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개쓰레기 같은 요일.”
저기압 상태의 배연우는 평소보다 더 예민해 보였다. 주말에 제대로 쉬긴 했는지 충혈된 눈과 푸석한 피부 상태의 그는 뭐가 좋다고 아침부터 행복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도인호와 호은을 흘겨봤다.
“좋은 아침입니다.”
“응. 안 좋은 아침.”
호은이 인사를 건네자 배연우는 유치하게 받아쳤다. 가이드 워치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8시였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배연우는 이른 시간에 면역이 없는 편이었다.
저 멀리서 남운수가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와 모두에게 건넸다.
배연우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늘 인사부에 가는 거죠?”
호은이 질문을 던지자 배연우가 주머니에 있던 자동차 키를 던졌다. 반사 신경 좋게 날아온 키를 잡은 호은이 자동차 키를 한 번, 그리고 배연우를 쳐다봤다.
“서울 본사로 간다.”
배연우는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죄, 죄송해요, 호은 씨. 제가 운전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항상 사고가 나서……. 제가 운전대 잡는 걸 싫어하거든요…….”
“아, 당연히 막내인 제가 운전해야죠!”
씩씩한 표정을 지은 호은은 혹시라도 남운수가 키를 달라고 할까 봐 숨기듯 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남운수가 운전하는 차를 타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목숨을 걸고 타야만 될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가 운전할까요?”
호은의 옆에 붙은 도인호가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귀 바로 옆에서 숨결과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에 호은은 목을 빳빳하게 들었다.
이러지 않으면 어제처럼 이상한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괜찮아! 너도 10년 차 선배님이잖아.”
“선배…….”
“에스퍼랑 가이드랑 다르다고 해도. 현장 선배인 건 맞잖아?”
도인호는 선배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 중얼거리다 돌아올 때는 자신이 운전하는 걸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두, 두 분 사이가 좋으시네요…….”
“네?”
뒤따라오던 남운수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낮게 웃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탓인지 어쩐지 섬뜩한 웃음처럼 들려 호은은 서둘러 도인호를 밀치고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그러고 보니 남운수 팀장님은 배연우 대리님이랑 파트너 기간이 기신 건가요?”
호은은 아직 남운수가 불편했다. 자주 덤벙거리는 모습은 그를 얕잡아 보이게 만들었으나 호은에게만큼은 다르게 느껴졌다.
‘계획적으로 다치는 거 같단 말이야.’
의심만 있고 증거는 없었기에 호은은 함부로 입을 놀리지는 않았다. 남운수가 불편한 이유는 이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배연우가 남운수의 옆에 있는 이유.
‘에스퍼는 내가 불행할수록 행복해지는 놈들이라. 내가 불행한 만큼 더 불행했으면 좋겠는 존재야. 그런 이유로 남운수 팀장이랑 다니는 건 제법 볼만해. 세상 모든 불행을 끌어다 모은 거 같거든.’
배연우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남운수가 불행해서 같이 다니는 거라고.
“4년……. 정도 되었네요. 이, 인사부부터 따지면요…….”
“인사부요?”
호은이 재차 묻자 남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특수부에서 알게 된 사이가 아닐까 생각한 호은은 예상 밖의 대답을 들었다.
“팀장님 혹시 특수부도 홍보부처럼 징계로 만들어진 부서인가요?”
“특수부는 그, 그런 부서 아닙니다. 메, 멤버 구성도 직접 지원한 자들이 오는 구조예요…….”
“두 분이야말로 인사부에서 특수부까지 함께 하신 거 보시면 인연이 깊으시네요.”
남운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호은이 흘긋 쳐다보자 그는 생각에 잠긴 듯해 보였다.
주차장에 도착한 호은은 배연우의 차를 몇 번 타 봤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자 배연우는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배연우의 옆에 남운수가 앉자 남은 자리인 조수석은 도인호가 앉게 되었다.
“출발하겠습니다.”
백미러로 침묵이 감도는 뒷좌석을 확인한 호은은 두 눈을 꼭 감았다 떴다.
‘뭔가, 분위기 이상해!’
인사부와 만나지도 않았지만, 홍보부 공기의 무게가 달라졌다. 묵직한 중압감을 느낀 호은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
서울 본사는 인천 지사와 다르게 건물의 층수도 높았고 통창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 전체적으로 세련되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본사에서 마주치는 가이드와 에스퍼는 차가운 도시 사람처럼 보였다.
“어? 도인호 에스퍼님!!! 권호은 가이드님!”
본관 로비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던 호은을 향해 누군가 뛰어왔다. 노란색 머리카락이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나풀거렸다.
“하준 팀장님?”
엘리베이터가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출입 게이트에 사원증을 찍어야만 했다. 건너편에서 손을 방방 흔들고 있는 하준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어 보인 호은은 하준에게 가기 위해 초록색 사원증을 게이트기에 갖다 댔다.
-삑
하준을 보기 전까진 이곳의 사람들이 멀기만 느껴졌는데 민원부를 떠오르니 생각보다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세요?”
하준은 마주칠 줄 몰랐던 공간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의아한 얼굴이었다.
“홍보부 일 때문에 왔습니다.”
하준의 코앞까지 달려가 대화하려는 호은을 제지한 도인호가 답변을 선수 쳤다.
“홍보부라서 그런가요? 여러 부서와 함께 일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민원부도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놀러 갈게요.”
