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달걀죽을 크게 한술 떠 입에 넣은 호은은 우울한 시선으로 가이드 워치를 확인했다. 분명 어제 욕실에서 확인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70%는 넘었던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나니 도인호의 가이딩이 64%로 줄어들어 있었다.
도인호가 밤에 이능력을 사용했을 리도 없는데 이렇게 줄어드는 걸 보며 호은은 자신이 가이딩을 잘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마음은 이렇게 심란한데 도인호가 끓여 준 달걀죽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적당히 고소하고 짭짜름하다. 호은은 빈 그릇을 도인호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오늘 어떤 현장 가는 거야?”
도인호는 호은이 내민 그릇을 받아 자연스럽게 달걀죽을 채웠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달걀죽을 호은에게 주기 전 입바람을 내며 식혀 주고 나서야 건네준다.
“민원부 현장 업무에 갈 거예요.”
“민원부는 뭐 하는 곳인데?”
“……민원부는.”
***
[민원부]
민원부는 이능력자 협회 서울 본사에 있는 부서다. 정부에게 받은 민원과 사설 업체에 받은 민원 업무를 주로 처리하는 부서로 잡무부라는 별명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장 업무의 위험도나 난이도 자체가 매우 낮은 편이라 에스퍼의 소모 가이딩 양도 적다. 덕분에 해당 부서의 가이드는 현장에 따로 출동하지 않고 사무실에 대기해 복귀한 에스퍼를 가이딩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부러움의 상징인 부서이지만 그곳을 다니는 에스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현장을 만날 준비가 안 된 에스퍼가 있는 곳. 에스퍼라 불리는 존재 중 가장 하위 그룹.
민원부 팀원들에게 꼬리표처럼 붙는 말이다.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는 항상 우중충하다. 현장에 일이 없어 에스퍼들이 사무실에 전부 있는 날이라도 되면 아무리 형광등을 밝게 켜 놓아도 사무실이 어두침침하다.
벽 구석구석 곰팡이라도 필 것 같은 분위기에 민원부 소속 김미영 가이드는 에스퍼가 현장 일이 없는 날은 가능한 연차를 사용하는 편이었다.
“아니 갑자기. 뭔 오전 회의를 한다는 거야.”
김미영 가이드는 퇴근 후 회사 단톡방에 올라온 공지에 아침부터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민원부에서 회의라니. 어떻게 하면 회사 분위기가 밝아지겠느냐는 안건이 아닌 이상 회의 주제도 없는 부서다.
김미영 가이드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해 보안시스템 단말기에 사원증을 갖다 댔다. 곧바로 전자음 소리가 들리더니 자동문이 열렸다.
“거기 먼지 있잖아!”
“죄송합니답!”
“야야. 각자 이능력품 좀 자연스럽게 배치해 봐!”
“넵!”
“뭐 하는 거야…….”
커다란 남정네들이 분주한 몸으로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거기다 처음 보는 검도 같은 걸 장식품처럼 들고 다니며 어디에 배치할지 고민하고 있다.
“김미영 팀장님. 출근하셨군요.”
“네……. 그런데 왜 이렇게 소란스럽죠? 오전 회의한다고 하시더니만.”
김미영은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의 책상을 손으로 슥 닦았다. 먼지 한 톨 묻어나지 않네. 기분 나쁠 정도로 깨끗해진 광경에 김미영은 닭살이 돋은 팔을 매만졌다.
“오늘 도…… 도인호 에스퍼님이 방문하십니다! 크흡.”
“도…… 도미노?”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김미영이 되묻자 대답한 직원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이 되었다.
“도미노라뇨! 도! 인! 호! 에스퍼님 말입니다.”
“처음 들어보는데.”
“가이드한테는 이름으로 불리시는 분은 아니니 모를 수도 있겠네요.”
샛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막대사탕을 물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오합지졸 민원부 에스퍼의 팀장인 하준이 방향제를 들고 자연스럽게 뿌리기 시작한다.
“가이드는 그분을 시폭이라고 부르던데.”
칙, 칙.
향긋한 화이트 머스크 향이 사무실에서 진동한다. 김미영은 도인호의 별명을 듣고 눈썹만 까닥거렸다. 확실히 도인호는 모르지만 시폭이라는 이름은 안다.
