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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돌개바람의 눈. (4) (22/173)



〈 22화 〉돌개바람의 눈. (4)

내부 병동의 입구에 들어선 셋은 모두 침묵에 빠진다.

그 침묵은 무언가에 대한 상실감에서 기원한 것이라기보단,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내부 병동에서 숨어든 빌런을 찾아낸다.’

말은 참 쉽지만, 현실이 그렇게 쉽다면 어디 현실이겠는가.

상식적으로 접근한다면 수많은 의료기기, 환자, 의사, 간호사, 직원들로 부대끼는 좁은 공간에서 피해를 내지 않고 빌런을 격퇴하는 것은 결코 생도 따위가 시도할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정보만으론 너무 부족한 거 같은데, 성진이한테  더 빌런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이 맞다. 내가 박성진에게 물어보도록 하지.”

카타리나가 박성진의 채널에 접속한다.

“박성진.”
“왜?”
“네가 준 정보만으로 적을 추적하긴 너무 부족하다. 놈의 정보는  없나? 인상착의라던가. 생김새 말이다.”
“잘 차려입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핏 보면 교수로 착각할 정도로.”

박성진의 느긋한 태도에 카타리나는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빌런이 숨어든 것은 예삿일이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전투에 적합한 각성자는 아니니, 목숨을 잃는 일까지  일은 거의 없겠지만, 생도에게 빌런을 상대시키는 것은 상당한 각오를 요하는 일이다.

당연히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초조한 자신의 마음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박성진의태도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것만으론 너무 부족하다. 혹시 다른 정보는 없나?”
“몰라. 내가 본 미래에선 딱히 격렬하게 싸우지도 않았으니까. 그 빌런이 노리는 목표는 내부 병동의 발전실이야. 발전기를 차단해서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을 교란하는 게 목적으로 보였어,”
“후… 알았다.”

카타리나가 구두 굽을 딱딱거리며 불만감을 드러냈다.

저렇게 여유만만한 태도라면 무언가 뚜렷한 방안이라도 가지고 있을줄 알았건만, 그는 마땅한 방책조차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물론 그가 이쪽이 승리하는 미래를 확인했기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겠지만,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계획을 일임한 것은 무책임하게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아무래도 내부 병동에 숨어든 빌런을 찾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왜? 박성진이 뭐라고 했는데?”
“그냥 교수처럼 잘 차려입었다는 것 이외엔 놈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다는군.”

이쯤되니 천현우와 백성연도 카타리나의 그런 불만족스러운 태도가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만으로 카모폴라쥬가 주 사상력인 놈을 어떻게 찾아?”
“백성연이 그 해답을 쥐고 있다 했으니, 백성연을 믿어보는 수밖에.”
“그러면 셋이 쪼개져서 찾아보자.”
“그래.”

모여있던 천현우, 카타리나, 백성연이 긴장한 얼굴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병동에 입장하는 이들의 표정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진중한 표정은 영 어색해 보였지만.

* * *

백성연과 천현우는 내부 병동의 우측으로 이동했고, 카타리나 벨랴예바는 발전실이 있는 좌측으로 움직인다.

일대일에 가장 특화된 카타리나가 발전실의 입구를 지키고, 색적 능력이 뛰어난 백성연이 천천히 내부 병동을 훑으며, 천현우는 그녀를 보좌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계획이라는 결론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계획 자체는 이론상 괜찮았다.

“현우야.”
“왜?”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정신 세계가 뚜렷한 S클래스 내에서 가장 정상적인 감성을 가진 백성연이 물었다.

그녀의 심약해 보이는 모습은 남성의 보호 욕구를 자극했다.

“괜찮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 빌런을 상대해 보는  처음이니까.”

오랜 시간 동안 백성연과 함께 해온 천현우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천현우가 처음 백성연을 만났을 적 느낀 것은, 그녀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어울리지 않는다’였다.

필요에 의해서라면 누군가를 죽이기도 해야 하고, 누군가가 죽는 모습을 감내하는 것이 덕목인 세상에 그녀는 어울리지 않았다.

백성연은 너무 유약했다.

타인을 해칠 용기도 없고, 자신과 무관계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도 없다.

그런 순수한 마음을 지닌 백성연을, 천현우는 지키고 싶었다.

“너는 빌런을 찾아주기만 해줘. 전투는 나랑 카타리나가 할 테니까.”
“하지만 빌런을 찾기 위해선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해야 할 텐데, 나는  번도 아카데미의 룰을 어겨가며 사상력을 사용해본 적이 없는걸.”
“그럼 이번 기회에 해보자.”

무리한 처사라는 것을 천현우는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천현우도 백성연을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세상은 너무 각박하다.

그런 점에서 천현우는 박성진의 이번 작전― 작전이라고 하긴 우습지만, 작전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를 성장시키기엔 좋은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 열심히 할게.”
“그래, 꼭 성공하자.”

툭.

누군가가 천현우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천현우와 부딪힌 사람은 공손한 자세로 사과하고, 그 둘을 지나쳐간다.

