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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입학 첫날. (4) (7/173)



〈 7화 〉입학 첫날. (4)

강의실에서 나와 곧장 향한 곳은, 당연히 트리니티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훈련장이다.

“생각보단 사람이 없네.”

학기 첫날이라 그런가, 훈련장은 한산했다.

오, 이곳의 개인용 훈련실은 기존에 다니던 훈련소의 훈련실보다 훨씬 크네.

역시 엘리트 육성기관의 시설은 달라도 뭔가 다르군.

그간 훈련 해오던 것처럼 평범하게 개인용 훈련실에 들어가려던 중, 나를 부르는  같은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야!”
“나?”
“그래, 너.”

나를 부르는 것이 맞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나보다 약간 큰 체격의 서양인으로, 이렇다 할 특징 없는 평범한, 딱 ‘엑스트라1’에 어울리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뭔데?”
“아까 단상에서 선서문 낭독하던 거, 너 맞냐?”
“그런데?”
“나랑 모의 전투 한 판하자. 100크레딧 걸고. 어때?”
“너가 누군데?”
“C클래스의 랜디다.”

나 진짜 많이 약해 보이나 보다.

프로틴 처먹으면서 근력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C클래스한테 얕잡아 보이는 수준이라니.

조금 충격이었다.

“귀찮은데… 꼭 해야 하냐?”
“그냥 궁금해졌어. 나는 트리니티 아카데미를 중등부부터 다녔는데,  번도 널 보지 못했다. 그 말은 고등부 입학이란 소리겠지? 그런데, 기존 성적도 없이 바로 S클래스에 입학한 케이스는 극도로 희귀해서 말이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해보고 싶거든.”

아, 그러니까 내 실력이 거품 같다 이거네.

사람과의 모의 전투는 더미를 통한 훈련과는 조금 다르다.

체력이 구체적으로 표기되지도 않고,그저 게이지 바만 놓여있으며, 가한 피해량, 받은 피해량 등의 모든 정보가 표시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체력을 얼추 알 수 있을 뿐, 나머지는 현실과 거의 동일하다.

여태까진 더미랑만 모의 전투를 했으니, 사람이랑도 한  정돈 모의 전투를 해보고 싶긴 했는데… 그냥 수락할까?

결코 100크레딧이 탐나서 그러는 건 아니다.

까짓거,  번 해보지 뭐.

“그래. 하자.”
“좋아. 내 무기는 총이다. 네 무기는 뭐지?”
“난 무기가 없어.”
“순수 사상력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인가 보네. 재밌겠어.”

다행스러운 것은 녀석이 딱히 건들거리며 아무한테나 시비 거는 양아치 스타일이 아닌 듯했다는 점이다.

그는 정말 순수하게 내 실력이 의심스러웠을 뿐인 것 같았다.

“설정은 네가 해라. 내가 하자고 했으니,  정도 양보는 해줘야지.”
“그래.”

굳이 양보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상대방의 사상력이 뭔지도 모르는데 괜한 허세를 떨며 상대에게 유리한 환경이라도 제공하면, 순식간에 지게 될지도 모른다.

두 명의 사내는 2인용 훈련실에 같이 들어간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있는 개인용 훈련실은 둘이서 써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꽤 컸지만, 2인용 훈련실은 그보다 더 크다.

사실 성남의 훈련소에 있던 개인용 훈련소도 모의 전투를 할 수는 있을 정도의 공간이니, 그 정도 사이즈의 훈련실이었어도 1:1 정도는 문제없이 할  있었다.

단지 형평성의 문제로 ‘개인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지만.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박성진, 랜디 모건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미리 생각해뒀던 설정을 빠르게 입력한다.

이 정도로 유리하게 설정한다면 쉽게 이길 수 있겠지.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바닐라고, 추가한 조건은 링 아웃과 데스 링이다. 이 정도면 됐나?”
“호오, 원거리 공격이 주인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데스링 옵션을 넣었네? 확실히 괜찮은 발상이지.”

