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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입학 첫날. (2) (5/173)



〈 5화 〉입학 첫날. (2)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다면, 다카포 드림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일원으로서, 여명의 삼위의 가르침대로 올바르게 사상력을 사용하는 법을 교육받을 것이며…”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일원으로서, 여명의 삼위의 가르침대로 올바르게 사상력을 사용하는 법을 교육받을 것이며…]

연설 중인 오스카의 말보다 나의 말이 빠르게 튀어나온다.

기억하고 있는  맞네.

보이지도 않는 연설문을 한 박자 빠르게 말하는 모습을 본 옆의 누군가가 날 어떻게 했냐는 눈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그리하여… 우리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다카포 드림의 프롤로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암…”

입학사는 언제 들어도 지루하다.

하다못해 입학사를 모르기라도 했더라면 조금이라도 흥미가 갔겠지만, 나는 이 입학사를 전부 알고 있었으니까.

이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전부 알고 있으니, 하품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은 놓칠  없지.

수석 입학생도의 호명 장면.

[올해의 트리니티 아카데미 고등부 수석 입학생도. 제롬 르클레어.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이름의주인, 제롬 르클레어가 모습을 드러내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강당이 소란스러워진다.

단상에서호명된 제롬 르클레어는 자신을 과시하듯 어깨에 힘을 잔뜩  모양새로 단상 위에 올라서서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우릴 내려다본다.

제롬 르클레어, 올해의 유일 U클래스 입학생도.

초등부, 중등부를 포함해도 올해 U클래스에 입학하는 것은 제롬뿐이다.

U클래스는 입학하는사람 자체가 드물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롬의 사상력은 차원이 다르다고 할  있겠다.

퍼스트 어빌리티는 상태 이상.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대상은 신체 능력이대폭 하락한다.

세컨드 어빌리티는 신체 강화.

이 신체 강화는, 흔히 생각하는 강력한 힘을 신체에 부여하는 신체 강화가 아닌, 오감이 강화되는 능력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울트라라는 레벨명에 맞지 않게 굉장히 심심한 능력으로만 구성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의 진가는 서드 어빌리티에 있다.

그의 주된 사상력인 서드 어빌리티는 반사니까.

효과는 단순하다.

자신에게 걸리는 모든 해로운 효과를 반사하며, 피해도 반사한다.

피해만 반사한다면 그럭저럭 상대할만하겠지만, 모든 ‘해로운 효과’도 반사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점이다.

초등학생이나 생각해낼 법한 그 무지개반사가 맞다.

프롤로그에서 처음 제롬 르클레어가 등장했을 때는, 이런 개사기 능력을 가진 놈이 있는데, 어떻게 주인공이 그를 누르고 강해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정도였으니.

실제로 등장인물 중에선 꽤 강한 축에 속하는 인물로, 내가 비행기에서 찾던 중요 인물에도 해당한다.

제롬은 후반부까지도 제법 활약하는 강자니까.

그럼에도 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그가 주연급 중요 인물은 아니라는 데 있다.

주연들은 아직 두각을 드러낼 때가 아니니까.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주인공 천현우가 포함된 두 명으로, 거기에 제롬은 속해 있지 않다.

그런 고로, 나는 제롬에겐 크게 관심이 없다.

제롬의 실력이 거품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는 최후의 승자는 아니니까.

제롬은 졸업할 때까지 U클래스의 중하위권 붙박이로 지내지만, 주연급 인물들은 T클래스까지 치고 올라가니.

물론  사실을 모르는 강당의 수천 명은 눈앞의제롬에만 집중한다.

옅은 밤색 머리, 비취색의 눈동자. 약간 느끼하다고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준수한 외모에 강건함이 느껴지는 남자다운 육체는 특정 사람에게는 확실히 수요가 있을 외모였다.

…다카포 드림 속 세계의 인간은 내가 살던 세계의 인간보다 평균적인 신체 스펙이 높다는 말은, 외모를 뜻하는 거였나?