‘가이드 죽이는 에스퍼.’
결정체 이식을 한 에스퍼는 가이딩 소모량이 엄청나 김미영같이 C급 가이드가 접촉하게 될 경우 가이딩하다 기절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 불길한 녀석이 사무실에 온다고?
“미쳤어? 그런 녀석이 왜 오는데?”
“미칠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일이죠. 그분과 실제로 마주하다니.”
하준은 도인호를 생각하며 왼쪽 눈에 고인 눈물을 훔쳤다. ‘도인호’, 가이드에게는 그가 어떻게 불릴지 몰라도 에스퍼 사이에선 유명하다.
화염의 능력자 중 가장 강하다는 청염의 능력자. 변변찮은 현장을 나가는 자신들과 다르게 도인호는 각종 위험한 현장을 다닌다.
에스퍼라면 당연히 자기보다 더 강하고 희귀한 이능력을 가진 에스퍼를 동경할 수밖에 없다. D급에서 C급으로 이루어진 민원부는 에스퍼의 최하위층 사람들로 모인 곳이다. 이들은 해당 등급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강한 에스퍼를 갈망하며 자신을 투영해 보는 거로 대리만족을 하는 거다.
도인호는 비공개 현장이 많아 그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으나 굵직한 현장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도인호가 들어가 있다. 이번 타이거 사건에도 도인호가 있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민원부 중 그 누구도 해당 현장에 투입된 사람은 없었다.
“도인호 에스퍼님이 저희 현장을 체험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회의 내용은 도인호라는 에스퍼가 민원부와 합동 업무를 하겠다 말한 것이었다. 김미영은 불쾌한 듯 신경질을 냈다.
“아니. 안 가 본 현장이 없으면서 왜 좆밥, 아니 이런 작은 수준의 현장에 오신다는 건가요?”
“도인호 에스퍼님이 에스퍼 현장에 대해 영상 촬영을 하고 싶다는데 민원부가 가장 적합하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도 더 이상 잡무부가 아닌 민원부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겁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준의 기대에 찬 목소리와 팀원들의 구호 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뭐가 그리도 기쁜지 에스퍼 팀원들이 환호하며 결의에 다져진 눈으로 서로 어깨동무한다.
‘도인호가 오는 게 이 정도로 기쁘다고?’
더 회의를 진행해 봤자 도인호 찬양만 늘어날 것 같아 김미영은 수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도인호인가 뭔가. 여기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원증 없잖아?”
“…….”
처음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던 사무실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도인호 사원은 사원증이 없는 에스퍼다. 민원부와 마주치지 못한 이유도 이능력자 협회 본사는 사원증이 있어야만 돌아다닐 수 있다.
어느 사무실에 가든, 심지어 본사 건물 들어오는 입구에도 사원증을 찍어야지만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다른 분이 오시는 걸까요. 전화만 도인호 에스퍼님이 하신 거고.”
“그럼 그렇지……. 그렇게 바쁘신 분이 이런 곳을 왜 오겠어요.”
의욕 잃은 팀원들의 목소리가 앓는 소리가 되어 한 겹씩 쌓인다. 평소처럼 우울 모드 ON이 된 팀원들을 보고 있으니 김미영은 뒤틀렸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자. 그러지 말고. 그러면 오랜만에 직접 가이딩이라도 해 드릴…….”
-삑
회의실을 나오던 팀원들은 출입문 앞에서 울리는 기계음을 듣고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자동문이 열리고 다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사무실에 들어온다. 둥근 눈매에 살짝 올라간 눈꼬리에 김미영은 시선을 뺏겼다.
훈훈하게 생긴 남자에 김미영이 볼을 붉히며 남자의 눈웃음에 빠져 허덕이고 있을 때 뒤이어 누군가 들어왔다.
가장 첫 번째로 보이는 건 커다란 덩치였다. 정장 사이로 드러나는 단단한 근육이 민원부에 있는 에스퍼들과 비교됐다. 거기다 무쌍의 눈이 제법 날카롭다. 남자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김미영은 온몸이 털이 쭈뼛하고 서는 느낌을 받았다.