생존형 서바이벌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요소, 링.

 밖으로 넘어가면 장외처리되어 패배한다.

‘데스 링’ 옵션같은 경우는 그 링의 크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어, 강제적인 근접전을 강요하는, 원거리 공격수 포지션에겐 매우 불리한 옵션이다.

그래서, 혹자는데스  옵션이 공정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S클래스의 생도 신분으로 고작 C클래스 따위에 져선 안 되지 않겠는가.

졸렬한 수단을 써서라도 승부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그럼 시작해볼까.”
“좋지.”

나와 자신을 랜디라 밝힌 사내는 각자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시작한다.”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훈련을 시작하시겠습니까?’를 망설임 없이 누른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안내 메시지가 끝나자, 곧바로 격발음이 들려왔다.

흠, 미안하다. 나도 그간 놀고 먹기만 한 게 아니라서 말이지.

나는 총알을 피하지 않는다.

그 자리 고고하게 서 있을 뿐이다.

총알은 여전히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실을 펼쳐, 총알의 경로에 놓는다.

세 발의 총알은 정확하게 반으로 갈려, 여섯 조각의 금속 조각이 되어 바닥에떨어진다.

어차피 랜디도 첫 공격이 먹힐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지, 곧바로 새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공파?

준비 동작이 누가 봐도 기공파다.

준비 동작이 있는 걸로 보아하니 바로 발사하긴 힘들고 나름의 충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이건 맞으면 위험하겠는데.

기공파는 총알과 다르게 보고 반응하기엔 다소 어렵다.

그래서 손의 위치를 보고 미리 피해야만 했다.

물론 이마저도 녀석의 에임이 극도로 좋다면, 사실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훈련하며 고안해낸 실의 활용법을 사용해야겠군.

“뭣!”

바로 그래플링.

미리 바닥에 설치해둔 실 중 하나를 붙잡고 옆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 점프와 동시에 실의 길이를 고속으로 축소.

몸이 부드럽게 호를 그리며 허공을 가로지른다.

랜디도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녀석은 필사적으로 나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으나, 이미 흔들린 기공파의 에임은  목표를 잃고 무의미하게 빈 공간을 긋고 있었다.

위험했네.

일단 저 녀석은 무기도, 사상력 중 하나도 원거리 공격인 기공파니, 시간을 끌수록 내게 유리해지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나보다 한참 아래의 클래스를 상대로 데스 링을 이용해 링 아웃을 유도하는 건 멋이 없지.

최대한 남자답게 승리해 보이겠어.

실을 발사해 랜디의 총구 쪽에 건다.

놈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총구의 방향을 빠르게 비튼다.

격발.

총알은 놈의 어깨죽지를 관통한다.

“윽!”

훈련실을 이용한 모의 전투라곤 하나, 피해로 인한 고통은 어느 정도 사용자에게 전해진다.

이정도 피해로는 한참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선제 공격에 성공했으니, 내가 유리한 입장이다.

이제 놈도 나를 제대로 경계하기 시작했을 테니, 쉽게 턴을 내줘선 안된다.

바로 허공에 실을 설치하여, 짚라인을 타듯랜디에게 이동한다.

실이 걸린 시점에서 총은 유의미한 무기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 랜디는 총을 버렸다.

그리고,  다음에 놈이 취한 행동은 경악할만한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각력으로 점프를 한 뒤, 여유롭게 실을 타고 이동하는 나의 머리를 붙잡고, 거세게 땅으로 내려찍는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몸이 바닥에 꽂혔다.

놈에겐 표시되지 않고 있겠지만, 나의 체력 게이지에는 위험하다는 붉은 빛이 점등하고 있었다.

“총과 기공파를 쏜다 해서 내가 원거리 공격수인지 알았나 본데, 나는 근접전도 못하지는 않거든.”

랜디가 시원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방심했다.

총과 기공파를 쏜다 해서 원거리 공격수라고 생각한 것은 명백한 나의 착오였다.

