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빈센트식 강의.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이틀째 아침.
S클래스의 기숙사는 전에 살던 원룸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시설이 훌륭했다.
내가 매일 잠들었던 싸구려 매트리스에선 다시 잠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꽤 이른 아침이었지만, 잠자리를 정돈하고, 나갈 채비를 마친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첫 수업부터 지각할 수는 없지.
그리고, 기숙사에서 나와 처음 마주친 것은, 제일 보기 싫은 얼굴이었다.
“안녕. 박성진.”
“안녕 못하다.”
“아, 어제 일 가지고 그러냐?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속 좁네, 이거.”
“너 때문에 사상력 하나 들켰잖아.”
사실 들키지도 않았지만.
“야, 너 빼고우리는 각자 사상력 다 알아. 네가 이상한 거야, 임마.”
“아, 몰라. 너 때문에 들켰으니까 책임져.”
“진짜 미친놈이네.”
“어, 나 미쳤다. 신님, 제발 천현우가 고통스럽게 죽게 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천현우는 상대하기 지쳤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히 내가 다카포 드림에서 본 천현우는 정의롭고, 열정 넘치는 착한 소년이었는데, 어째서 실물은 이렇게 다른 것인가.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랑 다를 게 없네.
하긴, 거기에 장단 맞추고 노는 나도 수준이 다를 건 없구나.
“야, 박성진.”
“왜.”
“너 미래 볼 수 있다며.”
“엉.”
“나는… 어떻게 죽는지 알 수 있냐?”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설마 이 녀석도 미래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있나?
그럴 리는 없겠지.
“그딴 거 알고 싶지 않아.”
“그래.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대답은그렇게 했지만, 천현우는 묘하게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제까지 나를 그렇게 골려대던천현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강의실에 도착할 때까진 우리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 뿐이었다.
“좋은 아침이다. 천현우.”
“좋은 아침. 카타리나.”
강의실에는 사람이 있었다.
카타리나 벨랴예바와 미츠루 아이나.
성실하고 자기 계발에 충실하다는 설정의 둘은 역시 가장 먼저 강의실에 도착한 듯했다.
성실함으로는 뒤지지 않는 알프레드가 없었던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그렇게생각하던 찰나, 곧바로 알프레드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강의실의 사람이 한두 명씩 불더니, 베아트릭스를 마지막으로 S클래스 강의실의 모든 사람이 다 모였다.
담당 교수인 빈센트를 제외하면 말이다.
“교수님은 어디 가셨대?”
“알아서 오시겠지.”
“첫날부터 담당 교수가 지각을 하다니,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미래는 밝다! 자랑스럽다! 고등부 S클래스!”
“좀 닥쳐. 제임스”
그렇게 다들 빈센트의 행방을 찾고 있을 무렵, 강의실 앞문이 열리고, 백발의 남자가 느긋하게 강의실로 들어온다.
“안녕, 얘들아. 왜 늦었냐고 묻지 마라. 방금 오스카님한테 개털리고 와서 기분 안 좋으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담당 교수, 빈센트?
제임스, 넌 옳았어.
“자, 그럼 수업을 시작하자. 첫날이니 가볍게 시작하마.”
그렇게 말하곤, 빈센트는 보드 마커를 집어 들고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우리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일반적인 것을 가르치는 교육시설이 아니다. 사상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지. 자, 여기 적힌 게 무엇으로 보이나?”
“글씨요.”
제임스가 날린 시시한 드립에, 몇 명이 웃었다.
“누가 그걸 몰라? 무슨 글씨로 보이냐고.”
“빌런이요.”
“그래, 사상력의 올바른 사용이니 뭐니 했던 건 그냥 개소리해본 거다. 결국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우수 졸업자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빌런을 처죽이는 거다. 그리고 그건 내가 가장 잘하던 일이지. 너희는 나한테서 ‘사람 잘 죽이는 법’을 배워갈 것이다.”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좋은 교수인데. 속성 강의 해준다는 거 아냐.
“나는 이론은 거의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내 강의는 대부분이 실전으로 진행된다. 같잖은 이론은 모두 집어치워라. 유명한 복싱 선수가 그렇게 말했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이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야. 이론? 이론 좋지. 근데 현실은 대부분은 그 이론을 써먹어 보기 전에 한 대 처맞고 죽는다고.”
