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호은의 가이드 등급은 예상한 대로 S등급이었다. 거기다 두 사람의 매칭률은 각인 이후 98%까지 올랐다.
“직접 가이딩 가장 높은 단계로 측정한 건 아니라 100%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안내해 주는 연구원에게 호은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매칭 검사는 직접 가이딩을 해야 해 지난번처럼 볼 뽀뽀를 했던 참이다.
“사실 조금 아쉽긴 한데. 키스나 페팅으로 다시 한번 하는 건 어렵겠죠.”
연구원은 100%라는 수치를 찍고 싶은지 센터를 나가려는 두 사람을 붙잡았다.
“페팅하는 장면은 당연히 저희 쪽에서는 안 볼 겁니다! 100% 이상으로 나오는 분들에게는 저희가 가전제품도 보내 드려요. 집에 건조기 안 필요하신가요? 식기세척기는?”
“그쯤 하시죠.”
연구원이 호은의 팔을 붙잡으며 호소하고 있자 도인호가 막아섰다.
“호은 형… 아니, 내 가이드가 부끄러워하잖아요.”
연구원은 호은을 위하는 듯한 도인호의 목소리에 한 번 더 애원할 참이었다. 그러나 냉랭한 도인호의 눈빛을 마주 본 순간 오금이 떨려 왔다.
호은의 팔을 붙잡고 있는 제 손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이 상상됐다. 연구원은 잡았던 손을 빠르게 빼내며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가는 문을 친절하게 열어 준 연구원에 아무것도 모른 채 호은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도인호는 방금 전까지 연구원이 만졌던 호은의 손목을 부드럽게 쥐었다.
“배고프죠? 얼른 고기 먹으러 가요.”
“응. 뭔가 마음이 허해서 그런지 더 배고파.”
서울에 올라온 김에 두 사람은 유명한 한우집을 예약했다. 하루에 딱 열 팀밖에 받지 않는 가게이기에 호은은 절로 기대가 됐다. 원래라면 배연우와 남운수까지 불러 같이 먹으려고 했건만 예약 당일인 오늘 배연우는 완전히 맛이 간 목소리로 몸이 안 좋다고 연락했다. 더불어 남운수는 옆에서 간호해야 할 것 같다며 빠졌다.
인천에서부터 끌고 온 차에 탑승하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음식점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걸렸다. 운전대를 잡은 도인호는 부드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호은은 적막함을 없애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어제저녁 8시. 이능력자 협회에서 공식 기자 회견을 열었습니다. 기자 회견장에는 반정부인 타이거 보스가 참여해 끔찍한 인체 실험 현장을 밝혔는데요. 온라인으로 먼저 퍼져 파문을 일으켰던 제보 영상은 거짓이 아닌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김세희가 올린 영상으로 시끄러웠다. 사건과 관련된 제주 지사 협회장과 가이드 공단 이사장 자격 박탈을 공식 입장으로 발표하긴 했으나 국민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법으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검찰 조사가 아닌 협회 자체 조사여서 더 큰 반발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일과 가장 많이 관련된 백우경과 권수혁은 사형이나 다름없는 징계를 받았지만, 이것을 공식 발표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쉬는 시간에 잠깐 들어갔던 인턴 가이드 영상을 올린 너튜브 계정은 악플로 도배되어 있었다. 일반인들은 오히려 타이거를 두둔하고 이능력자 협회와 가이드 공단을 적대시했다.
‘이러려고 한여름이 순순히 잡힌 건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국민이 타이거를 이해하고 옹호해 주고 있으니 아마 실시간 반응을 보며 타이거 멤버들과 모여 좋아하고 있을 것 같다.
물론 나중에 멀티 몬스터가 민간 지역에 나타나면 욕 좀 먹겠지만 말이다.
호은은 의자 시트 깊숙이 등을 기댔다. 도인호와 둘만 있는 공간은 편안했다.
“밥 먹고, 여울이까지 만나고 나면 이제 진짜 휴가네.”
“그러게요.”
“그래 봤자 하루짜리 휴가지만 말이야.”
호은의 말에 도인호는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휴가 기간 따위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호은만 제 옆에 있으면 되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는 부끄러워 그냥 입꼬리만 올렸다.
도인호는 고풍스러운 한옥 외관 건물의 주차장으로 차를 세웠다.
차 시동을 끄고 호은의 벨트를 풀어 주며 호은이 짐을 챙기는 사이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 줬다.
“고마워.”
도인호가 내민 손을 잡으며 내리자 커다란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깨끗한 물 때문에 연못 안이 훤히 보였다. 주홍색 비단잉어가 헤엄치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옛날에는 돈도 없어서 다 먹으면 공짜 이런 음식을 찾아다녔는데.”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이번에는 한옥 건물이 보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전통 한옥인 외간과 다르게 대리석 바닥과 커다란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권호은 님 맞으실까요?”
