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대리님은 에스퍼를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예요?”
목을 쓸며 지저분하게 묻은 피를 허벅지에 문지른 호은은 질문을 던졌다. 혐오 가득한 표정의 배연우를 보자 도대체 에스퍼에게 무슨 일을 당했길래 그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는 건지 순수하게 궁금했다.
분명 배연우가 말한 것처럼 가이드를 보조 배터리 취급하는 에스퍼도 있긴 할 거다. 하지만 모든 에스퍼가 그러진 않을 거다.
지금 호은의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에스퍼들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인천 지사 지리를 잘 모르는 신입에게 자신의 시간을 빼 안내해 주던 에스퍼, 시골에서 업무 외적으로 일반인에게 도움을 주던 민원부.
“내가 가이드니까 싫어하는 거야.”
“네?”
“원해서 가이드가 된 게 아니니까.”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배연우는 뒤늦게 실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내가 되고 싶었던 미래에 가이드는 없었어. 에스퍼 병신같은 놈들이 가이드가 아니면 죽는다니까 정부에 잡혀서 지금 이 꼴인 거지. 에스퍼는 내 꿈도 미래도 뺏은 거다.”
갈망했던 회사에 다니게 되어도 그곳이 평생직장인 사람은 소수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추세도 아니고 꿈을 좇기 위해 퇴사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가이드에게는 모두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꿈을 좇기 위해 퇴사하는 것도 새로운 일을 해 보기 위해 이직하는 것도. 그 무엇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 수많은 억압을 모으자 커다란 보따리가 되어 부조리함을 말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증오의 대상자가 에스퍼로 향하는 게 맞는 걸까?
“그럼 대리님이 증오해야 할 대상은 에스퍼가 아니라…….”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호은의 얼굴이 돌아갔다.
“20년 전만 해도 군대라는 게 있어서 애들 정신 상태가 좋았는데 말이야.”
배연우가 뱉은 담배가 호은의 발밑에 떨어졌다.
“엎드려뻗쳐.”
호은은 귀를 의심했다. 엎드려뻗쳐라니. 이런 구시대적인 명령을 운동계가 아닌 회사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명령에 불복종하고 싶었으나 배연우의 표정이 살벌했다. 여기서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음은 얼굴이 아니라 몸 전체를 구타당할 것 같았다.
호은은 하는 수 없이 엎드려 뻗치며 고용 노동부가 가이드의 직장 괴롭힘 신고받아 줄지 궁금해했다.
“난 군대 방식이 참 좋아. 거긴 계급 사회거든. 계급이 높은 사람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아. 밑에 놈이 할 수 있는 말은 네 알겠습니다. 이거 하나거든.”
“윽.”
허리에 느껴지는 무게에 호은의 눈썹이 절로 모였다. 배연우는 아무렇지 않게 호은을 의자로 취급했다.
“군대에서 에스퍼 폭주만 없었어도 너도 군대에 갔을 건데 말이야.”
“에스퍼 폭주요?”
“그래. 이능력자 협회에서 놓친 이능력 의심자가 군대에 입대했고 거기서 각성해 버린 거다. 하지만 본인은 에스퍼가 된 걸 눈치 못 챘지. 결국 가이딩을 한 번도 받지 못해 폭주했다. 이 일이 나고 나서 병역 의무 이행이 사라진 거야.”
땀이 고이기 시작한 손바닥을 느끼며 호은은 배연우의 말에 집중했다. 학교에 다녔을 때 과거에는 20세 이상의 남자는 병역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갔다는 수업을 받은 적이 있으나 그게 왜 없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면 뇌도 같이 찌그러져 생각이 날까 싶었으나 무리였다.
“공격형 능력이 아니라 폭주해도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이 끝났지만, 군대가 사라진 건 역시 아쉽단 말이지. 자 그런 의미로 하나 하면 팔굽히면서 정신을, 둘 하면 팔 펴면서 차리자 외쳐 볼까.”
“후우…….”
“어쭈 한숨? 하나.”
“정신을!”
그렇게 정신을 차리자를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르겠다. 호은은 기합을 한 시간 정도 받고 나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후들거리는 팔을 주무르며 호흡을 갈무리하던 호은은 체력이 좋다고는 했으나 한 시간 동안 성인 남성을 들고 팔굽혀 펴기를 하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렸냐?”
“…….”
호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이 바싹 메말라갔다. 정신을 차렸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몸이 너무 힘들어 정신이 없다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연우가 말하는 정신은 아마 그 부분이 아닐 거다.
“잡아.”
고집스럽게 다물린 호은의 입술을 바라보던 배연우는 무기가 진열된 장식장에 가더니 호은에게 권총을 던졌다. 민첩하게 날아온 권총을 잡은 호은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실제로 총을 만져 보는 것은 처음이다.
“따라와.”
무기 진열된 곳을 벗어나자 사격을 할 수 있는 사격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격장은 권총을 연습하는 곳과 소총을 연습하는 곳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다리 벌리고. 두 손으로 잡아.”
두 다리를 벌리고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권총을 잡자 배연우가 다가와 권총을 쥐는 자세를 지적했다. 다시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리고 올바르게 권총을 쥔 호은이 목표물을 보고 조준했다.
“해머 당기고.”
해머가 무엇인지 몰라 가만히 있던 호은은 위쪽에 튀어나온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내렸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호은이 방아쇠를 당기면 실탄이 나갈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군대도 안 가 본 호은이 총을 쥐어 볼 일은 제로에 가까웠다.
쭉 뻗은 팔이 점점 저려 온다는 생각이 들쯤 호은은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총성이 실내를 울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두 눈을 질근 감았던 호은이 얼얼한 귀를 느끼며 들었던 총을 내렸다.
