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데뷔전. (1) (15/173)



〈 15화 〉데뷔전. (1)

주말은 언제나 쏜살같이 지나간다.

무엇을 하든 말이다.

반대로 월요일은 끔찍하게 지나가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월요일을 혐오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한 주의 시작이라서인지, 즐거운 주말이 끝난 뒤의 후유증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무튼 그러했다.

나 또한 월요일을 혐오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오늘의 월요일은 조금 각별한 날이기에, 평소와 달리 기대와 긴장을 멈출 수 없다.

바로 나의 아카데미 데뷔전이 오늘 치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아이나, 천현우, 올리비아, 카타리나, 제임스, 제이드, 백성연은 모두 모의 전투를 치렀고, 나와 베아트릭스만이 아직 모의 전투를 치르지 않은 상태였기에, 나의 차례가 다가왔음은  보듯 뻔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제발 백성연이 나의 상대로 지목되길 빌고 있었다.

같은 신출내기인 베아트릭스가 상대여도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것이다.

고로, 백성연 이외엔 적합한 상대가 없었다.

“오늘은… 박성진과 제이드 크롬웰의 모의 전투를 보도록 하겠다.”

제이드 크롬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허구한 날 길거리 싸움을 일삼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사상력을 각성하고, 그의 생활은 뒤바꼈다.

막강한 사상력을 가졌다는 것이 알려지고, 트리니티 아카데미로부터 입학 증명서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마냥 쉽게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커뮤니티에 녹아든 것은 아니다.

하류층 출신인 제이드는 엘리트 육성기관인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생도 대부분도 아카데미에서 겉도는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제이드는 악바리 근성으로 꿋꿋하게 버텼다.

다행스럽게도 싸움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제이드는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막싸움이 아닌, 진짜 격투의 기술을 익혔다.

그 결과, 제이드는 자신을 업신여겼던 생도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며, S클래스라는 정상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라는 것이 제이드의 간단한 소개다.

그러니까,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자면 좆됐다고 할  있겠다.

제이드는 육탄전 이외엔 아무런 강점이 없는 각성자지만, 사상력을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무력으로 따진다면 S클래스 최강이다.

어디까지나 올리비아가 힘을 절제하는 상태라는 전제하에서지만.

뭐, 그래도 그가 강한 것은 틀림없다.

빈센트마저 그의 신체 능력을 칭찬할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그의 사상력은 그의 월등한 신체 능력과 격투 기술에 한층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최적의 사상력이다.

그의 사상력은 ‘무적’으로, S클래스에서 가장 심플한 사상력이다.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는 상태가 된다.

언뜻 보면 제롬의 주력 사상력인 반사나 알프레드의 불멸의 수은에 비해 크게 밀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제롬과 알프레드의 사상력은 한 번 사용하고 난 뒤 재사용에 굉장히 긴 대기 시간이 필요한데다, 그 사용 효과의 지속 시간이 굉장히 짧은데 반해, 제이드의 무적은  사용 주기가 무척이나 잦고, 사용시 효과 지속도 꽤 긴 편에 속했다.

즉, 그는 약자들에게 한해 무적의 파괴전차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내 데뷔전 상대다.

“씨발.”
“불만 있나?”
“아닙니다.”
“그럼 훈련장으로 가자.”

* * *

어찌 된 영문인지, 평소와 달리 엄청난 양의 관중이 우리의 나와 제이드의 모의 전투를 지켜보러 왔다.

알프레드와 아이나의 전투 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쟤가 그 고등부 S클래스 입학이야?”
“그렇다고 하던데. 주된 사상력은 염력이라는 거 같더라.”
“미래 예지도 있다던데.”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있겠냐. 그냥 운이겠지.”
“천현우랑 알프레드 피셜인데?”
“그럼 이야기가 좀 다르네.”

고등부 S클래스 입학 탓인지, 내겐 엄청난 어그로가 쏠리고 있었다.

난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어? 이사장님도 보러 오셨는데?”
“진짜네, 학장님도 보러오셨어.”
“쟤가 대단하긴 한가 보네.”
“그러게,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어.”

