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중간고사 대비 기간.(1)
계절의 변화는 모든생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소다.
나도 살아있는 생물인 이상 그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 계절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짜고짜 무슨 영문도 모를 소린가 싶겠지만, 사이클론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난 뒤의아이니르는 남태평양의 적도 부근에 위치한 섬인 만큼, 원래라면 4월임에도 대한민국의 초여름 정도의 후덥지근함을 보였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트리니티 아카데미가 있는 아이니르는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기온과 습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과학의 힘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열기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치는 일 따윈 없이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아, 밤잠을 아예 설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다.
자다가 깬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 일정이 눈 앞으로 다가왔기에, 걱정되는 마음에 쉬이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계절과 연관이 있는 것은아니지 않은가.
분명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사람이 지내기 최적의 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성해주고 있었다.
그런 편안한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꽤 긴 시간이었음에도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날씨 좋네.”
“그러게. 이런 날엔 어디 놀러 나가면 딱 좋을텐데.”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는 때려치우고?”
“물론이지.”
능청맞게 이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 녀석은 당연히 천현우다.
사실 저 녀석의 마음이 대부분의 트리니티 아카데미 생도의 마음일 것이다.
4월이면 굳이 이곳, 아이니르가 아닌 다른 곳이더라도 꽤 날씨가 풀렸을 시기니, 꽃놀이 같은 곳에 가기 좋은 시기임을 부정할 순 없으리라.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따사로운햇살,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약간 선선함이 남아있는 바람, 만개하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놀고 싶은 마음은 다들 굴뚝같을 게 훤하다.
“근데 트리니티 아카데미까지 입학해서 그러고 있을수는 없잖냐.”
“그렇지….”
천현우는 한숨을 한번 내쉬곤,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천현우, 그리고 우리 샤먼킹 박성진, 왔냐?”
“웬일로 니가 이렇게 일찍 나오는 날이 다 있냐?”
“밤새고 왔다. 잠도 안 와서.”
“네가 잠이 안 올 일이 뭐가 있다고?”
“중간 고사 공개 토너먼트 생각하니까 벌써 손발이 벌벌 떨리더라.”
제멋대로인 성격을 가진 제임스라도 공개 시험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가.
그걸 감안해도 의외긴 하다.
저 녀석이 그런 걱정을 다 하고.
“뭐냐, 왜 그딴 눈으로 쳐다보냐. 나도 S클래스까지 그냥 온건 아냐. 너보다 여기 짬밥도 많이 처먹었어.”
“아니, 그냥….”
사실 생각해보니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
제임스가 안하무인인 성격이라곤 해도 자기 앞가림도 못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다면 사상력이 뛰어나다곤 해도 S클래스 문턱을 넘기진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내 걱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다들 코앞까지 닥쳐온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에 대한 대화가 오가던 와중.
“반갑다. 얘들아. 벌써 시끌벅적하게떠들고 있는 꼴을 보니 일주일 전에 빌런한테 처맞고 빌빌거리던 모습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인지, 제법 기쁜 기색을 한 빈센트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에이, 이겼으면 된 거죠.”
“그래, 그래, 이겼으니까 이 이상 귀찮은 소리는 하지 않으마. 다들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 대비는 잘 해왔니?”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띄던 강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뭐, 교수나 선생이 시험 이야기를 하면 조용해지는 것은 어느 세계나 같을 것 같다만.
“그래, 당연히 안 했겠지. 그래서 오늘부터는 특훈을 시작할 거다.”
““네?””
“뭘 그렇게 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설마 S클래스까지 와놓고 쪽팔리게 하위 반 생도들한테 밀린 다음에 헛소리나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하이고, 좆됐네. 시발….”
“좆이고 나발이고, 특훈은 단순하다. 이번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테마가 시가전이라고 말했던 건 기억나나? 앞으로 중간고사까지는 시가지에, 추가로 다른 환경 옵션들까지 넣어서 훈련을 진행할 거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시가지라는 환경만 해도 상당히 귀찮은데, 다른 옵션까지 넣어서 진행한다니, 귀찮음이 배가 될 게 뻔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만 없지? 그럼 바로 훈련실로 간다.”
““네.””
* * *
오랜만에 오는 훈련실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하긴, 중간고사가 목전이니 다들 빡세게 훈련을 하는 게 보통이겠지.
“첫 타자는 누가 하고 싶나?”
“제가 하겠습니다.”
“어, 카타리나잖아. 같이 훈련 할래?”
갑자기 끼어든 이 사내는, 의외로 영화 감상 동아리의 단장이었던서찬욱이었다.
다소 뜬금없긴 했지만,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U클래스의 생도인 만큼, S클래스인 카타리나와 맞붙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니.
“나는 상관없다만, 이번 훈련에는 상당히 귀찮은 조건들이 붙어있는데, 괜찮겠나?”
“상관없어.”
“교수님은 괜찮습니까?”
“그럼. 너희 좋을 대로 해.”
그렇게, S클래스의 카타리나와, U클래스의서찬욱의 매치가 성사되었다.
