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피드백. (2)
모의 전투가 끝나고 점심 시간을 가진 뒤의 현재, 우리는 모두 강의실에 있다.
“기본적으로는 천현우의 전략이 구리다고 생각합니다. 올리비아가 방심만 하지 않았다면 이길 수 있었습니다.”
S클래스의 모두가 나를 째려본다.
오직 올리비아만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날 쳐다볼 따름이다.
“천현우의 전략에 대해선 칭찬할 게 없나? 하나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만, 올리비아가 경계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공격입니다.”
“방심한 틈을 노리는 것이 실전의 기본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았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공격을 시도한 천현우도 쓰러졌다는 게 중요하죠.”
“그게 무슨 소리지?”
“어차피 모의 전투가 아닌 현실이었다면, 그 공격이 실패하던, 성공하던 천현우는 출혈로 죽습니다. 이미 천현우는 쇼크 상태였으니까요. 그 공격을 시도하자마자 쓰러졌잖습니까. 비록 훈련 시스템에 의해 패배 처리는 올리비아가 먼저 당했다지만, 실제론 둘 다 죽습니다. 실패한 전략이라는 소리죠.”
빈센트가 인상을 찌푸린다.
조금 화가 난 것으로도 보인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타인을 지켜야 할 상황도 온다. 그런 과감한 결단을 내릴 정신도 생도가 챙겨야 할 덕목이다.”
“죽으면 아무 의미 없잖습니까. 살아남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건 지나치게 이기적인 생각이다. 자신의 목숨이 아깝다고 빌런을 살려 보내면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게 뻔하지 않나.”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고 해주시죠. 그리고, 저흰 이제 고작 열여섯 살인데 벌써부터 목숨 걸 생각을 해야 됩니까?”
“하아… 이런 놈이 선서문을 낭독한 우수 생도라니. S클래스는 참 희망적이구나.”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하지.
다른 놈의 목숨 따위 내 알 바가 아니다.
“좋다. 이건 견해 차이라 치고, 너가 천현우였다면 어떻게 대처했을 것인지 말해봐라.”
이건 예상치 못한 질문인데.
뭐라고 대답해야 좋지.
어차피 천현우가 이길 걸 알고 있었으니, 올리비아에 대한 대처법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전력으로 달려든다면 사상력을 선보이기도 전에 천현우는 원턴킬 나게 되니까.
“…저였다면, 무장을 대낫으로 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검술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고요.”
“그게 무슨 소리지?”
“저라면 무장을 총으로 교체하고, 뽑아낸 피로는 그저 올리비아를 쫓아다니게만 했을 겁니다.”
“대체 그걸로 어떻게 승기를 잡을 수 있는데?”
천현우가 나를 주시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대낫를 버릴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는 눈이다.
“철저히 올리비아를 원거리에서 괴롭히는 방향으로만 잡는 것이죠. 어검술은 신경 분배를 지나치게 많이 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전투 능력도 하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피는 딱히 공격수단으로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올리비아의 근처에 있기만 해도 압박을 줄 수 있으니까요. 공격은 총으로 하는 것이죠.”
“올리비아의 신체 능력을 감안한다면, 총은 아무 의미가 없을텐데?”
“상관없습니다. 저는 탈진패를 노리는 것이니까요. 저야 신체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자신이 없지만, 천현우는 올리비아 못지 않게 신체 능력은 좋으니까요. 어검술에 신경 분배를 하지 않는 상태라면 올리비아의 공격을 피할 만할 겁니다. 게다가 거치적거리는 대낫은 움직임도 방해하지만, 가벼운 권총은 기동성도 살릴 수 있습니다. 실탄보다 피해량은 낮지만 탄속은 훨씬 빠른 에너지탄을 사용하는 권총이라면 더욱 유리하겠죠.”
“계속 말해봐라.”
이래 가지곤 ‘미지의 사상력을 가진 루키’가 아닌 ‘세 치 혀 하나는 기가 막히게 놀리는 입전투 장인’의 영역에 먼저 도달할 것 같다.