아, 일이 크게 골치 아프게 됐다.

단순히 생도들만 지켜보는 것이면 모를까.

이사장인 클로에 뤼미엘과 학장인 오스카 샤르마조차 내 전투를 보러 오고 말았다.

이래 놓고 지면 진짜 쪽팔려서 얼굴도  들고 다닐 텐데.

뭐, 그것은 제이드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자, 그럼 모의 전투를 시작하겠다.”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용자 제이드 크롬웰, 박성진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자, 오늘부터는 환경을 설정하겠다. 환경 테마는 이번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의 테마와 동일한 ‘시가지’다.”

중간고사 이야기에 사방에서 우우- 하는 원성이 빗발친다.

그나저나, 환경 테마가 시가지라고?

그렇다면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승산이 조금은 생기는 것 같았다.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사실 시가지는 굉장히 까다로운 환경이다.

지형지물도 다양한 것도 한몫하지만, 가장  이유는 일정량 이상의 지물을 파괴할  자동 패배 처리된다는 점이 크다.

이유는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이유다.

즉,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 하며 적을 제압해야 한다는, 귀찮은 조건을 달고 있다.

그럼에도 1학기 중간 고사의 테마는 시가지로 치러진다.

이유는, 대부분의 전투가 시가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거물 빌런들의 본거지야 당연히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시베리아나, 사하라 사막, 다리엔 갭 등의 외진 지역에 숨어있지만, 삼류 빌런들의 경우는 당연히 사람들이 몰려있는 시가지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가지에서 능숙하게 전투하는 것은 각성자들의 기본 소양이다.

그런 얄궂은 환경이 내게 유리한 까닭은, 힘 조절을 잘못해서 주변 지물들을  파괴해 버릴 가능성이 있는 제이드에 비해, 지물들을 활용해 다채로운 입체 기동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 크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무장을 선택했다.

아이나와 똑같은 암기.

분명히 제이드의 사상력인 무적은 분명히 강력한 사상력이지만, 그것이 출혈이나 독을 비롯한 지속 피해에도 완전히 면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이드의 무적은 완전한 무적이라기보단, 어떤 게임에서 강력한 주력 기술을 스킬 키  번으로 회피하는 악랄한 기술로 유명한 좆간둥이와 비슷하다.

뭐, 그것에 비하면 지속시간이 훨씬 기니 더 까다롭긴 하지만.

내 승리 플랜은 하나다.

무적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암기를 이용해 출혈과  피해를 누적시킨다.

그것만으로 승기를 잡는다.

부디  계획이 효과적으로 먹혀들기를 바라며, 가장 높은 건물에 실을 걸어 그래플링으로 이동한다.

제이드에게 위치가 들키지 않도록 건물의 옥상에 바짝 엎드린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보니 제이드는 유유히 건물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중이었다.

가볍게 암기를 하나 투척한다.

암기는 제이드의 등허리에 명중했다.

이것으로 제이드는 나의 위치를 파악했을 것이다.

제이드는 인간의 속도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계단을 타고 올라올 테니, 다른 건물에 설치해둔 실로 짚라인을 타고 이동한다.

이동하는 도중, 옥상의 문이 열린다.

바로 옥상의 문 쪽을 향해 암기를 투척한다.

이번에는 암기가 배에 명중한다.

그럼에도 제이드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질주한다.

그리고, 난간에서 점프해, 나를 붙잡으려 시도한다.

붙잡히면 사실상 끝장이나 다름 없기에, 타고 있던 실을 끊어낸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건물의 벽면에 그대로 부딪히기에, 곧장 새로운 실을 뽑아 다른 건물의 난간에 걸어, 그래플링을 시도한다.

안전하게 그래플링으로 다른 건물에 올라온 나와 달리, 나를 붙잡는 것에 실패한 제이드는 그대로 추락 중이다.

다른 인간이라면 즉사해야 했겠지만, 제이드는 무적을 활용해 낙하 피해를 무시한다.

