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차로 들어가자 운전석에는 턱선을 맞춰 자른 듯한 흑단발을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안전띠를 매고 있는 세 사람을 쳐다보고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이드 공단 이사장님 지속 비서 실장 신은혜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인 목소리는 그녀를 사무적이고 차가워 보이게 만들었다.
다행히 라디오를 틀었는지 들리는 밴드 음악에 분위기가 더 다운되지는 않았다. 비서 실장은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인지 운전하는 내내 촬영과 관련된 이야기만 언급하고 사적인 말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메이크업은 생각도 못 했는데.”
기대감에 흠뻑 젖은 목소리로 김세희가 말했다. 류윤재도 덩달아 자신의 민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비서 실장이 말해 준 일정을 정리하자면 남양에 있는 스튜디오에 마련한 대기실에 현재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디자이너가 대기 중이라고 알려 줬다.
어떻게 보면 공익 영상인데 얼굴과 머리에 힘을 주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즐거워 보이니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호은은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 줬다.
“촬영해 주시는 분들은 다 일반인인가요?”
“네. 맞습니다. 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 꾸렸으니 여러분들의 사진이 유출되거나 이야기가 새어 나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신은혜 실장의 답변에 호은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우경 이사장 때문에 참여하지 않아도 될 촬영 현장에 김세희와 류윤재를 데려온 것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김세희와 류윤재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이번 의상과 어울리는 선글라스도 준비했지만, 인터넷 강대국인 대한민국에서 끝까지 정체를 숨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아예 등장하지 않는 건데. 애석하게 신입 사원의 신분인 호은에게 그런 명령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건물 옆 공터에 차가 멈추고 세 사람이 앉은 자리 쪽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차례대로 내리고 나자 미리 와 있던 건지 경호 복장을 한 직원들이 일반인과의 시야를 차단하듯 옆을 지켜 섰다.
자연스럽게 차에서 내렸다면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 눈에 띌 것 같았다.
호은은 당황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동의하듯 김세희와 류윤재도 목소리를 낮추며 경호원을 이렇게 배치하다니 돈 낭비라며 비판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으며 세 사람은 겨우 대기실로 도망칠 수 있었다. 경호원들이 대기실 안까지 들어올까 걱정했으나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기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에 앉으시면 돼요.”
커다란 거울과 화려한 조명으로 뒤덮인 화장대로 안내받은 세 사람은 착실히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피부를 스치는 붓은 낯설기만 해 호은은 무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을 종종 까먹고 미간을 찌푸렸다가 스태프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와 대박이다. 저 사진 찍을래요!”
메이크업이 끝나고 나자 거울로 얼굴 상태를 확인한 김세희는 하이 톤의 목소리를 내며 셀카를 찍기 바빴다. 류윤재도 세팅된 머리카락을 손으로 몇 번 매만지더니 어색하게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보내 주고 있었다.
의상까지 갈아입은 호은도 거울 앞에 서서 천천히 감상했다. 굵게 펌이 들어간 머리카락이 살짝 올라간 호은의 눈매를 부드럽게 보이게끔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을 맡게 된 박우찬 감독이라고 합니다. 오늘 촬영 콘셉트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 버전에서는 권호은 씨만 촬영하게 되고요, 두 번째 버전에서는 세 분이 같이 촬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박 감독의 안내를 듣고 호은은 영상 콘티를 재검토했다.
첫 번째 촬영은 익숙하게 봐 왔던 공익 광고 스타일의 내용이었다. 의상 또한 흰색 면티에 청바지로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 준다.
검은색 스니커즈로 신발까지 갈아 신고 호은은 조명과 카메라가 설치된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CG 작업을 할 건지 초록색 천이 벽 한쪽을 채우고 있었다.
“액션!”
카메라 밖에서 쳐다보는 수많은 시선. 사방에서 비추고 있는 조명들. 너튜브 영상을 찍었던 것과 비교됐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상은 이렇게 찍는 거구나.’
긴장된 몸을 애써 풀며 호은은 수십 번 봤던 대본을 떠올렸다.
“잠깐 집중!”
양손을 얼굴 가까이 가져다 펼친 호은의 귓가가 빨개졌다.
“10월부터 실행되는 가이드 검진에 대해서 들어 보셨을까요? 대한민국의 에스퍼와 가이드의 수를 통계 냈을 때 대한민국은 가이드 부족 국가입니다.”
영상 콘티에는 호은을 제외하고도 여러 사람이 나왔었다. 에스퍼들이 등장해 각종 현장에서 지친 모습을 나타내는 장면이었는데. 실제 에스퍼와 촬영할지 아니면 연기자를 섭외해 CG 작업을 입히려는 건지는 몰라도 해당 사람들은 촬영장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가이드들만 나와 촬영하는 것 같았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준비했던 대사를 마무리하고 눈을 사르르 접으며 꽃 미소까지 장착하고 나서야 박 감독의 입에서 컷 소리가 나왔다. 부끄러움에 붉게 타오르는 호은의 얼굴은 다행히 화장으로 가릴 수 있었다.
“옷 갈아입고 올게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리자 호은은 서둘러 허리 숙여 인사하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김세희와 류윤재는 연기하는 호은을 다 봤는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호은이 했던 멘트와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잠깐 집중! 으하핫, 너무 귀여워요.”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그만하세요. 부끄러우니까.”
호은은 손사래 치듯 손을 휘저으며 서둘러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달아오른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호은은 누가 줬는지 모를 손 선풍기를 켜 몸 여기저기 바람을 쐬었다.
정신을 다잡고 걸려 있는 옷을 꺼내 갈아입고 탈의실에 나왔다. 아직도 키득키득 웃고 있는 동기들에게 다가가자 세 사람의 모양새는 당장이라도 동물원에 가야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호은 씨. 이 옷을 고른 의도가 뭐예요?”