당연하게도 이 소식은 빠르게 훈련장 내부에 퍼져나갔고, 훈련 중이던 다른 생도들도 훈련을 멈추고 이 두 초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서찬욱, 카타리나 벨랴예바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훈련은 내가 설정하마.”
“훈련에 귀찮은 조건이 붙을 거라더니, 역시 빈센트 교수님이셨군요.”
“이 정도는 보통 아닙니까?”
“카타리나 같은 생도 입에서 귀찮은 조건이 붙는다고 말할 정도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거란 거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생도들을 굴려 먹는 교수는 빈센트 교수님 말고 없을 거란 것도 알고요.”
이 사람이 앨리스 교수?
나는 중년 여성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젊었다.
외견으로만 본다면 30대 초중반 정도?
그다지 인기 있는 동아리는 아닌, 영화 감상 동아리의 지도교수길레 딱히 대단한 교수는 아닌 줄알았는데, U클래스의 교수였군.
생각보다 거물… 잠깐, 앨리스?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
U클래스의 지도교수 앨리스.
무슨 접점이라도 있는 건가?
단순히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촉은 둘이 무슨 연관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의 소재는 딱히 작중에서 설명된 적이 없고, U클래스의 지도교수인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 적 없었기에 몰랐지만, 어쩌면 무슨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의심 정도는 해봐야겠군.
“환경은 시가지, 기후는 비, 시간대는 늦은 밤, 약간의 시민 존재.”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진짜 보통 어려운 게 아니네.
저런 훈련 설정이면 엄청 피곤하겠어.
“정말 자비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설정이네요. 과연 빈센트 교수님 다워요.”
“저희가 현역일 때는 이거보다 더한 현장에도 많이 투입됐는데도 뭘 그러십니까.”
“그래도 전 젊었을 때가 그리워요.”
“아직 저희는 젊습니다만?”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재밌군.
앨리스, 생각 보다 늙었구나.
하긴, 수백 살 먹은 오스카만 해도 아직 중년 정도로 보이는 수준이니, 보이는 외견과 다르게 앨리스도 상당히 늙었을지 모른다.
“우선 훈련이나 지켜보죠.
“그래요.”
서찬욱은 U클래스긴 하지만, 전투에 적합한 생도는 아니다.
단지 그 사상력의 유용성을 인정받아 U클래스가 된 것이라, 그는 딱히 전투 훈련에 매진하지 않아도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꾸준히 전투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영웅이라는 직함에 동경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사상력이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일반적으로 가장 강력한 사상력인, 서드 어빌리티가 인챈트 계통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검에 오러를 씌울 수 있기만 해도 상당한 강자로 묘사되지만, 다카포 드림은 상당히 파워 레벨이 높은 세계기에, 고작 검에 오러를 씌울 수 있는 정도로는 U클래스에 발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서찬욱이 U클래스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것은 그의 인챈트 성능이 정말 말도 안 되게 강력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피해 흡수를 인챈트 해준다.
단순하지만 훌륭한 능력이다.
생물에는 적용이 되지 않고, 무생물에만 적용된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단순히 파괴에 대한 내성이 아닌 피해를 완전히 ‘흡수’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다.
가령, 절대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있고, 그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한들, 그 충격은 자신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사고도 방지할 수 있으니, 서찬욱의 능력은 아군 전열을 보호하는 데엔 상당히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뭐, 그래도 퍼스트 어빌리티인 인력 같은 경우는 전투에도 뛰어난 능력이니, 아예 전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카타리나와 서찬욱은 동시에 시가지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딱히 공중 기동 능력이나 정찰에 특화된 능력 같은 게 없었기에, 둘은 평범하게 비를 쫄딱 맞으며 시가지 내부에서 상대방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외의 행동을 한 것은카타리나였다.
카타리나는 시가지의 중심부까지 들어가는 것이 아닌, 중간에 멈춰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제이드와 싸웠을 때처럼.
하지만 나는 실을이용한 공중 기동이 가능했기에 그 선택지를 택한 것이었는데, 카타리나는 그런 사상력도 없는데 굳이 옥상으로 올라갈 필요가 있나?
단순히 정찰을 위해서인가?
그 해답을 내놓는데 걸린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카타리나가 제시한 해답은, 총이었다.
평범하게 실탄을 사용하는 총 따위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인간들이 제법 있는 세계관이기에, 일반적인 총은 그다지 선호되는 무기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처럼 기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총도 위협적인 무기니, 대물 저격총 같은 무기는 여전히 수요가 있었지만, 그렇다고그 수요가 이전의 세계만큼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나는 ‘일반적인 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내든 권총은, 실탄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총이 아닌, 에너지탄을 사용하는, 일명 헬리오스 건.
이 세계의 군부대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로, 비각성자들조차 각성자를 제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대단한 위엄을 가진 무기다.
흔히 말하는 레이저건과 같은 무기로, 파괴력은 실탄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총보다 피해량이 떨어지지만, 그 속력은 절대 보고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닌데다, 정확성도 일반적인 총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카타리나의 파지법이나 폼을 보면 총을 그다지 많이 만져본 솜씨는아니었지만, 헬리오스 건의 정확도는 그런 걸 무시하고도 충분했다.
한줄기 광선이 건물의 옥상에서 어디론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