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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아이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2) (11/173)



〈 11화 〉아이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2)

그렇게, 오후 수업은 아이나와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알프레드와 아이나의 모의 전투를 열심히 분석하는 것으로 끝났다.

빈센트는 아이나에게 나름 열심히 위로의 피드백을 해주었으나, 이미 멘탈이 갈려버린 아이나의 귀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현재, S클래스엔 나와 아이나뿐이다.

그녀에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진작에 강의실을 모두 떠난 와중에도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전생에서도 여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내가 무슨 제대로  말을 해줄  있겠느냐만은.

“저기, 아이나?”
“…”
“있잖아. 왜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하지 않은 거야?”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눈에는 불꽃이 일고 있다.

나를 찢어 죽이겠다는 강한 살기가 담긴 눈으로 날 노려본다.

“네가 뭘 알아.”
“너의 서드 어빌리티, 정신 지배는 아주 강력한 사상력이야. 그런데 왜 그걸 쓰지 않은 거야?”
“네가 뭘 아느냐고!”
“나는 그냥…”

퍽.

나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뭔 여자애가 주먹이 이렇게 맵냐.

“그래. 너도 내가 서드 어빌리티조차 쓰지 못하는 반푼이라고 비웃으려고 그러는 거야? 맞아.  서드 어빌리티도 못 써. 하지만 난 그딴 것 없이도 미츠루 가문의 차기 당주 자리까지 올라섰어!”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소리 지른다.

“너도, 가문의 사람들도, 교수들도, 알프레드도, 내가 지금까지 어떤 피나는 노력을 해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고작 서드 어빌리티 하나 쓰지 못한다고 날 이렇게 무시해? 감히 날?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고! 어?”
“미안해.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그럴 의도가 아니면 뭔데? 날 놀리고 싶었던 거야? 미래에서 내가 알프레드한테 처참하게 깨지는 걸 보고 왔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기지 못한다는  뻔히 알고 있었을 테니까.”

나는 여기서, 그녀에게 한가지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나는 몰랐다.

이 거짓말이 그녀의 미래를 그렇게 크게 바꿀 것이라는 걸.

“그래, 그 잘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다음에도 누가 이길지는 알고 있겠네? 왜? 알프레드라고 말해보라고! 이번에도 내가 지는 걸 두 번이나 봤으…”
“아니, 내가 본 미래는 네가 승리하는 미래였어”
“…뭐?”
“내가 본 미래는, 알프레드가 너를 향해 최후의 전격을 날리려는 순간, 서드 어빌리티인 정신 지배를 발동시켜, 알프레드를 링 아웃시켜 승리하는 미래였어.”
“…거짓말하지 마.”
“정말이야.”

여기서 천현우한테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해보자고 라도 하면 진짜 큰 낭패인데.

제발 그러지 않길 빌어야지.

난 아이나가 무섭거든.

“네가 본 미래에선, 내가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했다고?”
“맞아.”
“너, 나 좋아하냐?”
“…뭐?”

그녀가 첫눈에 반할 정도로 미인인 건 사실이지만,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뭐랄까,  카타리나 같은 여자가 좀 더 취향이거든.

“너, 나한테 첫눈에 반하기라도 해서, 그런 쓸데없는 거짓말로  위로해 주려는 거야? 집어치워! 네가 뭔데 날 동정해!”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꺼져, 내 눈앞에서 사라져.”
“기분 나빴으면 미안하다.”

아이나는 착잡해진다.

저 녀석이  미래에선, 내가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해서 이겼다고?

그리고, 그걸 나한테 굳이 전해주는 이유는?

…역시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어딘가 조용히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어.

* * *

현재, 내가 있는 곳은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스카이라운지다.

“괜한 참견을 했나.”

내가 눈치 없는 행동을 했단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가만히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저명한 철학자 볼테르 선생께서는 일찍이 ‘남자가 온갖 말을 다하여도 여자가 흘리는 한 방울의 눈물에는 당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참으로 옳다는  깨달은 순간이었다.

여태까지 스스로를 감정이 메마른 무딘 인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걸 보면 나도 생각 외로 참 무른 인간이다.

아이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고 있겠지.

앞으로 그녀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난 병신이다. 진짜.”
“맞아, 너 병신이야.”

아이나에게 괜한 소리를 한 나 자신을 자책하던 중, 천현우가 내 등짝을 탁 치며 나타난다.

얘도 스카이라운지에 자주 오네.