“그 말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
백절불요(百折不撓),‘백번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카타리나를 설명하는데 이 단어만큼 적절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항상 정도(正道)를 걷기 위해 노력하며, 논리에 근거한 판단을 중시하고, 타인의 말 따위에 쉽게 의지를 굽히지 않는 그녀에게 빈센트의 주먹구구식 논리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째서지?”
“적을 잘 알아야 승리할 수 있는 법입니다. 무작정 싸움의 경험이 많은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좋아. 적에 대해 어떻게 알 셈인데?”
“당연히 상대방의 첫사상력 사용을 보고분석하여 이론에 따른 그에 대한 최적의 대처법을…”
빈센트의 눈이 빛나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을 본것은 나뿐일 것이다.
이 토론은 이미 끝났어.
카타리나는 빈센트에게 이미 말려들었거든.
이 장면은 다카포 드림에선 나오지 않은 신이지만, 빈센트의 화려한 언변을 생각하면 우직하고 올곧기만 한 카타리나가 토론에서 이길 리가 만무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아니, 아니, 틀렸어. 내 말은, 상대방이 사상력을 사용하기 전에 상대방의 사상력이 뭔지 어떻게 아냐는 말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모의 전투야 너희가 서로 무슨 사상력을 쓰는지 다 알고 있으니 적당히 상대방의 간을 보면서 싸우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빌런은 어떤 사상력을 가지고 있는지 등록조차 안 되어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방어적인 사상력을 가진 각성자를 보내 상대방의 공격을 한번 흘려내고, 그에 대한 유리한 상성의 각성자를 내보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같이 저마다의 캐릭터성이 확고한 S클래스인 만큼, 토론을 바라보는 자세도 각양각색이다.
토론에 몰입하고 있는 알프레드, 냉소적인 눈으로 창밖만 바라보는 아이나, 심오한 얼굴로 고민에 빠진 듯한 천현우, 핸드폰 게임에만 열중하는 올리비아,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표정의 제임스, 대단하다는 얼굴로 빈센트를 바라보는 베아트릭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제이드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엎드려서 자고 있다.
오직 마음씨 고운소녀, 백성연만이 과열되는 토론의 분위기가 걱정되는 듯, 카타리나와 빈센트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아주 좋은 이야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단다. 만약 방어 면에서 훌륭한 사상력임을증명했다면, 그는 이미 최전선에서 뛰고 있지 않겠나? 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격이라고. 기껏해야 삼류 빌런을 처리하는데 실력이 검증된 뛰어난 영웅이 투입될 리가 있나. 당연히 아카데미를 막 졸업한 신참들에게 짬처리 시키는 거지.”
“삼류 빌런 따윈 졸업생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학생 신분인 저희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다면 상대방의 사상력이 견적필살(見敵必殺)이나 초견에 적을 제압하는 데 아주 뛰어난 대인전 특화 각성자라면 어쩔 셈이냐? 너는 첫 일격에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카타리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빈센트를 상대하면 이렇게 된다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바에야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그래, 답이 없지? 그러니 싸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선빵을 갈기느냐’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이번엔 제가 묻겠습니다. 선공권을 잡는 것에 대해 강조를 하셨는데 반대로 본인의 사상력이 선공권을 쥐기에 매우 불리한 사상력이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래? 그럼 죽어야지.”
“이것 보세요! 마땅한 해결책도 없이…”
“농담이니까 진정해라. 자신의 사상력이 선공권을 잡기에 유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유리하지 않은 그 상황에서 선빵을 갈기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곳에 와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빈센트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는 제이드의 책상 앞으로 나아가, 거칠게 책상을 잡아뺀다.
제이드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책상이 사라지자, 제이드는 바닥에 철퍽 하고 엎어진다.
“푸흡…”
“어떤 개새…”
“자, 이렇게, 상대가 무방비해진 틈을 노리는 게 전투의 기본이다.”
강의실엔 웃음이 터진다.
오직 제이드만이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빈센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빈센트는 전혀 관심도 없는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비열하다고? 삶은 원래 비열한 거다. 한껏 비열해져라. 그리고 살아라. 살아남은 게 너뿐이라면, 너의 비열함을 원망할 이는 없다.”
극도의 실리주의자. 빈센트다운 말이었다.
카타리나만은 분하다는 얼굴이었지만, 더 이상 그와 갑론을박해봤자 남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은 눈치다.
빈센트는 이제 됐냐는 듯, 카타리나를 향해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너희들 모두 훈련장으로 따라와라. 불리한 상황에서 선빵을 친다는 게 어떤것인지 보여주지.”
