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바람이 지나간 뒤.(3) (27/173)



〈 27화 〉바람이 지나간 뒤.(3)

현재 우리는 서문에서 유명한 포르노 나폴리타노(Forno Napoletano)에 있다.

아, 오해들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철자를 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포르노란, 성적 표현이 들어간 문화 양식이 아닌, 이탈리아어로 화덕을 뜻하는 단어다.

porno가 아니고, forno란 말이다.

어떻든 간에 솔직히 포르노라는 말을 들으면 다들 전자의 그것부터 생각할 테니, 나름대로 마케팅 요소론 재밌게  써먹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럼, 다들 뭘 주문할래?”
“구관이 명관이랬어. 난 마르게리타로 시킬래.”
“칼조네도 맛있어 보였다. 칼조네는 어떤가?”
“칼조네도 나쁘지 않지. 그럼 카타리나랑 나는 칼조네 먹을게.”

다들 저마다 마음에 드는 피자를 하나씩 고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피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뭐,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시키고 싶은 피자가 이곳 메뉴에 없어서였을 뿐이다.

나는 벨을 눌러 종업원을 호출했다.

“뭘 도와드릴까요?”
“혹시 비스마르크 피자도 주문되나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마르게리타 하나, 칼조네 하나, 비스마르크 하나 주세요. 음료는 콜라 열 잔이요. 너희 피자 이거 시키려던 거 맞지?”
“야!  콜라보다 사이다 마시고 싶다고!”
“내가 사주는 거니까 그냥 닥치고 주는 대로 먹어.”

반응을 보아하니 다른 녀석들도 음료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럴 순 없지.

각자 다른 음료를 주문하는 건 귀찮단 말이다.

“성진이, 센스있네? 비스마르크 피자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던데.”
“베아트릭스 너도 비스마르크 피자 좋아해?”
“제일 좋아하지!”
“확실히 비스마르크 피자가 최고긴 해.”
“역시, 성진이가 뭘 좀 알아.”

베아트릭스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딱히 베아트릭스에게 점수를 따고자 비스마르크 피자를 시킨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해서 시킨 것일 뿐.

애초에 그녀가 비스마르크 피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방금 알았다.

“대충 처먹지, 없는 거까지 시켜야겠냐?”
“그럼  먹지 말던가.”
“아이고,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형님. 우리 성진이형 하고 싶은 거 다 해.”
“조용히 해라. 제임스.”

카타리나가 가세하자 제임스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카타리나의 말은 무게가 다른가 싶긴 하다.

나야 내 편만 들어준다면 아무래도 좋지만.

“아무튼, 빌런 습격 사건은 무사히 해결된  맞는 거지?”
“그렇겠지. 박성진도 별말 안 했잖아?”
“그래서, 이번 사건은 배후가 누구래?”
“솜니엄리버레이터.”
“그건   하는 듣보잡 조직인데?”
“박성진에게 물어봐.”

그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된다.

부담스럽게 왜 이래.

애초에 나는 솜니엄리버레이터의 존재를 알릴 생각도 없었는데.

“너희는 모를 만도 하다. 아직은 유명한 조직이 아니니까.”
“그럼  유명해질 거라는 소리?”
“한참 걸릴 거다. 적어도 몇 년은 지나야 해.”
“그렇게  미래도 알 수 있는 거냐? 그럼 나 주식  사야 하는지 좀 알려주면  되냐?”
“그건 모르겠고.”
“진짜 쓸모없는 미래 예지네.”

반박할 수가 없네.

돈이 안 되는 미래 예지는 반쪽짜리나 다름없지.

인정할 수밖에.

“그래서, 놈들의 목표가 뭐였는데?”
“아티팩트.”
“학장실에 아티팩트가 있었어? 그런 물건으로 보이는  없었는데?”
“작은 손거울이니까 못 보고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 아직 등록되지 않은 물건이니까.”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건지 궁금하지만… 좋아. 그래서 그 아티팩트를 노린 이유는?”
“거울에 한 번이라도 상이 맺혔던 장소라면 그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탐을 낼만 하네.”
“그러게.”

사실, 놈들이 습격한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작중에서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오스카에게서 그걸 훔쳐내려는 것인지, 오스카가 그걸 잘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차 온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이 목표일 가능성은 꽤 높았다.

