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우리 초면인가?”
“이거 놔!”
“싫은데. 너 누구랑 무전하고 있는 거야? 정부 쪽 개새끼인가?”
“이거 놓으라고!”
발이 허공으로 떴다. 버둥거리면 버둥거릴수록 두피가 뜯어질 거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호은은 최선율의 손을 잡아떼려고 노력했으나 헛수고였다.
“선율이 형. 그렇게 백날 물어봐라 대답하나. 내가 하는 거 잘 봐.”
어느새 다가온 원신에 호은은 눈을 감았다. 원신은 정신 지배 에스퍼다.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
-퍼억
“윽.”
복부를 가격한 최선율 탓에 감았던 눈이 절로 떠졌다. 시야가 흐릿해 원신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건지 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너 누구야?”
순간 원신의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변했다.
“…….”
호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정신 지배라는 이능력은 그런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헤헤. 그래 봤자 넌 말하게 되어 있어.”
“…….”
“자 말해 봐. 정부 사람이야? 몇 명이나 여기에 있어?”
“…….”
“??”
호은과 원신의 의미 없는 눈싸움이 계속됐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호은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최선율이 손에서 힘을 풀었다.
“뭐야. 신이 너 능력 쓰는 거 맞아?”
“뭔 소리야! 계속 쓰고 있구먼. 이능력품 차고 있나?”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호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 내 눈 봐봐. 너는 잠이 든다.”
원신은 당황했는지 묶여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보라색 눈빛을 보이며 명령했다. 그러자 여자는 스르륵 눈이 감기더니 잠이 들었다.
“하, 하하. 이걸 어째? 나한테 이능력 안 드는 거 같은데?”
여자가 쓰러진 걸 확인한 호은이 주저앉은 상태로 실성과 같은 웃음을 뱉었다. 원신의 이능력이 자신에게 안 통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잘됐다.
다시 뒤통수가 잡힌 순간 인이어가 빠지기 직전 확실히 들었다.
[조금만 버텨요.]
[권호은 너 딱 기다려라.]
[2팀 박기현 체포하겠슴다.]
[여기는 폴. 한여울 안전 확보했으나…… 치지직.]
도인호부터 시작해서 배연우, 강힘찬, 폴 등 함께하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말이다. 마지막 폴 씨의 말이 끊겨 불안하긴 했으나 어쩐지 미소를 짓고 있는 건 반정부가 아닌 자신이었다.
“월!”
호은은 분노로 일그러지는 두 사람을 보며 짖었다.
“그래. 나 정부 개새끼 맞는데 뭐 어쩔래.”
혀를 내밀며 짓궂게 웃은 호은이 최선율의 손을 피해 몸을 일으켰다.
“재미있네.”
골 때린다는 듯 헛웃음을 삼킨 최선율의 눈빛에 살기가 차올랐다. 그는 가죽 장갑을 차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어디까지 혀를 놀리나 볼까? 일반인이면 죽여도 상관없을 거 같은데.”
“죽이지는 마! 이 녀석 내 이능력을 씹었단 말이야. 뭐 때문인지 조사해야 해.”
원신은 최선율을 적당히 말리며 작은 상자에 털썩 앉았다.
초콜릿을 꺼내 든 원신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물며 두 사람을 구경했다.
“일반인이면 죽이고, 에스퍼면 뭐 폭주 군단으로 쓰려고?”
“하아?”
“에스퍼 의심자 지켜보다 각성하면 훔쳐 간 거 모르고 있을 줄 알았어? 그 사람들 어떻게 했어.”
호은은 일부러 시간을 벌 듯 최선율에게 자꾸만 말을 걸었다.
“형씨. 그걸 내가 말할 거 같아?”
“왜? 맞는 말이라서 대답 못 하는 거 아니고?”
서로를 마주 보는 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최선율은 허리춤에 찼던 총을 꺼냈다. 아무리 군대를 안 간 호은이라도 최선율이 들고 있는 것이 평범한 총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컬러풀한 보라색 총은 마치 어린이 장난감이나 게임 속에 나오는 것처럼 생겼다.