왜 이놈이고 저놈이고 잘생기거나, 예쁜 년놈들 뿐인 거지.

조금 화가 날 것 같았다.

“으,  눈빛 봐. 존나 징그럽다.”
“왜? 남자답고 멋있잖아.”
“알프레드가 훨씬 낫지, 저런 허세충 보단…”
“그러고 보니 제롬, 알프레드, 아이나, 셋이서 중등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것 같은데, 결국엔 제롬만 U클래스로 입학하네.”
“그럴 만도 하지. 쟤가 가진 사상력을 생각해보면 당연하잖아.”
“좋겠네. U클래스면 특혜도 엄청날 텐데.”

옆에서 그런 소리들이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렴, 얘들아.

라스트 맨 스탠딩이 될 사람은 그 셋 중에선 아무도 없단다.

소란스러운 것은 갑과 을을 가르는 단상이라는 경계선 아래뿐만이 아니었다.

단상의 위에서도 가장 상석, 높으신 분들만 모인 자리에서도 제롬은 화젯거리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겠지.

‘큼… 결국엔 돌고 돌아 제롬이군…. 확실히 이번 세대 최강의 사상력이라는 평가는 틀리지 않은 것인가.’
‘확실히 녀석이 가진 서드 어빌리티, 반사는 굉장하긴 하죠. 해로운 효과에 면역이라는 점은 알프레드와 비슷하긴 하지만, 알프레드는 해로운 효과를 해제하는 것이고, 저 녀석은 반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듯합니다. 역시 세간의 평가를 무시할 수는 없군요.’
‘흥,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죄다 이번 세대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대는구먼. 나는 아이나야 말로 진정한 이번 세대 최강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미츠루 가문의 자제는  번도 저희를 실망시킨적이 없긴 하죠.’
‘그래, 역시 아이반 자네는 말이 통하는구먼! 역시 이번 세대의 최강은 아이나가 될 거야. 그렇고말고.’

그들의 말을 전혀 들을 수 없음에도 뭐라 하는지 뻔히 예상이 간다.

그리고 그런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정리한 것은 오스카였다.

[조용.]

그의 말은 차분하지만,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속세에 찌들어 보이는 아저씨라도 짬밥을 수백  먹으면 저런 카리스마를 보유할 수 있구나.

이 넓은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강당을 한순간에 조용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는 이가 있었더라면, 아마 언령(言靈)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을 테지.

시끄럽던 강당에 침묵이 찾아오자, 오스카는 입을 열었다.

[올해의 수석 입학생도, 제롬 르클레어의 각오 한마디를 듣겠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고등부에서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까 보여준 오만한 태도치곤 굉장히 평범한 각오네.

하긴,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어그로를 끌어봤자 남는 게 없긴 하지.

물론, 타고난 광대라면 저런 자리에서도 패기 넘치는 대사를 던지겠지만.

이제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둘이 단상 위로 올라갈 차례겠군.

[올해의 고등부 차석 입학생도, 알프레드 아이스너를 비롯한 고등부 우수 입학생도 5인은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오스카가 마이크를 통해 전한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엥?”

나도 모르게 의문사가 튀어나왔다.

분명 원래  장면에선 알프레드 아이스너, 미츠루 아이나, 천현우, 베아트릭스발데크, 4인이 올라가는 것일 텐데?

어째서 5인이  거지?

아.

내가 올해의 S클래스 입학 생도라 그렇구나.

원래 박성진은 죽어서 이곳에 오지 못했었는데, 내가 빙의하면서 죽었던 박성진이   돼버렸으니.

그럼 여기서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위로 올라갔다.

허겁지겁 단상 위로 올라갔음에도, 나머지  명보다 한참 늦게 도착한 것이 불만이었는지, 오스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주시했다.

아, 이번 인생 진짜 더럽게 꼬였다.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 비서가 선서문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걸 내가 읽는 날이 오네.

[단상 위로 올라온 여섯 명의 생도는 선서문을 낭독해주십시오.]

