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도인호가 자취를 감췄다고?”
알림창을 누르자 여태까지 대화한 게 주르륵 떴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가이드 공단과 이능력자 협회의 정보를 빼돌리고 있었다.
정말 내부에 배신자가 있던 걸까? 스크롤을 천천히 위로 올리며 이전 대화 내용을 읽던 호은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배신자가 처음으로 보낸 메시지였다.
[기억 돌아왔습니다. 현재 가이드 공단 현장 지원 부서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임무 수행하겠습니다.]
메시지가 도착한 날짜와 소속된 부서.
“아닐 거야…….”
호은은 고개를 저었다.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이 떨렸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호은은 연신 아니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배신자의 존재 따위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 낌새를 느껴 본 적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자 믿음에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뭐야. 또 세뇌하네……. 에스퍼는 언제든 빌런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매체에서는 에스퍼를 히어로라고 소개하는 주제에. 재수 없어.’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일반인에서 가이드로 발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에스퍼 편만 들던 그녀를.
촬영 현장에서 유일하게 반정부와 접촉했던 그녀를. 왜 몰랐을까.
‘꼭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벚꽃 냄새가 생생하다. 병실 창문 옆에는 벚꽃 나뭇가지가 바람 따라 흔들렸다. 김세희는 어딘가 개운한 얼굴로 그리 말했었다.
김세희가 배신자라니. 아닐 거다. 그녀가 배신자일 리……. 뭔가 오해가 있는 거다. 타이거에서 내가 이 방에 들어올 걸 예상하고 이런 상황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
“아니어야만 해…….”
거칠어진 숨으로 헐떡이던 호은이 뒷걸음질 쳤다. 노트북을 끄지도 못한 채 방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걸을 때마다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렸다.
“그래서 내가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잖아.”
“……!!!”
누군가 호은의 어깨를 잡았다. 뒤를 돌아보자 삐딱하게 선 한여름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몰랐으면 이렇게 놀랄 일도 없을 텐데.”
한여름은 새하얗게 질린 호은의 뺨을 어루만졌다. 가녀린 어깨가 잘게 떨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네가 타이거에 합류했으니까 세희랑도 ‘한 팀’인 거잖아.”
“……도대체 언제부터야.”
“뭐가?”
“반정부를 만들고 배신자를 심고.”
호은이 말을 할 때마다 목에 핏줄이 돋았다.
“언제부터 이딴 계획을 세운 거야? 도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내가 복수라고 말하지 않았나.”
“김세희는 가이드잖아!!! 그런, 그런 애까지 끌어들이면서 해야 할 복수가 뭐냐고 도대체.”
호은이 알고 있는 김세희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잘 웃고, 떡볶이를 좋아하는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등학생. 그런 아이가 어쩌다 반정부인 타이거에 소속되어 스파이 같은 짓을 하게 된 거란 말인가.
“우리가 끌어들인 게 아니야. 본인이 직접 들어왔지.”
호은의 뺨을 만지던 것을 멈춘 한여름의 손은 자연스럽게 귓불로 향했다. 열이 오른 건지 붉어진 귀가 귀여웠다. 만지지 말라는 듯 호은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손길은 끈질겼다.
“김세희네 아버지 에스퍼였어. 결정체 이식 수술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지.”
“뭐……?”
“결정체 이식하는데 에스퍼와 일반인 둘 다 필요하잖아. 그 실험에 얼마나 많은 에스퍼와 일반인이 희생됐는지 몰라.”
결정체 이식 수술로 이능력 핵을 받아들이지 못한 일반인이 죽었다는 사실은 호수를 통해 들었다. 하지만 이능력 핵의 주인인 에스퍼는 어떻게 됐는지 듣지 못했다.
어떤 에스퍼가 이 실험에 응하는 건지. 그들도 강제적으로 하게 된 건지. 호은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빌런은 타이거가 아니라 정부라니까.”
“…….”
“우리는 단지 자선 사업을 했을 뿐이야. 결정체 이식 수술의 피해로 가족을 잃은 자들을 품어 줬지.”
귀를 매만지던 한여름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목덜미, 어깨, 옆구리, 마침내 골반 쪽에 닿은 손은 호은의 허리를 감쌌다.
“세상에 버림받은 기분. 가장 잘 아니까.”
호은은 어느 순간 한여름에게 끌어안긴 상태가 되어 버렸다.
“네가 나에게 한 거랑 같아. 선의를 던져 준 거지.”
한여름이 입을 열 때마다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고작 그 선의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들게 하는 거야. 네가 말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배신자 역할을 자처할 만큼.”
“…….”
“나 또한 그래. 십 년이라는 세월을 바라만 보는 걸로 만족할 만큼 네가 좋아. 감히 가질 생각도 못 하고 말이야.”
“…….”
“그런데 이렇게 가지게 됐네.”
황홀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여름은 호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만의 가이드.”
입술을 뗀 한여름은 서로의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다.
마치 연인에게 장난이라도 치듯 코끝을 스치던 한여름이 호은의 입술을 바라봤다. 각도를 트는 고갯짓에 여태껏 가만히 있던 호은이 손을 들었다.
철그럭, 쇳소리와 함께 입을 가린 호은이었다. 한여름은 상관없다는 듯 손등에 입 맞췄다.
“각인하자.”
한여름의 말에 호은의 동공이 흔들렸다.
“널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어.”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고 할 때 이미 호은은 침대에 눕혀진 상태였다.
한여름 품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침대 헤드까지 호은이 기어갔다. 다리를 버둥거릴 때마다 원목 침대는 끼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토해 냈다.
