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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에서 사내연애-72화 (72/129)

72화

“잤어?”

호은의 물음에 도인호는 대답 대신 가는 허리를 감싸 자신 쪽으로 끌었다. 누워 있는 도인호가 움직이자 머리카락이 호은의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기다렸는데……. 이능력을 많이 써서 잠들었나 봐요.”

다시 눈을 감으며 웅얼거리는 도인호를 보자 호은은 욕설이 나올 거 같은 혀를 깨물었다.

“귀여워…….”

사르륵,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도인호의 머리카락이 기분 좋았다. 호은이 머리를 오분 정도 쓸어 넘기자 완전히 잠에서 깬 건지 도인호가 나른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능력 썼어?”

호은의 다정한 물음에 도인호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능력 담고 있어요.”

“이능력품 때문에?”

“그것도 있고…….”

한쪽 팔로 지탱해 일어선 도인호가 빤히 호은을 바라봤다. 시선으로 사람이 뚫릴 수 있다면 호은은 몇 번이고 얼굴이 뚫려 없어졌을 것이다.

마주친 두 눈을 먼저 피한 건 호은이었다.

화제 돌릴 거리를 생각하는 작은 뒤통수를 부드럽게 손으로 감싼 도인호가 천천히 입술을 부딪쳤다.

따듯하고 물컹한 입술이 조르듯 호은의 입술을 비볐다. 호은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듯 도인호는 연신 입술을 문지르기만 했다.

결국, 호은은 눈을 감고 입술을 천천히 벌렸다. 너무 늦게 허락해 줬는지 심술부리듯 도인호는 호은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읏.”

물기 젖은 소리가 질척거리며 방 안을 울렸다. 몇 번이고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는 입술은 서로의 달뜬 숨을 토해 내고, 다시 입술을 탐하기 바빴다. 어느새 침대에 누운 호은과 그 위를 점령한 도인호는 입술을 떼고 가만히 서로를 응시했다.

타액으로 젖었는지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로 느리게 핥은 도인호의 황금빛 눈동자가 탐욕에 가득 차 번들거렸다.

“형이랑 이런 짓 하고 싶어서요.”

귓가에 속삭이는 도인호의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호은은 목이 말랐다. 참을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괴로웠다. 호은은 두 팔을 벌려 도인호의 목에 걸었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부터 가이딩 시간 가질까.”

도인호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호은이 느리게 침을 삼켰다. 흥분으로 온몸이 발갛게 달아오른 호은이 이번에는 먼저 입술을 겹쳤다.

***

따듯한 무언가에 이끌려 볼을 비비적거리던 호은은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있나 했더니 실크 소재의 잠옷을 잡고 있었다. 지난번 쇼핑에서 도인호와 함께 샀던 같은 디자인의 잠옷이었다.

“으음.”

어딘가에 눈을 비비적거린 호은이 다시 멍한 시선을 던지자 살결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분 좋은 박동 소리도 들리는 것이 다시 잠들기 좋다고 생각한 호은은 뒤늦게 두 눈을 크게 떴다.

변태같이 도인호의 잠옷 셔츠 부분을 잡아당겨 맨살에다 얼굴을 파묻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아직 알람 안 울렸어요.”

언제부터 깨어 있던 건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도인호의 목소리에 호은은 서둘러 몸을 떼었다.

“피, 피곤했나. 잠버릇이 이상했네.”

호은은 노출되어 풀어진 도인호의 단추를 다시 잘 잠갔다.

“시원해서 좋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농담을 건넨 도인호의 무표정 사이로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덕분에 두 배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삼십 분 정도 더 잘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호은은 출근 준비를 시작할 겸 민망한 자리를 벗어났다.

씻고 나와 오늘도 도인호가 골라 준 옷을 입은 호은은 시리얼과 샐러드를 준비했다.

“오전 회의 9시에 진행한다고 했지.”

“네.”

