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지병. (14/173)



〈 14화 〉지병.

3월 10일.

카타리나 벨라예바 vs 제임스 피츠제럴드.

카타리나 승.

3월 11일.

제이드 크롬웰 vs 백성연.

백성연승.

3월 12일.

미츠루 아이나 vs 천현우.

아이나 승.

나와 베아트릭스는 기존성적이 없던 신입생이기에 바로 모의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여겨질 수 있어 잠깐의 유보 기간을 주었다.

그리고 현재는 3월 13일. 토요일로, 강의가 없는 날이다.

덕분에 강의에 쫓기지 않고 늦잠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낮잠을 방해한 것은 핸드폰의 알림이었다.

“뭔데.”

나한테 연락할 사람은 전혀 없는데, 누구지?

알림이 잔뜩 와있는 트아카 앱을 실행하자, 나는 어떤단톡방에 초대되어 있었다.

[천현우]
 클래스톡 만들었는데 다들 온 거 맞지?
[Alfred Eisner]
▶ 안녕
[Olivia Teixeira]
 ㅎㅇ
[Beatrix Waldeck]
 우리 클래스 애들 맞지?
[Jade Cromwell]
 아 씨발 이거 초대되서 제임스한테 게임 졌잖아
[James Fitzgerald]
▶ 그전부터 개처발리고 있었는데 변명 개추하죠
[満 愛奈]
▶ ?
[Катарина Беляева]
오,벌써 만들었나?
[백성연]
▶ 안녕 얘들아
[Vincent Miller]
▶ 농담으로 한 소린데 진짜 초대했구나…

확실히 클래스톡인지 뭐시기를 만든다고 천현우가 그러긴 했었던 거 같다.

그게 이거인가 보다.

아, 근데 이름만봐도 정신 나갈 거 같다.

왜 내용은 자동 번역되는 주제 이름은 번역이  되는 거지.

본인은 언어 쪽에는 통 재능이 없는 탓에, 외국어만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흔히 말하는 외국어 알러지다.

[천현우]
 박성진 ㅇㄷ감?
[박성진]
▶ 있음
[천현우]
 ㅇㅋ 다 왔네

대충얼굴만 비추고 톡방의 알림을 끈다.

그들이 클래스톡을 만들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들 놀겠지.

뭐, 특별히  일이 있어서 그런  아니다.

본래 나는 오늘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신입생 OT가 있는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참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S클래스의 전원이 OT에 참석하지 않아서였다.

베아트릭스를 제외한 초, 중등부부터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생도였으니,지겹도록 가본 OT에 참석할 이유가 없었다.

베아트릭스는… OT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석을 하지 못했다.

고로, 나도 참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S클래스 전원이 참석하지 않는 OT에 나 혼자 참석할 이유가 뭣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농땡이나 부려도 아무도 뭐라 할  없다.

“아.”

할 일이 떠올랐다.

복용 중인 심장약이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다.

까놓고 말하면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지만, 혹여나 심장병으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했기 때문에, 약을 새로 타오는 편이 나았다.

약이 없다면 상당히 귀찮은 상황이 되겠지만,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내부 병동은 어지간한 대학 병원 수준의 규모였기 때문에, 그럴확률은 현저히 낮다.

우선 병동에 가보면 알겠지.

* * *

“저, 심장질환에 관한 진료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순환기내과로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부 병동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미궁 같은 내부 병동에서 순환기내과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꽤 긴 시간을 내부 병동에서 방황한 결과 순환기내과에 도달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의자에 앉아 내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박성진님, 7번 진료실로 들어와 주세요.”

진료실로들어서자, 같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맞이한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무슨 일로 오셨죠?”
“아, 제가 심장약을 복용 중인데, 약이 떨어져서….”
“그렇군요.생년월일과 이름 어떻게 되시죠?”
“2000년 12월 9일, 박성진이요.”
“음… 확인해보니 2005년생 3월 5일로 기록되어있는데요?”
“아,네. 2005년생 3월 5일이 맞아요.”

전생의 생일을 말해버렸군.

실수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적이 있으시군요. 검사를 좀 해봐야   같습니다.”

그렇게, 나는 심전도 검사니 뭐니 하는 이상한 검사를  가지 받았고,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렇지만 혹시 재발할 위험이 있으니 약은 꾸준히 복용하란 말과 함께 처방전을 내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3개월 뒤에 다시 오시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리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 * *

죽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암살자.

그러므로, ‘유명한 암살자’라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존재가 유명할 수 있다니?

모순인 것이다.

하지만 그 모순을 증명하는 존재가 여기 있다.

바로 미츠루 가문이다.

미츠루 가문의 표적이 된 자는 모두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츠루 가문은 유명한 암살자 가문이다.

미츠루 가문은 처음부터 암살자 가문으로 유명했던 것은아니다.

그들은 일찍이 사냥에 능통했던 가문으로 그것을 가업으로 삼고 있었으나, 전란의 시기를 겪으며 차츰 변화해갔다.

짐승을 사냥하는 가문이 아닌, 인간을 사냥하는 가문으로.

그리고 미츠루 가문의 차기 당주는 바로 지금 여기 있는, 아이나라는 소녀다.

아이나는 가문의 철칙, 그 다섯 가지 이외엔 모르는, 어찌 보면 순박하다   있는 소녀였다.

첫째, 너에게 적대하는자는 친히 너의 검으로 베어주어라.

