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바람이 지나간 뒤.(2) (26/173)



〈 26화 〉바람이 지나간 뒤.(2)

학장실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나와 아이나를 제외하고서도 11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었으니.

S클래스 생도 8명과 S클래스의 담당자인 빈센트 뮐러, 학장 오스카 샤르마, 그리고 이사장 클로에 뤼미엘까지.

“어서 와라. 박성진 생도. 몸은 좀 괜찮나?”
“예, 보다시피 건강합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그나저나 아주 대단한 일을 해냈어. 아무리 S클래스라 하더라도 시리얼 카드가 이식된 몸으로 C레벨의 빌런을 격퇴하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그걸 해내다니.”
“힘들긴 했죠. 그나저나, 이번 습격 사건의 처리는 다 된겁니까?”
“그럴 리가. 빌런 습격 사건은 그렇게 쉽게 처리될 일이 아니다. 내부에서 조사할 것이 많기 때문에, 강의도 일주일간 휴강이다. 생도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있고.”

음, 맞는 말이다.

나야 이번 습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좋지만, 아카데미 측의 입장에선 결코 대충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보니, 상당히 귀찮고 아니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잘해 주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빌런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아챘나? 물론 사이클론이 아이니르에 상륙하는 시기에 빌런들이 간혹 습격한다곤 하지만, 정확히 빌런이 누구인지 분간해내고, 그 동선을 유추하는 것은 우리도 하지 못한 일인데 말이야.”
“제 사상력인 미래 예지로 알아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자네의 사상력은 미래 예지와는 큰 관계가 없었던 것 같다고 클로에가 말하더군.”

클로에 뤼미엘이 그렇게 말했다고?

이상하네.난 클로에 뤼미엘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는데, 클로에 뤼미엘이 그걸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지?

내가 그녀를 마주했던 것은 고작 두 번뿐이다.

입학식의 단상 위, 그리고 제이드와 대련 시간.

물론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입을 털어놓고선, 정작 전투에서는 미래를 읽는 듯한 기색 따위는 전혀 보여준 적이 없으니, 과연 미래 예지가 진짜 내 사상력인지 의심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고 그것이  사상력이 미래 예지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어떻게 뤼미엘이 내 거짓말을 간파한 것일까?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또 다른 박성진과 접점이 있었을 리도 없다.

사상력을 각성하기 전까지 이 녀석은 그저 필부에 지나지 않는, 너무나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니까.

클로에 뤼미엘 같이 세계의 정점에 선 자와 연분이 있을 턱이 없었다.

“딱히 네 사상력에 관해 추궁하려는 것은 아니니 안심해라. 사상력을  각성한 시기에는 사상력이 불안정한 상태니, 네가 입학 시험에서 보여줬다던 신묘한 능력이 시간과 관련이 있는 능력이었다면, 미래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무 아직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사상력을 너무 과신하지는 마라.”

…그랬군.

원래의 ‘나’는 다른 사상력도 모두 다룰 줄 알았고, 입학 시험에서 다른 사상력을 모두 사용한 거야.

그리고 현장에서 클로에가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면 말이 된다.

“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을 막아내는데 너와 다른 S클래스의 생도들이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니, 아카데미 측에서 가벼운 상을 주고자 한다.”
“감사합니다.”
“네가 감사할 이유는 없다. 은혜를 입은  우리 아카데미 쪽이니까.”
“그런데 상은 뭔가요?”

다른 녀석들이  노골적인 질문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례해 보이는 것은 안다.

하지만, 괜히 긴장하는 티를 내며 어물쩍거리다 여러 가지 의심을 사는 것보다야, 그냥 물질적인 보상이 탐나서 빌런을퇴치했다는 오명을 사는  차라리 이득이다.

“그게 중요한가?”
“저희도 나름 목숨 걸고 싸웠는데 그에 걸맞는 수당이 없으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합당한 보상은 있어야죠. 말뿐인 상이나 종이조각보단 물질적인 보상이 더 직관적이고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현역으로 뛰는 영웅들도 대부분이 돈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까.”

