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하준은 도인호에게서 세호를 받았다. 물속에 있었던 탓인지 떨고 있는 몸을 장작에 데려가 체온을 올렸다.
하준은 생각에 잠겼다. 물에 빠진 호은을 구해야 할지 도인호를 도와 반정부와 싸워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도움이 안 될 것만 같았다. 애먼 머리를 헤집으며 하준이 낮게 신음했다.
“멈춰.”
허둥거리는 하준을 확인한 도인호는 한층 더 낮아져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를 뱉었다.
“으응? 뭘 멈춰.”
“이능력. 멈추라고.”
이능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죽이면 끝이었다. 도인호는 야구공 크기만 한 파란 불을 여러 개 만들어 반정부에게 던졌다.
“우와 통성명도 안 하고 냅다 공격하기 있다고?”
반정부는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듯 살랑거리는 몸짓으로 불꽃을 피해 다녔다.
“이렇게 무식하게 이능력 써도 되겠어? 그쪽 가이드 내 손안에 있는데.”
폭격을 퍼붓던 도인호는 순식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얌전하게 있어야 이능력을 멈추든 말든 하지. 자 일단 소개부터 할까? 나는 월랑이야.”
“…….”
“그리고 오늘은. 가이드 기운이 느껴져서 사냥하러 왔어. 여기 내 구역이거든.”
아하하. 월랑의 웃음소리와 함께 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 안에서 거세지는 파동은 그 크기를 키워 토네이도를 만들었다.
토네이도는 월랑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다. 토네이도 안에 호은이 있을까 시선을 떼지 못한 도인호는 호은이 아직 물속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일반인은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지.’
도인호의 초조함을 나타내듯 불꽃이 일렁거렸다.
“있잖아.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같은 에스퍼인데 치사하게 가이드는 정부에서 독차지하고 말이야.”
월랑은 도인호를 피해 이번에는 하준의 앞에 섰다.
“가이딩 받고 싶으면 이능력자 협회에 소속되어야 한다고 하고. 하지만 이것 봐. 내 능력을 나를 위해서도 아니고 이딴 지저분한 꼬마를 구하는 데 쓰라고?”
하준은 아이들을 뒤로 숨기며 월랑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너 엄청 약하구나. 이능력도 안 쓰는 거 보면.”
전통 탈에 가려져 월랑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준은 알 수 있었다. 비웃거나 경멸에 찬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았다.
하준은 주먹을 쥐었다.
‘나는 약하다. 가이드는 물에 빠져 있고 도인호 에스퍼는 가이드가 다칠까 봐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하는데. 고작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낸 세금으로 설마 이딴 녀석 월급을 주는 건 아니겠지.”
반정부 주제에 착실히 세금은 내는 건지 월랑은 불만을 토론하며 물 위를 총총 걸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받아 가야 공평하지.”
“쿨럭, 쿨럭.”
월랑의 손짓에 호은의 다리를 감싸고 있던 회오리가 호은을 물 밖으로 토해 내듯 그를 던졌다. 호은은 얼떨결에 처음 보는 여자의 품에 공주님 안기를 당해 버렸다.
“푸하… 하아….”
“흐응. 남자였, 어라?”
호은과 눈이 마주친 월랑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호은을 안고 있단 것도 까먹었는지 양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공중 위에 있던 호은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어! 팀장님!”
호은은 도인호와 하준의 위치를 확인한 후 하준의 이름을 불렀다.
“호은 씨!”
다시 냇가에 빠질 뻔한 호은의 몸이 안정적으로 공중에 떴다. 타이밍 좋게 하준이 염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도인호는 호은이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빼앗길 것 같아?”
정신을 차린 월랑이 메고 있던 활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호은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며 땅굴을 파던 도인호가 자기혐오를 멈추고 빠르게 화염으로 화살을 태웠다.
“방해하지 마.”
“방해는 처음부터 그쪽이 하고 있습니다.”