“태어나서 이런 옷은 처음 입어 봅니다.”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두 사람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이 신기하다는 듯 천을 만지작거렸다.
“사냥꾼입니다. 호랑이 사냥꾼.”
“헐! 타이거를 저격하는 거예요?”
두 번째 영상은 지난번 타이거 영상에 대한 답변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국가 소속이 아닌 이능력자를 발견할 시 신고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의상 콘셉트는 평범한 오피스 룩이었다.
하지만 호은이 일반 시민이라면 한 달이 지났는데 지금 와서 이런 영상을 만든다고 눈여겨볼 것 같지 않았다. 반정부 또한 콧방귀조차 뀌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냥꾼이자 탐험가 스타일의 옷을 고른 것이다.
자극적으로 영상을 만들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옷차림으로 영상을 찍으면 누가 봐도 도발이다. 대한민국 반정부의 이름이 타이거라는 것은 이미 온 국민이 아는 상황에서 국가는 그들의 천적인 사냥꾼의 옷을 입는다. 호랑이를 사냥하겠다는 선포와 다름없었다.
“이거 진짜 대박인데요?”
호은의 이야기를 들은 김세희는 박장대소를 하더니 갑자기 무언가 먹는 소리를 냈다.
“아주 재밌음 각. 누가 팝콘 좀 더 가져와 봐요.”
“팝콘 말입니까?”
김세희의 유행어를 따라가지 못한 류윤재와 호은은 서로를 바라보며 갸우뚱거렸다.
“준비됐으면 들어오세요!”
햇빛을 가려 주는 정글모자 아래 김세희와 류윤재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더 내려가 다크 베이지색 전투복 형태의 재킷과 바지는 체형에 딱 맞게 제작되었다.
허리춤에는 보조 무기를 수납할 수 있는 가죽 벨트가 채워져 있었고 뒷주머니에는 무전기가 배치되어 있다. 검은색 하이 워커는 단단한 가죽 재질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중간중간 가이드 공단과 이능력자 협회가 크로스된 로고가 들어간 거까지 확인한 호은은 복장 검토를 끝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세계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끝까지 잡으러 간다!”
무전기를 들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척하던 김세희가 대사를 뱉었다. 수갑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류윤재도 카메라를 보며 대사를 내뱉었다.
“이미 늦었어.”
마지막으로 권호은이 들고 있던 총을 카메라로 겨냥한 후 방아쇠를 당기고 마치 총에 연기라도 나는 듯 총에다 후하고 바람을 뱉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쌍팔년도 간첩 신고를 위해 만든 영상처럼 시대와 맞지 않은 대사를 해 주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신고 번호를 다 같이 외치며 촬영은 마무리됐다.
“……발견 시 0! 0! 9!”
“컷!”
“수고하셨습니다.”
태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촬영을 끝낸 세 사람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래 촬영한 것도 아니건만 긴장과 부끄러움은 사람을 금방 지치게 했다.
“저 쥐구멍에 숨고 싶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다들 도와줘서 고마워요.”
오그라든 손을 펼치지 못하는 동기들은 기가 빨린 듯 보였다. 대사를 현장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되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 여러분 잠시만요.”
얼이 빠진 두 사람을 데리고 대기실로 가던 호은을 누군가 불렀다. 검은색 캡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는 촬영장 스태프 중 하나로 도착했을 때부터 안에 있던 사람이었다.
캡 모자를 쓴 여자는 노트북을 든 채 복도 끝에 있는 빈 대기실을 가리켰다
“간단하게 인터뷰 따기로 했던 게 있어서요. 권호은 씨부터 인터뷰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저기서 하면 될까요?”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고 있는 신은혜 실장을 흘긋 쳐다보며 호은이 빈 대기실로 들어갔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대기실에 여자는 노트북과 녹음기를 꺼내 들며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생길 후배 가이드에게 한마디 하실까요?”
“음……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외의 답변이네요. 인터뷰 응대 감사합니다.”
“네. 기자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짧은 인터뷰를 끝 맞춘 호은이 문을 열고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건지 옷을 갈아입은 김세희가 다음 타자로 들어갔다.
“저기.”
옷을 갈아입고자 걸음을 뗀 호은에게 누군가 은밀하게 다가왔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호은보다 살짝 큰 키의 남자가 남들의 시선을 피하며 호은에게 수첩과 볼펜을 건넸다.
“제가 팬이라서 그런데 싸인 좀 받아 볼 수 있을까요?”
“팬이요? 아, 당연히 가능하죠!”
웃으며 사인을 적던 호은이 고개를 들자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왜인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오늘 의상 예뻐요.”
“사냥꾼 옷인데 괜찮은가요?”
“네. 아 그런데……. 그거 아세요?”
뿔태 안경 속 가려진 남자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해 보였다.
“사냥꾼들이 호랑이를 잡으려다가 많이 당하는 거.”
고저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남자는 호은이 내민 사인지를 받아들었다.
“사냥꾼이 역으로 호랑이한테 잡아먹힌다고 하니까.”
호은의 멍한 시선이 씰룩거리는 남자의 입꼬리에 닿았다.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하세요.”
걱정 어린 충고를 내뱉는 것 같았지만 남자의 얼굴은 어딘가 신나 보였다.
“……?”
호은의 시선이 남자에게 조금 더 머무르려는 순간, 인터뷰 방이 소란스러워졌다.
“어흥.”
호랑이 소리를 낸 남자를 보며 반사적으로 호은이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는 당황한 호은이 재미있는지 크게 입을 벌리며 웃었다.
그때였다. 인터뷰 방에서 김세희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 건.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