“허.”
표적 가운데가 정확히 뚫린 것을 보며 배연우는 감탄했다. 초보자가 처음부터 목표물에 정확히 사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저 한 번의 우연이겠지 싶었으나 장전된 총알을 전부 소진하는 순간까지 표적의 가운데만 맞추는 호은이었다.
사격이 끝난 후 배연우는 별다른 말 없이 총을 회수하고 호은에게 목도를 쥐여 줬다. 손에 들린 목도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호은은 저만치 멀어지는 배연우에게 목도를 들고 졸졸 따라갔다.
이번 장소는 사람 형태의 로봇이 표적으로 되어 있는 훈련장이었다. 머리와 가슴 팔다리 등 붙여진 표적 판을 통해 점수를 내는 것 같았다. 다리 부분에 바퀴가 달린 건지 빠르게 움직이는 표적을 상대로 호은은 목도를 휘둘렀다.
-삑, 삑, 삑, 삑
표적을 맞힐 때마다 전자음 소리가 울렸다. 호은은 마치 검도를 배우기라도 한 사람처럼 팔의 각도와 발 스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바닥을 밟는 일정한 속도와 휘둘러지는 목도소리를 듣던 배연우는 권투 글러브를 호은에게 건넸다. 목도를 대충 바닥에 던진 호은은 권투 글러브를 손에 착용했다.
“공격해.”
배연우는 복싱용 미트 권투 글러브를 낀 상태로 자유자재로 손을 휘둘렀다. 호은은 조금 전 보여 주던 스텝과 다르게 제자리에서 몇 번 뛰더니 다리를 굽히고 금방 오른팔과 왼팔을 각각 휘두르며 배연우의 글러브를 때렸다.
배연우는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는 호은에게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에스퍼를 미워하지 맙시다! 에스퍼도 사람입니다를 외치고 있을 꽃밭인 호은의 머릿속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체적인 능력은 역시 놓치기 아까운 인재였다.
“너 뭐 도인호랑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막힘없이 공격하던 호은의 팔이 우뚝 멈춰 섰다. 시내 한복판에 폭탄이 터지기라도 하듯 호은의 얼굴은 열 오른 주전자처럼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머리에서는 금방이라도 연기가 터져나 것 같았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에스퍼 입장 대변하는 가이드들의 대부분이 에스퍼랑 연인 관계거든.”
“예? 아니, 그런 이유는 아니, 아닙니다.”
“그러면 에스퍼 동정하는 거냐?”
“동정은…… 초반에는 그랬죠.”
“도인호한테 동정이라.”
배연우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결정체 이식자. 도인호를 수식하는 단어 중 가장 앞에 있는 녀석이다.
결정체 이식이라는 실험은 해당 실험체를 찾는 과정부터 어렵다. 서로 유전자가 90% 이상은 일치해야 했기 때문에 도인호는 몇십 년 만에 성공한 결정체 이식자였다.
확실히 태어났을 때부터 힘을 가진 에스퍼와는 다른 출발선이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를 뿐 달리는 대상은 결국 똑같은 에스퍼다.
“너. 그 녀석 때문에 한 달은 혼수상태였잖냐.”
“네?”
에스퍼가 가이딩을 가져가는 건 마치 생명력을 훔쳐 가듯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결정체 이식자가 가져가는 가이딩은 폭력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결정체 이식자의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방사 가이딩을 강탈해 간다. 가이드라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싫어하고 경멸하게 된다. 그건 가이드의 본능이다.
“그때는 운이 좋아서 의식을 되찾았단 생각 안 해 봤어? 다음 폭주를 막았을 땐 혼수상태가 아니라 죽는다면? 그때도 너 자신이 아닌 도인호를 동정할 수 있나?”
하지만 권호은은 일반적인 가이드와 달랐다. 배연우는 도인호의 징계기록을 떠올렸다.
인턴 가이드 폭행 사건.
에스퍼인 도인호가 가이드를 꼬셔 인턴 가이드를 폭행했단 기록이었다. 그때 받았던 징계는 직접 가이딩 및 가이딩 약물 급여 금지였다. 가이딩 소모량이 많은 결정체 이식자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징계였다. 예상대로라면 해당 징계로 폭주까지 가야 했을 도인호가 63 스퀘어 현장 직전까지 폭주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인턴 가이드인 권호은의 가이딩 실습 상대가 되어 징계와 상관없이 가이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참 반정부를 잡기 위해 현장에 나가 있던 배연우였기에 해당 소식은 홍보부가 개설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참으로 이상한 조합이었다. 폭주하지 않고 있는 결정체 이식자와 신입 가이드라니.
“저는…….”
서늘할 정도로 차가워 보이는 배연우의 시선을 담담히 마주 보던 호은이 아까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천천히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누가 말한 것처럼 대단한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사병에 걸린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저는…… 살려 주겠다고 말한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것뿐이에요.”
“…….”
“뭘 모를 땐 분명 에스퍼를 동정해서 가이드로서 최선을 다해 주자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가 보니까 죽음 앞에서는 가이드도 에스퍼도 상관없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 평등해요. 거기서는 가이드여서가 아니라 그저 같은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사람을 구해 줄 뿐이에요.”
“평등하다?”
어수룩하게 지었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호은의 얼굴은 제법 강단 있어 보였다.
배연우는 글러브를 바닥에 던지며 피식 웃었다. 평등하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정의감을 굳이 더럽히고 싶진 않았다.
배연우는 현장직 가이드에게 정의감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돈을 목적으로 하는 가이드가 더 오래 버텼다. 그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지만 궁금해졌다.
정말 정의감으로 버티는 현장직 가이드가 생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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