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돌개바람의 눈. (1) (19/173)



〈 19화 〉돌개바람의 눈. (1)

“지랄 났네.”

4월 8일.

이십사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으로부터 나흘이 지난 시점이다.

이름만 들어도  수 있다시피, 청명(淸明)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의미인데, 그것에 맞지 않게 현재 날씨는 매우 좋지 못하다.

물론 북반구인 중국에서 고안된 개념인 이십사절기라는 개념이 중국에서 대략 10,000km 떨어진 남반구에 있는 아이니르에 통용될 리는 없으니,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받아들이면 편하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수백 발의 번개가 바다에 떨어지고, 천둥 소리는 아이니르 전역에 울려 퍼진다.

바다에 나부끼는 파도는 드높아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다.

좀  단순하게 말하자면, 돌개바람이 한바탕 세게 휘몰아치는 중이다.

돌개바람이라는 말이 어색하다면, 여러분들에겐  익숙한 단어일 사이클론으로 대체해도 좋다.

아홉 자로, 오늘의 날씨, 사이클론.

갑자기 뭔 개소리냐고?

내가 있는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부유섬 아이니르에 세워진 건물이다.

그 아이니르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내가 말한 날씨, 사이클론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태평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상현상, 열대성 저기압이 아이니르에 찾아온 것이다.

사이클론이 아이니르를 덮쳤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생각 외로 아이니르는 안전하다.

외부의 침략이나 기상현상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결계가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사이클론이 찾아오는 날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강의가 취소된다.

덕분에 생도들에게 사이클론이 상륙하는 날은 ‘합법적으로 노는 날’이 되었다.

그러나,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겐 노는 날이 아니다.

사이클론이 불어닥칠 즈음이면,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구조 작업에 나선다.

주변의 원양어선들이 사이클론에 의해 좌초되지 않도록 말이다.

이 원양어선들은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임시로 정박할 권한을 얻게 되는데, 선박 내부 선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과정에서 신원을 속인 빌런들이 트리니티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간혹 있었기에, 사이클론이 아이니르를 강타하는 날이면,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구조 작업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바빠 죽을 지경인데, 혹여 빌런이라도 나타나면 곤란해지니 말이다.

때문에,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현재 경계 태세를 유지 중이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 어부로 위장한 빌런이 트리니티 아카데미를 침공하는 일이 올해, 내가 입학한 년도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4월 8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로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올해 아이니르에 사이클론이 처음 상륙하는 시기에 습격한다고 했으니,확실할 것이다.

즉, 다카포 드림 작중에서 최초로 빌런이 트리니티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사건이, 오늘 벌어진다.

이번 빌런 습격 사건이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그다지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생도들이 상해를 입는 사건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막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다치는 것이라면 딱히 내가 나설 이유가 없겠지만, 그 상해를 입는 사람에 하필 중요 인물인 베아트릭스가 포함되니 말이다.

물론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빌런들을 단신으로 막는 데에는 무리가 있으니, S클래스의 힘을 빌려야 한다.

나는 곧바로 트리니티 아카데미 어플을 실행한다.

[박성진]
▶ @모두에게
[박성진]
▶ 진짜 중요한 거니까 다들 S클래스로 모여라
[박성진]
 부랄 검
[Alfred Eisner]
▶ ?
[Olivia Teixeira]
▶ 뭐야
[Beatrix Waldeck]
▶ 놀자고 부른 거 아냐?
[James Fitzgerald]
 뭔데
[満 愛奈]
 빠르게 용건만 정리해
[Катарина Беляева]
▶ 무슨 일이냐
[Jade Cromwell]
▶ 여자친구 만나고 있는데 별거 아닌 거면  뒤짐
[백성연]
▶ 왜?
[천현우]
 머선129

빈센트는 사이클론 때문에 바쁜가 보군.

뭐, 빈센트가 있다면  도움이 됐겠지만, 그가 없다고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수준은 아니니, 괜찮다.

문제는 S클래스의 다른 생도들을 꾀어내는 것인데, 다들 금쪽같은 공짜 휴일을 내게 그냥 양보할 리는 없을 것이다.

S클래스의 생도를 불러내기 위해선, 초대형 떡밥을 투척해야 했다.

[박성진]
▶ 오늘 정박한 원양어선 한 척에 빌런들이 숨어들어 있음
[박성진]
▶ 미래 예지로 본 거야
[박성진]
 같이 막을 사람?
[박성진]
▶ 막을 사람만 S클래스로 와라

다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질문 공세를 해오겠지.

하지만 절대 그것에 호응해서 대답하면 안 된다.