둘째, 너를 배신하는 자에겐 급소를 찔러주어라.

셋째, 너를 믿는다고 하는 자를 의심하라.

넷째, 무능한 자를유능하게 만들어주어라.

다섯째, 사랑하는 이에겐 모든 것을 내어 주어라. 가문의 철칙을 어겨서라도.

아이나는 가문의 철칙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소녀였다.

그녀가 지키지 않은 철칙은 오직 다섯 번째 철칙뿐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가문의 철칙을 어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일평생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외하면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순결한 소녀였다.

즉, 그녀는 타인을 이성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그러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녀가 이성으로서 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흐르는 냇물처럼 찰랑이는 머릿결, 예리하고 날카로운 눈매, 깊디깊은 보라색 눈, 어지간한 서양인 못지않게 오뚝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게다가 명가로 소문난 미츠루 가문의 차기 당주라는 지위까지.

그녀의 지위나 외모에 빠진 남성들이  절벽에 핀 꽃을 꺾으려는 시도를 수없이 해왔지만,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그녀가 열네 살일 적에, 같은 트리니타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유력 재벌가의 차남이 그녀에게붉은 동백꽃 꽃다발을 선물했더니, 아이나는 꽃생강 꽃다발로 화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붉은 동백꽃의 꽃말은, 누구보다 그대를사랑합니다.

꽃생강의 꽃말은, 헛수고.

즉, 그녀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것이 헛수고라고  잘라 대답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향한 구애가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절당하는 것이 업계포상이라며 더욱 열렬한 구애를 받았다나 뭐라나.

이렇듯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세간의주목을 한 눈에 받았다.

사상력조차 무척이나 강력한 사상력이었으니, 당연하다.

외모, 학벌, 가문, 능력, 무엇 하나 꿇리는 게 없는 그녀에게 주목이 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진 그녀는, 여전히 매우 심란한 상황이다.

[승자, 미츠루 아이나. 훈련이 종료됩니다.]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했다면, 알프레드를 이길 수 있었다.’

 말이 그녀의 귓가에 망령처럼 맴돌고 있었다.

자신의 총력을 쏟아부었음에도 알프레드에게 승리하지 못했다는상실감도 상실감이지만, 자신의 역린과도 같은 서드 어빌리티에 대한 이야기가 대면도 해본 적 없는, 덜떨어져 보이는 남성의 입에서 나온 것은  자극이었다.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큰 결점은 아니다.

아이나는 서드 어빌리티에 대부분의 강함이 집중되어있는 제롬 같은 케이스도 아니거니와, 아직 서드 어빌리티를 각성하지 못했음에도 충분히 강한 천현우 같은 케이스도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퍼스트에서 서드로 갈수록  힘이 강력해지니, 서드를 사용할 줄 안다면명백히 더 나은 것은 사실이다.

단지, 서드는 강력한 만큼이나 정신력과 사상력의 소모가 심했기에, 그것을 각성했음에도 사용하지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아이나도 그러한 케이스였다.

작은 동물들에게 까지는 어떻게 사용할  있었지만, 사람에게는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 단계.

애초에 동년배들에비하면 가장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다 봐도 무방한 아이나가 고작 1초도 버티지 못하는 사상력이라고 하면, 무척이나 극심한 양의 정신력과사상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크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크게 자책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거냐고….”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낸다.

아무리 서드 어빌리티를 발동하고자 노력해보아도, 더미는  발자국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훈련실에 틀어박혀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하고자 애 쓴지 벌써 한나절 째다.

아침도 거르고 내내 훈련만 했던 그녀이기에, 제법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밥은 먹고 해야 되나.”

훈련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가는 길, 그녀는 혼자 어디론가 향하는 박성진을 보았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의 행적이 궁금했던 그녀는 박성진을 미행해 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정말 의외의 장소였다.

‘병동?’

박성진은 겉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멀쩡했다.

물론, 별것 아닌 상처를 가지고 수시로 병동에 들락거리는 일부 생도도 있었지만, 박성진은 그럴 법한 위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가 대단히 모범적인 생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살을 피우거나, 아카데미의 체제에 크게 반항하는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그런 면이 있었지만.

그렇게 박성진이 한동안 내부 병동에서 우왕좌왕하다 들른 곳은, 순환기내과였다.

순환기내과.

고혈압, 심부전, 협심증, 심근경색, 부정맥 등 전반적인 심장  혈관질환을 다루는 곳이다.

‘박성진에게 심장질환이 있었다고?’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입학할 자격은 충족했으나, 선천적인 심장질환으로 인하여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입학을 거부했다.

입학하지 못하는 동안 사상력 훈련을 꾸준히 하였고, 현재는 병마로부터 많이 호전되어, 입학시험에서 엄청난 점수를 받았고, 단번에 S클래스에 입학할  있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박성진이 늦은 시기에 입학했음에도 각성자 간의 대결에도 빠삭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렇다는 건, 나, 알프레드, 올리비에 같은 S클래스의 생도에 대해서도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대단한 녀석이다.

아무리 호전됐다지만,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격렬한 훈련은 분명히 심장에 무리가 갈 텐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는 녀석이었구나.

머릿속의 박성진에 대한 평가가 한층 나아졌다.

아직도 그를 증오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리고, 아이나의 그런 착각이 깊어지는 것을, 박성진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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