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소설 속 세계. (2)
아침은 샌드위치 한 조각과 심장약 한 알로 시작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도 어느새 이 세계의 나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약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심장병을 앓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먹어야지, 그래.
알약과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평소 같았으면 이 냉수 한 잔은 상념으로 헤집어진 머릿속을 말끔히 정리하고 날 일으켜 세웠어야 할 텐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오늘이 시작되고,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은 ‘힘들다’였다.
어째서 그것은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내 뇌리를 맴돌고 있었을까?
…자세히 과거를 돌아보니 조금은 그럴 만도 한 것 같다.
마흔 번의 밤을 넘길 동안, 사상력을 성장시키겠다는 일념만으로 쉼 없이 달려온 나날은,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되다고밖에 말할 수 없으리라.
매일 아침부터 사상력 훈련소로 가서 사상력을 훈련하고, 훈련이 끝나면 중천에 떠오른 달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일과였으니.
아마 이 몸의 진짜 주인인, 다카포 드림의 ‘나’가 이 모습을 본다면 자신의 몸을 너무 혹사시킨다며 불평을 토해낼지도 말할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철저한 경쟁사회니까.
마라토너로 비유하자면, 나는 타인보다 두 시간 정도는 늦게 출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 마라토너들은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정도면 마라톤을 완주한다고 했다.
즉, 나는 남들이 거의 완주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굳이 프로들과 비교하는 이유는, 내가 입학하게 될 S클래스의 수준이 일반 생도와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S클래스의 모든 이들은 처음부터 강력하고 비범한 사상력을 각성한 이들인 데다, 어려서부터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입학한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니까.
그런 놈들로 가득한 S클래스에서 살아남으려면, 몸을 비틀어서라도 어떻게든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다못해 내가 가진 사상력이 압도적으로 강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뜨개질이나 하고 있으면 딱인 사상력 하나에, 나머지 사상력은 뭔지 조차 모른다.
그러니, 나는 S클래스의 다른 캐릭터들보다 열심히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라는 것이 현실이지만, 지친 몸과 정신은 이미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래, 오늘만 쉬자.
다카포 드림 속 인간은 강인하고 튼튼해서 망정이지, 이전 세계의 나약한 나였다면 나의 몸은 진작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강인하고 튼튼한 육체에 감사하며, 나는 오늘만큼은 한가로이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 * *
딱 하루를 쉬었을 뿐인데, 몸의 가벼움 정도가 다르다.
어제까진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찬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날아갈 것만 같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빠르게 아침을 해치우고 벌써 훈련실에 도달해 있다.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박성진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컨디션도 좋은데, 오늘부턴 실전 훈련에 돌입해 볼까.
실전 훈련은 어렵다.
여태까진 가만히 서 있는 허수아비만 가지고 놀았다면, 실전 훈련은 실제 인간의 전투 방식을 모방한 더미와 모의 전투를 치르는 형식이다.
그래도 이젠 사상력을 제법 잘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에, 평소와 같은 피해량 측정이 아닌, 모의 전투로 훈련을 설정했다.
더미의 체력은 1천으로 하고… 환경 설정은 없음… 무기 설정은 검… 사상력의 등급은… D에 랜덤, 됐다.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설정이 완료되자, 어디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성인 남성같이 생긴 더미가 생성됐다.
…얼굴은 달걀귀신처럼 맨들맨들했지만.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상력을 개방하자, 몸에서 투명한 실낱이 세 가닥 흘러나온다.
처음엔 한 가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욱신거렸는데, 이젠 세 가닥을 뽑아내도 아무렇지 않다.
우선은, 더미의 행동을 살핀다.
첫날과 비교하면 사상력의 숙련도가 많이 올렸다곤 하나, 고작 세 가닥뿐인 실을 가지고 선제공격을 시도하긴 많이 부족하니.
아무런 반응도 없는 내 모습에, 검을든 더미가 내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빠르네.
신체 스펙이 훨씬 우월한 다카포 드림의 인간에 빙의한 게 아니었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아마 상대방에게 돌진할 수 있는 퍼스트 어빌리티인가 보네.