괜히 천현우와 카타리나 앞에서 아는 척했나 싶기도 하다.
“천현우의 주된 전투 스타일이 근접전이고, 올리비아는 근접전을 강제하는 사상력을 가졌으니, 링이라는 조건을 배제하신 걸 텐데, 반대로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아무리 멀리서 견제만 해도 링 아웃에 대한 부담이 없죠. 올리비아도 사람인 이상, 회피만 한다면 결국에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엔, 교수님이 저번에 말한 ‘한껏 비열해져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죠.”
잔뜩 있는 척했지만, 전부 올리비아가 봐주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냥 지어낸 이야기다.
어차피 이 문제는 딱히 정해진 답이 없다.
결과 자체가 올리비아의 마음 먹기에 달린 승부인데, 어떻게 이기고 지던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S클래스의 전원은 조금 감명받은 눈치다.
“오, 성진이… 평소랑 다르게 똑똑해 보여.”
“완전무결한 승리가 아닌, 실리를 챙기는 승리라… 나는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방식의 전투다. 하지만 그 방식이 나빠 보이진 않는다.”
“아가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놀리네.”
빈센트는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가볍게 박수를 친다.
“좋다. 내가 말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군. 나의 성격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좋은 방식의 접근이다.”
휴, 다행이군.
괜한 트집이라도 잡히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다들 내 대답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나머지는 자습하도록 해라. 훈련실에 가던, 강의실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던, 너희들 자유다.”
““네.””
훈련이나 하러 가야겠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될 테니, 짧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실력을 향상시켜 둬야 한다.
* * *
[승자, 박성진. 훈련이 종료됩니다.]
나의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것은 보이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B레벨 더미와의 전투에서도 대부분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었지만, S클래스의 생도와 비교하면 약해 빠진 수준이다.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구상만 해두었던 기술들을 시도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우선, 설정을 일반 사상력 훈련으로 변경했다.
전투 오브젝트는 소환하지 않고, 몇 개의 나무와 벽들만 훈련실에 소환한 뒤, 사상력을 개방한다.
몸에서 열 가닥 이상의 실이 흘러나온다.
고작 여섯 가닥 뽑고 좋아하던 시절에 비하면 한참 많이 발전했군.
가장 기본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주변의 지형지물에 설치한 실을 잡고 점프하여, 다음 실로 이동하는, 줄타기 훈련.
흔히 영상 매체에서 원숭이들이 덩굴을 잡고 다른 나무로 이동하는 그것과 같다.
실에서 실로 이동하는 것은 나름 익숙해져 있었기에, 나는 여기서 한층 더 어려운 기술들을 시도해보려 했다.
첫 번째는, 그래플링.
이미 몇 번 선보인 적이 있는 기술이지만, 아직 복합적인 지형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는 와이어 액션 정도로 숙련되진 않았다.
실을 벽에 걸고, 대각선 방향으로 달려 나가며 고속으로 축소 시킨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 몇 번이고 경험 했던 것이지만 아직은 영 어색하다.
호선을 이루며 유하게 벽을 넘어간다.
발이 땅에 딛기 전에, 다음 벽에 실을 걸고 다시 한번 실을 축소 시킨다.
관성을 얻은 몸이 튕겨 나가듯이 앞으로 전진한다.
나아가는 쪽의 역방향에 실을 걸어 몸에 제동을 걸고, 매끄러운 착지를 시도한다.
성공.
지금까지 했던 동작을 몸에 새기며, 같은 훈련을 계속한다.
대략 한 시간 정도를 그래플링 기술에 투자했으니 이번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두 번째는, 진동 감지.
아직까진 은신 계통의 각성자와 전투한 적이 없으니, 쓸 일이 없었지만, 트리니티 아카데미 내외를 가리지 않고 꽤 많은 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빈센트가 강조한, ‘초견에 적을 제압하는데 아주 뛰어난 대인전 특화 각성자’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 은신을 감지할 방도가 없으면 아무리 체급 차이가 많이 나도 대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동 감지는 매우 유용한 능력에 속했다.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은신 계열의 능력자를 찾아낼 수 있다는 소리니까.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아직은 모의 전투를 바닐라로만 진행하고 있지만, 색적이 까다로운 밀림이나, 번화가 등의 도심지를 기반으로 하는 전투 환경을 조성한다면, 진동 감지는 필히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환경 설정, 가랑비.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실에 물방울이 걸린다.
