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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에서 사내연애-95화 (95/129)

95화

호은은 도인호를 말리듯 그의 손을 툭툭 쳤다.

“무서우실 수 있지. 일반인이잖아. 손잡아 드릴 테니까 저랑 같이 가요. 저 사람들 약에 취해서 그렇지, 이상한 사람은 아닐 거예요. 오히려 여기가 더 위험해요. 깡패한테 인질로 잡힐 수도 있고.”

도인호는 꼭 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에 눈썹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그럼 엄호해 드리겠습니다.”

“으응? 그래.”

엄호하겠다고 말한 도인호는 호은의 빈손을 잡았다. 보통 엄호하면 뒤에서 지켜 주지 않나?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부장님!!”

남자의 손을 잡고 엄태석이 있는 계단 앞까지 온 호은이 엄태석을 불렀다.

이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건가 싶을 때 박기현이 있는 감옥 쪽에서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씨, 씨발. 내가 여기서 붙잡힐 줄 알고?!”

약에 취해 정신 잃은 손님을 창살에 던진 박기현은 손님이 감전되는 것을 방패로 빠져나왔다.

전류는 기절할 정도의 충격만 있는 건지 손님의 머리카락이 조금 탄 걸 제외한 나머지는 멀쩡해 보였다. 박기현은 손님을 바닥에 던져놓고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급히 뛰어갔다.

“어디 보자…….”

급박한 상황에도 강힘찬은 여유로웠다.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포켓에서 검은색 무언가를 꺼냈다.

망원경과 비슷한 종류로 보이는 그것은 핸드폰 크기 정도로 작았다. 거리를 측정하듯 확인한 강힘찬은 골프 가방에 손을 넣었다.

“저 정도 거리면 드라이브로 드리겠슴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호은은 강힘찬에게 드라이브 채를 받은 엄태석이 스윙하려는 듯 자세를 잡는 모습에 뛰려던 걸 멈췄다.

왼쪽, 오른쪽 손을 흔들며 방향을 간 보던 엄태석이 팔을 곧게 뻗었다. 왼쪽으로 돌아간 허리와 오른쪽 발꿈치가 떼어진 그의 모습은 완벽한 자세였다.

“역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함다.”

골프공이 계단 위로 높이 올라가더니 정확히 박기현의 머리 위로 멈췄다.

-파지직, 파직

푸른색 골프공은 구름 모양으로 바뀌더니 번쩍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낙뢰(落雷).”

“으아아아아악!!!”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여러 차례 박기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벼락 맞은 사람을 본다면 이런 걸까? 지난번 낙뢰는 작았다면 이번 건 크기와 횟수가 두 배는 컸다.

감옥에서 시끄럽게 꺼내 달라며 소리 지르던 목소리가 뚝 멈췄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숨어 있다가 몇 번을 기습공격하던 드래곤 조직원도 홀린 듯 나와 박기현을 바라봤다.

“으아, 아, 아아.”

풀썩 바닥에 쓰러진 박기현은 제대로 말도 내뱉지 못한 채 기절했다.

일반인이라면 바로 즉사였을 텐데. 간헐적으로 몸을 바르작거리며 떨고 있는 걸 보니 살아 있는 모양이다.

“이걸로 진짜 끝인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호은이 긴장의 끈을 놓았을 때였다.

-쿠다탕

한여울을 감싼 폴이 계단 위로 등장하더니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바닥에 닿기 직전까지 한여울을 품에 안아 다치지 않게 한 폴은 재빠르게 일어나 주변을 경계했다.

“무슨 일임까?!”

“허억. 허억. 따라…….”

강힘찬의 물음에 입을 열던 폴은 말을 잇지 못했다. 폴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더니 그 위로 선악율이 나타나 폴의 목을 졸랐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 했지.”

“크흑!”

폴의 목을 쥔 선악율이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겁에 질린 한여울의 손을 잡아챘다.

“뭐야. 나 없다고 이렇게 상황이 꼬인 거야?”

비틀린 미소를 지은 선악율이 아수라장이 된 드래곤 아지트를 살펴봤다.

“형도 잡혔어?”

“네가 느려서 그런 거잖아!”

선악율의 등장에 승리로 끝나려던 임무가 다시 원점이 되었다.