“일반인 상태로 이능력품이야? 반정부도 별거 없구나.”
“잡히면 혀부터 뽑아 줄게.”
탄피를 장전하는 부위도 없는 총은 최선율이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레이저빔을 쏟아 내며 호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탄내…….’
목덜미가 축축하게 젖었다. 방이 습하기도 했고 계속 긴장했던 몸이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호은은 배연우에게 배웠던 호흡법을 떠올렸다.
가이드에게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 최선율이 쏘는 레이저에 맞으면 바로 아웃이다.
“…….”
“…….”
-와그작
최선율과 시선을 주고받고 있을 때 원신의 초콜릿 씹는 소리가 마치 출발 신호라도 되는 듯 두 사람은 동시에 발을 움직였다.
호은은 훈련장에서 움직였을 때보다 지금의 몸이 훨씬 더 가볍다는 걸 느꼈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버린다. 최소한의 움직임, 최소한의 호흡.
그것들이 모여 가장 좋은 타이밍을 만든다.
“!!”
“사격 연습 다시 해야겠는데?”
드럼통을 밟고 나무 상자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호은이 새빨간 혀를 내밀었다 도로 집어넣었다.
최선율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마도 분노를 참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빛보다 빠르다고 말하는 자만이라는 거 알고 있어?”
“빛보다 빠를 순 없지. 하지만 흔해 빠진 직선 공격은 피할 자신 있는데.”
“그래. 직선 공격 말이지.”
최선율이 방아쇠를 여러 번 당김과 동시에 최선율 본체 또한 빛이 나더니 일직선으로 튀어 올라 단번에 상자까지 올라왔다. 팔을 뻗은 최선율을 피하려 발을 움직인 호은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최선율은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가 얼마나 빨랐냐면 레이저 총에서 나온 빔보다 최선율이 먼저 호은에게 도달해 본인이 쏜 레이저를 본인이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이능력의 주인이라 그런지 레이저는 곧바로 최선율에게 흡수되었지만 말이다.
낙법을 취한 호은은 숨돌릴 틈도 없이 빠르게 지그재그로 창고 안을 뛰어다녔다. 골려 준다고 세 치 혀를 놀린 게 놈을 제대로 자극한 모양이다.
“후우, 후.”
기둥 뒤에 몸을 숨긴 호은이 모자란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 폐가 찢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한 시간 이상을 움직인 거 같은데 무전이 온 지 십 분조차 안 지났다.
“숨바꼭질하자는 거야?”
구두 굽 소리가 또각또각 바닥을 울렸다. 63스퀘어에서부터 생각했지만 율 형제는 또라이 같았다.
‘이 상황에서 숨바꼭질하겠냐?’
호은은 따지고 싶은 말을 삼키며 차가운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열을 식혔다. 인기척이 멀리서 느껴졌다.
호은은 벽에 쓰러져 있던 한여울의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벽에 부딪힐 때 의자가 부서지기라도 했는지 밧줄이 허술하게 풀려 있었다.
“!!”
잔뜩 겁에 질려 있던 남자를 본 호은이 저것도 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야!! 기둥 뒤에 있어!!”
“뭐 하는…….”
남자는 창고 안이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 호은의 위치를 알렸다.
“이놈 여기 있어!! 허억 헉!”
점점 최선율의 인기척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호은은 남자를 원망하기도 전 도망칠 궁리부터 했다. 기둥 뒤 주변은 휑했다. 장애물이 있다면 페이크 작전이라도 써 볼 텐데 불가능한 구조였다.
“들켰네. 그럼 이제 내가 술래인가?”
일부러 기둥에서 나온 호은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최선율에게 위치를 확인시켜 줬다.
숨어 있어 봤자 상대방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 또한 숨어 있는 것보단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고 있는 편이 나았다.
“내, 내가 알려 줬으니까 도와준 거지!!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도, 돌아가게 해 줘!! 여, 여울이도 잘 키워 볼 테니까!!”