“주문하신 피자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그래!”

어저께 상당한 고생을 해서 그런가, 다들  먹는 모습이다.

모두가 음식을 먹는 건지, 음식을 들이키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게걸스럽게 피자를 먹어 치워갔다.

“그래서, 솜니엄리버레이터라는  조직은, 그 순간이동 아티팩트를 가져가려는 이유가 뭔데?”
“내 생각엔 서킷브레이커 등급 교도소에 갇혀있는 빌런들을 빼내는 게 목표가 아닌가 싶어.”
“서킷브레이커 등급 교도소라면, 자라탄, 파이톤, 그리폰의 세 교도소를 말하는 거지?”
“그래.”

‘아닌가 싶다’라고 추정하는 투로 말하긴 했지만, 나는 반쯤 확정 지어 생각하고 있다.

작중에선 갇혀있다 알려진 빌런들이 뜬금없이 다른 곳에서 등장한 경우도 많았으니까.

물론 자력으로 탈출한 놈들도 간혹 있겠지만, 중반부터 등장하는 그 많은 빌런들이 모두 자력으로 탈출하진 않았을  아닌가.

당연히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출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오스카가 아니면 좋겠지만.

“그래서, 빌런들을 빼내서 뭐? 뭐 깽판이라도 치고 싶은 건가? 서킷브레이커 등급의 교도소에 갇힌 놈들은 대부분 명확한 소속이 있거나, 통제할  없는 미친놈들 뿐 아니었나?”
“빼내 주는 조건으로 자신들 편이 되라고 회유하는 거겠지.”
“근데, 그렇게 위험한 놈들이면 우리 좆된거 아냐?”
“그렇지는 않을걸. 솜니엄리버레이터가 위험한 조직인 건 맞지만, 아직 활동할 시기는 아니야.”
“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하는데. 나중에 우리가 뒤지고 나서도 ‘어, 이럴 줄은 몰랐네’ 같은 소리나 지껄이며 묘지에  한 잔 뿌려주면 땡이냐?”

제임스의 걱정은 이해한다.

나 같아도  미친놈이 자신이 미래를  수 있다며 ‘나만 믿어’ 같은 소리를 지껄인다면 그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을 것이다.

나도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일에 개입하며 미래를 바꿔버렸으니, 놈들의 행동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없진 않다.

하지만 솜니엄리버레이터가 아직 활동하긴 멀었다.

놈들은 그저 빌런들을 많이 풀어서 세상에 깽판을 치는 게 목적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빌런을 풀어놓는 것은 단순히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눈을 가리는 행동일 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을 테니.

고로, 이번 사건으로 놈들을 조금 귀찮게 했다 해서 엄청난 강자들이 득시글거리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바로 보복을 가하진 않을 것이다.

“솜니엄리버레이터는 아직 근간이 미약한 조직이야.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누가 있는지 생각해봐. 클로에 이사장님이랑, 오스카 학장님도 계시잖아.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라면 여길 아무 생각 없이 침입하겠어? 이번이야 사이클론이 여길 덮쳤으니 운 좋게 가능했던 거뿐이야. 대놓고 습격하기엔 놈들의 세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애초에, 습격했던 놈들도 다 죽었는데, 우리가 누군지는 어떻게 알고?”
“…듣고 보니 그렇네.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어.”
“박성진,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뭔데?”
“솜니엄리버레이터의 진정한 목적을 알고있나? 솔직하게 대답해주길 바란다.”

솜니엄리버레이터.

스스로를 꿈 해방자라 칭하는 이 조직의 목표는 원작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 목적을 유추할  있는 문구가 작중에서  가지가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솜니엄리버레이터의 정식 단원들이 서로를 마주칠 때 건네는 인사 겸 선서로, 그 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벗어날  없는 악몽의 속박에서 그대를 일깨울 선각자이니라.’

사실 이 문구만 듣는다면 그저 중2병에 걸린 놈들이 악당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지만, 그 두 번째 문구를 듣는다면 놈들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대충은 알 수 있다.

문제는, 두 번째 문구는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두 번째 문구는 작중 후반부에 등장하는 말로, 아직 현재 시점에선 등장하지 않은, 미래에 등장할 말이다.

