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아이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1)
빈센트는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훈련장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원래라면, 아카데미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샌드위치 가게의 샌드위치를 맛보고, 인적 드문 어딘가에서 조용히 낮잠이나 자는 것이 내 점심시간 이여야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S클래스의 생도들 사이에 부대껴서 평범한 학식을 먹고 있다.
…맛은 있네.
이렇게 된 이유는, 백성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백성연의 지시 아래, 반강제적으로 학생 식당에 모여 앞으로의 S클래스 생활에 대해 토의를 하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점심시간 계획이 있었겠지만, 빈센트식 막가파 수업에 충격을 받은 그녀가 S클래스 전원을 끌어모은 것이었다.
“괜찮아? 카타리나? 교수님도 너무하다. 아무리 모의 전투라지만 어떻게 학생을 서른몇 번 쓰러트릴 생각을 해.”
“나는 괜찮다. 백성연.”
“안 괜찮아 보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수업이었다.”
카타리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해탈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디 오후 수업의 희생자가 제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박성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음? 뭐가?”
지금까지 잠자코 백성연의 말을 듣기만 하고 있던 알프레드였다.
알프레드는 빈센트의 수업 방식을 제법 좋아하던 걸로 기억했는데, 이걸 왜 나보고 묻는 거지?
“빈센트 교수님의 수업 말이야. 어차피 미래를 보는 게 능력이라면, 굳이 신체 능력을 키울 필요도 없지 않아?”
“좋다고 보는데. 어차피 사상력은 항상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아무리 미래를 읽을 수 있다손 쳐도 상대방의 속도에 내 신체가 따라주지 못하면 결국 의미 없으니까.”
“그래? 의외군. 너라면 싫어할 줄 알았는데.”
“뭐, 내 사상력이랑은 다소 맞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취지는 좋다고 본다.”
식사를 끝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판을 반납 창구에 넣는다.
자리로 다시 돌아오니 예상대로 말을 하던 녀석만 말하고, 말 수가 적은 녀석들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백성연은 빈센트에게 훈련의 강도를 낮춰달라 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하고 있었고, 카타리나는 자신 때문에 그러는 거냐며 흥분한 백성연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빈센트 교수님이 마음에 드는데? 훈련은 그 정도는 해줘야지.”
“제이드 이 좆대가리 같은 놈아, 카타리나가 쪽도 못쓰고 개털리는데 뭔 훈련을 그 정도 해주네 마네 하고 있어. 내가 장담하는데 너였으면 200번 넘게 쓰러졌다.”
“어이, 알프레드한테 8초 컷 당한 놈.”
“이 새끼는 알프레드 만날 때마다 도망만 다니다가 뒤지는 게 일상이면서 8초 컷 가지고 난리 치네.”
제임스와 제이드는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인다.
대화가 계속되자, 백성연이 건의한 첫 대화의 주제였던 ‘빈센트의 훈련 강도를 낮추는 것을 건의하자’는 ‘빈센트가 좋은가, 나쁜가’로 변경되었고, 그것이 조금 더 진행되자 은근슬쩍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차츰 튀어나오더니, 이내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대화의 장이 되었다.
다들 그렇게 성립하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며 아무 말이나 내뱉는 상황이 계속되자, 아이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부른 거면, 부르지 마. 시간 아까워.”
백성연과 알프레드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붙잡아보려 했으나,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적당히 눈치를 봐서 자리를 뜨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가보련다. 어차피 나는 빈센트의 훈련이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사실 조금 졸렸거든.
S클래스 강의실로 돌아가 강의실 한구석에 엎드려 잠을 청한다.
그리고, 잠에 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 * *
[뎅- 뎅-]
시간은 몇 분밖에 흐른 거 같지 않은데, 어느새 오후 강의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잠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보니, S클래스의 생도들은 전원 자리에 앉아 강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오후 수업도 그렇게 하겠어?”
“모르지. 빈센트 그 교수 원래 또라이로 유명했다는데,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
“에휴, 뭐 이런 교수가 걸리냐.”
“야, 발소리 보니까 교수 왔나 보다.”
앞문이 열리고, 빈센트가 강의실로 들어온다.
“내가 점심시간 내내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손대중을 해도 아직 너희 수준엔 맞춰주기 어려울 거 같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한 달간의 유예 기간을 주마. 그동안 어떻게든 내가 말한 최소한의 조건, 어지간한 각성자는 맨몸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의 몸을 만들어 와라.”
“그럼 앞으로 한 달간의 강의는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요?”
“모의 전투를 한 뒤, 그 결과를 보고 피드백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할 것이다. 굳이 이 강의실 내의 사람과만 할 필요는 없고, 다른 클래스의 생도와 한 것을 녹화하여 가져와도 되고, 더미와 해도 상관없다.”