인질로 잡히면 안 될 인물이 인질이 되어 버렸다. 최선율과 대화를 나누는 선악율에게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다들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 자리의 갑이 누구인지.

“흐음, 흠. 어떻게 할까. 보스는 한여울 데려오라 했긴 했는데.”

선악율이 호은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줬다.

“그렇다고 나만 도망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나.”

“교환하자.”

가만히 있던 배연우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이능력구를 푸는 유일한 열쇠였다.

“한여울이랑 네가 원하는 사람 한 명. 일대일 교환 어때.”

“하아? 그건 내가 손해지. 나야 마음만 먹으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선악율과 한여울이 배연우의 그림자로 튀어나왔다.

“너네 같은 쓰레기 죽이는 건 쉽거든.”

배연우의 목에 단도가 닿았다.

“따갑네.”

천연덕스럽게 말한 배연우였지만 점점 깊숙이 파고드는 칼날에 선홍빛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안 무서워?”

“넌 한번 본 적 있거든. 야비하게 싸우는 놈이잖아.”

“뭐?”

“이능력이 좀 그렇지 않아? 남에 그림자에 들어가 숨었다가 나왔다가. 두더지 게임도 아니고. 거기다 불이 꺼져 그림자가 없는 곳에서는 약할 거 같은데. 그러니까 너랑 최선율이랑 같이 다니는 거 아니었어?”

배연우는 멈춤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도 봐. 어린아이 데리고 인질이니 뭐니 하는 것부터가 좀 모양 빠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자고 있는 어린아이 납치해서 이러는 거. 인질 없으면 우리한테 완전히 발릴까 봐 그런 거잖아.”

목에 파고들던 칼날이 부들부들 떨렸다. 힐긋 칼날을 보던 배연우는 한층 더 재수 없는 목소리를 뱉었다.

“요즘 애들은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는 약하다지? 어린 여자아이 인질로 잡는 것도 모자라서 가이드한테 칼 들이미는 것만 보여도 딱 답이 나와. 여기 에스퍼도 많은데 굳이? 나한테? 정답은 네가 죽일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거야.”

얄미울 정도로 비꼬는 배연우의 말투는 선악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도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느낌이었다.

말로 사람을 폭행한다면 저런 걸까?

호은은 언젠가 배연우에게 말로 털리며 얼차려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땀을 흘렸다.

“악율아! 그딴 새끼 무시하고 일단 열쇠부터.”

“하하. 아…… 잠깐만. 이 새끼 죽이고.”

“안 돼!!!”

배연우의 목에서 단도를 뗐다가 목을 벨 기세로 들어 올린 선악율은 최선율의 고함 소리를 듣고 멈췄다.

“저놈 죽이면 그 열쇠도 망가져!! 저 새끼 일부러 도발하는 거야.”

“형 쪽은 머리가 좀 돌아가네?”

배연우가 피식 웃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능력구 열쇠에는 특이한 장치가 있어서 말이야. 주인으로 설정한 사람이 살아 있을 때만 열쇠의 역할을 할 수 있거든. 나 죽이면 네 형은 평생 이능력구를 차고 있어야 해. 알지? 이능력구는 이능력으로 부실 수 없는 거.”

“야비한 새끼.”

“칭찬 땡큐.”

사르륵. 배연우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저런 여유라니.

호은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쩐지 이능력구는 주면서 열쇠는 왜 안 주나 했더니. 저런 이유가 있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상사의 목이 떨어질까 봐 심장이 지구 내핵까지 내려갈 뻔했다.

“언제까지 재수 없게 웃나 볼까? 아직 내 손에 여자아이가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선악율은 한여울을 잡은 손을 우악스럽게 들어 올렸다.

“…….”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충분히 무서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여울은 겁에 질린 표정이긴 하였으나 침착해 보였다. 마치 이런 상황이 올 걸 알았던 것처럼.

그녀는 누군가 찾는 듯 고개를 돌리다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엄마.”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은 한여울의 부모가 갇힌 감옥이었다. 한여울 엄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견디기 어렵기라도 한지 고개를 숙였다.

“이 꼬마 다치는 거 보기 싫으면 열쇠 내놔.”

