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바람이 지나간 뒤.(1) (25/173)



〈 25화 〉바람이 지나간 뒤.(1)

빛이 눈꺼풀을 간질였다.

눈을 떠보니 여느 때보다 맑은 하늘이 창밖에 있었다.

사이클론이 지나간 여파일 것이리라.

분명 내가 의식을 잃었던 곳은 학장실 앞의 복도였음에도, 병실같아 보이는 이 공간에서 눈을 떴다는 건, 날 구하러 왔던 누군가가 빌런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다른 S클래스 생도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처럼 병실에 누워있으려나?

아니면 멀쩡하게 빌런을 쓰러트리고 강의를 듣고 있을지도.

그 녀석들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내가 부탁한 일은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도 수준에 상당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는  정도야 본인들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아이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군말 없이 내 의견을 따라주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도와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다.

그들과 친하다고  정도의 사이도아니었고, 그렇다고 의뢰 비용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준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니.

그 녀석들은 미래를 볼  있다는 거짓말 하나를 믿고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직 나만을 믿고 따라와 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진 못할망정,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쓰러지기까지 했으니, 도무지 그들을 다시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신도 책임지지 못할 일을 별 관련도 없는 이들에게 떠맡긴 셈이 아닌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엄밀히 말하면, 미안한 마음과  자신에 대한 자책감, 수치심 등이 혼재된 상태라고 해야 할까.

이번 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의 본모습을 깨닫게 된 셈이니 말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똑똑하고 병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츠루 아이나.

다른 녀석도 아니고  하필이면 아이나인가.

이번 사건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건강해 보이네.”

이 목소리, 분명히 쓰러지기 전 들려왔던 그 목소리와 같다.

설마 날 구해준 게 아이나였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나?

무슨 연유로 날 구해줬지?

그녀가 나를 구해줌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던 와중,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라는사실을 깨달았다.

어떠한 이유건 간에 나를 구해줬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으니, 감사의 말부터 하는 것이 먼저다.

나는 침상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워, 아이나.”
“뭐가.”
“날 구해준 게.”
“알면 됐어. 그렇게 벌떡 일어나는 걸 보면몸도 괜찮은가 보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분명히 상당히 극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몸은 멀쩡하게 잘 움직였다.

원래 내가 살던 세계에서 같은 상처를 입었다면, 적어도 수십 일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을 것이다.

운이 없었다면 평생 병신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였으니.

그럼에도 내 몸에서 별다른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심했던 부상이 이렇게 쉽게 치료될 수 있나?

아니면, 내가 사실 긴 시간 동안 병실에 누워있었던 건가?

“내가 얼마나 여기 누워있었어?”
“20시간 정도.”

치료하는  걸린 시간을 포함해서 대략 하루 정도의 시간을 소요했다 쳐도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심지어 후유증 같은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말이다.

“근데, 너는 안 다쳤어?”
“뭐, 조금 다치긴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아. 너보다 심한 부상도 아니었고.”
“그래? 다행이네.”
“난 너처럼 약하지 않아.”

그녀의 말이 옳다.

사실 나 따위가 아이나의 걱정을 해주는 것도 그녀의 입장에선 굉장히 우스운 일일 터.

그렇다고나를 구해주기 위해 싸움터에 뛰어든 사람에게 아무런 걱정조차 해주지 않는 것은너무나 염치가 없다 느껴지지 않는가.

나는 그녀에게 목숨을 빚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빚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도 갚지 못하겠지.

“다른 애들은 무사해?”
“그럭저럭, 올리비아랑 카타리나가 조금 다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많이 다쳤나 보네.

아이나의 기준은 일반인의 사고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으니, 그녀가 조금 다쳤다고 말한다면 제법 부상일 것이다.

아마 나처럼 병실에 있을 확률이 높겠군.

“그렇게 신경 필요는 없어. 걔들은 이미 진작에 퇴원했거든.”
“그래도, 내가 부탁해서 한 일인데 미안한 마음이  수밖에 없지.”
“뭐가 미안한데?”
“나 때문에 다친 거나 다름없잖아.”
“그런 생각이 든다면, 넌 네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기나 해. 애초에 너의 미안함 따위는 필요 없어. 그 녀석들이 너를 따르기로 한 것은 순수하게 자신들의 의지였어. 네가 강요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면  일은 너만의 것이 아닌, 그들의 것이기도 해. 다치는 것은 분명히 본인의 책임도 있다고. 여기서 네가 더 미안해야  점은 네 계획에 끌어들인 이들을 다치게 만들었다는  아닌,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더 미안해해야 해.”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요소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할  있는 것이라곤,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그녀는 조금 누그러진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네가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사상력을 꾸준하게 단련해온 우리에 비해선 너무 미흡한 게 현실이야.”
“나도 알아.”
“그래. 인지하고 있으면 됐어. 그럼 앞으로는 S클래스의 수준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라고.”
“…그렇게 할게.”
“뭐, 그건 됐고, 사실 여기 온   중요한 이유 때문이야. 너  반지가 뭔지 알고 있지?”

그녀가 꺼낸 것은 빌런이 끼고 있던 반지였다.