도인호와 월랑이 대치하고 있을 때 하준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질려 갔다. 곧 있으면 5초가 지난다. 호은은 아직 냇가 위를 부양하고 있었다. 도인호 에스퍼는 월랑과 대치하고 있어 호은을 받으러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부들부들 팔이 떨리는 와중에 하준의 머릿속으로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하준이 팀장을 달았던 시점이다.
‘제가 팀장 진급 테스트에서 합격했다고요?’
‘네.’
‘뭔가 이상한데. 채점 결과를 알 수 있을까요?’
‘채점 결과는 합격점은 아닙니다만, 특수한 상황으로 진급이 되셨습니다.’
‘특수한 상황이요?’
‘이번 납치 사건이 아무래도 외부에 알려진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는 단순히 인신매매범이 어린아이를 납치했다는 걸로 보도했는데.’
‘그런데요.’
‘거기에 나올 영웅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하준은 그제야 인터뷰 사진으로 쓴다며 자신의 사진을 찍던 기자를 떠올렸다. 인사부 직원은 하준에게 신문을 줬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 신문으로 기삿거리를 보는 사람은 없다만 하준은 아무 말 않고 신문을 받아들였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영웅! 자기 몸을 바쳐 아이를 지키다!]
메인 기사에 들어간 사진은 하준의 모습이었다.
‘이 사건은 도인호 에스퍼가 해결한 건데. 왜 제가.’
‘도인호 에스퍼는 결정체 이식자라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웅으로는 당신 같은 정식 에스퍼가 나와야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인호 에스퍼가 아니었으면 저와 그 아이들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팀장이 됐는데 왜 기뻐하지 않고 자꾸 불만이세요? 그럼 팀장이 되어서 언젠가 보답하면 되잖아요.’
인사부 직원의 말은 매정하기 그지없었다. 보답하라고? 에스퍼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내가? 하준은 신문을 구겼다. 아이들을 속인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는데 이젠 전 국민을 속인 게 되었다.
-콰앙!
불꽃과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에 하준은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지금 이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준은 이능력 한계로 인한 중압감에 무릎을 꿇었다. 온몸이 납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누가 봐도 한계였다.
“팀장님. 전 괜찮아요.”
호은은 걱정하지 말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물에 빠질 걸 예상했기에 숨을 크게 들이마신 것 같았다. 호은은 끝까지 하준을 탓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히려 스스로 자괴감을 들게 했다.
에스퍼 주제에 나약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몸을 감쌌다. ‘너 약하구나.’ 월랑의 목소리가 하준의 귓가를 맴돈다.
“그래. 난 약해서 5초 이상 이능력을 쓰면 혈관이 터질 것 같고 지금처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혼잣말을 내뱉은 하준은 두 손을 바닥에 내리쳤다.
“젠장. 젠장. 젠장!!!”
자갈이 가득한 돌바닥으로 인해 손에 생채기가 생겼다 빠르게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쿠콰광!
도인호와 월랑은 여전히 접전 중이었다. 호은을 구할 수 있는 건 하준밖에 없었다.
“너무 한심해.”
‘나는 약하다. 그런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진짜 히어로는 사무실에 걸려 있는 쫄쫄이 유니폼도, 이능력품도, 그리고 필살기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히어로 놀이가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에스퍼로서 당당하게 살았던 적이 있는 걸까?’
하준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 앞에서 꼴불견이다. 하준은 그때와 똑같이 도인호에게 도움받는 포지션인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린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 호은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왜 나 같은 게 에스퍼가 되어서…….”
괴로움에 눈을 질근 감은 하준은 거칠어진 호흡을 뱉었다. 손에 힘이 빠진다. ‘일반인에겐 에스퍼가 필요해.’ 하필이면 지금 생각나는 말이 호은이 했던 말이다.
하준은 호은에게 묻고 싶었다. 이런 에스퍼도 필요한 게 맞느냐고. 하지만 역시 이런 말을 듣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평생을 이렇게 살게 될 거다.
“역시 그건 싫어.”
언제까지고 가짜 히어로는 사양이었다.
“플, 플라이 하이!”
하준은 손을 뻗었다.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한계치를 넘은 듯 위태로워 보였다.
“윽, 쿨럭.”
