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데뷔전. (2)
나는 지금 하면 안 될 대사를 해버렸다.
흔히 말하는, 생존 플래그를 세워 버린 것이다.
설마 이 공격에 반응해 무적을 사용했나? 그럴 리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리고 그것은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나의 발차기가 몸에 닿기 직전에 무적을 발동한 제이드는 내 기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냈다.
“이걸 노리고 있었나 보네?”
아까와 비슷한 묘한 대치 구도가 또 한 번 성립한다.
하지만 마냥 제이드가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속으론 제이드도 크게 불안할 것이다.
나의 몸에도 슬슬 신경독이 퍼지는 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비록 더 많은 수의 암기가 내 몸에 꽂혀있긴 하지만, 현재만 놓고 따진다면 제이드의 중독 증상이 더 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제이드의 호흡은 심히 불규칙해져, 멀리 있는 나조차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숨 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아직 약간의 어지럼증 정도만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은 내가 확실히 유리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내가 훨씬 불리해지겠지만.
그렇기에 나는 독이 더 퍼지기 전에 이 승부를 끝내야만 했다.
하지만 섣불리 전투를 속행해서는 안 된다.
적을 확실히 제압할 수단도 없는데 괜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체내의 독이 퍼지는 속도만 가속 시킬 뿐이니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니, 시도해봄직한 계획은 두 가지만 남았다.
첫 번째 계획은, 제이드를 독살시키는 방법이다.
나의 몸에 암기가 더 많이 꽂혀있다곤 하지만, 그를 먼저 독살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그를 움직이게 하여 체내의 독을 빨리 퍼지게 하면 됐다.
물론 어중간하게 자신이 중독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니, 어중간한 방법으론 그를 꾀어내기 힘들 것이고, 괜히 그를 꾀어낸답시고 무리한 접근을 시도했다간 내가 역으로 털릴 가능성이 컸다.
두 번째 계획은, 그가 중독 증상으로 제대로 된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지금, 맹공을 퍼부어 승부를 보는 것이었다.
단순하지만, 어렵다.
안타깝게도 내 실은 아직 그렇게 공격적인 활용이 어려웠다.
평범한 하위권 각성자들에게야 충분한 위협이 된다지만, S클래스에서 근력이 가장 우월한 축에 속하는 제이드는 내 실을 가볍게 끊어낼 수 있었기에, 맹공을 퍼부었다가 실패한다면 그대로 사상력의 고갈로 패배할 것이다.
“오늘의 피드백 담당, 아이나가 평가해보도록.”
“박성진부터 평가하자면, 환경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선 칭찬해주고 싶지만, 제이드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아 감점입니다.”
“제이드는?”
“뭐, 머리가 잘안 굴러가는 친구니까 몸이 고생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드웨어가 워낙 좋으니 다 커버가 되지만요.”
빈센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엥? 박성진이라는 저 애, 저거 그냥 봐주고 있는 거야.”
“아니… 이사장님도 보고 계셨습니까. 고작 S클래스 수준의 모의 전투론 성미가 안 차실 텐데, 어쩐 일로?”
“입학시험에서 봤는데 박성진이 신기한 사상력을 쓰더라고.”
“하지만 지금까진 별다른 사상력을 보여주지 않았는데요. 뭐, 그의 와이어 활용은 제법 괜찮습니다만.”
“그러니까 봐주고 있다는 거지. 사용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숨기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학 시험에서 보여줬던 사상력을 쓰면 시작하자마자 결착이 났을 수도 있어.”
“허어… 그 정도인가요.”
S클래스의 전원은 당황한다.
M레벨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자 중 하나로 알려진 천경의 대삼각이 저렇게 말한다면 절대 거짓은 아닐 것이다.
과연 수백년을 살아온 클로에 뤼미엘에게도 신기하게 보인다는 사상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다들 생각에 잠긴다.
“입학시험 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알프레드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몰라. 그냥 훈련을 시작하고 나니까 갑자기 더미가 두 동강이 나더라. 뭔지 보지도 못했어.”
“그럼 사상력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냥 합격시켜준 겁니까?”
“시험 상으로는 합격했는데 뭐 어째? S레벨 더미까지 전부 다 그렇게 이겼다구. 더미가 S레벨까지만 존재해서 그렇지, U레벨 더미가 존재만 했다면, 그것도 두 동갈 낼 기세던데?”
“이상하네요. 박성진은 자신의 주력 사상력이 미래 예지라고 그랬는데.”
“자기 입으로미래 예지라고 그랬다고?”
클로에는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정말이니?”
“아뇨. 사상력이 미래 예지라곤 안했지만, 자기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그랬어요. 천현우의 사상력인 마음을 보는 눈으로 확인했는데, 사실로 밝혀졌고요.”
클로에와 오스카는 눈빛을 몇 번 교환한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으나, 일이 재밌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쯤은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뭐… 미래를 보는 사상력이 여태까지 없던 건 아니야. 하지만 박성진의 사상력은 절대 미래 예지가 아니야. 그것만은 확실해.”
“그럼 천현우의 마음을 보는 눈은 어떻게 된 거죠?”
“모르지. 미래를 보는 아티팩트를 손에 넣었다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그에게 미래를 알려주고 있다던가… 가능성은 여러 가지겠지. 아무래도 박성진이라는 저 친구, 더욱 주의 깊게 관찰해야겠어.”
“혹시 입학시험에서 뭔가 이상한 점은 못 느끼셨습니까?”