남은 두 사상력 중 하나가 신체 강화 계통일줄이야.

놈의 남은 두 사상력에 대한 경계를 전혀 하지 않은 나의 실책에 통감하며, 나는 얼른 다음의 수를 생각했다.

우선은, 놈이 내 몸 위에 올라 타있는  마운트 포지션에서 벗어나야 한다.

총알을 자르는 데 사용했던 가는 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놈의 목 쪽으로 이동시켰다.

랜디는 실이 자신의 목을 천천히 휘감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나를 완전히 끝장내겠다는 듯, 나를 붙잡고 있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기공파를 충전하고 있었다.

워낙 가늘게 뽑은 실이라 그런지, 놈은 자신의목에 휘감긴 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모의 전투라곤 해도 어깨에 총상을 입었는데 아직 저 팔을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다니, 생각보다 튼튼한 녀석이네.

지금이다.

나는 실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커헉!”

목이 뒤로 젖혀진 랜디의 몸이 균형을 잃고 뒤로 자빠진다.

기회다.

현재 내가 생성할  있는 최대한의 실을 뽑아내고, 쓰러져 있는 놈의 목에 그걸 전부 감는다.

그리고, 실에 온 힘과 사상력을 싣는다.

콰작,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된다.

[승자, 박성진. 훈련이 종료됩니다.]

…그나저나 제대로 운동을 하긴 해야 하나.

입학하기 전에 사상력 훈련을 하면서 몸도 조금은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고작 C클래스의 공격 한 방에 경고가 뜰 줄이야.

한 번의 실수만 허용했을 뿐, 무난하게 이겼음에도 묘하게 진 기분이 든다.

이 정도였다면 어차피 데스 링이니 링아웃이니 구차한 조건 같은 거 달지 않고도 쉽게이길  있었을 텐데.

그나저나  ‘실을 다루는 사상력’만으로도 C클래스를 이길  있다면, 나머지  사상력이 유용한 사상력이라는 전제하에 둘을 각성만 하면 정말 S클래스 정도는 될 거 같다.

아마  세계의 나는 그 둘을 다룰  있었던 게 아닐까?

한 번 물어보고 싶네. 뭐였냐고.

“크윽….”

쓰러져 있던 랜디가 일어섰다.

목이 달아났다는 충격을 방금 겪어서인지 멍한 얼굴이다.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지.

“야, 랜디.”
“어, 어?”
“100크레딧, 내놔.”
“아… 응.”

랜디는 트아카 앱으로 100크레딧을 내게 송금했다.

이걸로 뭘 할까.

오랜만에 좋아했던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어야겠다는 시덥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던 와중, 랜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수고했다.”
“너도 수고했어.”
“…내 생각보단 강하네. S클래스에 맞는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패자는 말이 없어야 하는 국룰 아니야?

근데 사실이라 더 슬프네.

이래 가지고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전까지 백성연을 이길 수는 있을까.

C클래스한테도 실수 한 번하면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데.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론 염력 쪽 사상력을 상대할 때는  주의해야겠군.”

그렇게 말하고 랜디는 등을 돌려 다른 개인용 훈련실로 들어갔다.

내 사상력이 염력 쪽인지 아나 보네.

사실은 아닌데.

착각해주면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진  사상력이 뭔지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거든.

충분히 성장하고 나선 내 사상력이 뭔지 알려져도 상관없다.

알아도 못 막을 정도로 강하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아직은 ‘이공격은 막을 수 없다’ 같은 임팩트가 너무 부족하다.

실의 개수, 길이, 강도가 죄다 부족하니 염력인 것처럼 위장할 수밖에 없는  나의 현실이었다.

‘실을 다룬다’는 능력인 만큼 적어도 대중매체에서 실을 다루는 캐릭터들처럼 멋들어진 실 활용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더욱 훈련에 매진해야겠지.

우선은 A클래스 수준에 도달하는 것만 목표로 하자.

나는 승리의 기쁨을 뒤로하고, 다시 훈련실로 들어가 훈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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