나의 말에 학장실은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뜨악하는 얼굴로 쳐다보는 다른 생도들.

죽여버리고 싶다는 눈빛으로 날 쏘아보는 빈센트.

숨넘어갈  웃어 재끼는 클로에까지.

전과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앞의 오스카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 뭔가 원하는 보상이라도 있나?”
“뭐, 말은 그렇게 해도 제가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니까요. 그냥 크레딧이나  넉넉하게 챙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 얼마를 원하나?”
“10000크레딧 정도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알겠다.”

오스카가 단말기를 꺼내더니, 몇 번 만지작거렸다.

그의 단말기 조작이 끝남과 동시에 나와 다른 녀석들의 단말기에서도 10000크레딧이 추가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쿨하고 좋네.

“이것으로 충분하나?”
“저는 괜찮습니다. 너희는?”

다들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쏘아보던 눈길은 모두 어디 갔는지, 다들 10000크레딧이라는 거금에 헤실거리는 눈뿐이다.

역시 어느 세상이던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군.

“그럼 보상은 이것으로 대충 해결하도록 하지. 잠시 다른 이야기에 앞서, 담배 한 대만 피워도 괜찮겠나?”
“그럼 나도 한  줘.”

그렇게 말하곤, 오스카는 담배  개비를 꺼내 자신과 클로에의 입에 물리고 불을 붙였다.

둘은 골초였는지, 학생들 앞에서도 아주 맛깔나게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천경의 대삼각의 이런 솔직한 모습은 예상치 못했는지, 다들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이었다.

나와 빈센트조차도.

겉만 보기엔 이렇게 멀쩡하고 인간적인 사람인데, 정말로 빌런과 내통하고 있을까?

물론 열  물속은 알아도, 한  사람속은 모르는게 현실이니, 이 사람을 마냥 믿는 것이 좋지 못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렇지만 부디 이 사람과 내가 척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게 나의 진솔한 바람이다.

이 사람과 대적해봤자 딱히 남는 게 없으니까.

당연히 다카포 드림 세계관에서 손꼽을 정도로 강한 인물인 오스카와 싸우는 것은 누구나 사양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고작 그런 까닭만으로 오스카와 맞서길 꺼리는  아니다.

물론 그가 진작부터 빌런 쪽에 몸을 담그고 있던 자라면 얼마나 강하든 간에 당연히 결국 제거해야겠지만, 아직까진 그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학장이자, 만인의 영웅이다.

적어도 그가 죽거나 실종되더라도 천경의 대삼각이라는 이름 아래 죽길 원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내 욕심이지만, 나는 그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이 세계에 빙의― 사실상 조난에 가까운 그것을 당한 뒤로, 나는 모든 인간관계가 소멸됐기 때문이다.

내 목표가 ‘다카포 드림에 예정된 멸망을 막는 것’인 이상, 천경의 대삼각은 끝까지 내 편인  좋다.

주제에 맞지 않게 거대한 목표를 가진 나를 지지해줄 기반이 필요하니까.

물론 내 괴멸적인 사교성으로 여러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알지만, 그렇다고 내 꿈을 놓아줄 생각은 없다.

…정작 당사자인 오스카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그저 담배에 붙은 불을 비벼  뿐이었다.

“그럼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볼까.”
“네.”
“우선 이 습격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외부까지 많이 알려질 텐데, 괜찮나?”
“이미 다 퍼졌을 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생각보다 담담하군.”
“졸업하면 어차피 유명해질 건데, 미리 유명해졌다고 생각하죠. 뭐.”
“굉장한 자신감이군. 그것도 그 미래 예지로 알 수 있는 건가?”
“그렇다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애초에 나는 여기 있는 전원이 졸업 후 유명한 영웅이 되는  알고 있다.

게다가 여기 있는 전원은  도움 없이도 알아서 잘 살아간다.

오히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나지.

이번 사건을 보라.

부끄럽게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들의 이름을 빌려 썼을 뿐, 실질적으로 세운 공은 그다지 크지 않다.