그 문구의  등장은 솜니엄리버레이터의 핵심 인물  하나인 엔리케 디아고가 남기는 사세구(辭世句)에서 시작했으니까.

‘눈 뜨지 못하는 우둔한 그대에게 명하노니.
때때로 그대가 우리를 기만할지라도,
우리의 숙원에 향하는 걸음엔 한 치의 흔들림 없으니,
돌아갈 길이 없다 한들,
뒤돌아보지 않으리.
고하건대, 우리는 그저 백일몽을 거니는 방랑자가 아니며,
거짓된 운명의 굴레에서 진실로 인도하는 구도자이니라.’

이것이 엔리케 디아고가 남긴 그것으로, 솜니엄리버레이터의 목적을 어느정도 추측할 수 있는  번째 문구다.

제법 추상적인 말이라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놈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명칭인 꿈 해방자, 그리고 앞서 설명한 두 문구를 엮어 가늠해보자면, 놈들은 이 세계가 꿈, 가짜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자신들은 선각자이자 구도자이며,  세계를 벗어나 진짜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게 솜니엄리버레이터의 목적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것은 단순히 내 추측이니 정확한 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것 이외에 다른 추리는 둔한 머리로 전혀 짐작할  없었기에,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생각을 그대로 S클래스 전원에게 전할 뿐이었다.

당연히 아직 존재하지 않는 말인 두 번째 문구는 배제한  말이다.

“예상보다 훨씬 이상한 놈들이군. 이 세상이 누군가의 꿈이라니?”
“그… 통속의 뇌인가? 하는 그런 거냐?”
“멍청한 새끼야. 그거랑 이건 달라.”
“그 되게 예전에 어떤 과학자가 주장했던 과학 이론이랑 비슷한 거 아냐?”
“프랙탈 우주론.”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베아트릭스, 수백 년 전에도 부정당한 그런 유사 과학은 믿지 않는  좋다.”
“그런 거 정돈 나도 알아! 그냥 비슷한 주장이라서 이야기해본 거뿐이야.”
“아무튼, 그럼 놈들의 목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데아? 엘리시움? 같은 세계로 떠나겠다는 건가?”
“자기들끼리 떠나는 거면 깽판도 안 쳤겠지. 놈들은 이 세계를 꿈에서 독립시켜 하나의 제대로 된 세계로 만들겠다는  목표야. 그리고 놈들은 이 세계가 꿈이라는 걸 굳게 믿고 있어. 만약 놈들의 가설대로,  세계가 꿈이라고 쳐. 그런데 꿈에 불과한 세계를 진짜 세계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꿈을 꾸고 있는 주체에게서  꿈을 분리해내서, 진짜 세계와 동화시켜야겠지.”
“그래, 그럼 거기서 좀 더 생각해봐.”
“…이 세계가 동화되지 못하고 아예 붕괴해버릴 가능성도 있겠군.”
“빙고.”

결론에 다다르자, 다들 하나같이 반응이 달랐다.

어처구니없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녀석도 있는가 하면,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녀석도 있고, 그냥 별생각 없이 묵묵히 피자나 먹고 있는 녀석― 누군지는 뻔하지만― 그런 녀석도 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야. 어차피 지금 우리 수준에서 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피자나 먹자.”
“하지만, 놈들이 정말 그걸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조직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대로 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되지 않나?”
“그래서 이번에는 막았잖아?”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고 세계히어로연맹에 말하자고? 미친놈 취급받을 거란 것쯤은 뻔하잖아?”
“어려운 문제군.”
“모르겠고, 일단 처먹기나 해라. 피자  식는다. 어차피 진짜 심각한 문제가 되면 거물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후, 그래.”

그 뒤론 특별한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다.

이번 사건의 적이 얼마나 강했는가, 자신은 어떻게 쓰러뜨렸는가 등등 이번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다행히 아이나는 내가 쪽팔리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단 사실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가면 갈수록 아이나에게 빚이 늘어나는 기분이다.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뭐, 그래도 다행히 그 불편한 기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다른 녀석들의 농담에 분위기도 천천히 풀어져 갔고, 피자도 상당히 맛있었기에, 내 기분이 좋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았다.

“그나저나,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 아니야?”

그 한마디는, 가까스로 즐겁게 변했던 식사 분위기에 초를 치기엔 충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