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
외전 1.
아침부터 정신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호은은 검사복을 벗고 입고 왔던 와이셔츠로 갈아입었다.
일주일의 휴가를 얻었건만 이틀 정도 본가에 갔다 온 것을 제외하고는 일했던 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냈다.
“고생했어요.”
“너도 기다리느라 고생했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인호는 검사가 끝난 건지 옷차림이 말끔했다.
“호은 형. 이리 와 봐요.”
호은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긴 도인호는 어긋난 단추를 다시 제대로 잠가 줬다.
두 사람이 현재 있는 곳은 서울 본사였다. 각인으로 인한 매칭 결과를 다시 검사해야 했고, 호은의 가이딩 등급 또한 재검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매칭 검사를 시작했고 오후를 넘고 나서야 모든 검사가 끝났다.
“권호은 가이드님?”
“네.”
차트를 들고 있는 연구원이 호은을 불렀다.
“가이딩 검사 결과는 한 시간이면 나오니까 근처에서 대기하셨다가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연구원의 말에 가이드 워치를 확인하자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면 차장님께 갔다 올까요?”
“그러네. 출입 시간이 11시부터 3시까지였지.”
가이딩 검사는 인천 협회에서도 할 수 있다. 호은이 서울 본사까지 올라와 가이딩 검사를 받은 건 호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타이거를 잡은 그날 이후로 호수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검사실에서 나왔다. 아스팔트 위를 걷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호은은 겉옷을 여미고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호수 차장님은 어째서 징계를 받는 걸까.”
“…….”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보이는 도인호는 머리카락을 만지는 호은의 손을 낚아채 주머니에 넣었다. 마주 잡은 손의 온기는 따듯했다. 호은의 손등을 엄지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는 손길에 불안함으로 술렁거리던 호은의 마음이 점차 괜찮아졌다.
한참을 걸은 두 사람은 숲이 우거진 곳에 숨겨지듯 있는 별관 건물로 향했다.
별관은 집행부와 감사부에게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건물에 있는 구성원 자체가 회사 내부 규율을 어긴 징계자들이다 보니 외부인에 대해 엄격한 감시를 하는 것 같았다.
별관 앞을 막고 있는 보안 리더기에 사원증을 갖다 대자 짧은 전자음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열렸다.
“사전에 면담 요청하고 오신 거 맞으실까요?”
검은색 정장과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여자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네. 홍보부입니다.”
“홍보부셨군요.”
여자는 사원증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켜섰다. 그녀는 데스크 앞에 배치된 방문증을 가져와 건넸다.
“엘리베이터나 문을 여실 때 필요한 방문증입니다. 2층 205호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여자의 말처럼 층수 버튼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버튼 옆에 방문증을 꽂는 공간에 방문증을 넣자 버튼의 불이 들어왔다.
“건물이 스산한 것 같네.”
“추워요?”
팔뚝을 쓸어내리는 호은을 본 도인호는 겉옷을 반쯤 벗었다.
“추운 건 아니야. 그냥 소름이 끼쳐서.”
도인호의 옷을 제대로 입힌 호은은 복도를 걸어 나갔다. 복도는 호텔 숙소처럼 각 숫자가 적힌 문만 있을 뿐 휑하기 짝이 없었다.
205호 앞에 선 두 사람은 잠금장치에 방문증을 찍었다. 걸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흔들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차장님?”
흔들의자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 두 사람은 남자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호은은 신발장처럼 보이는 곳에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호수가 있는 곳은 1인용 숙소였다. 감옥 같은 광경을 상상했는데 아늑하고 채광이 좋은 방이었다.
“왔냐.”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호수가 일어서더니 두 사람을 돌아봤다.
“……차장님?”
“그래.”
“정말 차장님이세요?”
호수의 모습을 확인한 호은은 몇 번이고 되물었다. 백발의 머리카락은 윤기가 나던 옛날과 다르게 푸석푸석해 보였다. 거기다 20대처럼 보이던 호수의 얼굴은 세월이 지난 모습이었다.
“그래. 나 맞는다니까.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조금만 더 늦었으면 늙어 죽었을 거야.”
잔뜩 굳은 호은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은 호수는 소파쪽을 손짓하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이를 먹으신 이유가 뭐예요? 징계인가요?”
호은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따지듯 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호수가 갑자기 나이 먹은 것에 대한 충격과 당황스러움에 돌려 말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안 났으니까 말이다.
“징계 때문이라 해야 하나? 백우경이 이능력을 안 쓰고 있어서 그래.”
“네?”
“원래의 나라면 진작에 죽었어야 할 나이야. 그런데 백우경이 이능력을 써서 젊었던 시절로 나이가 멈춰 있었을 뿐이지.”
호수는 소파에 앉은 호은과 도인호에게 녹차를 건넸다. 어쩐지 나이가 많아진 호수의 얼굴에 호은은 공손하게 머그잔을 받았다.
“백우경이 없으면 난 죽어.”
호수는 두 사람이 여길 왜 왔는지 이유도 묻지도 않은 채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백우경을 살려 놓으면 이번 같은 일이 몇 번이고 생기겠지.”
다리를 꼬고 앉은 호수는 다시 창문을 바라봤다.
“백우경의 이능력은 시간이야.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지. 내가 녀석에게 계속 가이딩해 주는 이상 녀석과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시 시작이요?”
