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남운수는 오른쪽 귀를 쫑긋거리더니 호은의 셔츠를 잡아당겼다.
-콰앙!!!!
남운수와 함께 벽에 붙은 호은은 조금 전 자신이 있던 자리로 현관문이 날아가는 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현관문은 박기현에게 정통으로 닿아 그를 벽에 처박았다.
“저 자식 죽여도 됩니까.”
살기 서린 얼굴의 도인호가 검은색 장갑을 끼며 들어왔다.
“야. 네가 봐줘라. 반응 봐. 가이딩 처음 받아 보는데.”
도인호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죽이지는 말고 일단 구속구로 잡자.”
배연우의 명령에 도인호는 먼저 호은에게 다가가 손목에 자기 입술을 맞췄다.
“감히…….”
소중하게 닿은 입술과 다르게 분노가 담긴 눈동자가 일렁거리던 도인호는 순식간에 박기현의 앞으로 다가갔다.
“감히……. 누구를 산다고 입을 놀린 거지?”
도인호의 몸 전체에 푸른 화염이 감쌌다. 현관문에 깔려 버둥거리는 박기현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힘겹게 현관문을 들어 올렸다.
“잠깐…… 인호야, 윽……!”
남운수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발을 내디딘 호은은 극심한 어지럼증에 비틀거렸다.
삐─ 전자음이 귀에 울리고 시야가 흔들렸다. 잠시 멈춰 머리를 붙잡으며 눈을 감았다 뜨자 어느새 배연우가 호은의 앞에 서 있었다.
“이능력에 당해서 어지러울 거다.”
“으윽. 속도 안 좋은 거 같아요.”
-빠직
호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인호는 박기현 앞에 떨어진 현관문에 발을 올렸다. 단번에 두 동강 난 현관문의 모습에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입만 열 수 있으면 되는 거죠.”
도인호를 감싸고 있는 화염이 크게 일렁거렸다. 불꽃은 평소 푸른색보다 연한 색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불에 닿은 사물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 타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는 사물과 다르게 박기현 혼자 해당 불의 뜨거움을 다 받아들이고 있는 거 같았다.
“오지 마!!! 내, 내가 누군지 알아?!! 나 건들면!!! 그 녀석이 올 거야!!!”
주섬주섬 바지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박기현을 손목을 잡아 비틀자 어깨까지 단번에 뒤틀렸다.
“으악…… 읍?! 읍!!!”
비명을 지르려던 박기현의 비명은 도인호의 손바닥에 막혀 나오지 못하고 사라졌다.
몇 번이고 박기현의 뼈를 뒤틀고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에스퍼랑 다니다 보면 머리가 이상하게 될 거 같지 않냐.”
배연우가 호은의 앞에 서서 작은 머리통을 잡더니 내리눌렀다. 예전처럼 강압적으로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것과는 달랐다. 마치 눈앞에 잔인한 장면을 가려 주는 듯 손길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다.
“일반인인 우리는 저렇게 뒤틀리면 당장 병원행인데. 심장만 뚫리지 않으면 몇 번이고 자가 치유하니까. 한 번에 끝나지 않는 목숨이 꼭.”
“…….”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처럼 느껴져서 거북스럽고, 혼란스럽고.”
“…….”
“나중에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더라고. 아, 이건 나만 그런 거일 수도 있지만.”
배연우가 말을 끝내자 우두둑거리는 소리도 동시에 멈췄다. 추웠던 방 안의 공기는 도인호의 이능력 때문인지 조금 덥기까지 했다. 호은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끝났습니다.”
뒤를 돌아본 도인호의 뺨과 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동차에서 일반 옷으로 갈아입어 잠옷에 피가 묻은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 이제 슬슬 대화를 나눠 볼까?”
공포로 얼굴이 파랗게 질린 박기현이 다리를 버둥거렸다. 물러날 장소조차 없이 벽으로 들어갈 기세처럼 다리를 굽혔다 폈지만 그저 벽에 기대앉아 있는 게 다였다.
“호은아. 안경 줘 봐.”