“천현우 넌 여기 왜 왔냐?”
“그냥…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라.”
“넌 무슨 일이라도 있냐?”
“일은 무슨… 그냥 앞으로 아카데미 생활이 걱정돼서.”

이 녀석, 말만 이렇게 하지. 사실은 다른 고민이 있는 게 틀림 없다.

천현우는 S클래스 입학 생도 중에서 성적 3위다.

사실상 탈 S클래스인 아이나와 알프레드를 제외하면 최강이고, 천현우 본인도 그걸 모르진 않는다.

“네가 고민할 게 뭐가 있냐?”
“빈센트 교수님 하는 거 보니까 고생  하겠다 싶어서.”

아아, 그런 이유였나. 그럴 수도 있지. 빈센트가 보통 교수는 아니니까.

“그러는 너는 여기 왜 있냐? 너야말로 무슨  있는 거 아니냐? 아까 지나가다가 강의실 보니까 강의 끝난 지 한참 됐는데도 아이나랑 같이 있던데, 아이나 좋아하냐?”
“뭔… 아이나 같은 명문가 자제분께서 나 같은 무근본이랑 어울리겠냐.”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논리적으로 반박할  없다.”
“이 자식이.”

천현우는 그 뒤론 별다른 추궁을 해오지 않았다.

얘도 눈치가 아예 없진 않구나.

그렇게 어제처럼 시원한 바닷바람 스치는 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감돌 때, 의외의 인물이 스카이라운지에 등장한다.

카타리나 벨랴예바다.

“너희도 이곳에 있었나?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는군.”
“안녕, 카타리나.”
“어서 와, 카타리나.”

카타리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잔 들고 우리 근처의 다른 벤치에 앉는다.

그러고 보니 카타리나는 대장부같은 성격에 반해 뜨거운 걸   먹는다는 설정이 있었지.

그녀는 벤치에 한쪽 팔을 걸치고 앉는다.

지금 놀라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한쪽 팔을 걸침으로써 강조되는 흉부가 대단하다.

그렇다고 그 자기 주장이 강한 가슴만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몸매도 굉장하다.

피트니스 모델처럼  전체에 윤곽이 두드러지는 근육, 183cm의 어지간한 남자보다 큰 키에서 나오는 비율과 기럭지, 그렇다고 마냥 늘씬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것이 실로 만화나 게임에 등장하는 여자들도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저기, 박성진.”
“어, 응?”
“이런 말하긴 부끄럽지만, 그렇게  놓고  바라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박성진 이 새끼, 여자면  좋아하는 거냐? 아깐 강의실에서 아이나 눈치만 계속 보더니.”

 말을 들은 카타리나의 표정이 썩어들어간다.

아오, 천현우 이놈은 진짜 도움이 안 되네.

나는 필사적으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니, 아까 빈센트 교수님한테 그렇게 심하게 당했는데 괜찮은가 싶어서.”
“그런 이유였나. 나는 괜찮다. 이 정도로 실력의 차이를 극심하게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처음엔 조금 낙담했지만, 더욱 정진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다.”

다행히 직선적인 성격의 카타리나는 내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 했다.

천현우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나저나, 박성진 너는 누굴 지명할 생각이냐.”
“뭐가?”
“빈센트 교수님의 강의에서 모의 전투를  때 말이다. 누굴 지명할 생각이냐.”
“글쎄…? 아마 백성연으로 하지 않을까 싶네.”

나는 백성연 이외엔 선택지가 없다.

S클래스에는 보이지 않는  3개의 갭이 존재한다.

9위 백성연에서 8위 베아트릭스로 넘어가는 갭.

6위 제임스 피츠제럴드에서 5위 올리비에 테이셰이라로 넘어가는 갭.

3위 천현우에서 2위 미츠루 아이나로 넘어가는, 3개의 갭이.

유감스럽지만 지금의 나는 그 S클래스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위치한 백성연 조차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다.

“왜 하필이면 백성연이지? 미래 예지처럼 훌륭한 사상력을 가지고 있다면 올리비에부턴 조금 힘들지 몰라도, 제임스나 제이드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나?”
“유감이지만 사상력을 각성한 지 얼마 안 돼서 사용이 미숙하거든. 나머지 사상력도 그다지 공격에 좋지는 않고.”
“흠, 자신감의 문제인가. 걱정하지 마라.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빈말이라도 응원 고맙다.”

아, 오늘 아이나 때문에 신경 쓰여서 훈련도 안 했네.

훈련은 하루도 거르면 안 되는데.