나는 미리 생성해둔 실을 상대방의 발목 위치로 이동시켰다.
실이 발목에 걸린 더미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미의 발목에 걸려있던 실로 놈을 휘감았다.
처음엔 실을 무시하고 전진하려 했던 더미였으나, 실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정도 강도라도 돼서 다행이네.
쉽게 끊어졌으면 그것대로 상당히 쪽팔린 일이었겠지.
더미는 자신의 힘만으론 실을 끊어낼 수 없다는 걸 인지한 듯, 검으로 실을 잘라냈다.
물론 나도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남은 두 가닥의 실을 엮어, 창을 만들어내, 더미에게 투척했다.
가늘고 길다는 공통점 이외엔 창과 같은 점이 전혀 없었지만.
아무튼, 내가 창이라 칭한 그 물체는 직선으로 날아가, 더미의 머리에 꽂혔다.
표시된 피해량은 395.
395면 B레벨의 견제 한 번에도 못 미칠 수준으로 미흡한 피해였으나, 첫날에 기록한 피해량, 7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기에, 나는 꽤 만족했다.
머리에 창이 꽂힌 더미는 제법 큰 피해를 입은 듯, 일시적인 행동 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바로 세 가닥의 실을 더 뽑아내, 더미의 목에 둘러 강하게 조였다.
더미에 가한 피해량이 지속적으로 출력된다.
더미가 목에 감긴 실을 풀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실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더미는 자신에 목에 손을 대고,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작은 불꽃을 내뿜었다.
실이 불길에 휩싸여 전부 타버린다.
세컨드 어빌리티는 원소를 다루는 계통인가?
별로 좋지 않은데.
더미는 지금까지 마시지 못했던 공기를 비로소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듯, 거칠게 숨을 들이쉰다.
와, 진짜 사람 같네.
이 정도로 사람과 흡사하게 설계됐을 줄은 몰랐는데, 의외다.
S클래스의 등장인물들은 죄다 워낙 강하다 보니, 체력 1천의 더미 따위 전부 한 방에 처리해 버려서, 더미의 저런 세세한 반응은 볼 수 없었는데.
이 세계의 기술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더미가 나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저건 무슨 사상력일지 고민하고 있을 때, 더미가 쫙 펼친 손을 빠르게 쥐었다.
그러자, 나의 몸은 순식간에 더미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드 어빌리티는 염력이었나!
나는 실을 몸에 걸어 더미 쪽으로 작용하는 인력에 저항해보려 했으나,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결국 더미의 검에 몸이 꿰뚫려 버리고 말았으니.
나의 체력은 평범한 더미의 체력만도 못한, 800이다.
그리고 나의 머리 위에 출력된 피해량은 467.
잔존 체력이 고작 333이라니.
제대로 된 공격을 한 번이라도 더 허용하면 패배한다는 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뒤로 몸을 굴려 놈의 검격에 닿지 않게 거리를 벌렸다.
구르는 동작이 끝나고 고개를 들자, 화염이 바로 내 앞까지 쇄도하고 있었다.
역시 처음부터 D급은 무리였나?
아예 F로 허들을 한참 낮추는 게 옳은 판단일지 고민하던 와중,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훈련이 종료되었다는, 안내 멘트가 나오지 않고 있던 것이다.
뭐지?
나는 황급히 내 체력을 확인했다.
그곳에 표기된 숫자는, 12.
어떻게든 버티기는 했네.
이대로 끝인 줄 알았건만,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을 줄이야.
허나, 더미는 그 기회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퍼스트 어빌리티를 발동하여 내게 돌진해오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한다.
최대한 많은 실을 뽑아낼 수 있도록.
머리가 욱신거려온다.
그래도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내 한계까지 사상력을 쥐어 짜낸다는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자, 네 가닥의 실이 손에서 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D급 정도는.
나는 손가락마다 각기 한 가닥의 실을 연결하고, 나를 향해 돌진하는 더미에 맞서 돌진한다.