호은이 물에 닿기 직전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공중에 다시 떠올랐다. 회오리치고 있는 강을 지나 호은을 무사히 자갈밭으로 내려놓고 하준은 능력을 풀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호은이 하준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호은의 손을 통해 가이딩이 흘러들어 온다. 한계까지 몸을 몰아붙였지만, 하준은 살아 있었다. 5초 이상 쓰면 세상이 무너지고 자신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준은 점점 감겨 오는 눈꺼풀을 느끼며 도인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사한 호은을 확인한 도인호는 이제 봐줄 필요 없다는 듯 빠른 스피드로 월랑에게 뛰어 들어갔다. 찰나였지만 안도감이 깃들어 보이는 얼굴. 몇 년 전 메말랐던 도인호는 더 이상 없었다.
“변했네요.”
명령만 따르던 감정 없던 사람에서 이제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하준은 뒷말을 삼키며 정신을 잃었다.
공격을 몰아붙이는 도인호를 본 월랑은 피하기 급급했다.
‘활 쏠 시간을 안 주네.’
월랑은 바람에 따라 도포 자락이 펄럭 거렸다. 그녀는 손을 하늘로 뻗어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양손을 가운데에 뻗으며 월랑은 이능력을 쓰기 전 의미 모를 말을 내뱉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아. 운명인 걸 아는데도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니.”
“하?”
“이름이 호은인 거지? 반정부에 꼭 데려와야겠어.”
“역시 죽여야겠네.”
위협적인 도인호의 말은 사랑에 빠진 월랑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공중에서 원을 그린 월랑의 손바닥에서 희미하게 불던 바람이 순식간에 폭발하듯 터졌다.
거세게 부는 바람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시야를 차단당한 도인호가 바람이 멎기를 기다릴 때 월랑은 이미 바람을 이용해 멀리 도망친 후였다.
“쳇.”
도인호는 혀를 차며 멀어져가는 월랑을 확인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그 말을 짓씹으며 물에 빠져 체온이 떨어졌을 호은에게로 서둘러 돌아갔다.
“형 괜찮아요?”
호은이 상처 입지 않을 정도의 이능력을 사용해 젖은 몸을 말리며 도인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괜찮은데. 팀장님이─”
“이능력을 한계치로 사용해서 그런 겁니다.”
도인호는 하준을 어깨에 메고 호은에게 아이들을 맡겼다. 호은은 잔뜩 놀란 아이들을 달래며 손을 잡았다.
“우와. 형들 에스퍼예요?”
겁을 먹었을거라 생각한 아이들은 처음 보는 에스퍼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히어로다 히어로!”
“이 말을 팀장님이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호은은 이 말을 가장 듣고 싶었을 하준을 바라봤다.
***
월랑은 산 깊은 곳에 숨겨 둔 포탈로 걸어갔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
쓰고 있던 전통 탈을 머리 위로 올린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월랑이 포탈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빛이 돌았다.
“월랑 하이.”
포탈은 반정부 본부로 연결되어 있다. 겉으로 볼 땐 폐건물로 보이는 공사장이었다. 월랑은 공장에 들어가 간부 아지트의 문을 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여자가 월랑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얼굴은 뭐야?”
여전히 화끈거릴 정도로 붉은 열기를 띤 월랑의 얼굴을 보며 여자가 물었다.
“나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아! 심지어 가이드야. 완전 운명이지?”
“우엑. 갑자기 뭔 소리야.”
“사랑은 무슨.”
월랑의 말을 듣자 소파에 기대 게임을 하던 선율과 악율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아니야. 얼굴도 잘생겼고. 이름이 호은이라 했나.”
“호은?”
바 형식의 긴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으로 음식 영상을 보던 반정부 보스가 월랑에게 불쑥 다가왔다.
“깜짝이야. 뭐야?”
“이름이 권호은이야?”
“성은 못 들었는데. 보스 아는 사람이야?”
“호은이라고…….”
[오늘은 조금 색다른 영상을 찍어 봤는데요. 일상 브이로그입니다. 하하. 어색하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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