“그럼 당장 그렇게 시작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지금 바로 훈련실로 출발할 것이다. 혹시 영예로운 첫 피드백의 대상이 될 선발대는 있나? 가장 먼저 나오는 놈에겐 상대를 지명할 권리를 주겠다.”
싸늘하다.
이 강의실에서 가장 수준이 월등한 아이나나 알프레드조차 선뜻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별로 놀랍지는 않다.
괜히 나섰다가 지기라도 하면 개쪽이고, 설령 이긴다고 해도 상성이나 순위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로 고전이라도 했다간 그것대로 쪽팔린 일일 테니까.
그 순간, 아이나가 앞으로 나선다.
“할게요.”
“좋다. 지명하고 싶은 상대는 누구지?”
그녀는 주변을 쓱 훑는다.
그리고, 내 앞에서 시선이 멈춘다.
아, 제발. 그것만은 안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알프레드. 알프레드로 하겠습니다.”
다행이다. 그녀는 아직 나를 자신의 적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같다.
무시당하는 게 이렇게 기쁠 줄이야.
감사합니다. 아이나 선생님.
“좋다. 둘은 2인용 훈련실로 들어가라.”
알프레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훈련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뒤를 돌아 우리에게 따봉을 날렸다.
따봉질은 왜 하는 건데.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알프레드 아이스너, 미츠루 아이나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설정은 내가 하겠다. 마음 같아선 완전히 바닐라로 설정하고 싶지만, 둘다 원거리 견제에 능한 사상력을 가졌으니, 보는 사람이 지루해지기 쉽겠지. 링 아웃과 데스 링을 조건으로 넣겠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없어요.”
“좋다. 그럼 이대로 가도록 하지.”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이나와 알프레드가 각자의 훈련실의 반대편에 자리 잡는다.
흠, 내 기억으론 이 모의 전투에선 알프레드가 이긴다.
천현우랑 내기라도 할까.
“야, 천현우.”
“왜.”
“누가 이길지 내기 콜? 나는 ‘알프레드가 이긴다’에 100크레딧 걸게.”
“그딴 식이면 누가 받냐? 안 해.”
쳇, 안 속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알프레드는 세컨드 어빌리티를 사용하여 곧바로 하늘로 떠오른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제공권을 장악한다는 점에서 알프레드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위협이 된다.
그리고, 아이나도 그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다.
아이나는 옷 속에 숨겨둔 암기들을 꺼내 하늘의 알프레드를 향해 투척한다.
아이나의 세컨드 어빌리티는, 급소 자동 추적.
그렇기에 그녀가 던진 암기는 허공을 가르는 것이 아닌, 알프레드의 아킬레스건, 복부, 눈, 목 등 다양한 신체의 급소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알프레드와 아이나는 숱하게 겨뤄온 만큼, 날아드는 수많은 암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 아이나에게 접근한다.
아이나와 알프레드의 거리가 충분히 좁혀지는 순간 퍼스트 어빌리티, ‘전격’을 발동시킨다.
일반적인 번개의 속도는 초속 100,000km.
아무리 다카포 드림의 인간이 초월적으로 강하다곤 하나, 사상력을 발동하지 않고서는 절대 보고 피할 수 없는 속도다.
그렇기에, 아이나는 오직 감각에 의존하여 알프레드의 전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단 한 발의 전격도 허용하지 않는다.
훈련실 내부는 알프레드의 전격으로 인해 강렬한 섬광이 계속 번쩍인다.
대략 스무 번 정도 그 섬광이 지속될 쯤, 아이나의 몸에서 타르처럼 어둡고 끈적이는 칠흑의 액체가 폭발하듯 터져나와, 투명한 훈련실의 벽을 검게 물들인다.
그녀가 퍼스트 어빌리티, 그림자 지배를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더 이상 내부를 지켜볼 수 없는 상황.
모두가 훈련실의 내부의 상황에 주목하고 있을 때, 벽을 뒤덮어 버린 검은 액체- 그림자는 한 점에 모여들어 내부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점에 모여든 그림자는 곧 선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이 된 그림자는 한 점의 수묵화를 그리는 것처럼, 검은 묵을 들인 붓이 한지를 물들이듯, 아름답게 그 내부를 난도질한다.
“대단하네.”
“과연 미츠루 가의 차기 당주님이시다. 이건가?”
책에서 볼 때는 어느 정도인지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 그 위엄이 대단하다.
과연 이것이 S클래스의 진면목인가.
나는 얼마나 연습해야 저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내가 볼 때는 알프레드가 유리하다.”
“어째서입니까. 교수님.”