습격 사건을 해결한 것은 오롯이 나를 제외한 다른 S클래스의 몫이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도 이 세계에 온 것이 마냥 꿈결 같기 때문이다.

현실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와 같이 무모한 행동으로 사경을 헤매는 일을 겪었음에도, 나는 아직도 이 세계가 단순히 게임이나, 소설 같은 유흥거리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녀석들에게  세계는 명백히 현실이다.

이젠 나에게도 그러했고.

고로, 나도 조금은 진지해질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아직은 그러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생물이 으레 그렇듯, 정신이 번쩍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겐 계기가 필요했다.

물론 그리할 계기가 좋게 마련된다면 좋겠지만, 보통 그러한 일은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다가오더라는 것이 참으로 슬픈 현실이었다.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나는 더더욱 진중해질 필요가 있으리라.

부디 비극을 맞이하지 않게끔.

“뭐, 그렇다면 좋다. 그것도 다 너희들이 감당할 몫이지. 나가 봐도 좋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을.”

나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은 모두 목례를 한 뒤, 학장실 밖으로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학장실의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손거울이지만, 나는 저 물건의 실체를 알고 있다.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

전설 등급의 아티팩트인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이 여기서 등장한다고?

아티팩트에는 다양한 급이 있다.

영웅 등급, 전설 등급, 신화 등급으로 분류되며, 이 분류에 속하지 않는 정령의 유산이라 불리는, 일부 특이 케이스도 존재한다.

그리고 전설 등급으로 분류되는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간 이동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그것도 거리에 대한 제약 없이.

심지어 사상력 같은 능력도 아닌 터라, 어디에서든지 사용할 수 있다.

그 말인 즉슨, 자라탄 교도소에 갇힌 빌런들도 꺼내줄 수 있는 물건이라는 소리다.

…그랬어.

이번 습격 사건의 주모자들의 목적은 저것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군.

나야 다카포 드림의 원작을 알고 있으니 저것이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존재 여부조차 모른다.

그야, 영웅 등급이 되지 못하는 하급 아티팩트만 해도 다들 아주 꽁꽁 싸매다시피 보관하는데다, 등급의 분류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앨리스의 이상한 거울은 아직 등급 판정도 받지 않은 상태의 물건일 것이다.

작중에선 빌런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왔었는데, 어떻게  거지?

오스카에게서 탈취한 것인가?

아니면 오스카가 놈들에게 제공했나?

…어찌 됐든 오스카를 한층 더 경계해야겠군.

그래도 아직까진 오스카의 손에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차라리 낫다.

적어도 오스카가 설령 빌런과 내통하고 있다쳐도, 일단은 오스카의 수중에 있는 것이니까.

그는 대놓고 빌런과 내통하고 있다는 티를 내고 있진 않으니.

그가 빌런과 내통하고 있는 것이 아니길 빈다.

 손으로 아는 사람을 끝장내는 건 기필코 사양하고 싶기 때문이다.

면식이 있는 인간에게 칼을 꽂는다는 건 누구나 거절하고 싶은 일이겠지만, 안 그래도 절멸하다시피 한 내 인간관계를  손으로 끊는 일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으랴.

내가 끝장내고 싶다 해서 쉽게 끝장날 인간도 아니지만, 그가 빌런이라면 결국 그리해야만 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더 있나?”
“아닙니다.”
“그럼,  가라.”
“예.”

학장실을 나서는 나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 * *

“재밌는 녀석이지?”
“그래,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종잡기 어려운 녀석이군.”
“오스카, 너는 너무 고지식해.”
“클로에, 우리 나이가 몇 살인지는 아나?”
“후후, 싸우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나도, 너도, 늙을 만큼 늙었다. 세월의 풍파에서 빗겨나갈 순 없는 거야.”
“그래, 너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삶은 후회의 연속이다.”

클로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몸을 돌려, 학장실 밖으로 나설 뿐이었다.

오스카는 생각했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이 인과를 청산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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