생도들의 대부분은 빈센트가 미덥지 못한 듯,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교환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만만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궁금했기에, 결국엔 빈센트를 따라 훈련장으로 가는 모양새다.
“아이나, 넌 저 교수를 믿을 수 있나?”
여전히 불만으로 가득 찬 표정의 카타리나가 아이나에게 속삭인다.
“실력이 없다면 처음부터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지도 못했어.”
“정론이다만… 신뢰하긴 어렵군.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가르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론이 아닌 실전만 가르치겠다니.”
“어차피 S클래스의 교수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저 교수의 말을 따르는 것뿐.”
나를 포함한 10명의 생도들은 모두 빈센트를 따라 훈련장에 도착했다.
훈련장은 거의 텅텅 비어있었다.
하긴, 아무리 S클래스의 대부분이 중등부에서 빡세게 훈련해서 올라왔다곤 해도 이제 고작 입학 이틀 차인데, 벌써 실전 위주로 가르치겠다는 빈센트가 정상은 아니지.
“따라 들어와라, 카타리나.”
“네”
빈센트와 카타리나는 비어있는 2인용훈련실로 들어간다.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빈센트 밀러, 카타리나 벨랴예바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빈센트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설정을 완료했다.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의 설정은 바닐라다. 공개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특수 설정이 들어가지 않았으니,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네 방식대로 아무렇게나 공격해봐라. 참고로 나는 사상력을 일절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카타리나가 가진 사상력은 빈센트가 강조한 견적필살, 순삭 정신에 그야말로 최고로 부합하는 사상력이라 할 수 있다
전투의 첫 공격에 한해 치명적인 피해를 가한다.
이것이 카타리나의 퍼스트 어빌리티.
신체를 강화해 매우 민첩해진다.
이것은 카타리나의 세컨드 어빌리티.
상대방의 체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진다면, 사용자가 가하는 어떠한 피해던, 상대는 즉사한다.
이것도 카타리나의 서드 어빌리티.
강직하고 올곧은 카타리나에게 어울리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어빌리티의 구성이다.
그리고 지금 그 세 가지 사상력의 주인, 카타리나 벨랴예바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빈센트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즉시, 세컨드 어빌리티를 발동한다.
그리고 빈센트를 향해 돌진하려는 순간.
[승자, 빈센트 밀러. 훈련이 종료됩니다.]
승부는 대략 3초 만에 결착이 났다.
카타리나의 복부에 바람구멍이 뚫리는 것으로.
“자, 보았나? 이게 현실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입니까.”
과연, 정신력 하나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카타리나답다.
저 상황에도바로 질문을 할 수 있다니.
비록, 고통과 충격에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을 기고 있었지만.
“‘어떻게 했느냐’라… 단순하다. 너는 괜찮은 속도를 얻기 위해선 사상력을 사용해야 하지만, 나는 사상력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빠르다.”
“네?”
“뭐, 그 이외에도 패인은 존재한다. 너의 움직임은 너무 뻔해. 민첩함이 향상되는 사상력을 가졌다고,그 속도를 살리기 위해 바로 발부터 나온다. 적당히 페인트를 섞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전력질주하려는 게 대놓고 보여.”
“사상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르다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다. 나는 어중간하게 신체 강화 사상력만 가지고 신체 단련은 하지 않은 각성자보단 훨씬 강할 거다. 그리고 너희도 졸업하기 전엔 모두 이 정도 수준이 되어야만 제대로 빌런들과 싸울 수 있다. 이게 내가 말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선빵을 갈기는’ 최소의 조건이다.”
다들 빈센트의 정신 나간 소리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빈센트는 누가 봐도 그런 반응을 즐기고 있는 걸로 보였다.
“불가능해 보이나? 내가 가능해질 때까지 열심히 가르쳐주마. 한 몇 달만 나한테 성실하게 지도받으면, 너희도 가능해질 거다.”
이 막장 교수, 그냥 애들 줘패고 싶어서 교수한 거 아냐?
빈센트는 그게 맞다는 듯, 사악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카타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하던 훈련을 마저 해볼까, 카타리나? 하던 대로만 해라. 손대중은 해줄 테니, 카타리나 너는 어떻게든 나에게 한 대만 때린다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해라.”
서른일곱 번, 카타리나가 오전 수업에서 쓰러진 총 횟수였다.
“흠, 아무래도 계획을전면 수정해야 할 거 같군.”
빈센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