내가  일은 그들에게 철저히 관심을 끄고 S클래스에서 녀석들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S클래스에서 조용히 녀석들을 기다리자, 하나둘씩 S클래스의 생도들이 모였다.

그리고 전원의 얼굴에 ‘나 짜증 났어’라고 적혀있다.

그야 휴일에 갑자기 소집 당하면 물론 화가 나겠지.

미안하다.

하지만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거야.

나는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턱에 두 손을 괸다.

멋진 야전사령관처럼.

“무슨 개소리인지 해명 부탁할게요. 박성진씨.”
“너네 크레딧 필요하지 않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한 번만 더 좆같은 소리하면 그냥 죽탱이 갈길 거니까 대답 잘해라.”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다들 짜증 섞인답변을 해온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는 궁금해서  배길걸?

“말 그대로야. 오늘 훈련실에서 미래 예지를 한번 써봤는데, 원양어선에 숨어든 빌런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하더라.”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 새끼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의 반응일까.

“재밌는 거짓말이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말 그대로야. 오늘 조난당해서 정박한  중에 빌런들이 탑승한 배가 하나 있어.”

빌런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에겐 시리얼 카드가 이식되어, 아이니르 내에선 사상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고, 시리얼 카드가 없는 빌런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상력을 사용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빈센트가 말했던 조건, ‘맨몸으로 어중이떠중이각성자는 제압할 수준’을 충족한 녀석이 아니고선 빌런을 막기 힘들다.

“진짜 존나 뜬금없네.”
“근데 사실이면 재밌을 거 같긴 한데?”
“샤먼킹 박성진 센세께서 신의 계시를 받으셨다! 오우! 오우! 오우!”

제임스 미친놈.

“그래서 어쩔 셈인데? 빌런을 우리끼리 막는 건 위험해.”

정론을 말하는 아이나다.

“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빌런은 4명이야. 모두 C레벨 정도의 각성자로보이고.”

S클래스면 C레벨은 껌 아닌가 싶겠지만, 전혀 아니다.

S클래스여도 우린 현재 시리얼 카드에 의해 사상력을 통제당하는 중인데다, 자신의 사상력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C레벨은, A클래스 수준에 필적한다 봐도 무방하다.

고로, 우리에겐 위험 부담이 매우 큰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쪼그라들어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쪽수가 더 많으니까.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귀찮거나,  생각 없는 사람은 꼭 나를 안 도와줘도 돼.”

기껏 준비해서 S클래스에 와놓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심리를 이용하는 말이다.

그리고, 돌아갈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에 쐐기를 박는 한마디를 더 한다.

“근데 우리가 빌런을 막으면 표창장이랑 장학금 같은  주지 않을까?”

크레딧은 늘 부족하다.

최상위 계층이 아니고서야.

당연히 탐나는 보상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좀 솔깃하네.”
“크레딧은 못 참지.”
“크레딧만 있으면… 마음껏 고깃집에 갈 수 있어…!”

표창장과 장학금 이야기에 다들 반응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낚기 쉽네.

“나는 빌런을 막아보자는 박성진의 의견에 찬성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번 해보지, 뭐.”
“나도 할게.”
“그럼 나도!”
“내키지는 않지만, 해볼 만은 한 거 같네.”
“이거 구라면 재밌겠다. 그러면 진짜 사기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수준인데. 제 2의 폰지 사기를 주도하는 남자 씹가능.”
“설마, 이런 걸로 구라치지는 않겠지”
“귀찮은데,  거면 빨리 끝내”
“이런 걸로 내가 구라를 치겠냐….”

뭐,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도 제법 있지만,  정도면 시도해볼 만하다.

적어도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은 아이나는 아마 참여할 의사가 그다지 없어 보이지만, 한 명 정도의 공백은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나의 태도에 갑자기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싫은가?

“그래서마땅한 계획은 있나?”

카타리나가 묻는다.

4인의 빌런은 각기 한 명씩  곳을 동시에 습격하며, 나머지  명은 학장실을 향해 움직인다.

고작 C레벨의 각성자가 어떻게 천경의 대삼각을 상대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스카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우선 빌런들은 서문, 북문, 내부 병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습격을 시작할 거야.”

나는 트리니티 아카데미 앱으로 화상 지도를 펼쳐 오더를 내린다.

“알프레드, 올리비아는 서문을 맡아줘. 서문에 등장하는 녀석은 제법 강하니까, S클래스에서도 가장 강한 너희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서문에 등장하는 녀석은 분명히 강하기에, 올리비아와 알프레드라는 드림 엔트리를 구성해두는  좋았다.

