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지사의 가장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커다란 집 한 채가 보였다. 집 앞에 있는 보안 리더기에 여자가 카드를 찍자 굳게 닫힌 문이 철컹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눈에 봐도 집이 어수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리라는 것을 안 하고 사는 건지 바닥을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쓰레기와 옷가지,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굴러다녔다.
“유리 같은 거 안 밟게 조심하세요. 어어, 거기 비커 조심.”
여자는 이곳이 익숙한지 신기하리만큼 빈틈에다 발을 내디디며 계단을 올라갔다. 두 사람은 여자가 밟고 나간 곳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이번에는 악취가 풍겼다. 호수는 집게 손으로 코를 막았다. 도인호는 잠시 숨을 멈췄다.
“협회장님. 손님이요.”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문을 열자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악취의 원인인 방은 여태껏 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연기가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린 세 사람은 회색 연기가 사라질 때쯤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누가 왔다고?”
방 안쪽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나왔다. 복슬복슬한 머리가 브로콜리와 똑 닮은 남자가 호수를 발견하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당신이 여기 왜?!”
“안녕.”
“아, 안녕이 아니라. 제주 지사에 가이드가 오면 안 되는 거 몰라?!”
“아는데.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워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호수를 보자 뒷걸음친 남자는 원망의 눈길로 여자를 쳐다봤다.
“황 박사!! 이, 이놈이 왜 여기 있어?!”
“저도 몰라요. 그냥 안내만 도왔을 뿐이지.”
호수는 소리 지르는 남자를 무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죽을 때까지 얌전히 짱박혀 살라 했더니. 또 실험이나 하고 앉아 있나 보네.”
빈정거린 어투를 내뱉은 호수가 일정한 걸음 속도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다리에 힘이라도 빠졌는지 결국 뒤로 자빠졌다. 호수는 남자가 넘어졌음에도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마침내 남자의 앞에 도착한 호수는 천천히 다리를 굽혔다.
“가이드 혈액으로 실험한 거 있지.”
“무, 무슨.”
“나 다 알고 왔는데.”
호수는 손을 뻗어 남자의 고글을 벗겼다.
“가이드가 없는 제주 지사에서……, 새로 개발한 가이딩 약이 돌아다닌다고 말이야.”
남자의 동공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목에 힘을 준 남자는 고개를 저으려는 듯 보였다. 그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호수가 턱을 잡았다.
“제주 지사 협회장님. 거짓말하면 여기 뒤에 있는 놈에게 혼날 거야.”
호수의 말에 도인호는 번뜩이는 눈으로 남자를 내려다봤다. 남자는 침음을 삼켰다. 정신계 에스퍼는 물리적인 싸움에서 약할 수밖에 없다.
“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호수의 뒤에 서 있는 에스퍼가 도인호라는 것을 알게 된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실험실에서 가장 위험한 게 불이다. 하필이면 화염 에스퍼를 데려오다니.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호수의 질문을 회피했다.
“으응. 방금 대답은 틀렸어. ‘알고 있는 거 전부 말할게.’ 가 맞는 답이야.”
도인호는 차고 있던 가죽 팔찌를 풀었다. 가이딩 소모를 막기 위해 이능력을 억제하던 팔찌가 풀리자 몸 안에서부터 불꽃이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르륵, 야구공 크기만 한 불꽃을 만들어 남자의 앞에 내밀자 협회장은 기겁했다.
“어어! 여기서 불 쓰면 안 돼! 황 박사, 어떻게 좀 해 봐!!!”
“그럼 저는 이만…….”
여자는 도인호의 불꽃이 크기를 더 키우기 전에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정확히 맞았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야구공 크기의 불꽃은 천장에 닿을 만큼 커져 남자를 위협했다.
“불로 좀 지지고 시작할까? 어차피 다시 재생되잖아.”
“……으아악!!”
호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까워진 불꽃에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두 눈을 질근 감고 손으로 얼굴을 막았다. 다가올 고통에 몸을 바들바들 떠는 남자의 모습을 본 호수는 굽혔던 무릎을 천천히 폈다.
“하나, 둘…….”
호수가 아무런 설명 없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셋…….”
“마, 말하면 되잖아!!!”
호수가 셋이라고 외치자마자 푸른 불꽃이 커다란 새의 모양이 되어 남자에게 돌진했다. 남자의 몸 전체를 덮치려던 새는 남자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멈췄다.
“허억. 미, 미친 거 아니야?! 협, 협회장을 불태우려고 했어?!”
“미쳤다는 말은 옛날부터 많이 들었고.”
호수는 지겹다는 듯 한쪽 눈썹을 위쪽으로 치켜들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점점 균열이 가는 것을 확인한 협회장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이, 일부러 한 건 아니었어!! 우연이었다고! 가이드의 피로 에스퍼 가이딩이 채워진다는 걸 알게 된 건!”
드디어 말할 준비를 끝낸 협회장에 도인호는 꺼내 놓은 이능력을 다시 회수했다.
“젠장. 명색이 협회장인데.”
눈치를 살살 보던 협회장은 꿇었던 무릎을 움찔거리더니 벌떡 일어섰다.
“접대실 가서 마저 얘기하자고. 차, 참고로 접대실에 목제 가구 많으니까 이능력 꺼내지 말고!!!”