호은은 쓰고 있던 안경을 배연우에게 건넸다. 안경을 쓴 배연우는 일정한 걸음걸이로 한 걸음씩 박기현에게 다가가다 코앞에 멈추어 섰다.
다리를 굽히고 주저앉은 배연우가 박기현의 턱을 들어 올렸다.
“에스퍼로 각성하면 이능력자 협회 소속으로 와야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허억, 허억. 즈, 증거 있어?! 내가 에스퍼란 증거 있냐고!!”
“신기하네. 증거 없으면 협회로 못 데려가는 것도 알고.”
뒤에 있던 남운수는 어느새 배연우 옆에 서 있었다.
“그래. 증거 중요하지. 거기다 네 능력은 환상을 보여 주는 거잖아? 이능력을 당한 사람만 보는 환상이니 증거 잡기는 더럽게 어렵지.”
배연우는 안경의 콧대 부분을 쓱 올렸다.
“그런데 이건 특수 제작한 안경이라. 이능력에 반응하거든? 세뇌당한 사람을 파악한다거나,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능력을 담는다거나.”
“뭐?!!”
“그러니까. 증거 있다고. 여기 이 안경에 네가 보여 준 환상이 담겼으니까.”
씨익 입꼬리를 올린 배연우의 얼굴은 영혼을 수거하러 온 저승사자보다 더 섬뜩해 보였다.
“그러니 이제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눠 볼까?”
박기현의 시선이 천장에 향했다. 배연우의 말에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머리를 빠르게 흔들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죽, 죽어도 말 못 혀!”
“왜? 거기는 죽인다고 협박하든? 그런데 말이야. 우리를 선택 안 하면 오히려 죽여 달라 빌게 될걸?”
어느새 단도를 꺼내든 배연우가 남운수를 흘긋 쳐다봤다. 남운수는 익숙하다는 듯 주머니에서 천을 꺼내더니 박기현의 입을 막았다.
“으읍!! 읍!!!”
배연우가 칼을 들어 움직이자 박기현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흰자를 보이며 괴로워했다.
“일반인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사형 제도도 없어졌겠다 네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범죄로 재판받아 봤자 옥살이 몇 년 하면 끝이잖아?”
“으으윽!!! 흐윽, 흡!!!”
-촤아악
피가 뿜어져 나와 배연우의 얼굴을 덮었다. 지독한 비린내가 확 풍겼다.
“하지만 우리 이능력자 재판으로 넘어가면 일반인 기준의 처벌과는 다를 거야. 너 같은 쓰레기 자식은 1급의 징벌을 받게 되거든.”
박기현은 고개를 저으며 그만하라는 듯 저항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배연우였지만 호은은 어쩐지 그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 모습이 그려졌다.
“에스퍼여도 고통 느끼는 건 똑같으니까. 고문실에 가둬 놓고 몇 년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거야. 지금처럼 말이지.”
-쑤욱
“으으으으읍!!! 읍!! 으으읍!!!”
“어때? 죽는 것보다 무섭지.”
박기현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연우가 입을 막은 천을 내렸다.
“말할게!!! 다!!! 전부!!! 그러니, 그만…….”
“잘 생각했어. 협조하면 징벌 1급까지는 안 나오게 정상 참작해 줄게.”
호은은 쓴 침을 삼켰다. 마치 달리기라도 한 듯 심장이 빨리 뛰었다.
박기현의 옷 여기저기 칼로 구멍이 나 있었고 피를 흘렸는지 입을 막은 천은 붉게 젖어 있었다.
바닥에 한 움큼 고여 있는 피와 아직 배연우의 손에 들린 칼날에선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괜찮아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도인호가 호은의 창백해진 얼굴을 손으로 조심히 매만졌다.
“…….”
“너무 힘들면 돌아가도 돼요.”
“아니야. 나도 홍보부인걸.”
앞으로 몇 번이고 이런 상황이 있을 거다. 그때마다 도인호나 배연우의 뒤에 숨어 잔인한 장면을 피할 수는 없다.
익숙해져야 한다. 에스퍼는 저렇게 당해 봤자 죽지 않으니까…….
‘사람처럼 불쌍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아?”
