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그……, 그건 안, 안 됩니다…….”
끼익, 의자가 밀리는 소리와 함께 남운수가 몸을 반쯤 일으켰다.
“너 뭐 해?”
남운수를 쳐다본 배연우의 얼굴은 이상한 걸 본 사람의 것과 닮아 있었다.
평소 남운수 성격이라면 이렇게 이목이 쏠리는 상황을 반가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가 모두의 시선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할 말을 이어 갔다.
“부, 부장님도 아시지 않, 않나요……. 두 사람을 붙, 붙여 놓으면 안 된다는 걸…….”
말을 끝낸 남운수는 어정쩡하게 일어났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배연우는 괜한 참견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남운수를 째려봤다. 평소의 남운수라면 배연우의 시선에 주눅이 들었을 텐데 오늘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데. 그쪽 대리는 할 줄 모르나 봐?”
다리를 꼬고 앉은 엄성찬은 자신 있다는 어투로 말했으나 조금 전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 지르던 모습이 선명했기에 딱히 신뢰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과, 관찰 대상자나 반정부에게 모습이 드, 들키면 안 되는데 소란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드, 들키고 말 겁니다…….”
엄성찬의 비꼬기에도 남운수는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호은이 봤던 남운수는 항상 뒤에 있던 사람이다. 앞에 나서는 모습보다는 배연우의 뒤에서 조용히 그 의견을 따랐다. 그 모습은 남운수가 팀장이 아니라 배연우가 팀장 같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하지만 지금 모습만큼은 자기 팀원을 생각하는 팀장 모습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고민을 끝낸 엄태석이 입을 열었다.
“신입 가이드가 위험한 현장을 담당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또 과거에 얽매인 녀석들끼리 붙여 놓는 것도 걱정이 되니. 가이드를 번갈아 가며 배정하는 거다.”
“전 상관없습니다.”
입술을 달싹이던 배연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엄성찬은 그런 배연우를 쳐다보다 아무도 모르게 입술을 올렸다가 곧바로 내렸다.
“…….”
남운수는 엄태석이 내린 결론이 마음에 들어 보이진 않았으나 이 방법이 최선이라는 걸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호은은 돌아가는 상황에 입술을 말아 물었다. 처음에는 배연우가 신입인 자신을 위해 현장을 배려해 준 거 같았는데 인제 보니 그 이유는 10% 정도이고 나머지 90%는 엄성찬과 관련된 건지도 모르겠다.
“괜찮겠어?”
배연우의 물음에 일순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호은에게 닿았다.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호은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어……, 저는.”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도인호가 테이블 아래로 아무도 모르게 호은의 손을 감쌌다.
“권호은 가이드는 아직 현장 경험이 부족합니다……. 배정 시, 이 부분은 배려 부탁드립니다.”
호은은 예전처럼 괜찮다고 무작정 말할 수 없었다. 도인호가 걱정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군. 우선 위험 현장은 베테랑이 맡고 괜찮다 판단되면 그때 바꿔 가며 하도록 하지. 단, 그 사이에 엄성찬 팀장과 배연우 대리가 시끄럽게 군다면 이번 일에서 한 사람은 제외하겠네.”
할 말이 있어 보이던 남운수는 엄태석의 마지막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특별 관찰 대상자 프로필을 설명해 드리겠슴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강힘찬이 새로운 보고서를 내밀었다.
[특별 관찰 대상자 프로필 1]
-이름 : 한여울
-신장 : 120cm
-나이 : 10세
-이능력 : 미래시 (예상 중)
[특별 관찰 대상자 프로필 2]
-이름 : 박기현
-신장 : 177cm
-나이 : 22세
-이능력 : 꿈 (예상 중)
“현재 정리된 프로필임다. 이능력은 관찰하며 예상한 것으로 해당 이능력이 아닐 수도 있고, 나아가 에스퍼가 아닐 수도 있슴다.”
호은은 한여울의 사진을 봤다.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는 너무나 어렸다. 호은이 봤던 에스퍼중 미성년자 에스퍼는 원신 밖에 없었기에 더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에스퍼로 각성 되면 보호자는 어떻게 되나요?”
“이능력에 따라서 다르지만, 에스퍼로 각성한 순간 필요한 건 보호자가 아닌 가이드임다.”
“아직 대한민국에 최연소 에스퍼 각성 나이는 14세라네. 결정체 이식자를 제외한다면 말이지.”
호은은 곁눈질로 도인호를 봤다.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떨어져 결정체 이식자로 살아간 어린 도인호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무리하지. 현장 관찰은 내일부터 진행하는 걸로 하세.”
자리를 일어난 엄태석은 가장 먼저 회의실에서 빠져나갔다.
“저도 밀린 업무가 있어 일어나 보겠슴다. 무슨 일 있으면 사내 메신저 부탁드림다.”
이제 회의실에 남아 있는 인사부는 엄성찬 혼자였다.
“크흠.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자리에서 일어난 엄성찬은 배연우에게 말을 던진 뒤 회의실로 나갔다. 남운수가 불안한 시선으로 배연우를 바라봤다.
“차에 돌아가 있어. 금방 갈 테니까.”
“……나, 나도 같이 갈까?”
“내가 알아서 해.”
배연우의 대답에 남운수의 어깨는 축 처졌다. 회의실을 매정하게 나가 버리는 배연우를 바라보던 남운수는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시선을 놓지 못해 닫힌 문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네.”
남운수의 대답은 평소처럼 힘이 없었다. 도인호와 호은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남운수와 문을 쳐다보며 어떻게 할 거냐는 호은에 도인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일단 차로 갈까요.”