도인호에게 으름장을 낸 협회장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에도 연신 뒤쪽을 흘겨봤다. 이능력을 쓰는지 안 쓰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제주 지사 협회장은 에스퍼치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와이셔츠 소매로 나온 팔목은 뼈대가 가늘었고, 거북이처럼 내민 목과 굽어진 허리 덕에 170cm도 안 되어 보였다. 나이는 30대 이상으로 보였으나 시선을 끄는 폭탄 머리 탓에 어려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런 놈이 어떻게 협회장인가 싶지?”
“네…….”
앞장서서 걷고 있던 호수가 뒤를 돌며 말했다.
“제주 지사에는 가이드가 없는 이유가 뭔지 알아?”
“…….”
“제주 지사에서 비밀리에 진행한 실험으로 가이드가 죽었기 때문이야.”
높낮이가 없는 호수의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도인호는 무표정한 호수의 얼굴에서 분노와 경멸을 읽어낼 수 있었다.
“결정체 이식 수술로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 무기를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가이드가 필요 없는 에스퍼를 만들려고 했지.”
“…….”
“뭐 실패했지만 말이다.”
협회장이 접대실 안으로 들어간 걸 본 호수는 대화를 멈췄다. 접대실은 아까 들어갔던 방보다 더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아니, 이건 악취가 아니라…….
“피 냄새…….”
도인호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접대실에 들어가자 어떻게 숨겼나 싶을 정도로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도대체 소문이 어떻게 난 거야.”
작게 투덜거리던 협회장은 접대실 안쪽에 마련된 금고에서 가죽으로 감싸진 수납함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수납함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천천히 걸쇠를 풀어 뚜껑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이건 정말 우연히 발견한 거야!”
수납함 안에는 빨간색 알약이 진열되어 있었다.
“자. 가이드의 혈액으로 만든 가이딩 약이야. 직접 가이딩보다 효과가 좋지.”
협회장은 말을 하는 내내 수납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엄청난 걸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 알약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호수는 왼손에 차고 있던 가이드 워치를 가볍게 터치했다.
화면의 숫자는 62%로 앞에 있는 협회장의 수치였다. 협회장이 알약을 삼키자 수치가 빠른 속도로 100%까지 달성했다.
“허억…… 허억 이거야!!!”
협회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몽롱한 시선으로 천장을 보던 협회장은 몇 초간 실실 쪼개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인호. 저 자식 좀 태워라.”
그 꼴을 못 봐주겠는지 호수가 고개를 돌렸다. 도인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어 남자의 목을 쥐었다.
“컥! 여, 여기 목제!”
“걱정하지 마. 당신만 태워 줄 테니까.”
푸른 불꽃이 협회장 전체를 덮쳤다.
***
호수는 접대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피부가 녹아내려도 금방 재생하니 타는 냄새가 안 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소매 부분으로 코를 막으며 호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제주 협회장을 내려다봤다.
“지, 진짜 우연이었다고. 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제주 지사는 각자 채워야 할 봉사 시간이 있잖아?!”
무릎에 쥐라도 난 건지 협회장은 엉덩이를 달싹거렸다.
“매년 헌혈 버스는 제주 지사 쪽에서 준비하는 거 아, 알지? 우…… 우연히 누군가 가이드의 혈액으로 약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하고 말했었어.”
“…….”
“처음에는 분명 장난이었어. 성공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지. 그런데 정말 가이드의 혈액으로 가이딩이 가능했던 거야!!”
협회장은 그때를 회상하기라도 하는지 허공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우, 우리는 해당 실험을 정식으로 요청했고 실험을 도와줄 가이드 세 명이 이쪽으로 왔어. 저, 절대 나 혼자 진행한 실험이 아니라고!”
“뭐? 제주 지사에 가이드를 보내 주는 멍청한 사람이 있다고?”
“배, 백우경 이사장이 허락했어.”
“……씨발.”
호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제주 지사에다가 가이드를 보내? 힘을 준 어금니에서 까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 실험 자체는 성공적이었어! 과다출혈로 가이드가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이게 이런 취급을 받을 리 없었을 텐데!!”
협회장은 가이드가 다친 건 별 관심 없어 보였다. 그저 접대실 금고에 숨긴 가이딩 약이 합법적이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론했을 뿐이다.
“이봐 권수혁 협회장. 네 이능력이 브레인이었지.”
“그, 그래!”
“이능력을 살려 많은 연구를 했다고 들었어. 그리고 항상 실험마다 사상자를 냈고.”
“그건……!!!”
“이제는 기록조차 찾을 수 없는 멀티 실험. 분명 제주 지사에서 진행한 거로 아는데. 연구소가 활활 타 버려 실험에 관한 자료가 모조리 다 사라졌지.”
“…….”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해당 실험에 참여한 녀석들 대부분이 죽고 아무것도 아닌 네가 협회장이란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협회장에게 천천히 다가간 호수는 머리채를 잡아채 위로 들었다.
“크흑.”
처음부터 제주 지사에 가이드가 없던 것은 아니다. 원래라면 가이드에게 제주 지사는 가장 꿀 빨 수 있는 현장이라고 불릴 만큼, 외근직 중에서도 현장이 위험하지 않은 협회였다.
제주 지사에서 하는 업무 대부분은 실험과 연구다. 이곳의 현장은 연구소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이드는 적당히 일하고 쉬는 날이면 제주도를 여유롭게 휴양할 정도였다.
그런 제주 지사에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건 딱 십 년 전이었다. 바로 가이드 여러 명이 끔찍한 생체 실험을 당하다 죽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