남자는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기더니 최선율의 구두 코앞까지 다가갔다. 구두에 뺨이라도 비빌 기세로 한껏 애처로운 모습을 보인 놈은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듯 간절해 보였다.
“푸핫. 네가 나를 도왔다고?”
가소롭다는 듯 최선율이 남자의 손바닥을 구두로 짓밟았다. 에스퍼의 힘은 상상도 못 할 만큼 강했다. 우두둑. 뼈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건방져. 비능력자 주제에 하나같이 건방지단 말이지.”
“이능력자는 건방져도 되고?”
남자의 손을 짓뭉개던 최선율이 호은을 돌아봤다.
“아아. 맞다. 저거 혀부터 뽑아야 했었지.”
“뽑아 보든가.”
긴장한 모습을 애써 숨긴 호은이 땀이 고인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래. 혀가 얼마나 긴지 확인해 보자.”
최선율의 발꿈치에 빛이 번쩍 빛나더니 아까와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호은의 앞에 도달했다.
간신히 옆으로 몸을 튼 호은이었으나 발을 헛디뎌 템포가 엉켰을 때였다.
-쨍그랑
천장에 달려 있던 조명이 산산조각 나며 깨졌다. 창고 안은 순식간에 암흑에 삼켜졌다.
“도깨비불.”
창고의 입구 쪽에 푸른 불 여섯 개가 원형의 모양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호은은 그 틈을 타 최선율과 거리를 벌렸다.
“도깨비불? 푸핫. 동료랑 저승길 같이 가려는 네이밍인가? 사이 좋네.”
어둠 속에서 최선율이 총구를 창고 문 앞으로 돌렸다.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목표물을 조준한 최선율의 레이저 빔이 비처럼 여러 발 쏟아졌고 동시에 도깨비불 또한 허공을 가로질렀다.
“이 자식?! 원신, 피해!!!”
도깨비불은 최선율이 아닌 원신에게 향했다. 최선율의 몸 전체가 밝게 빛나더니 마치 전광석화처럼 원신에게 달려들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은박지 소리는 어쩐지 원신이 들고 있던 초콜릿을 연상시켰다.
“늦어서 미안해요.”
“아니. 최고의 타이밍이었어.”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이 냄새를 맡고 있자 어쩐지 몸의 긴장이 풀린다.
현장이 아닌 집에 돌아간 것만 같은 그리움도 느껴진다.
호은은 어둠 속에 익숙해진 눈으로 옆에 서 있는 도인호를 올려다봤다.
가이드에게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 했다.
첫 번째는 도망칠 타이밍이고 두 번째는 가이딩 타이밍이라 배웠다. 하지만 호은이 기다린 건 세 번째 타이밍이었다.
바로 믿고 있는 동료가 정확한 타이밍에 오는 것.
“역시 너라면 제때 올 줄 알았어.”
시원스럽게 미소 짓는 호은을 본 도인호는 답지 않게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저건 뭐야?”
최선율이 원신에게 갔지만, 도깨비불이라 불린 것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분명 원신에게도 최선율에게도 불이 닿은 거 같았는데 불 모양을 여전히 유지한 채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도깨비불 모양처럼 생겨서 도깨비불입니다. 보시다시피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처럼 시선 돌리기용 스킬이죠.”
멀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최선율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을 것만 같았다.
“시선 돌리기용……?”
“공격만 한다고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처럼.”
도인호의 손이 부드럽게 호은의 뺨을 감쌌다. 다친 곳은 없나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여기저기 굴러서 생긴 생채기를 제외하고는 멀끔한 모습이었다.
“난 괜찮아. 아, 그리고 저기 뒤에 남자 있고, 저쪽 의자에 여자 묶여 있어.”
“일단 저 두 사람한테서 먼저 떼어 놔야 하겠네요.”
“응. 위쪽은 어때?”
“게임이라면 이겼습니다.”
“엉? 게임?”
“네.”
호은은 이해가 안 가 다시 물었다. 지금 게임이라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