검격이 나를 덮치고 있었지만, 결코 검의 궤적에 시선을 떼지 않는다.
동작을 보아하니 다음에 나올 공격은 횡베기네.
나는 몸을 깊숙이 숙이고, 녀석이 검을 휘두른 팔 아래로 빠져나가며 실을 넓게 펼친다.
실이 더미의 몸을 붙잡았다는 감촉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실의 강도를 최대한으로 올리고,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장력을 실에 순간적으로 가했다.
실은 더미의 몸을 파고들어, 더미를 여섯 조각으로 분리했다.
기록된 피해량은 1430.
이겼다.
쓰레기 취급한 이 능력으로도 D레벨은 이길 수 있네.
D레벨은 생각처럼 그렇게 낮은 등급이 아니다.
다카포 드림의 세계 속에선 F레벨조차 수십 명을 학살한 전과가 있다.
그런데, D레벨은 어떻겠는가.
당연하게도 비각성자들 정도야 수백 명은 너끈하게 학살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D레벨 상대로 승리했다.
…더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 사상력이 그렇게 나쁜 사상력은 아니라는 걸 확인한 셈이다.
앞으론 쭉 모의 전투로 훈련을 진행해야겠군.
입학할 때 적어도 C클래스는 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렇게, 훈련은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 * *
재밌네, 모의 전투.
허수아비나 패는 게 전부던 피해량 측정 훈련은 거의 도를 닦는 기분에 가까웠지만, 모의 전투는 증강 현실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제법 즐겁게 임할 수 있었다.
이대로 쭉 훈련에 매진한다면, 입학할 때 C클래스 정도로는 위장할 수 있을 것 같네.
나의 퍼스트 어빌리티가 성장력이 뛰어난 사상력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사상력은 각성 이후 성장시킬 수 없거나, 그 성장의 수준이 아주 미비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즉, 보편적인 경우, 나의 사상력은 어린아이의 손짓 한번에도 끊어질 약해빠진 실오라기 한 올을 다루는 것으로 끝이었을 거란 소리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의 사상력은 아직까지 한계와 마주하지 않고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부디 그 한계를 마주하기 전에 세컨드 어빌리티를 각성했으면 좋겠는데.
이 퍼스트 어빌리티의 성장성이 굉장히 뛰어나다곤 해도, S레벨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므로 하루빨리 세컨드 어빌리티를 각성해, 전력을 증강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다카포 드림의 초반부 이벤트, 중간고사 공개 토너먼트에서 S클래스 9위, 백성연 만큼은 이겨야 했으니까.
S레벨은 강함의 급이 다르다고 하지 않았냐고?
뭐, 그렇긴 하지.
백성연의 능력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백성연의 능력은 아군을 보조하는데 특화되어 있지, 적을 공격하는데 특화되어 있지는 않다.
즉, S클래스의 생도라곤 하나 다른 생도들에 비하면 전투에서 그 위상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는 이야기지.
반대로 말하면, S클래스의 최약체, 아니, 전투에서의 능력만 평가한다면 A로 평가하기도 어려운 백성연조차 잡지 못한다면, 나는 S클래스의 자격이 없다는 걸 만천하에 증명하는 꼴이 될 테니, 백성연 만큼은 반드시 잡을 수준으로 성장해야 한다.
기왕이면 8위 베아트릭스 발데크와 7위 제이드 크롬웰까지 잡는다면, 그나마 나의 위치정도는 확고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세컨드 어빌리티도 없이 그 둘을 잡는 건 무리일 것이다.
대충 졸업할 때까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S클래스의 중하위권을 유지하며 유급만 피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선 그것도 무리다.
만들어낼 수 있는 실의 개수, 실의 길이, 실의 강도 등,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뛰어나야 할 테니.
아직은 사상력으로 실을 움직이는 것조차 미숙한데, 너무 무리한 목표인가 싶기도 하다.
근데 어쩌겠어,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하는데.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다는 목표는 멀고도 험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