“헉!”
한편 김미영이 굳어 있을 때 뒤에 따라 나오던 하준은 숨넘어가듯 숨을 삼켰다. 번지점프를 하는 기분이었다. 낙하하고 줄 반동으로 자신은 지금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다.
“어제 연락드린 도인호입니다.”
방금까지 도인호를 외치던 직원들이기에 그들은 짜기라도 한 듯 같은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인호의 가슴. 아니 더 밑으로 내려가 도인호가 차고 있는 초록색 사원증에 닿았다.
초록색 사원증은 위험 현장을 담당하는 사원들이 차고 있는 사원증이다.
하준은 다물어지지 않는 턱을 손으로 닫으며 마음으로 울었다. 사원증이 없던 에스퍼에서 승급이다. ‘도대체 부족한 게 뭡니까 도인호 에스퍼님!!!’ 숨겨 왔던 덕심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
호은은 회의실에 앉아 직원이 내려준 커피를 받아 목을 축였다. 아침에 민원부가 어떤 곳이냐고 묻자 도인호는 한참을 생각하다 일반인과 가장 가까운 부서라 답했다.
알 수 없는 답변에 실제로 민원부에 가 보면 알 수 있으려나 했더니. 여긴 도대체 무슨 부서인지 모르겠다.
호은은 열려 있는 회의실 문으로 분주해 보이는 직원들을 스캔했다. 장미처럼 쨍한 빨간 머리의 남자가 칼자루를 손에 쥐더니 물티슈로 칼날을 닦고 있었다. 칼날을 물티슈로 관리하는 게 맞나?
“어어. 레드. 평소처럼 칼을 관리하는 거야?”
“당연하지. 그린. 언제 어디서 내 칼을 휘두를지 모르니 말이야.”
“하하. 이거 이거 참. 나도 질 수 없는걸. 오늘도 평소처럼 맹훈련을 시작해 볼까.”
그린이라고 불린 청록색 머리의 남자는 사무실 벽 한쪽에 마련된 과녁에다 단도를 들고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단도가 과녁이 아닌 벽에 맞아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을 애써 못 본 척하며 호은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지금 홍보부 영상을 촬영하시려고 오셨다는 말씀이시죠?”
“네.”
자신을 하준 팀장이라 소개한 남자는 민원부 소속 에스퍼라 했다.
“사실 어제 갑자기 현장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셔서 몇 개 추려 보긴 했거든요. 민원부가 원래는 굉장히 바쁜데 이번에는 조금 한가한 편이라 현장 난이도가 낮아 괜찮으실지…….”
하준은 입술에 침 하나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뱉었다. 분명 옆에 앉아 있는 김미영이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뻔했지만, 하준은 멈출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앞에서 멋없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당연히 그와 대등한 존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창피하고 싶었다.
도인호 에스퍼 옆에 앉아 있는 가이드는 같은 초록색의 사원증을 찬 걸 보니 팀 가이드 같았다. 도인호 에스퍼가 데려온 곳이 볼품없는 현장이면 그의 가이드가 얼마나 도인호를 무시할까!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생각한 하준이었다.
“제 코드 네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팀은 컬러풀 레인저라고 흠흠, 회사 일 외로도 자체적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팀입니다.”
“그럼 지금 부르고 있는 이름이.”
“코드 네임입니다. 저는 옐로우고요. 조금 옛날 스타일이긴 한데. 저희 모두 <파워 레인저>를 인상 깊게 보고 자란 세대여서요.”
호은의 질문에 하준이 부끄러운 듯 자기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아. 멋, 멋지네요! 뭔가 개성이 있는 부서 같다랄까.”
호은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순간 터져 나오려던 웃음은 간신히 참았다. 사람의 진심을 비웃으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이번 건 힘들 뻔했다. 도대체 무슨 부서이길래 이런 콘셉트를 가진 건지. 잠깐만 콘셉트? 호은은 가방에서 캠코더를 꺼냈다.
“저 그러면. 팀원들 소개부터 천천히 진행해도 될까요? 각자 코드 네임을 말하면서.”
촬영 각을 본 호은의 두 눈이 위험스럽게 반짝였다. 도인호는 호은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무엇이 잘못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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