호은은 방금 든 생각에 스스로 놀라 버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에스퍼도 사람인데, 사람처럼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이건 마치 호수나 배연우가 에스퍼를 괴물로 취급하던 것과 같았다.
“…….”
역한 피비린내는 여전히 진동했다. 호은이 손끝을 떨자 가만히 지켜보던 도인호가 손을 잡았다.
호은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도망치면 안 된다. 현장직 가이드가 된 이상 이런 현장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더군다나 도인호 옆에 있으려면 앞으로 이런 장면은 몇 번이고, 아니 몇백 번이고 볼 수도 있는 거다.
“네 옆에 있으려면 감당해야지.”
“…….”
굳어 있던 도인호의 얼굴에 순간 희미하지만, 미소가 걸렸다.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손 잡아 줄게요.”
잡힌 손의 온기에 용기라도 얻은 듯 호은이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박기현의 바로 앞까지 온 호은을 확인한 배연우는 굽혔던 다리를 천천히 펴며 박기현을 내려다봤다.
“자 이제 말해 봐. 에스퍼 각성은 언제 한 건지. 그리고 드래곤과 접촉은 어떻게 한 건지.”
“그, 그건.”
박기현이 말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뚜벅, 뚜벅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남운수와 도인호가 먼저 반응했다. 두 사람은 뻥 뚫린 현관을 쳐다봤다.
“거기까지.”
한밤에도 정장을 차려입은 엄태석이 엉망이 된 집 안을 확인하고 입을 뗐다.
“시크릿 실드도 안 쳐 놓고 화려하게 놀았군.”
커다란 몸짓의 남자가 들어오자 집안이 순식간에 좁아 보였다.
배연우는 눈앞의 남자를 보고 손에 힘이라도 풀렸는지 칼을 떨어트렸다.
“부장님 어떻게…….”
“성찬이 녀석에게 들었다. 에스퍼 의심자가 각성하면 인사부 권한인데 어째서 홍보부가 이러고 있는 거지?”
“이 녀석은 반정부랑도 연관이…….”
배연우는 말을 하다 멈췄다.
“이번에도 징계 주시게요?”
“……?”
“부장님은 항상 엄성찬 말만 먼저 들으셨죠. 이번 임무는 홍보부와 인사부 협력 임무입니다. 인사부에게 넘기면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저희 쪽에서 먼저 박기현 조사하고 넘기겠습니다.”
“누가 뭐라 했나.”
엄태석이 걸을 때마다 구둣발 소리가 가까워졌다. 내부 균열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박기현이 기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엄태석에게 희망을 품은 얼굴로 올려다봤다.
“왜 엄성찬에게 듣게 하냔 말이야. 이런 일을 벌일 거면 나에게 먼저 말해야지.”
“!!”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으며 힘겹게 기던 박기현의 손등을 엄태석이 무참히 짓밟았다.
“박기현. 네놈은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마약을 팔아 중독시킨 다음에 마약값으로 대출받게 하더군.”
“으아아아악!!”
“너 때문에 빚을 갚지 못하고 끔찍한 길로 들어선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파직, 파지직
엄태석의 주변으로 마치 작은 번개가 치듯 전기가 일었다.
“낙뢰.”
엄태석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박기현을 향해 내렸다. 번쩍 시야에서 빛이 나더니 벼락이 박기현에게 마치 비처럼 여러 발 쏟아졌다.
살면서 절대 맡아 볼 리 없을 거로 생각했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호은은 코를 막으며 도인호를 쳐다봤다.
“이러다 들키는 거 아니야?”
“시크릿 실드를 치고 온 거 같습니다.”
“시크릿 실드?”
“밖에서는 지금 이 모습이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겁니다.”
도인호가 비어 있는 왼손에 주먹을 쥐었다 펴자 푸른 불꽃으로 만든 꽃이 생겼다.
여전히 코를 막고 있는 호은을 확인한 도인호는 푸른 꽃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 푸른색 꽃잎이 호은의 주변으로 나풀나풀 흩날렸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코를 괴롭히던 끔찍한 탄내가 꽃향기로 바뀌었다.
호은은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