나는 최대한 그것을 인지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처음인 만큼 쉽지는 않다.
이 세계의 월등한 신체 능력으로도 이건 쉽사리 감을 잡기 어려웠다.
아무리 감각이 좋아졌다 한들 실에 걸리는 가랑비의 진동을 느낀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진동 감지는 익혀두면 두고두고 오래 써먹을 능력이니, 훈련을 멈추진 않는다.
“…못해 먹겠네.”
대략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집중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옷에 녹아드는 홀로그램 비의 축축함 뿐이었다.
이건 하루 이틀 연습해선 안 될 일인 것 같다.
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초인들이나 뮤턴트는 공기의 흐름도 감지하던데, 고작 실낱에 걸리는 물방울조차 이렇게 감지하기 힘들어선,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인 건가 싶기도 하다.
얼른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자.
세 번째 훈련은 접지.
접지는 단순히 벽에 달라붙는 기술이지만, 의외로 굉장히 마스터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충분한 마찰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균형을 잃지 않는, 좋은 자세를 잡아야만 완벽한 접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파쿠르의 클라이밍 기술, 암벽 등반의 기술들만 해도 꽤 많고, 이 기술들은 상호 연계도 가능하다는 걸 감안하면, 모두 금세 익힐 수 있는 테크닉들은 아니다.
일단은 그래플링으로 많은 지물 중 하나에 올라선다.
그리고 점프하여, 다른 벽에 찰싹 달라붙는다.
두 발은 벽에 딱 붙여 접지력을 더하고, 양쪽 팔로는 벽 모서리를 붙잡는다.
이것이 파쿠르 클라이밍 기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캣 립이다.
캣 립 자세에서 벽을 찬 뒤, 다리의 각력을 이용해 바닥으로 강하.
자세는 당연히 낙하하는 힘을 실어 공격할 수 있게끔 한쪽 다리로 발차기를 하는 자세로 강하한다.
기습 공격으론 나쁘지 않겠군.
공격하는 척 페인트를 넣고 줄타기와 연계하여 포지션을 다시 잡는 방식으로 사용해도 괜찮을 듯하다.
이번에는 캣 립에서 바닥으로 강하하는 것이 아닌, 허공으로 도약.
그리고, 다음 벽으로 옮겨 간다.
이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것이 캣 립의 연계 기술, 캣 투 캣.
당연히 훈련실의 녹화를 통해 자세를 꼼꼼히 체크해 가며 차근차근 교정해 나간다.
다행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자세가 엉망이진 않았기에 큰 교정은 필요가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시도할 훈련은 곡예.
전투에서 곡예가 웬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이라는 오브젝트를 최대한 유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외줄타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곡예 기술을 익혀둬야만 했다.
자, 이렇게 사방에 실을 설치하고, 과감하게 실 위로 점프하여, 일어서는 것을 시도한다.
털썩.
“씨발… 존나 어렵네.”
훈련실의 녹화 기기엔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땅으로 처박히는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곡예사들은 이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하는 거야.
나중엔 실 위에서 스윙, 틀기, 비행 동작, 회전등도 할 줄 알아야 할 텐데.
일단은 계속 훈련에 전념한다.
“뒤지게 힘드네….”
훈련의 결과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은 자세로 벽에 접지할 수 있게 되었고, 줄 위에서 걷는 것까진 불가능했지만, 서서 버티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이대로 템포를 쭉 유지하면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에서 좋은 곡예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생도들은 훈련장을 떠나고 없었다.
더 훈련하고 싶지만, 시간이 꽤 늦었으니 슬슬 훈련을 그만두고 기숙사로 돌아가야겠다.
여느 때처럼, 기숙사의 침대는 편안하게 나를 꿈나라로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