가게 안으로 차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직원이 예약자명을 불렀다.
“네. 제가 권호은입니다.”
“자리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영업용 미소를 지은 직원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앞장서 문을 열어 줬다. 하루에 열 팀밖에 받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내부에 있는 테이블 세 개가 다였다.
안내받은 자리로 앉으며 호은은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철판에다가 고기를 구워 먹는 걸 생각했는데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였다.
메뉴판을 확인하니 고깃집은 맞으나 가격대가 기상천외할 만큼 비쌌다. 회사에서 휴가 기간에 쓰라고 준 법인 카드의 한도가 살짝 걱정됐다.
“고기는 메뉴판에 있는 거 각 4인분씩 주시고, 스페셜 세트 또한 4인분 주세요.”
호은이 메뉴판을 잡고 망설이고 있을 때 도인호가 간단하게 주문을 끝내 버렸다.
“혹시 4명으로 예약이 되어 있는데, 다른 일행이 더 오시는 걸까요?”
“아니요. 저희 둘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놀란 얼굴로 이렇게나 많이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볼 텐데. 이곳의 직원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가 내리기만 할 뿐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스폐셜 세트에는 와인이 제공되는데 종류는 어떤 걸로 드리면 될까요?”
“레드 와인으로 주세요.”
운전해야 해서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도인호를 대신해 호은이 먹을 것으로 골랐다. 직원은 묵례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클래식 소리 들으며 고기 먹는 건 처음이야.”
“보통은 어떤 음악을 듣나요?”
“음악 틀어 놓는 곳 거의 없을걸? 시끄럽거든. 고기 굽는 소리, 술 먹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
“다음에는 로컬 맛집으로 데려가 줄게. 그리고 놀이공원도 가 볼래? 아 맞다. 나중에는 연차 빼서 여행도 갔다 오자.”
“좋아요.”
호은이 그리는 미래에 도인호는 당연히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인호는 호은의 접시에 음식을 올려 주며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너는 하고 싶은 거 없어?”
“저는…….”
젓가락을 든 채 도인호는 잠깐 멈췄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머리가 과부하가 걸릴 것만 같았다. 이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다른 것이 치고 나와 이걸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아우성친다.
“저는 형이랑 있을 수만 있으면 다 좋아요.”
결국 나온 답은 자신의 진심을 제대로 나타내지도 못한 이런 쓰레기 문장이다.
“그게 뭐야.”
입을 가리고 짧게 웃음소리를 낸 호은은 아까부터 제대로 먹지 못하는 도인호에게 커다란 고기 한 점을 집어 내밀었다.
“그건 당연한 거고. 조금 더 구체적인 거 없어? 서로 번갈아 가며 버킷리스트를 완성해 나가면 재미있잖아.”
고기를 받아먹은 도인호는 어금니로 고기를 으깨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대답을 기다리듯 호은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는 손바닥으로 얼굴 받쳤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이 조명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에서 형이랑 단둘이 있고 싶어요.”
아무도 없는 외딴섬을 사 버릴까. 그곳이라면 혼자서 호은을 독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습한 눈길로 호은을 바라보며 도인호는 어쩐지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우와. 그거 괜찮은데? 업무용 연락도 다 무시하고~!”
“……그렇죠.”
천진난만한 얼굴은 외딴섬에 도착해서도 유지할 수 있을까.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더럽고 추악한 욕망을 가까스로 억눌렸다.
‘이대로 형을 데리고 도망친다면…….’
도인호는 와인 잔에 담긴 물을 마시며 입 안을 축였다. 마시고 있는 건 분명 물일 텐데 이상하게 목구멍이 뜨겁게 타올랐다.
“옛날에는 일에 치여서 이런 상상도 못 했는데.”
“…….”
“아직 행복해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취기에 살짝 붉어진 뺨을 손으로 뭉개며 호은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호야. 너랑 있으니까 행복해.”
“저도요.”
목구멍까지 뒤끓었던 욕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몸에 전율이 일었다. 자신이 있어 행복하다는 권호은이 도가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아직 해결되지 않을 일들 때문에 자중해야 하는 걸 아는데.”
“…….”
“그래도 지금은 우리 둘뿐이니까.”
본인이 말을 내뱉고도 부끄러웠던 건지 호은은 와인을 단번에 마시며 딴청을 부렸다. 도인호는 그런 호은을 귀엽게 쳐다봤다.
“행복해요,”
“어?”
“지금 너무 행복해요.”
같이 있다 보면 서로 닮게 되는 걸까? 도인호의 부드러운 표정은 호은의 것과 비슷했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웃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