내가 원래 노리고 있었던, 야시 효과를 제공하는 물건이었다.

아마  빌런을 퇴치하고 갈무리한 전리품이리라.

“야시 효과를 제공하는 반지잖아.”
“역시 알고 있었네.”
“딱히 그렇게 희귀한 물건도 아니니까.”

그녀도  반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애초에 암살의 기본인 야습에 관련한 장비니, 오히려 모르는 이상하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아?  반지의 주인은 사상력으로 야수화를 가지고 있어. 야수화는 기본적으로 동물의 야간 시야도 제공한다고. 굳이 야시 장비를 따로 맞출 이유는 없단 말이야. 그런데도 굳이 이 반지를 착용한 이유는 뭘까?”

그러네?

생각해보니 빌런은 굳이 이 반지를 착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놈은 이 반지를 끼고 있었던 것일까.

딱히 귀한 물건도 아니라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보는 반지니, 반지 자체에 특별한 메시지가 담겨있는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 놈이반지를 착용해야 할 이유는 하나뿐.

“사상력을 사용할 수 없는곳을 밤에 몰래 침입해야 해서?”
“맞아. 그리고 그런 공간이 어디에 가까이 있을까?”

…마침 그런 공간이 아이니르가 있는 태평양에도 존재했다.

최흉의 빌런들이 수감되는 3대 교도소 중 하나.

자라탄 교도소.

하지만 자라탄 교도소는 아무나 침입할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아무리 경계가 비교적 느슨해지는 밤이라 한들, C레벨의 잡졸 빌런 따위가 숨어들 수 있을 만큼 경비가 허술했다면 자라탄 교도소는 진작에 바다 속으로 침몰했어야한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야. 자라탄 교도소에 C레벨의 빌런 따위가침입할 수 있을  없다고.”
“자라탄 교도소 내부에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잖아? 내가 처치했던 빌런은 자신이 ‘솜니엄리버레이터’라는 조직에 속해있다고 했어. 만약 솜니엄리버레이터라는 그 조직이 자라탄 교도소 내부에 스파이를 심어 놨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야. 물론  번도 들어보지 못한 조직이니, 자라탄 교도소에 스파이를 심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조직일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솜니엄리버레이터?

그놈들이 벌써 등장한다고?

그럴 리가 없어.

그놈들은 적어도 중후반부에나 등장하는 조직이라고.

하지만, 어제 습격했던 놈들이 정말로 솜니엄리버레이터가 맞다면… 자라탄 교도소에 스파이를 심어두는 것 정도야 쉬운 일이다.

“뭐야? 갑자기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실제로 자라탄 교도소 내에 스파이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침묵이 흐른다.

자라탄 교도소에 몰래 숨어들었다는 말은, 그곳에 수감된 빌런에게 볼 일이 있어서  것이다.

그리고, 자라탄 교도소에 수감된 빌런과 접촉한 인물이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학장실에 침입했다는 소리는…

오스카 샤르마는 빌런과 내통하고 있다?

하지만 오스카 샤르마가 내통을 하고 있다기엔 다소 근거가 부족했다.

원작에서 그는 빌런들과 끝까지 맞서 싸우다 실종된다.

만약 그가 빌런 편에 붙었다면 굳이 끝까지 빌런들에 맞서 싸울 이유는 없지 않나?

하지만, 그가 빌런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생각해도 의문점이 전부 해소되지는 않는다.

이번 습격 사건의 주모자는 원작에서 분명히 학장실에 침입한 것만으로 만족하며 죽었다.

목숨을 걸어가며까지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침입했다면, 무언가 급히 전할 말이 있어서 온 것 아닌가?

오스카 샤르마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만족하며 죽을 이유는 뭔가?

좀처럼 이해할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오스카 샤르마가 빌런과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을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으니, 골머리가 아파왔다.

아이나도 대충은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네.”
“그러게.”
“네가 미래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사건에 대해선 이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좋겠어. 너무 위험해. 만약 우리 추측이 안좋은 방향으로 들어 맞게 된다면, 우리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아. 반지는 내가 알아서 파기하도록 할 테니, 일단은 평소처럼 지내자고.”
“알겠어.”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 수준에선 어떻게 하고 말고 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솜니엄리버레이터와 맞선다는 건, S클래스 멤버 전원을 충분히 성장시켰다손 치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단 더 할 이야기가 있으면 그 이야기는 일단 나중에 하자. 괜찮으면 일어나. 학장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그래, 그런데 지금 학장실에 가도 괜찮을까?”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우리가 의심하고 있다는  눈치챘을 확률은 현저히 낮아. 오히려 쓸데없는 의심을 하는 걸 수도 있고. 괜히 벌벌 떨고 그러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봐.”

하긴, 나와 아이나가 상황에 대해서 비약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우연의 일치일 것이라고 생각하니,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런데, 아이나는 어쩌다가 나를 구해주게 된 걸까?

“근데 말이야. 나를 구해준 이유는 뭐야?”

지금까지 내 말에 곧잘 대답하던 그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학장실로 걸어갈 뿐이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받아들이곤, 아이나의 뒤를 쫓아 학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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