“제임스랑 제이드는 북문으로 가라. 북문에 등장하는 녀석은 근접전에 강한 것으로 보였어.”

제임스와 제이드는 근접전에 강하다.

엄밀히 말하면 제임스는 양민 학살에 최적화된 사상력이지, 근접전에서 특출나게 강한 사상력을 가진 것은 아닌데, 그래도 이 사상력은 무투계 각성자가 초견에 파훼하기엔 매우 어려운 사상력이라 북문에 배치하는 게 좋아 보였다.

“천현우랑 백성연, 베아트릭스, 카타리나는 내부 병동으로 가줘.”

내부 병동에 습격한 녀석은 은신 계통의 사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서포팅에 특화된 백성연이 없이는 쉽게 상대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병원은 천현우의 주무대라고  수 있다.

사방에 수혈팩이 널려있으니, 피를 수급하기도 쉽겠지.

“너는 놀고만 있을 거냐”?
“나는학장실을 습격하는 마지막 녀석을 맡을게.”
“학장님이 누구한테 당할 사람도 아닌데  학장실을 지켜, 이 새끼 자기 혼자  빨려고그러네?”
“팩트”
“뭔 팩트야.”

혼자 편하게 놀겠다는 심보가 아니다.

오히려 편하게 놀겠다는 심보였으면 북문으로 갔을 것이다.

내가 학장실을 습격하는 녀석을 맡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그 녀석이 습격한 빌런 중에 가장강하고, 귀찮은 능력을 가지고있어서다.

이미 능력을 알고 있는 내가 아니면 대부분이 상대하기 매우 힘들게 뻔하다.

아, 그렇다고 순수하게 정의로운 마음에서 나선것도 아니기는 하다.

내가 노리고 있는 것은 학장실에 습격하는 녀석이 가진 반지.

그것이다.

그 반지에는 야간 시야를 제공한다는  괜찮은 기능이 탑재돼있기 때문에, 획득해두면 좋다.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는 야전이거든.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에서 그 반지는 치트키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거야, 말 거야.”
“박성진이 본 미래에선 이렇게 포메이션이 구성되어있었던 듯하니, 박성진의 말을 따르는  좋겠다.  녀석이 그렇게  미더운 녀석도 아니잖나.”

카타리나 눈나, 사랑해…

“한 번만 믿어 줘, 제발. 끝나면 내가 휫자 쏠게.”
“예 형님.”
“예 형님.”
“예 형님.”
“예, 오라버니.”

역시 피자의 힘은 대단하다.

이렇게 쉽게 녀석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니.

마지막에 이상한 녀석이 끼어든 것 같기는 하지만.

당분간은 크레딧이 부족해서 쪼들리는 삶을 살겠지만, 장학금을 받으면 메꿔지겠지.

“그럼 바로 움직이자.”
“우린 뭐하면 돼?”
“가서 뭐하면 되냐? 그냥 경비원처럼 서 있으면 되는 거냐?”
“뭘 해야 할지 정해다오.”

아, 구체적인 오더를 내리는 걸 깜빡했네.

“알프레드, 올리비아 조는 콧수염 긴 놈을 찾아 줘.아마 보자마자 ‘저놈이다’ 싶을걸.”
“콧수염 긴 놈? 알았어.”

사실, 어떻게 생긴 지는 안 봐서 모른다.

그냥 소설 속에서 기억나는 묘사를 말할 뿐이다.

애들이 어련히 잘하겠지.

“제임스, 제이드 조는 딱 봐도 수상하게 생긴, 이상한 후드 뒤집어쓴  하나가 북문 광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테니 걔를 제압해주면 좋겠어.”
“세상에 그렇게 멍청한 놈이 어떻게 빌런을 하려 하지?”
“나도 몰라. 아무튼 그렇게 해줘.”

낸들 어떻게 알아.

세상에 바보가 한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려니 해야지.

“천현우, 카타리나, 백성연, 베아트릭스 조는  힘들 텐데, 주변 환경에 맞춰서 카모폴라쥬를 하는 녀석이라 찾기 힘들거야. 백성연 네가 유령화로 잘 찾아줘.”
“응…  노력할게!”

다들  오더를 의심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잘 들어주었다.

자,  빌런 퇴치를 시작해보자고.

“아이고, 박성진 나으리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영웅 노릇 해봅니다요. 혹시 멋진 작전명 같은 거 생각해두신 건 없으십니까?”

그렇네, 영웅 놀이는 제대로 해야지.

뭐라 하면 좋을까.

“돌개바람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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