“링은 계속 좁아지는 중이다. 알프레드는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으니, 포지셔닝을 하기에 무척이나 수월하지만, 아이나는 그렇지 못하지. 아이나는 저 공세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면 알프레드에게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 그렇다고 공세를 멈추고 포지션을 다시 잡으려면 알프레드에게 주도권을 내줘야 한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주도권을 내줘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다. 조금씩 피해가 누적되는 중이라곤 하나, 녀석의 서드 어빌리티인 ‘불멸의 수은’을 발동하면 모든 체력을 회복할 수 있으니.”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교수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듯, 그저 잠시의 연출에 매료된 S클래스의 생도들과 달리, 빈센트는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은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알프레드의 몸엔 상처가 계속 생기는 중이었지만, 초조함이 얼굴에 묻어나는 것은 아이나다.
그 순간, 아이나는 공세를 멈추고 훈련실의 중앙 쪽으로 달려간다.
링을 보니, 링은 아이나의 거의 발뒤축까지 와있었다.
주도권을 포기하고 포지셔닝을 선택하다니.
서드 어빌리티를 믿는 건가?
아이나의 공세가 멈추자마자 시작된 것은 알프레드의 전격 세례였다.
아이나 또한 그림자를 방패막이 삼아 그의 전격을 받아내곤 있었으나, 점점 늘어나며 쇄도하는 전격의 양은 버거워 보인다.
“교수님의 말이 맞았네요. 아이나가 진 것 같습니다.”
“뭐, 승부는 모르는 거니까. 아직은 봐야 알겠지.”
‘여기서 져선 안돼.’
아이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옷 속에 숨겨둔 수십 개의 암기를 전부 꺼내 인간의 몸놀림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빠르고 유연하게 알프레드를 향해 투척한다.
알프레드는 일순 당황한 듯 보였지만, 강력한 전류를 몸 전체로 방출하여 모든 암기를 튕겨낸다.
‘알고 있었어. 이럴 것쯤은. 하지만 내가 노린 것은, 그게 아니야.’
소지한 모든 암기가 바닥나자, 아이나는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정좌한다.
보통이라면 다들 그것이 겸허히 패배를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성진과 아이나만은 그 상황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어. 하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해. 겉으로는 나를 깍듯이 모셨던 사람들이, 뒤에서는 서드 어빌리티 조차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반푼이 당주라며 날 모욕하던 그 순간을.’
정좌한 그녀를 중심으로, 그림자가 드넓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훈련실 바닥 전체를 뒤덮었다.
‘그때 깨달았어. 어려서부터 가문으로부터 들어온 불세출의 천재니 뭐니 하는 소리들은 전부 거짓말이라는 걸. 그것들은 전부 나로서의 나, 미츠루 아이나가 아닌 미츠루 가의 차기 당주에게 하는 입 발린 소리일 뿐이라는 걸. 결국 현실의 나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정신을 가진 소녀일 뿐이라는 걸. 그때 전부 깨달아 버렸어.’
그럼에도, 공격은 진행되지 않는다.
그림자는 그녀의 심상 속을 대변하듯, 곧 폭발할 화산처럼 바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 멀리 도망쳤어. 미츠루 가의 차기 당주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도, 해낼 수 없었던 것. 나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서드 어빌리티, 정신 지배를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말야.’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한 알프레드는 아이나를 일격에 끝내기 위해 전력을 잔뜩 모으고 있었다.
그 상황에도 아이나는 묵묵히 정좌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아무리 연습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서드 어빌리티를 사용한다는 것은 내게 불가능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곳, 고등부 S클래스에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만 해. 서드 어빌리티 따위 사용하지 않아도 알프레드, 제롬을 꺾을 수 있다는 걸. 나는 가장 우수한 생도라는 걸. 미츠루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차기 당주에 걸맞은 그릇이라는 걸.’
아이나는 눈을 뜬다.
자신을 향해 전격을 날리는 알프레드의 정면을 향해 응시한다.
그리고, 훈련실이라는, 외부와는 분리된 알프레드와 아이나만의 세계에 밤이 찾아왔다.
아니, 그녀가 밤을 불러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훈련실 내부는 폭풍이 찾아온 바다를 연상케 했다.
그림자의 파도가 잔뜩 들이치며 이리저리 넘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실을 가득 채운 그 어둠이 썰물처럼 차츰 빠져나간다.
알프레드가 죽기 직전의 몰골을 한 채 어둠을 헤집고 나온다.
“멋진 승부였다. 아이나. 역시 너는 내가 인정한 라이벌답게 항상 나를 놀라게 해. ”
알프레드는 서드 어빌리티, 불멸의 수은을 발동한다.
그러자 훈련장 내부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폭압이 알프레드로부터 방출된다.
그리고, 알프레드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몸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도 실패했나. 과연 나는, 미츠루 가의 당주 자격이 있기는 한 것인가….’
알프레드는 전기로 만들어낸 츠바이헨더로, 아이나의 목을 내려친다.
그때의 아이나는, 몹시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나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떨어지는 것을 본 사람은, 나뿐이었을 것이다.
[승자, 알프레드 아이스너. 훈련이 종료됩니다.]
미래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나의 슬픈 그 얼굴을 기억하면, 미래를 조금 바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