프라이팬에 계란후라이와 베이컨을 굽고 있던 도인호가 그릇에 옮겨 담아 식탁에 내려놓았다. 포크로 샐러드와 베이컨을 같이 찍은 호은이 우물거리다 삼켰다.

“인호야. 이능력품 만드는 거 네가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나도 그만하라고 말 안 할게.”

도인호는 사과 깎던 것을 멈추고 호은을 바라봤다.

“대신에 무리하지 마.”

도인호는 어느새 한입에 먹기 좋게 자른 사과를 호은의 입에 넣어 줬다. 왼쪽 볼이 크게 부풀어 오른 호은이 다람쥐처럼 턱을 움직이며 씹는 걸 본 도인호는 입을 열었다.

“형이 싫어하는 짓은 안 해요. 아, 어젯밤은 제외하고.”

도인호의 대답에 사례가 걸린 건지 호은이 기침을 토해 냈다.

“아침부터 너 정말…….”

물을 들이켜 간신히 숨을 돌린 호은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도인호에게 결국 할 말을 뱉지 못했다.

***

커피를 사 들고 홍보부 회의실로 들어가자 불 꺼진 방이 두 사람을 반겨줬다. 아직 오지 않은 배연우와 남운수를 기다릴 겸 호은은 회의실의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일찍 왔네.”

도인호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인사를 건넨 배연우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의 분위기를 지켜보자 다행히 평소와 같았다.

“오늘부터 인사부 현장인데 일단 이번 주 동안 권호은, 도인호 너네는 한여울 관찰이다.”

배연우는 PPT를 열었다.

“인사부에서 만든 한여울 스케줄표야. 학교와 학원을 제외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자연스럽게 마주쳐야 하는데.”

배연우는 도인호와 호은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상태로 가면 이상한 어른이라 신고 안 당하면 다행이겠네.”

“저희가 뭐 어때서요?!”

배연우의 말을 반박하려던 호은은 초등학교 앞에 서 있을 도인호와 자기 모습을 상상했다. 180cm가 넘는 남자 두 명이 서 있는다면……. 누가 봐도 이상할 거 같긴 했다.

“그런데 특별 관찰 대상이라는 건 보통 어떻게 하는 건가요?”

호은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대신 다른 것을 질문했다.

“법적으로 이능력자는 국가 소속으로서 이능력자 협회에 의무 소속되어야 해.”

배연우는 볼펜을 한 바퀴 돌리며 말을 이었다.

“법적 이능력자란 그럼 무엇이냐? 특별한 능력을 쓰는 인간을 정의하는 건데 이것을 증명하려면 실제로 이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거야.”

“이능력을 보여야 한다고요?”

“그래. 이능력을 쓴다고 신고받거나, 본인이 직접 제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사부가 찾아가 이능력 쓰는 장면을 확인하거나.”

“그러면 저희가 가서 해야 하는 게.”

“특별 관찰 대상자의 이능력 사용하는 현장을 급습하려는 반정부를 막는 것.”

배연우가 PPT 화면을 넘기자 사라진 세 명의 특별 관찰 대상자가 나왔다.

“인사부는 아직 이 세 사람의 이능력 발동하는 것을 본 적 없어. 그래서 이들을 에스퍼가 아닌, 에스퍼 의심자로 부르고 있지. 그런데 사라졌다? 그건 반정부가 이들이 에스퍼가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빼앗겼다는 말이네요.”

“그래.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인사부에서 협력 요청이 온 거야. 자신들은 이능력을 확인하고, 우리는 반정부를 잡고.”

가만히 앉아서 내용을 듣고 있던 남운수는 협력이란 말을 듣자 한층 더 음울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남운수의 상태를 확인한 호은은 가만히 손을 들었다.

“저 그러면 남운수 팀장님과 배연우 대리님은 박기현을 맡는 건가요?”

남운수의 얼굴에도 희미하게 궁금증이 떠올랐다. 분명 팀장은 남운수이건만 인사부에게 내용은 전달받은 건 배연우 혼자였는지 대답은 그쪽에서 돌아왔다.