호은의 말에 남운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에서 나오자 자리에서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강힘찬이 보였다. 강힘찬의 책상에 놓인 듀얼 모니터 중 하나는 CCTV 화면이었다.
CCTV 화면은 강힘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소파에 앉느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보자 책상마다 CCTV 화면이 놓여 있었고 사무실에는 사원증을 차고 있지 않은 사람도 보였다.
명찰을 차고 있는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의 모니터 중 한 대는 여러 개의 CCTV 화면과 달리 위성 지도로 관찰 대상이 움직일 때마다 지도의 빨간 점이 따라 움직였다.
“2차 발현자 관찰 중인 겁니다.”
호기심에 물든 호은의 얼굴을 눈치챈 도인호가 넌지시 운을 뗐다.
“24시간 관찰인 건가? 인권이 있는데 저래도 되나 싶기는 하네.”
“과거 특정 시기에 관찰하지 않았다가 폭주가 발생한 적이 있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순간 배연우가 말했던 군대에서 각성한 에스퍼가 떠올랐다.
“으음……. 사생활 보호는 받을 수 없겠네.”
“각성 대기 상태인 5년 동안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나마 같은 성별이 보고 있고, 여기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퇴근할 때가 되면 모든 기억을 지우고 간다고 하니.”
불편한 기색의 호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도인호는 마저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다정한 손길에 호은은 자신도 모르게 찌푸렸던 표정을 풀었다. 단단한 손이 머리에 닿는 게 제법 기분 좋았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에 주차했던 차로 돌아갔다. 삼십 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피곤한 기색의 배연우가 돌아왔다. 그는 본사에 처음 왔을 때처럼 저기압이 된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대, 대화는 잘, 했어……?”
운전대를 잡은 도인호의 바로 옆 조수석에 앉은 호은은 토끼에 빙의해 귀를 쫑긋 세웠다.
겉으로는 창밖을 보는 척했지만, 그 누구보다 배연우의 대답이 궁금한 상태였다.
“그냥.”
배연우는 이곳에서 말할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짤막한 대답으로 입을 다물었다. 차 안이 정적으로 가득 차는 것을 막고 싶었던 호은은 라디오를 틀었다.
-네. 다음 사연 읽어 보겠습니다.
듣기 좋은 여자의 나긋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전 애인과 안 좋게 헤어졌는데 회사에서 다시 마주쳤어요. 오랜만에 보니 안 좋았던 감정이 생각나서 너무 싫었는데, 또 좋았던 시절의 기억도 생각나더라고요.
호은은 자신도 모르게 볼륨을 높였다.
-서로 안 볼 것처럼 헤어졌는데 이제 와 제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뭔지, 이렇게 만나게 된 이유가 있진 않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남운수는 앞으로 몸을 숙였다.
-네. 사연 잘 읽었습니다. 전 애인과 회사 생활이라니. 저라면 너무 끔찍한데요?! 대학교에서는 CC를 회사에서는 사내 연애를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 있죠.
-사연자님. 지금은 마음이 흔들리겠지만, 이거 정리 안 하면 생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자, 사연자님을 위해 노래 하나 듣고 가겠습니다. 빛이 나는 뭐다?!
-솔로(solo) 음악 스타트.
리드미컬한 사운드가 적막을 감돌던 차 안을 채웠다. 안도의 한숨을 뱉은 남운수는 다시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댔다.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모습이 그가 꼭 어깨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호은아. 조용히 가자.”
“네넵!”
창가에 이마를 갖다 댄 배연우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유독 지쳐 보이는 얼굴에 호은은 라디오를 껐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직접 걷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차는 슬슬 지루하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호은은 백미러를 확인했다.
목베개를 손에 든 남운수가 아이를 만지는 것처럼 신중한 손길로 잠든 배연우의 목에 베개를 채워 줬다.
“…….”
이때 오른쪽 고개를 돌린 배연우의 눈가에 맑고 투명한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남운수는 떨리는 손끝을 들었다. 혹여 배연우가 깨기라도 할까 보는 사람이 애탈 만큼 천천히 움직인 손은 마침내 배연우가 흘린 눈물에 닿았다.
살살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호은은 보면 안 될 걸 본 사람처럼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아직도 에스퍼를 증오했던 배연우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 대상에는 분명 남운수도 포함되어 있다.
답답한 한숨이 나오려는 걸 두 시간 정도 참고 나서야 인천 지사에 도착했다.
“내일 홍보부 아침 회의하고 현장 나가는 걸로 하자.”
가이드 워치로 시간을 확인한 배연우는 저녁 시간이 지났기에 회의를 다음 날 오전으로 미뤘다.
남운수와 배연우가 떠나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이 숙소로 가려던 참이었다.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확인하자 류윤재였다.
“여보세요?”
“호은 씨. 세희 씨 일어났어요!”
“아 정말요? 지금 갈게요!”
전화를 끊은 호은은 도인호를 돌아봤다.
“나 세희 씨 좀 보고 오려는데 같이 갈래?”
“갔다 오세요. 저는 나중에 같이 가도록 할게요.”
같이 가고 싶은 도인호는 마음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옳은 답을 한 건지 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뒤로 돌아섰다.
멀어져 가는 호은을 쳐다보던 도인호는 따라가고 싶어 움찔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줬다.
호은의 옆자리는 제 것이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어둑해지는 하늘은 긴 밤을 예고했다. 그 시간만큼은 권호은은 온전한 도인호의 것이었다. 조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도인호는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