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피드백. (1)
빈센트는 뒷짐을 지고 강의실 내부를 빙빙 돌고 있었다.
강의실은 조용하다.
어제 알프레드와 아이나의 모의 전투를 보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록 수석에 도달하진 못했다고 하나, 어쨌거나 수석에 준하는 자들의 전투다.
그들 바로 다음으로 지명된다는 것은, 그들과 비교될 게 뻔하다는 말이다.
부담되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 우리들의 견본이 되어줄 모의 전투 대상자는 내가 지명하도록 하겠다. 천현우, 올리비에 테이셰이라.”
“네.”
“어라, 전가요? 현우랑 하면 제가 힘들지 않을까요?”
웃기시네. 진짜 힘숨찐 주제.
올리비에는 사실 빈센트를 제외한 이 S클래스 누구보다도 강하다.
아니, 제롬보다도 강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진짜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
괜한 타인의 기대를 사기 싫다나.
그래서 오늘 경기도 일부러 패배한다.
“그리고, 어제는 내가 주로 피드백을 해줬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너희들의 주도하에 피드백을 해라. 매일 한 명의 대표가 나서서 자신의 생각대로 전투를 평가해라. 그리고 피드백을 다 들으면 나는 그 피드백에 대한 평가를 해주겠다. 이 사람의 피드백이 궁금하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봐라.”
“박성진입니다.”
“박성진이죠.”
카타리나와 현우다.
어제 내 피드백을 들은 것이 제법 감명 깊었나 보다.
그래, 뭐 직접 전투를 하는 것보단 차라리 피드백을 하는 게 낫지.
“하지만 박성진은 올해 갓 입학한 신입생 아닌가? 제대로 된 피드백을 못할 텐데?”
“얘 피드백 잘해요.”
“아닙니다. 박성진은 훌륭한 분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뭐… 좋다. 박성진. 네가 오늘은 대표로 나서서 피드백을 해라.”
귀찮게 됐네.
올리비에는 어차피 힘 빼고 싸울 텐데.
거기다 대고 ‘올리비에가 대충 싸워서 졌습니다. 진심으로 싸웠으면 천현우 따윈 껌입니다.’라고 폭로해버릴 수도 없고.
적당히 경기 내용만 보고 분석을 해야겠군.
“그럼 사람도 다 정했으니 훈련실로 가자.”
““네.””
* * *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천현우, 올리비에 테이셰이라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오늘도 설정은 완전히 바닐라다. 대신 어제와 달리 데스 링이나 링 아웃은 없다.”
“알겠습니다.”
“음, 그럼 제가 불리한데… 어쩔 수 없죠.”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알프레드와 아이나만 아니면 다 괜찮다고 말한 어제와는 달리, 천현우는 다소 긴장된 얼굴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올리비에는 불리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듯, 평소처럼 요염한 눈웃음을 흘리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을 뿐이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고레벨 각성자들은 무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어차피 사상력을 사용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라서다.
하지만 천현우는 독특하게도 대낫이라는, 중2병스러운 무기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그의 사상력 중 두 가지가 공격용이 아닌, 보조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하필이면 주 무장이 대낫인지는 알 수 없다.
작가가 천현우를 처음 설정할 때 중2병으로 디자인해서겠지 뭐.
“큿!”
천현우는 낫으로 자신의 팔뚝을 한 번 크게 벤다.
어차피 모의 전투니, 그가 실제로 상처입은 것은 아니지만, 왜 굳이 모의 전투에서 불리하게 자해를 하는가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세컨드 어빌리티가 피를 지배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타인의 몸에서 피를 뽑아내면 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아직은 그의 사용이 미숙해 체내에 있는 피까지 자유롭게 다루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상처를 입은 상태거나, 타인이 상처를 입은 상태거나, 둘 중 하나여야 것이다.
뭐, 전쟁통엔 아주 강력한 사상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변에 널린 게 피니까.
“어떻게 생각하나. 박성진.”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평가를 원하는 빈센트다.
거 되게 귀찮게 하시네.