“그래. 우리 둘이 박기현 쪽이야.”

배연우의 목소리를 들은 남운수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엄성찬 팀장님도 박기현 담당이시죠?”

“그래.”

그러나 남운수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지는 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여울 스케줄표 공유해 줄 테니까 확인하고, 최대한 얼굴 공개 안 되게 조심해. 특히 너희 둘은 이미 얼굴 팔렸으니까 그냥 잠복하면서 반정부 나올 때까지 대기하든지 하고. 인사부는 현장에 있을 테니 우리도 바로 현장으로 가면 된다.”

슬슬 회의를 끝내는 분위기에 호은은 큰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배연우와 남운수가 먼저 자리를 나가고 호은은 PPT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한여울의 인간관계부터 좋아하는 건 뭔지 싫어하는 건 어떤 건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10살이 학원을 다섯 군데나 다녀.”

“그게 많은 편인가요?”

도인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10살이면 많은 편이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9시네.”

호은은 한여울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려고 했으나 이미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는 집중력을 흩트렸다.

“있잖아, 인호야.”

결국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호은이 앓는 소리와 함께 말을 열었다.

“남운수 팀장님이랑 배연우 대리님. 인사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평소에도 배연우의 눈치를 보던 남운수였지만 본사에 갔다 오고 나서 그것의 정도가 더 심해진 거 같았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도인호는 애꿎은 머리를 뜯는 호은의 손을 잡아,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하나 확실한 건, 배연우 팀장님이 인사부에 대한 좋은 감정은 없을 거예요.”

도인호의 말에 호은의 동공이 커졌다. 궁금했던 이야기에 흥미로운 얼굴로 대화에 집중했다.

“현장직 가이드는 다른 가이드보다 진급이 빠른 편입니다. 해당 팀에 팀장 가이드가 없으면 연차와 상관없이 팀장 진급 시험을 볼 수 있는 구조라고 들었습니다.”

어쩐지 민원부에 있던 김미영 팀장이 젊었던 걸 떠올리며 호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2년 전 인사부 가이드 팀장 진급시험을 본 배연우 대리님이 품행 논란으로 진급이 보류되고 인사부에서도 퇴출당했다는 말이 돌았어요.”

“품행 논란?”

“어떤 논란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에는 진급에서 떨어지고 특수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으음.”

호은은 도인호의 말에 본사에 도착했던 배연우를 떠올렸다. 확실히 인천 지사에 있을 때와 다르게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여 주긴 했다.

인사부에 들어갔을 때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으나 남운수 팀장님의 행동에 다시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와 잊었던 사실이었다.

호은은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부서와 같이 일하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

도인호는 호은의 말에 조용히 침묵했다.

어젯밤 호은이 김세희를 보러 가고 도인호는 이능력품에 이능력을 주입하고 있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빼야 하는 작업은 중간중간 쉬어 주지 않으면 가이딩이 대량 소모가 될 수 있어 잠시 휴식을 취했던 참이었다.

이때 밤늦게 연락이 올 만한 사이가 아닌 배연우에게 전화가 왔다.

한 박자 쉬고 전화를 받은 도인호는 배연우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박기현 쪽은 사실상 도인호가 관찰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남운수의 이능력은 박기현이 아닌 한여울에게 더 어울렸기에 자신이 박기현을 맡을 거라 예상했다.

“권호은 성격상 내일 너한테 나랑 인사부랑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거 같은데. 이 정도만 말하고 더는 말하지 마. 그러면 내가 너랑 권호은 같이 한여울 담당하게 해 줄게.”

배연우의 제안은 자신의 소문을 권호은에게 일부만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소문에 관심 없는 도인호였기에 배연우와 인사부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 없는 상태였다.

그런 도인호에게 배연우는 굳이 그 소문의 일부를 알려 주며 전달하기를 강요했다.

마치, 호은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배연우의 행동은 찝찝했으나 호은과 같은 현장을 가기 위해 도인호는 찝찝함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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