““선서, 나는 인류의 구도자인 여명의 삼위, 그리고 질서의수호자 천경의 대삼각의 비호가 깃든 이곳, 트리니티 아카데미 아래 맹세하노니,

첫째, 나는 나에게 사상력을 내려준 이 세계의 의지를 섬기는 자가 되리라.

둘째, 나는 누군가 청한다 하더라도 결코 세계가 점지해준 이 힘을 그릇되게 사용하지 않겠노라.

셋째, 나는 인류의 자유, 평화, 안보를 위해서만 이 힘을 사용하겠노라.””

다시 봐도 진짜 미친 선서문이다. 이건.

뭔 열몇 살 먹은 애들한테 이런 무리한 요구를 시키냐.

아무리 형식적인 관례라고 해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절대 웃어선  됐다.

나는 최대한 슬픈 생각을 하며 어떻게든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차라리 단상 아래에서  모습을 관망하는 수천 명  하나였다면 나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단상 아래서는 처음 보는 우수 입학 생도에 논란이 불거지고 있었다.

“야, 쟤는 누구냐?”
“나도 몰라. 자식아. 오히려 같은아시안인 네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아시안이랑 별로  친해서 몰라.”
“내가 알기로 다른 아시안 남자애 하나는 천현우라는 한국인으로 알고 있는데, 쟤는 처음 보네.”
“존나 약해 보이는데? S클래스 맞긴 한 거냐? 그냥 장난으로 올라갔는데 아무도 눈치 못 채고 있는  아냐?”
“그럴 리가 있겠냐. 병신아.”
“아니면 빽으로 입학한 건가? 중등부 성적도 없이 바로 S클래스에 입학할 수 있어?”
“장난치냐? 여기에 빽으로 입학하려면, 천경의 대삼각이랑 친분이 있는 수준 아니면 불가능할걸?”
“그럼 이사회에 뒷돈이라도 꽂아줬나 보지, 뭐.”
“아, 몰라. 우리가 S클래스 걱정할 때냐, 어차피 재능 없으면 알아서 유급당한 다음에 퇴학 처리될 텐데.”
“그것도 그렇네. 에휴.”

그렇게, 단상 위의 박성진이란 존재는, 본의 아니게 수석 입학생도인 제롬보다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상으로 입학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트리니티 아카데미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질서를 지켜 강당에서 퇴장한 뒤, 시리얼 카드와 연동된 트리니티 아카데미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하여 어플리케이션에 표시되는 자신의 클래스를 찾아가 주십시오.]

드디어 끝났군.

단상으로 내려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당으로 나서려던 와중,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는다.

“안녕? 아, 한국인이 아닌가? 안녕? 안녕?”

…이거, 뒤의 어색한  번의 안녕은, ‘곤니치와’랑 ‘니하오’인 거 같다.

주인공인 천현우와 벌써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녀석이 날 외국인 취급한 것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아니, 보통 한국인이면 같은 한국인 구분 하지 않나?

내가 일본인이나 중국인처럼 생겼나?

“한국인이다.”
“아, 한국인 맞네. 만나서 반갑다. 나는 천현우라고 해.”
“…박성진이다.”
“왜 화가 나 있어? 아, 혹시 외국인 취급해서 짜증난 거야? 미안해. 트리니티 아카데미엔 워낙 외국인이 많으니까. 혹시 외국인인  알고…”

이 자식. 분명히 엿먹이는 거다.

“야, 어차피 여기 입학할  시리얼 카드 다 주사하잖아. 어차피 내가 외국인이어도 네가 말한 외국어  한국어로 번역돼서 들려. 네가 곤니치와랑 니하오로 말해도 다 안녕으로 번역돼서 들린다고.”
“오, 그걸 알아차려?  머리 좋다?”

엿먹이는 게 맞았네.

좆같은 새끼.

“있잖아. 너도 S클래스인 거 같은데, 반에 같이 갈래?”
“됐다. 혼자 가련다.”
“그래? 알았어, 그럼 반에서 보자.”

다카포 드림의 프롤로그는, 썩 마음에 드는 시작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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