“각인 생각보다 별거 아니야.”
한여름은 호은의 다친 발목을 한 손으로 잡아다 끌어당겼다.
“직접 가이딩을 지속하다 보면 가이드의 신체에서 유난히 붉어지는 피부 부위가 있는데.”
한여름은 여전히 호은의 발목을 잡은 채였다. 그는 하얀 발등에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운 입술은 발등에서 복숭아뼈를 천천히 지나갔다.
“거길 물어 주면 끝나.”
잡고 있던 손이 종아리로 올라갔다. 덕분에 비워진 발목을 뾰족한 어금니로 깨문 한여름은 방금은 장난이라며 짓궂은 웃음을 뱉어냈다.
호은은 자신이 한여름에게 깔린 것인지 아니면 커다란 호랑이에게 깔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몸을 압박하는 커다란 존재에 숨을 헐떡이는 것이 호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있어.”
한여름은 호은의 가슴팍에 귀를 갖다 댔다.
“무서워?”
무섭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무서웠다. 호은은 떨리는 숨소리를 들키고 싶지 않아 때때로 숨을 멈춰야만 했다.
산소를 공급하지 않은 몸은 금방이고 답답해져 산소를 갈구하게 된다. 고작 숨 쉬는 것을 멈췄을 뿐인데, 인간은 이리도 쉽게 죽음과 가까워진다.
“개소리 집어치워.”
“흐응?”
“너 따위 하나도 안 무서워.”
그 누구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호은은 내뱉었다. 이 문장을 말해야만 자신이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무섭지만, 무서우면 안 됐다. 소방관이 불을 무서워하면 안 되는 것처럼 가이드는 에스퍼를 무서워하면 안 된다.
“무섭지 않으면 후회해?”
종아리를 잡고 있던 손이 부드럽게 호은의 몸을 훑다가 목에 닿았다. 대답에 따라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한여름이 말하는 후회는 과거로 거슬러 가야 했다. 어린 녀석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각자 서열을 매기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그때를 말하는 것이다.
“확실히…….”
호은은 천장을 바라봤다. 깜깜한 천장에는 몸에 맞지도 않은 교복을 입은 한여름이 떠다녔다.
항상 굽히고 다니던 어깨. 눈치를 보듯 더듬거리는 목소리. 그 누가 알았을까. 한여름이 평범한 소년이 아니라 에스퍼였다는 걸.
만약 한여름에게 이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괴롭힘당하는 모습을 무시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네가 에스퍼인걸 숨기고 약자인 척한 것은 짜증이 나지만.”
“…….”
“그래도 도와줬을 거야.”
호은은 두 눈을 감았다가 느리게 떴다. 말을 할 때마다 한여름 손에 짓눌린 목이 답답했다.
“그게 내 신념이거든. 하지만 각인은 못 해 줘.”
“왜.”
“각인하면…… 가이딩 능률이 떨어지잖아. 내 가이딩은 이미 주인이 있어.”
목을 조여 오던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도 각인이라는 게 가이드와 에스퍼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각인이라는 것 때문에 배연우는 에스퍼를 증오하게 되었고, 한여름은 각인으로 날 묶어 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한여름과 각인을 해 버리고 나면 도인호의 목숨이 다시 위태로워진다. 어떻게 살린 목숨인데.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 자식 생각해?”
“내가 책임지기로 했거든.”
“……하.”
“그러니까 각인은 못 해 줘. 약속한 거 지켜야 하니까.”
한여름은 고개를 숙였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호은의 목과 어깨를 스쳤다.
“김세희가 모든 기억을 찾고 나서 처음으로 보고한 게.”
“…….”
“63 스퀘어에 마지막까지 남은 가이드의 정체였지.”
한여름의 목소리는 끝이 갈라져 있었다. 그는 뭔가를 참듯 말을 뚝뚝 끊어 가며 이어 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부러워서 뒈지겠더라고. 왜 하필 그 자식일까. 나를 먼저 발견했더라면.”
“…….”
“그럼 넌 나를 구해 줬겠지.”
어깨가 축축했다. 호은은 설마 한여름이 우는 건가 싶었다. 어째서? 울고 싶은 사람은 납치된 자신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한여름이 우는 이유를 당최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권호은은 그 누구보다 정의로웠으니까.”
“…….”
“넌 누군가의 히어로니까.”
물기로 가득 젖은 눈을 맞춘 한여름이 내뱉는 말은 애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가이드가 되지 말지. 내가 비참하게 널 안아야 하잖아.”
자조적인 목소리로 문장을 끝낸 한여름의 눈동자가 공허해졌다. 그는 호은이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자 자기 손가락 두 개를 밀어 넣었다.
“아프면 깨물어.”
날카로운 바늘이 목을 뚫은 건 순식간이었다. 바늘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 건지 여태까지 맞은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흑.”
발버둥 치면 칠수록 바늘이 깊게 들어오는 걸 자각한 호은은 손을 들어 한여름을 밀어내던 걸 멈췄다. 축 늘어진 호은의 몸은 숨 쉴 때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내려앉기만 하고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끼이익, 어두운 방이 열리자 문 사이로 조명이 새어 나왔다.
“보스 피는…….”
“가져가.”
혈액을 끝까지 채취한 주사기를 한여름은 던졌다. 연구원은 허둥거리다 몸을 날려 주사기를 낚아챘다.
“이거면 혈액은 더 필요 없는 거 맞지.”
“네! 이거면 충분합니다.”
“그럼 나가 봐.”
연구원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딱 달라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서둘러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