“아직은 뭐 볼 게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올리비에의 능력이 교수님께서 강조하신 선공권에 있어서는 매우 좋지 않아 올리비에의 약불리를 점치는 사람도 많겠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어째서지?”
“천현우는 기본적으로 주변에 피가 있어야 제 힘을 발휘하는 각성자입니다. 그렇다고 충분한 피를 확보할 만큼 자신에게 부하를 걸자니, 한 번의 공격만 허용해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결국 천현우도 근접전을 해야만 하는데, 올리비에의 사상력은 근접전을 선호하는 각성자에겐 천적이나 다름없죠. 올리비에도 할만한 것으로 보입니다. 뭐 천현우가 참을성 있게 철저히 적은 양의 피로 올리비에를 괴롭힐 수만 있다면야 천현우가 유리하겠지만요.”
“나쁘지 않아. 타인의 사상력이 뭔지에 대해서도 나름 빠삭하게 분석해왔군. 고등부 입학이라더니, 생각보다 괜찮은 분석력을 가졌네. 카타리나나 천현우가 너를 추천할 만하다.”
“고작 이 정도로 뭘요.”
천현우가 만들어낸 피웅덩이는 공중으로 떠올라, 검의 형상을 취한다.
이것이 천현우의 기본 전략, 어검술을 통한 양동작전이다.
몸으로는 전투를 하고, 몸을 상대하면서 무방비해지는 배후는 선혈의 어검으로 공격하겠다는, 욕심쟁이나 다름없는 전략인데, 이는 실제로 선보이기에는 매우 어려운 전략이다.
상대의 배후라는 소리는 곧, 천현우의 시야에서도 사각이라는 뜻.
충분히 위협이 될 공격을 가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각의 피를 컨트롤한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천현우는 머리가 아파왔다.
올리비에는 기본적으로 퍼스트 어빌리티, ‘마음을 읽는 눈’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어디로 회피할지, 회피를 하기는 할 것인지 등등 기본적인 행동에 대한 의사 자체가 없었다.
그것은 천현우 자신의 공격은 올리비에에게 의식을 할 가치도 없는 공격이라는 말이 되었기에, 더욱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그래서 그는 올리비에와의 전투에서 퍼스트 어빌리티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상력의 낭비니까.
“스읍….”
올리비에는 천현우의 노림수가 다 보인다는 듯, 체조 선수를 연상케 하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천현우와 피, 양쪽의 공세를 모두 피하며 빈틈을 노린다.
다들 넋을 잃고 올리비에의 동작을 바라본다.
올리비에가 선보인 그 몸짓은, 관중의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음과 동시에, 재미있게도 훈련실의 관중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이것은 옳고 그르다, 좋고 나쁘다의 이분법적 평가가 아니었다.
분명히 그녀의 움직임은 칭찬받아 마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중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게 된 까닭은, 그 관중들이 여성과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완벽에 가까운 회피를 선보인 것에 대단함을 보내는 여성 관중.
그 회피를 보여준 주체가 히스패닉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피부색을 가진데 더해 뇌쇄적이고 색기 넘치는 몸매의 소유자인 올리비에라는 인간인 것에 대단함을 보내는 남성 관중.
물론 나도 그 남성 관중 중 하나다.
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정신차려! 박성진!
아, 다행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나 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제임스와 제이드를 포함한 훈련장을 이용 중인 다른 생도들도 대놓고 홀딱 빠진 표정이다.
그 알프레드조차 아닌 척하지만 흘깃흘깃 올리비에의 골반과 가슴골에 눈이 가고 있었으니, 이는 남성의 본능으로서 지당한 행위라고 판명되었다. 땅땅.
빈센트는 어땠냐고? 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자.
당연하게도, 아이나, 카타리나, 베아트릭스, 백성연은 그런 남자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때였다.
천현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거리를 좁힌 올리비에가 천현우의 명치를 강타한다.
“박성진.”
“올리비에가 유리해졌군요.”
올리비에는 듀얼 어빌리티의 소유자인 베아트릭스와 비슷한, 싱글 어빌리티의 소유자다.
그녀의 싱글 어빌리티는 저주의 손길.