“와, 저 새끼 진짜 야비하게 싸우네.”
“생각만큼 강하지는 않은가 본데. 제이드랑 맞싸움을 전혀 안 해주잖아.”
“좀 싸우라고!”

나를 향한 비난이 쇄도한다.

맞으면 그대로 뒈지는데 어떻게 맞싸움을 해주냐?

당연히 이렇게 싸울 수 밖에 없다.

“야이 좆밥새끼야! 쫄았냐? 튀기만 하고?”
“엉.”

제이드는 자신의 도발이  먹히자 분통을 터뜨린다.

굳이 갈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암기에는 충분한 독이 발려져 있다.

시간만 끌면 나의 승리인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제이드를 향해 암기를 투척한다.

처음의 암기를 허용한 것은 단순히 방심이었다는 듯, 단 한 개의 암기도 맞아주지 않았다.

아이나랑 몇 번 싸워봐서 그런가, 쉽게 안 맞아주네.

그렇게 무의미한 대치 구도가 지속될 즈음, 제이드의 머릿속엔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왜 저 녀석이 던진 암기를 피하기만 했지? 내가 사용해도 되잖아?’

제이드는 나를 향해 비열한 웃음을 띄우더니, 내가 빗 맞춘 암기들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집어 던지기 시작한다.

“이런 니미럴.”

제이드의 암기 투척은 속도나, 명중률 면에서 미숙한 나의 암기 투척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렇다고 옥상에 바짝 엎드려 암기를 피하자니 녀석의 움직임을 놓치는 꼴이 되어 녀석을 강제로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몸엔 어느새 네 개의 암기가 꽂혀있다.

나의 몸에 천천히 신경독이 퍼지는  느껴진다.

비록 제이드가 먼저 암기에 명중했기에, 독이 퍼지는 것이 더 빠르다곤 하지만, 암기가 네 개나 꽂힌 시점에서 녀석이 먼저 중독으로 쓰러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녀석을 쓰러트리는 수밖에 남지 않았군.

“오스카, 어떻게 생각해?”
“아이디어는 좋은데, 몸이 별로 안 따라주는 모양이야.”
“흠. 역시 제이드가 이길까?”
“글쎄다. 아직은 두고 봐야 알겠군.”
“오늘은 평소와 다른 대답이네?”
“그야, 제이드는 멍청하잖아. 싸움은 잘할지 몰라도.”

그 말에 클로에는 작게 조소한다.

클로에는 믿고 있었다.

자신이 점찍어둔 역대급 재능, 박성진이 승리할 것이라고.

어찌 된 일인지 입학 시험에서 보여준  신기한 능력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처음 보는 괴상한 사상력만을 사용해서 싸우고 있었지만.

“이제야 나랑 싸울 생각이 들었냐?”

나는 실을 타고 제이드를 향해 내려갔다.

제이드는 하강하는 나를 향해 곧바로 돌진한다.

과연 S클래스 탑 급의 신체 능력을 가진 녀석답게, 달려드는 속도 또한 매섭다.

곧바로 녀석의 발목에 실을 설치해 보았지만, 녀석은 실에 걸렸다는 인식조차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실을 끊어내고 돌진하고 있었으니.

나는 돌진하는 제이드를 향해 남은 암기를 모두 투척한다.

그리고,  암기에는 모두 실이 이어져 있다.

그간 사상력을 훈련하면서 내가 뽑아낼 수 있는 실의 개수는 대략 20개 정도로 늘어났으니, 이정도는  부담이 되지 않았다.

녀석은 내 암기를 침착하게 피하면서도 속도를 전혀 잃지 않았다.

그리고 제이드가 내지른 주먹이 나의 코를 강타하기 직전, 벽에 꽂혀있는 암기들에 이어진 실을 모두 고속으로 수축시킨다.

대략 열댓 개의 실이 수축하며 얻는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나는 발차기 자세를 취하며, 수축하는 실의 가속을 받고 제이드를 향해 날아간다.

복부에 정확하게 꽂힌 헥토파스칼킥에 제이드는 멀리 날아간다.

“이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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