놀러 간다는 호은의 말에 하준은 눈을 빛내며 도인호를 올려다봤다. 그것이 마치 도인호 에스퍼님도 오실 겁니까? 묻는 거 같아 도인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 팀장님. 저희는 이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멀리서 한기가 느껴진다 싶었더니 배연우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 두 사람을 주시하며 눈치 주고 있었다. 인천 지사였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뭐라 했었을 거 같은데 다행히 쓴소리 없이 기다려 줄 모양이다.
“병문안도 제대로 못 가서 죄송해요.”
하준의 얼굴을 보자 반가워하느라 가장 중요한 질문을 까먹은 것에 대해 호은이 사과를 건넸다.
“아닙니다. 능력 과부하로 쓰러지는 에스퍼는 흔한걸요. 권호은 가이드 덕에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우리 부서 회식 때 한번 오세요.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하준에게 있어 권호은은 일반 가이드와 달랐다. 민원부 에스퍼를 인정해 준 사람. 그 사실이 한번 봤던 호은을 더 친근하게 만들었다.
“부서 회식이라니! 그거는 궁금한데요. 앗, 저 이제 진짜 가 봐야겠어요. 하준 팀장님도 안녕히 가세요.”
찌를 듯한 살기를 더는 견딜 자신이 없어 호은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준은 이해한다는 듯 호은의 어깨를 두드리려고 손을 올렸으나 도인호가 제지하는 바람에 손은 허공에 멈춰 목적지를 잃었다.
“다음에 봐요.”
허공을 부유하던 손바닥은 처음부터 인사를 하려고 했다는 듯 흔들렸다. 답인사를 건넨 호은은 다시 홍보부 쪽에 합류했다.
배연우는 머리가 지끈거리기라도 하는지 관자놀이 부분은 손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화낼 힘도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걸음이 느려진 배연우 대신 남운수가 앞장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0층에 불이 들어오고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검은색 머리를 하나로 묶은 남자가 홍보부를 기다렸다는 듯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부 전담 가이드 강힘찬이라고 함다.”
일자로 잘린 앞머리와 쌍꺼풀이 짙은 눈매는 남자의 인상을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웃을 때 볼이 움푹 패면서 보이는 보조개는 전체적으로 귀여운 느낌을 품게 했다.
어려 보이는 남자의 외모에 나중에 나이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호은 또한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인사부 안내 도와드리겠슴다. 따라오십쇼.”
예의 없어 보이는 강힘찬의 말투에 호은은 따라오고 있는 배연우를 살폈다. 눈썹이 위로 올라갔긴 했으나 요즘 애들 운운하며 따지려고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상사의 기분이 안 좋으니 신경 쓸 일이 많은 거 같다. 호은은 도인호의 옆으로 달라붙어 숨을 돌렸다.
강힘찬은 사무실 입구에 있는 보안 리더기에 사원증을 갖다 댔다. 닫혀 있던 잠금 열쇠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강힘찬 바로 뒤에 있던 호은은 가장 먼저 인사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민원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무실이었다.
인천 지사는 땅이 넓은 편이라 건물도 사무실 내부도 큰 편이었는데 인사부도 홍보부와 비슷한 평수로 보였다.
사무실은 조용했다. 드문드문 빈자리가 많았고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와 키보드 타이핑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다른 분들은 안 계시나요?”
“음……. 아마 회의 중일 검다. 일단 이쪽으로.”
사무실 한쪽에 손님맞이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커다란 직사각형 유리 테이블과 긴 소파가 테이블 앞뒤에 있어 홍보부는 둘씩 나누어 앉았다.
“커피나 차 뭐로 하겠슴까?”
강힘찬은 다리가 빠른지 네 사람을 안내하고 탕비실로 사라졌다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커피는 아침에 먹었기에 호은을 비롯한 네 사람은 차를 달라 말했다. 방금 제조한 건지 따듯한 연기가 나는 차에 호은은 연기를 불며 차를 식혔다.
차를 반쯤 마셨을까 불투명한 유리로 가려져 있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
호은은 회의실에 나온 사람을 발견하고는 눈이 두 배는 커졌다.
“며, 면접관님?!”
얼굴 반을 가리고 있는 머리 스타일은 분명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호은의 면접을 봤던 남자는 호은을 발견하더니 눈동자가 검은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다가 금방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턱이 나갈 정도로 입을 벌린 호은은 면접관 다음에 폴이 나타나자 이곳이 인사부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취업 면접과 안내를 도와준 직원이니 인사부와 관련된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혹시 자신을 차에 태웠던 남자도 있을까 싶었으나 집 앞에 찾아왔던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회의실에서 나온 사람 중 가장 마지막에 나온 남자는 중년 남자였다. 다부진 몸과 두꺼운 뼈대는 위압감을 주었다. 남자의 눈가에 잔주름이나 왁스 칠한 머리에 흰색 머리카락이 섞여 있지 않았더라면 중년은 무슨 40대 후반으로 보였을 것만 같았다.
“…….”
중년 남자는 호은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쳐다봤다. 남자의 시선은 한곳에 길게 머물렀다.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따라간 호은은 종이컵을 구기고 있는 배연우를 볼 수 있었다.
“대리님?”
작은 목소리로 배연우를 불렀으나 종이컵이 더 험악하게 구겨질 뿐이었다.
“오랜만이군.”
남자는 성큼성큼 긴 다리로 걷더니 단숨에 테이블 앞으로 왔다. 남자의 사원증을 확인한 호은은 그의 이름이 엄태석이고 직급이 부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연우야. 인사 안 하냐?”
땅바닥만 쳐다보던 배연우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