“이번 일을 문제 제기하는 녀석이 다 죽고 났을 때 그때 다시 등장하면 되거든.”
“…….”
“각인 못 한 에스퍼는 50살이면 죽고, 현장 가이드는 그것보다 더 빨리 죽잖냐.”
호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는 호수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가만히 호수가 내뱉는 말을 들어 줬다.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라. 그래서 난 놈을 죽이려고 했어. 이능력 핵을 파괴해서 죽여 버리는 거지.”
“…….”
“하지만 가이드의 힘으로 이능력 핵을 파괴하는 건 힘들었고, 이능력품으로 파괴 직전까지 가더라도 항상 녀석의 이능력에 핵이 망가지기 전으로 되돌아갔어.”
창문을 보던 호수의 시선이 도인호에게 향했다.
“그래서 파괴력이 가장 좋다는 청염이 이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 그거라면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
“그런데 어디서 나타난 이상한 녀석 때문에 해당 이능력품은 못 받게 됐지만 말이야.”
호수는 호은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긴장을 풀라는 의미의 웃음이었으나 호은은 어쩐지 숙연해졌다.
“나중에 도인호한테 백우경이나 암살해 달라고 부탁할까 싶었는데, 너희가 홍보부에 들어가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어.”
호수는 제법 오랫동안 말했다. 그는 타이거의 존재가 멀티 몬스터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백우경을 매장할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호수는 처음부터 백우경이 가이딩을 못 받는 징계를 받는 시나리오를 세웠던 거다.
그래야만 자신이 죽을 수 있으니까.
“저희를 이용하신 거나 다름없네요.”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나?”
호수는 가벼운 어투로 답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호은은 자신도 모르게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가 금방 일자로 다물었다.
백우경이 멀티 몬스터 실험의 총책임자라는 증거품과 멀티 몬스터를 서울 협회장에게 준 건 호은이었다. 이런 행동이 호수를 죽음으로 몰아붙였고, 결론적으로 호수가 죽기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호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러면 꼭 자신이 호수를 죽인 것 같지 않은가.
“형.”
무릎 위로 올려 둔 호은의 손 위로 커다란 손이 감쌌다. 아늑한 내부와 다르게 호은의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백우경의 몸에 남은 가이딩은 이번 달이 지나면 고갈된다고 하더라. 그렇게 되면 녀석과 나는 동시에 죽겠지.”
“…….”
“이번 달 지나기 전에 한 번 더 놀러 와. 각인 선배로서 궁금한 점 있으면 알려 줄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듯 호수가 화제를 돌렸다.
“이제 아침보다 밤이 더 바빠질 때잖아? 젤이나 콘돔은 확실히 구비한 거 맞지? 잘못하면 피 본다.”
“그, 그런 얘기 하러 온 거 아니에요!”
“난 그쪽이 전문이라고. 나보다 경험 많은 녀석은 없을걸?”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오른 호은은 도인호에게 잡혀 있던 손을 빼 부채질했다.
“부끄러워하기는. 아니면 각인에 대해 알려 줄까.”
“각인을 알려 줄 게 있나요?”
“당연하지. 자 일단 보면 알겠지만 내가 이곳에 잡혀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 백우경과 각인한 가이드이기 때문이야.”
호수는 직업병이라기도 하는 건지 다시 차장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각인하면 연좌제에 해당되거든. 그리고 각인한 가이드는 자신의 에스퍼가 없는 팀과는 같이 일할 수 없어. 다른 팀 지원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호수의 말에 도인호는 표정을 굳혔다. 연좌제라는 단어에 자신이 그동안 해 왔던 임무가 떠올랐다.
“도인호. 사원증 잘 어울리네. 이제 새로 시작하는 거야.”
그런 도인호의 심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호수가 그의 목에 걸려 있는 검은색 사원증을 언급했다.
세 사람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호은은 나이 먹은 호수의 얼굴을 슬며시 바라봤다. 노화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눈가 주름이 늘어난 것 같았다. 그래 봤자 원래도 동안인 호수라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미세한 변화였다.
“슬슬 그만 가 봐. 나이 먹으니까 피곤하다.”
머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호수는 천천히 일어났다. 호은은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였다.
“차장님은 지금 자유로우세요?”
“응.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호수를 포근하게 감쌌다. 햇빛이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이는 백금발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호은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가자, 인호야.”
도인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가는 순간까지 호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도인호는 그런 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이대로 사라지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호수의 귀에는 날개 모양의 귀걸이가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도인호는 호수가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확인해야만 했다.
“차장님이 사라진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해.”
문이 닫히고 도인호와 단둘이 남은 호은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그래도 차장님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아 보였어요.”
“그런가?”
호은은 작게 한숨을 뱉으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확실히 호수의 뒷모습은 쓸쓸한 그런 것과는 달라 보였다. 홀가분해 보였다고 해야 하나. 긴 세월을 보낸 호수의 마음을 호은은 감히 헤아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사원증을 보며 잘 어울린다고 말한 호수에 뭔가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살릴 수 있는 가이드. 언젠가 호수가 말했던 타이틀을 가지게 된 걸까.
“슬슬 시간 됐네요. 갈까요?”
손을 내민 도인호를 바라본 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