올리비에의 신체적 접촉을 허용할 때마다, 이 저주는 점차 강해진다.
그리고 지금 천현우는 한 번의 접촉을 허용했다.
첫 번째 저주인 만큼, 그 저주는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제롬의 퍼스트 어빌리티와 동일한, 신체 능력의 전반적인 저하.
다만 제롬은 피해만 가하면 되고, 올리비에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하위 호환으로 볼 수 있겠다.
저주에 걸린 천현우의 몸이 눈에 띄게 둔해진다.
이대로는 가망이 없다고 느꼈는지, 천현우는 상처를 입지 않은 반대편 팔뚝에도 낫으로 상처를 만든다.
상처에서 쏟아지는 피는 검으로 변해 올리비에를 향해 쇄도한다.
처음에는 기민한 몸놀림으로 곧잘 회피하던 올리비에였지만, 검의 개수가 곱절로 늘어나니, 어느새 올리비에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가 생겨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생채기에서 흘러나온 피도 곧 새로운 검이 되어 공격에 합류한다,
“천현우의 대처가 빨랐군요.”
“그래. 비록 선공을 내주긴 했다만, 좋은 대처였어.”
올리비에는 척 봐도 매우 좋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
어지럽게 휘날리는 검격들로 인해 이젠 처음의 속도를 잃고 굼뜬 동작으로 휘두르는 천현우의 낫도 피하기 힘들어 보였다.
“음, 어떻게 해야 할까.”
올리비에는 보기엔 수세에 놓여있는 것 같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달랐다.
이런 장난감 칼같은 혈검 따윈 얼마든지 무시하고 천현우를 두들겨 팰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적당히 중위권만 유지하면 됐다.
여기서 항복을 한다 해도 이미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천현우가 상대였던 만큼, 딱히 자신의 이름에 크게 흠집이 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항복을 하자니, 그것은 그것대로 그녀의 성에 차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천현우를 찍어 누른다면, 자신을 봐주고 있었다는 것을 안 천현우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낼 게 뻔했고,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지자니 항복을 하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즉, 그녀는 적당히 긴장감 있게 주고 받으면서 어느 정도의 존재감은 어필하면서 져야 하는, 접대 게임의 초고수가 되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평범하게 지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네.”
올리비에는 조금 속도를 올린다.
신중하게 날아드는 검을 피하며 천천히 천현우에게 근접한다.
천현우는 두 번째 접촉만큼은 절대 허용하면 안된다는 듯, 필사적으로 대낫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렇게 천현우의 일곱 번째 종베기를 회피한 올리비에는 땅에 내려 찍힌 낫을 붙잡고, 카포에이라를 연상케 하는 절묘한 동작으로 올리비에의 발등이 천현우의 관자놀이를 가격한다.
그녀의 몸짓은 무술가의 카포에이라라기 보단, 숙련된 댄서의 봉춤에 가까워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공격은 클린 히트했다.
“아주 깔끔한 동작이었습니다. 게다가 이걸로 승부는 올리비에 쪽이 아주 유리해졌군요.”
“그래, 이 정도가 되면 더 이상 길게 말할 것도 없어지지.”
고작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그야, 올리비에의 사상력인 저주의 손길의 진가는 두 번째 접촉에서부터 시작이니까.
훈련실 내부에 공간의 균열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생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시작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정벌레의 크기를 키워 놓은 것 같이 생긴 생물이다.
딱정벌레들은 즉시 천현우를 향해 돌진한다.
예리한 큰 턱을 딱딱거리며.
그것들은 천현우에 일격에 즉사할 정도로 보잘 것없는 미물에 불과하다지만, 그 숫자가 점진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올리비에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은 어언간 망각하고 혈검들을 회수하여 소환수를 막기에 급급해진다.
천현우의 주변엔 벌레의 시체들이 수북히 쌓여가고 있었다.
벌레들의 행진은 차츰 끝을 보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조에 불과하다는 양, 밀려드는 벌레의 파도가 끝나자, 균열에선 새로운 생물들이 계속 생성되고 있었다.