“교환하자니까.”

“정신 나간 새끼네. 내가 좋게 말하니까 이해가 안 돼?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지금 당장 팔 잘라서 열쇠만 들고 가 줄까?”

“오른손은 여기저기 쓸 일이 많은데.”

배연우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꼬마야. 너 에스퍼는 맞지?”

“…….”

한여울은 배연우의 질문에 가만히 있었다.

“아니. 우리가 한여울이 필요한 건 맞는데. 이능력 쓴 순간을 포착한 게 아닌 이상 데려가 봤자 어차피 풀어 줘야 해서 말이야.”

배연우의 말에 호은이 강힘찬을 쳐다봤다.

“저 말이 진짜인가요?”

“맞슴다. 지금 상황에서 한여울을 구해 봤자 저희가 확보한 증거로는 각성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슴다. 그렇게 되면 한여울은 다시 기억을 지우고 사회로 내보내질 검다.”

강힘찬의 말에 호은은 불안한 눈빛으로 앞에 광경을 지켜봤다.

“하지만 타이거는 한여울을 데려가려 하잖아요. 그 말은 각성했다는 뜻 아닌가요.”

조용히 있던 엄태석이 입을 뗐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한여울이 아닌 배연우 대리를 구하는 것이 맞는다네. 선악율이 한여울을 잡고 있어 우리 쪽에서 함부로 이능력을 쓰기도 어렵고. 이능력 없이 한여울을 구하는 건 더더욱 어렵지.”

엄태석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으나 그가 말하는 결론은 하나였다. 한여울을 포기하고 배연우를 구하라. 호은은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뒷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생각이 너무 많아 말로 뱉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른과 아이를 같은 선상에 놓았을 때 구해야 할 존재는 약자인 아이다. 하지만 가이드와 일반 아이를 비교하면 가이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 이곳의 법이다.

“다른 방법은…….”

“한여울이 지금 여기서 이능력을 사용해 에스퍼 각성자가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렇게 되면 한여울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네.”

엄태석의 말에 호은은 한여울을 쳐다봤다. 그녀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엄마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손은 선악율에게 잡혀 있어 만약 이 상태로 엄태석이나 도인호가 공격을 해 봤자 한여울까지 말려들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폴이 순간이동으로 한여울을 빼 오는 건? 역시 무리다.

손을 잡고 있는 선악율까지 같이 이동되면 그저 자리를 이동한 것밖에 안 됐다.

“게, 게임할까요?”

그때였다. 배연우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남운수가 테이블에 놓은 트럼프 카드를 들었다.

“뭐?”

“타, 타이거는 재, 재미있는 걸 좋아하죠? 그, 그럼 교환 말고 게, 게임 어때요?”

트럼프 카드를 섞은 남운수가 카드 한 장을 선악율에게 건넸다.

“각, 각자 한 장씩 카드를 받고…… 수, 숫자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카드를 받은 선악율은 입꼬리를 올렸다.

“방금 저놈이 말한 것보다는 재미있겠네. 하지만 카드는 내가 섞겠어.”

선악율은 받은 카드를 다시 섞더니 한 장은 남운수에게 주고 나머지 한 장은 자신이 가져갔다.

“승리하면 뭘 원하지? 일대일 교환 같은 개소리는 아니겠지.”

선악율의 말에 남운수는 받은 카드 뒷면을 물끄러미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른손…….”

“하?”

남운수는 열쇠를 쥐고 있는 배연우의 손에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

배연우는 별다른 말 없이 남운수의 손바닥에 열쇠를 떨어트렸다. 희미하게 웃은 남운수는 오른손 주먹을 쥐었다.

“제, 제가 들고 있는 열쇠……. 그리고 당신이 쥐고 있는 오른손. 지면 잘, 잘라 내죠.”

“자르자고?”

“어, 어차피 재생될 거고……. 누, 누가 이기든. 1분 안에……. 구하든가……, 막아 내든가…….”

호은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상황에 연신 눈만 깜빡였다. 남운수의 오른손은 열쇠를 쥐고 있다. 그리고 선악율의 오른손은 한여울을이 붙잡혀 있었다.

“도박이네?”

어깨를 들썩이며 웃은 선악율은 재미있겠다며 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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