그 뒷모습을  천현우와 백성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둘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사람이라고.

물질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묘하게 당당한 그의 자세와, 정장을 쫙 빼입은  발전실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그들의 감각을 자극했다.

“쫓아가자.”

천현우가 백성연에게 속삭였다.

그녀 또한 느낀 게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천천히 빌런으로 추정되는 이 남성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고, 그들의 의심은 의심이 아닌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부 병동을 꽤 이용해본 사람이라도 내부 병동에서 길을 잃는 일은 흔했다.

그만큼 내부 병동이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장 신사는 내부 병동이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구조라는 듯, 뻔뻔한 걸음걸이로 태연하게 발전실로 향하고 있었다.

천현우와 백성연은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신사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녀석이다.”
“저 사람이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신사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천현우와 백성연이 동시에 말했다.

천현우와 백성연은 난색을 표했다.

카모폴라쥬를 사용한다면 미행은 어렵게 된다.

천현우가 카타리나에게 경계를 강화하라는 연락을 하려는 순간.

공간이 일렁였다.

“날 찾았나?”
“현우야!”

날붙이가 천현우의 등을 파고든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생도라면 익숙한 감각이다.

훈련에선 더한 고통도 많이 겪어 봤으니까.

천현우는 침착하게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혈검을 만들어, 빌런을 공격했다.

혈검이 빌런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간다.

“성연아, 결속 좀 걸어줄래?”

백성연은 그것을 이행할  없었다.

피야 훈련에서 지긋지긋하게 봐왔다지만, 현실의 사람이 선혈을 뚝뚝 흘리는 것은 다르다.

충격을 받은 백성연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패닉 상태로 부들부들 떠는  뿐.

천현우는  모습에 혀를 한번 차곤, 혈검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부디 백성연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며.

‘카타리나를 부르는 것은 위험해.’

천현우가 처음 생각한 것이다.

카타리나가 도와준다면 놈을 한 번에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섣불리 카타리나를 부르는 것은 리스크가 컸다.

괜히 놈을 압박하겠답시고 카타리나까지 불러버린다면, 카모폴라쥬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 발전실을 점거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고로, 천현우는 카타리나와 백성연의 도움 없이 이 상황을 순수하게혼자서만 타계해야 했다.

“꺄악!”

교착 상태를 유지하던 와중, 내부 병동의 간호사가 우리를 발견하고 말았다.

상황은 천현우에게더욱 귀찮게만 흘러갔다.

“괜찮습니다. 치료는 나중에 받아도 됩니다.”
“안된다고요!”

천현우는 치료를 한사코 사양했으나, 결국 내부 병동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천현우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돼버린 이상 천현우 자신은 전투를 속행하기 어렵다.

끌려가기 전, 빌런에게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빌런은 카모폴라쥬로  상황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성연아! 박성진의 말을 기억해! 카모폴라쥬는 유령화로 찾을 수 있어!”

항상 자신 곁을 지켜주던 천현우까지 눈앞에서 사라지자, 백성연은 망연자실한 눈이다.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패가망신해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아차린 백성연은 떨리는 다리로 발걸음을 뗐다.

‘그래, 언제까지 현우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어!’

그녀는 결심한 듯, 서드 어빌리티인 유령화를 발동한다.

그리고, 내부 병동의 복잡한 지형들을 모두 관통하여, 발전실 쪽으로 직행한다.

‘찾았다! 근데… 내가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박성진의 말대로라면 그는 딱히 강력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은 백성연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백성연은 아군을 보조하는데 특화되어있지, 적을 공격하는 데엔  잼병인 사상력들 뿐이다.

‘해야만 해!’

백성연은 마음을 다잡고, 유령화를 해제한다.

그리고, 빌런의 앞을 가로막는다.

“아까 그년이군. 정신을 좀 차렸나 보지? 내가 있는 곳은 또 어떻게 알고 미리  거야?”

백성연은 대답하지 않는다.

“마음같아선 죽여버리고 싶지만…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지.”

빌런은 반대편으로 질주한다.

백성연 또한 그의 뒤를 쫓는다.

다시 한번, 빌런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카모폴라쥬를 사용한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유령화를 사용하면 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일까?

백성연은 박성진의 채널에 접속한다.

“박성진! 어떻게 하면 유령화로 놈을 찾아낼  있어?”
“알다시피 유령화 상태에서 네 육체가 특정 물체와 겹쳐진 상태라면, 유령화를 해제할 수 없어. 그러니,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데 유령화가 해제되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놈이 카모폴라쥬를 사용 중인 공간이라는 뜻이겠지. 유령화 상태로 발전실 근처를 돌아다녀 봐.”
“알았어, 해볼게.”

백성연은 다시 유령화를 사용하여 발전실 쪽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백성연은 다른 생도들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시리얼 카드의 전격을 참아가면서까지 사상력을 사용하다니, 자신은  번 다시 시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기다려, 현우야. 나랑 카타리나가 반드시 빌런을 잡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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