이지, 사람이 맞고 너끈하게 견딜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카타리나의 몸에 여기저기 흉하게 살점이 녹아내린 흔적이 생겼다는것이 그 증거다.
“후, 생각보다 잘 안 맞는데? 역시 난 창이 더 편해.”
두 가지 수가 카타리나에겐 남아있었다.
첫 번째는, 어떻게든 접근해서 근접전을 유도해 헬리오스 건을 봉쇄하는 것.
두 번째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 도망치며 헬리오스 건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게 하는 것.
현실적으론 두 번째 수단이 옳겠지만, 카타리나의 사전엔 후퇴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첫 번째였다.
그녀는 총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준 것은 기예(技藝)에 가까웠으리라.
단 한 발도 탄착도 허용하지 않는 그 움직임은, 전력을 다하는 올리비아나 빈센트 정도가 시도해볼 법한 움직임이었기에.
카타리나와 서찬욱의 거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서찬욱의 얼굴엔 당황하는 기색이 번져나갔고, 카타리나는 평소처럼 냉정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카타리나가 뛰어오른다.
그녀의 발이 향하는 곳은, 서찬욱의 흉부.
[승자, 카타리나 벨랴예바. 훈련이 종료됩니다.]
짝짝짝 하는 박수 소리가 훈련장에 울려퍼진다.
처음에는 나와 빈센트만의 것으로 시작했으나, 그것은 이내 훈련장에 있는 모두의 박수 소리로 차츰 변해갔다.
“아무래도 그 고지식한 생각도 조금은 변한 거 같군. 카타리나.”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 무기가 굳이 헬리오스 건인 이유는, 역시 박성진 때문인가?”
“…아니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나 때문이라고?
내가 뭘 했더라?
…아! 천현우와 올리비아의 전투에 대한 피드백에서 에너지탄을 사용하는 총에 대해 언급했었군.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수고했다. 서찬욱.”
“응, 너도. 역시 난 전투는 무리인가….”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애초에 너는 누군가를 보호하는데 특화된 사상력이 아닌가. 오히려 전투 특화인 나를 상대로 이 정도 했다는 것에 만족해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확실히 그렇다.
오히려 서찬욱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다만, 내가 보기엔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다.
“박성진…이라고 했었나?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얼굴인데?”
“조금 아쉬워서 말입니다.”
“뭐가?”
“이겼으리라 장담은 못하지만, 승산을 조금 더 높일 방법은 있었습니다.”
사실 카타리나가 워낙 강하기에, 별로 의미있는 방법은 아니었겠지만, 분명히 카타리나를 방해할 방법은 존재했다.
“오, 그래? 그게 뭔데?”
“처음부터 카타리나의 주머니에서 총이 빠져나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카타리나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공격을 몇 번 허용한 것이 아닙니까?”
“맞아. 그게 왜?”
“그러면 그냥 인력으로 총을 빼앗아 오면 됐을 텐데요.”
“상대가 쥐고 있는 무기를 빼앗아 올 정도로 내 인력은 강하지 않아.”
음, 내 설명이 조금 불친절 했던 걸까.
바로 이해하지 못하네.
“아뇨. 주머니에 걸려서 덜렁거리는 상태라면 빼앗아 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네. 네 말이 맞아.”
사실 뭐, 이해 못 하는 건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급박한 상황이 되면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니까.
오히려 분전한 그에게 칭찬해주진 못할망정, 자잘한 실수같은 걸로 지적하는 내가 오히려 아니꼽게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찬욱은 생각보다 내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다.
“그래, 박성진의 말도 맞다. 하지만 이번 전투로 모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그걸로 됐어. 다음엔더 열심히 하도록.”
““네!””
이런 면에선 생각보다 유들유들한 빈센트다.
그가 사람을 막 굴리는 면도 있고, 말도 좀 거칠게 하지만, 근본적으론 꽤 친절한 성품을 가졌다는 것을 이런 곳에서 엿볼 수있다.
“그럼 저희 이제 좀 쉬어도 되나요?”
“니들은 구경만 한 주제 쉬긴 뭘 쉬어…. 아니다. 그냥 쉬어라, 그래.”
““감사합니다!””
빈센트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여있던 모두가 흩어져, 다른 클래스의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친구 따위 없는 나만이 여전히 이곳에 놓여있다.
다른 녀석들이야 원래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친구가 없던 처지인 건 베아트릭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가 인싸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게다가 그녀는 급이 다른미녀라는 사실도말이다.
당연히 친구가 안 생길 수가 없다고.
그렇게 쓸쓸하게 훈련장의 의자에 앉아 외로움을 만끽하고 있을무렵, 앨리스 교수가 내게로 다가왔다.
“박성진이라고 했던가요?”
이 교수님은 나한테 무슨볼일이 있는 것일까.
제발 별것 아닌 일이면 좋겠다.
난 피곤한 일이라면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뭐, 세상을 구한다는, 무지하게 피곤하고 어려운 일을 목표로 설정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피곤한 일을 떠안고 있으니, 다른 피곤한 일을 꺼리는 게 정상 아닐까?
그게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