“용케 막아냈지만, 공격할 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저기선 어떻게 해야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글쎄요. 기본적으로 저 딱정벌레들이 피아식별도 가능하고, 올리비에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것 같기는 한다지만, 천현우가 올리비에와 완전히 밀착해서 싸운다면 올리비에도 딱정벌레의 공세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니, 어검술로 얻는 이득을 포기하고 초 근접전을 유도하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녀도 딱정벌레의 공세를 어느정도 물릴 테니까요.”
“그래도 피해는 계속 누적될 텐데, 그것은 어떻게 할 셈이지?”
“어차피, 어검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피는 무용지물이 되겠죠. 게다가 딱정벌레가 입히는 상처는 전부 자상이니, 피를 계속 체내로 수혈하여 체력을 회복한다면 조금은 버틸 만할 겁니다.”
“샌님인지 알았더니, 전투를 많이 해본 것처럼 말하네. 평소에 다른 사람의 모의전투를 자주 관찰하나 보지?”
“아뇨. 그냥 제 감입니다.”
우리는 느긋하게 그들을 관찰할 뿐이지만, 훈련실 내부는 피 말리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균열에서 나타난 두 번째 생물은 도마뱀.
애완동물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 게코도마뱀을 닮은 생물체들은, 혹자가 보기엔 귀여워 보일 수도 있는 외모였지만, 그것들은 결코 귀여운 도마뱀 따위가 아닌, 철저히 올리비에의 명에 복종하는 위협적인 무기들이었다.
그 이유로는 그것들이 치명적인 자폭 공격을 한다는 것.
딱정벌레에 비해 훨씬 느릿한 몸짓으로 천현우에게 접근하지만, 그것을 함부로 나서서 제거하긴 어렵다.
이 귀엽고 치명적인 생물 병기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자극이 가해지는 순간 강력한 산성 폭발을 유발하는 화학 물질이 몸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접촉을 허용한 결과다.
그녀의 사상력, 저주의 손길은 두 번째 접촉부터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괴생물체들을 소환한다.
그 생물들은 끝없이 몰아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강해지기까지 하니, 사실상 두 번째 접촉을 허용하는 순간부터는 승부가 정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현우는 극한의 어검술을 선보이며 최대한 이 끔찍한 생물들이 달라붙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으나, 기세는 이미 올리비에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천현우는 가까스로 두 번째 파도, 자폭 도마뱀의 행군를 모두 막아냈다.
그의 낫은 산성 물질에 모조리 부식되어 적을 베어낼 날조차 남아있지 않았지만.
천현우는 쓰게 웃음 짓는다.
항복 선언을 하려는 건가 싶은 찰나, 천현우는 자신의 가슴께에 깊숙이 낫을 꽂아 넣고는, 이미 낫이라 볼 수 없는 그것을 집어 던진다.
혹시 피 분수라도 예상했는가?
그런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에선 피 분수 따윈 볼 수 없다.
그저, 역류하는 수챗구멍처럼, 울컥울컥 피가 솟아 나올 뿐이다.
피는 흔히 생각하는 비정형 괴물, 슬라임처럼 바닥에서 꾸물거린다.
그리고 그 피는 이내, 마치 제 할 일을 찾았다는 것처럼, 올리비에를 향해 세차게 전진한다.
균열에선 계속 새로운 생물들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천현우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접근하기 전에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였다.
피, 그것은 마땅히 어떠한 형상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때로는 맹렬한 사냥개처럼 물어뜯고, 때로는 헤엄치는 고래처럼 솟구치며, 때로는 교활한 승냥이처럼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천현우의 눈을 보니 이미 지나치게 많은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 제정신을 유지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찌 됐든 그는 아직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지금이다.’
사실, 천현우는 상처에서 떨어지는 피를 전부 공격하는데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는 몰래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량의 피를 따로 빼두어 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빼돌린 피는 지금 딱 한 번의 기습을 시도할 정도의 양이 되었다.
올리비에의 소환수들이 천현우에 몸에 닿기 일보 직전.
[승자, 천현우. 훈련이 종료됩니다.]
피의 가시가 올리비에의 미간을 꿰뚫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