“우리도 클래스 톡 같은 거 만들까?”
“갑자기?”
“왜? 서로 연락할 수 있으면 편하지 않나? 어차피 클래스 인원도 교수님 포함해서 열한 명뿐인데.”
“난 아싸라 그런  안 익숙해.”
“맞다. 너 아싸지. 미안하다.”

이 말엔 전혀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원래 세계의 박성진이나, 이 세계의 박성진이나, 아싸인 것은 매한가지다.

나의 몸에 흐르는 이 천부적인 아싸의 피는 누구에게서 온 것일까.

위트있지만 가장의 무게를 견딜  아셨던 아버지, 때론 엄하셨지만 친절하고 사교적이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두 분에게서 온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일단 내일 교수님 오셨을  파자고 말이라도 해보자. 성진이 너도 일단은 들어와.”
“마음대로 해라.”
“그럼 트아카 앱에 내장된 트리니티 톡에 나 친구 추가 좀 해줘. 식별번호 35423로 입력하면 나올 거거든?”
“이거 맞냐?”
“맞아. 톡 아무거나 보내봐봐.”
“보냈어.”
“아니, 그냥 대충 아무거나 보내랬더니 병신이라고 보내고 있네. 진짜 답 없다.”

카타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

우리의 한심함을 비웃는 것인가?

그래도, 이렇게 한가롭게 학창 시절의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건 마냥 나쁘지만은 않네.

부디,  평화로운 시간이 오래갔으면 좋겠는데.

“근데, 오늘의 아이나는 평소보다 대단하지 않았나?”
“어, 마지막에 그림자가 훈련실 전체를 뒤덮었을 때는 무조건 아이나가 이긴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나도 알프레드가 서드 어빌리티를 쓰기 전에 확실히 끝낼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정말 조금 부족했던 탓에 져버렸지.”
“박성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아까 강의에서 피드백 시간엔 한마디도  하던데, S클래스 수준의 전투를 처음 눈앞에서 본 소감이라던가, 평가는?”
“아이나가 실수했어.”

카타리나와 천현우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마치, ‘어제 처음 입학한 주제 각성자의 전투에 대해 뭘 아느냐’라는 표정이다.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나는 좋은 판단이었다고 본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나가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지만,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아웃을 조금 더 전략적으로 활용했어야 해. 링은 단순히 횡방향으로만 좁아지지 않아. 높이도 줄어든다. 즉,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자동적으로 알프레드의 세컨드 어빌리티, 비행은 봉인된다.”

생각외로 자신의 의견을 술술 읊는 내 모습에 카타리나와 천현우는 조금 다시 봤다는 표정이다.

왜, 흔히 입스X, 입X 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가.

제대로 된 직장도 없던 나는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주로 히어로 영화를 보거나, 게임만 주야장천 해왔다.

그런 내게 각 사상력간의 비교는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캐릭을 가지고 싸우는 설정놀음이나 입으로 게임 캐릭 간의 상성을 따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론상으로야 못할 말이 없지.

“즉, 알프레드는 결국 땅으로 내려와야 해. 그런 점에서 아이나의 리포지셔닝까진 괜찮은 판단이었다. 아이나가 먼저 중앙을 선점하게 된다면 알프레드는 그 자리를 뺏으러 가야만 하니까. 하지만 거기서 초조함에 사로잡혀 암기를 전부 소진해 버린 것은 명백한 판단 미스야.  같았다면 중앙을 선점한 시점에서 어떻게든 알프레드의 공세를 버티고, 알프레드가 기동성을 상실하는 순간, 바로 비행이 봉인되는 순간에 암기를 활용하여  밖으로 밀어내는 전략을 사용했을 거다.”
“뭐냐.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 모의 전투 많이 봤냐?”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너에게 그런 재주가 있는 지는 몰랐는데, 의외로 세심한 분석력을 가지고 있었군.”
“별거 아냐.”

겜창에 십덕으로 살아온 게 도움이 되다니.

오래 살고  일이다.

“뭐, 아이나 이야기는 이쯤 하도록 하지. 오늘은 아쉽게 아이나가 졌지만, 다른 전투에선 아이나가 승리할 때도 많았다. 아직 기회는 많이 남아있어.”
“그래.”
“하, 느낌상 성적순으로 모의 전투를 할 거 같은데. 내일은 내 차롄가.”

그것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강의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시덥잖은 농담이나 자신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나는 적당히 전생의 기억을 살려 이곳의 세계에 끼워 맞춰 각색한 이야기를 했고, 그들도 별다른 의심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명의 밤이 깊어만 가고, 날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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