“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고, 입학시험 때 봤던 저 녀석의 얼굴만 기억나네. 거의 세상을 다 잃은 그런 얼굴이었어. 대답도 엄청 기계적으로 하고.”
“어, 박성진이 움직입니다. 뭔가를 하려나 본데요.”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은 두 번째 계획.
나는 독이더 퍼지지 않도록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모든 실을 소환해 주변에 퍼져있는암기들을 전부 회수한다.
천현우가 선보이던 어검술을 흉내 내 봐야겠군.
실에 매달린 스무 개가량의 암기들이 제이드를 향해 날아간다.
…그 시도는 처참하다 못해 나 스스로도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천현우의 유려한 어검술과는 달리, 나의 암기는 제이드에게 닿기는커녕 불규칙하게 허공만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시체 위에 들끓는 파리떼처럼.
하지만, 제이드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효과 정도는 있었다.
독이 발린 암기라서 그런지, 제이드는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암기조차 그의 몸을 건드리지는 못했다.
이거, 천현우가 잘 다루는 편에 속하는 거였구나.
천현우의 어검술을 무시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러면 내가 못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제이드는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정녕 저것이 마비 상태인 인간의 속도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속도로 내게로 돌진한다.
그의 앞을 많은 수의 암기가 가로막고 있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돌진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사상력인 무적을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되자, 나는 다급하게 사출했던 실 중 하나로 그래플링을 시도했다.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래플링의 이동 속도는 그다지 느리지 않은 편이었음에도, 제이드의 주먹은 나의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해 가슴께를 강타했다.
나의 몸은 본디 가려던 방향을 잃고, 그저 내딛는 대로 굴러가, 건물 외벽에 처박힌다.
…더럽게 아프네.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살면서 늑골이 부러져본 적은 없지만, 느낌으론 늑골 몇 개가 부러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치려 했으나,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순간에도, 제이드는 내게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
제이드의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아까 전에는 헐떡이던 숨이, 이젠 반대로 천천히 멎어간다.
근육이 경련하여 온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기에 끔찍하다.
경련으로 인한 작은 맥동에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털썩, 하고 쓰러진다.
그럼에도 제이드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 꿈틀거리며 바로 내 앞까지 기어 온다.
“한 대만… 한 대만 때리면 이길 수 있는데….”
그것이 제이드의 단말마였다.
[승자, 박성진. 훈련이 종료됩니다.]
나, S클래스를 이긴 거구나.
* * *
“오늘의 강의는 여기까지다. 다들 수고했다.”
““네.””
아직도 제이드에게 맞은 가슴께가 욱신거린다.
하지만 그 고통은 S클래스에게 정정당당히 승리한 기쁨에 도취된 내겐 미약하게만 느껴졌다.
그것이 정말로 정정당당히 승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이드는 갓 입학한 나에게 졌다는 사실이 충격인 듯,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
평소 같았으면 그 모습을 진탕 놀려줬을 제임스지만, 오늘은 제이드의 눈치를 보고 살살 긴다.
올리비아는 처음부터 우리에겐 관심이 없었다는 듯, 빈센트의 말이 끝나는 즉시 강의실을 벗어나 어디론가 가버렸고, 백성연은 방금 모의 전투의녹화본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필기하고 있었다.
알프레드, 아이나, 천현우, 카타리나는 무리를 지어 내게 다가온다.
왜 그래, 무섭잖아.
“좋은 전투였다. 박성진. 다른 이들은 졸렬하다고 욕할지도 모르나, 나는 너의 방식을 존중한다.”
그 말은 마치 내게 한 줄기 광명과도 같았다.
사실, 나는 조금풀 죽어 있었다.
승부에서 이겼음에도, 훈련실에서 나오자마자 온갖 야유와 욕설을 다 들어먹는 상황에서 풀 죽지 않는 멘탈의 소유자는 흔치 않으리라.
하지만 카타리나는 그런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시원스럽게 나를 인정해주었다.
이러면 카타리나 누나한테 반해버릴 것 같잖아.
전생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내가 연상이겠지만.
“고마워.”
아까부터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듯 몸을 베베꼬고 있던아이나가 입을 열었다.
“…너, 암기 진짜 못 다루더라.”
“미안하다. 한 번도 다뤄본적 없거든.”
아이나는 여전히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 언사에서 적의가 우러나고 있지는 않았다.
뭐, 이 정도 관계만 유지해도 충분하다.
딱히 그녀의 환심을 살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아이나의 누그러진 태도에 기분이 좋아지려던 참에, 알프레드는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다음엔 나랑도 모의 전투해볼래?”
“아니, 절대 안 하지.”
“왜? 재밌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알프레드는 날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아이나처럼 직감적으로 전격을 피할 자신도, 원거리 견제에 대한 내성도 없었기에, 알프레드와 전투는 극구 사양이다.
제이드는 그나마 환경도 내게 받쳐주는 상황이었고, 제이드는 원거리 견제에 극도로 취약한 캐릭터라 운 좋게 승리를 따낸 것이지, 원거리 공격에 능한 녀석과 맞붙게 된다면 나는 10초 만에 드러누울 게 뻔했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천현우는 별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작은 음료수 캔 하나를 내게 던졌다.
맥코크?
아무래도 이 새끼는 나를 정말로 싫어하는 게 틀림없었다.
감히 내게 맥코크를 주다니.
“너 이거 싫어하냐? 맛있는데.”
그렇게 말하곤, 천현우 녀석은 캔뚜껑을 따고 자신의 맥코크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넘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